마크 제이콥스와의 인터뷰

열차, 회전목마, 에스컬레이터 등을 이용한 스토리텔링 컬렉션을 통해 탁월한 쇼마스터 능력까지 입증한 마크 제이콥스. 각본과 연출까지 도맡아 한 편의 서스펜스 영화처럼 완성한 올가을 루이 비통 쇼에 대해 그가 입을 열었다.



매년 3월 열리는 파리 패션 위크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루이 비통 차지다. 몇 년째 루브르 앞뜰의 커다란 텐트에 모여든 전 세계 프레스들과 바이어들은 층계로 제작된 쇼장중앙 관람석에 앉아 루이 비통 여인들이 호텔방 문을 열고 나서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봤다. 올해 50세인 마크 제이콥스의 나이를 상징하는 50개 호텔 방문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여인들은 연인과의 정사를 막 끝내고 나온 듯 메이크업은 번지고 속옷에 코트만을 걸친 유혹적인 자태였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방 안 풍경 또한 관음 증적 취향을 한껏 자극했다. 조금씩 다른 세트가 마련된 각각의 작은 방 안에는 묘령의 여인들의 몽환적인 몸짓을 편집한 흑백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으니까.

지난 몇 시즌간 제이콥스가 공들여 선보인 무대 세트들을 떠올려보면 호텔 복도를 통째로 옮긴 과감함이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 다니엘 뷔렝이 제작한 초대형 다미에 체크판과 네 대의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 빈티지 LV 열차가 등장한 옛날 기차역, 거대한 회전목마 등등. 1997년 제이콥스가 모노톤을 기본으로 어디에서도 LV 로고를 찾아볼 수 없는 첫 번째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만 해도 그와 루이 비통의 인연이 이토록 성공적일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게다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 엎고 제이콥스의 루이 비통은 기록적인 상승세를 타며 매 시즌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호텔 복도를 통째로 옮긴 이번 시즌의 클라이맥스는 새틴 슬립 드레스에 모피 코트, 꽃 자수가 들어간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걸어나온 여전히 관능적인 케이트 모스, 빨간 파자마를 입고 피날레를 장식한 제이콥스가 등장했을 때! 그야말로 런웨이에서 펼쳐진 모든 것이 ‘핫 패션 씬’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감독한 마크 제이콥스가 <보그 코리아>에 시놉시스를 공개했다.



VOGUE KOREA(이하 VK) 올가을 런웨이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직접 스토리를 듣고 싶다.
MARC JACOBS(이하 MJ)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문 뒤에서는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 우리가 느끼는 약간의 노출증과 관음증에 대해 연구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SNS에 투자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동시에 사람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 자기모습을 드러내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알 순 없다. 그런 관점에서 호텔은 사람들에게 익명성을 주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퇴폐적인 화려함을 지닌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VK 바로 그 여성상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떠올린 여인이 있었나?
MJ 아름답게 보이길 원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어 하는 여자, 바로 하이패션을 사랑하는 ‘타락 천사’다. 그녀는 <버터필드 8>의 글로리아(리즈 테일러)일 수도 있고, 글로리아 스완슨이나 줄리엣 그레코일 수도 있다. 여기에 리브 고시와 할리우드에 사는 내 친구들의 모습도 조금 반영했다. 하지만 가발을 통해 모든 여인들이 동일인물처럼 보이게 했다. 언뜻언뜻 비슷해 보이는 여인들은 오직 옷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VK 컬렉션 전체를 이브닝웨어가 아닌 나이트웨어로 꾸민 이유는 뭔가?
MJ 아름답고 관능적인 동시에, 사적이면서 친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잠옷, 나이트가운, 슬립, 파자마 등은 모두 우아할 뿐 아니라 편안하다. 몸을 감싸는 순간 관능적인 기분이 든다.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기 위해 남성 코트를 잠옷으로, 파자마와 새틴 드레스를 슬립으로, 또 슬립은 다시 크레이프 드레스로 변신시켰다. 여기에 자수와 세퀸을 더해 여성성을 부각시켰다. 감상적인 피아노 연주와 함께 무심함, 약간의 권태감, 에로틱한 느낌까지 담았다.

VK 관능적인 슬립과 남성적인 코트의 만남이라!
MJ 채프먼 형제와 킴 존스가 지난 루이 비통 남성복 컬렉션에 선보인 재킷을 활용했다. 버튼을 떼고 슬립 위에 걸치자 보다 더 감각적인 룩이 완성됐다. 남성복 코트로부터 출발한 룩도 여러 벌 등장시켰는데, 타조 깃털과 세퀸 등을 더해 새롭게 탄생시켰다.

VK 모피 안감을 더한 코트를 비롯, 고급 소재들이 많이 쓰였다.
MJ 부드럽고 매끄러운 실크, 새틴, 벨벳같이 아름다운 옷감이 주는 안락함과 관능미를 눈여겨봤다. 여기에 밤의 화려함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더했다. 흑담비 털로 된 안감을 더한 캐시미어 코트, 두 가지 톤으로 염색한 밍크 코트, 밍크로 뒤덮은 악어가죽 토트백, 황새 깃털과 수작업으로 구불구불하게 만든 거위 털 등등. 이번 컬렉션을 위해 루이 비통 디자인팀과 공방은 소재 개발에 유난히 집착했다. 가령 케이트 모스가 입은 시스루 드레스는 회색 벨벳으로 꽃 자수를 놓았고, 언뜻 레이스처럼 보이지만 작은 깃털로 제작한 드레스도 있다. 모두가 좀더 특별한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고, 그 과정 또한 즐겼다.

VK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 가방을 빼놓을 수 없지 않나?
MJ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더없이 고급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것! 아름다운 룩을 더 강렬하게 완성시킬 가방이 필요했다. 스피디, 락킷, 포쉐트 액세서리 등 세 가지 루이 비통 아이콘 백들을 재해석했다. 왁스 처리한 악어가죽, 비단 뱀가죽, 수작업으로 구불거리게 만든 거위털과 황새 등 이국적인 소재를 모조리 동원했다. 손잡이조차 수작업으로 문양을 새긴 상아와 배나무를 쓰고, 보석과 귀금속으로 제작된 체인을 부착했다. 결과적으로 특수 소재들과 숙련된 장인의 손길로 클래식한 루이 비통 가방을 완성한 셈이다. 하우스에서 간직해온 요소를 활용하면서 여기에 장인 정신과 하이패션의 힘, 여성스러운 터치를 더 강조하고 싶었다. LV 로고가 들어간 가방은 무대에 내보내지 않았지만, 열린 방문 속으로 보이는 영상에는 가방, 트렁크, 수트 케이스 등이 잔뜩 있었다. 하하!

VK 이젠 케이트 모스를 당신 런웨이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좋았다.
MJ 케이트와 나는 아주 친하다. 이미 여러 번 루이 비통 쇼 피날레를 장식했지만, 솔직히 평생 우리 쇼에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호텔은 우리가 많은 밤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만든 공간이기에, 이번 쇼에 그녀가 서는 건 좀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VK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루이 비통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당신은 어떤 것에서 영감을 얻나?
MJ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이번에는 도피 욕구와 관련된 프랑스와 미국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그랜드 호텔> 혹은 <샤이닝> 같은 호러 장르에서도 많은 걸 차용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닫힌 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하면서 느끼는 환상을 좋아한다. 누구나 이런 환상을 갖고 있지 않나? 평소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이를 굳이 과시하지 않는 여성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아름다움은 그 여성들이 자신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그들은 관심을 바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의 감정이다. 아름다운 옷, 가방, 액세서리를 걸쳤을 때 느껴지는 관능미에 대한 감정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건 아주 사적이다.

VK 당신에게 매 시즌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MJ 사람들은 바라보는 대상과 자신을 연관지어 생각한다. 물론 그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막연히 연관성을 느끼긴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보며 영향을 받고, 또 자신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줄 순 없더라도, 아주 작게나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컬렉션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