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인스타그램

몇 장 올리는 것으로 자신의 감각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인스타그램. 아기자기한 색감과 간편한 사용법 덕분에 트위터보다 막강해진 이 어플이 패션계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인스타그램 속에 펼쳐진 패션 신세계.



“Please don’t go…” 헝클어진 침대보 위에 놓인 보타이 사진 한 장과 곁들어진 한 마디가 5월 초 패션계를 뒤흔들었다.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가 MET의 펑크 전시 오프닝 파티 다음날 인스타그램(@riccardotisci17)에 올린 사진 덕분에 수많은 인터넷 블로그가 시끌시끌했던 것. 이유는 바로 티시가 행사 내내 요즘 가장 잘나가는 뮤지션, 프랭크 오션의 사진을 잔뜩 올렸고, 침대보 위에 놓인 보타이가 오션이 맨 것과 꼭 닮았기 때문. 파티 다음날 아침에 올라온 사진을 두고, 오션과 티시가 불타는 밤을 함께 보낸 게 아니냐는 추측이 일파만파 퍼질 수 밖에. 물론 티시는 무반응이었지만, 인스타그램 파워를 확인할 사건임은 분명했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사진 찍고, 마음에 드는 필터를 골라 사진 편집 후 친구들과 공유하는 간단한 컨셉의 어플, 인스타그램은 2010년 10월 출시 이후 상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입자만 3,000만 명을 넘었고, 페이스북은 2조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인스타그램을 인수했다. 그 엄청난 인기에는 유명인사들의 유난스러울 정도의 인스타그램 사랑도 한몫 거들었다. 말조심하느라 바쁜 트위터에 비해 사진 한 장이면 모든 게 끝나는 인스타그램은 스타들에게도 편리한 SNS. 게다가 특유의 아련한 필터를 거치면 비현실적일 만큼 화려한 삶도 친숙해 보일 정도다.

여기에 감각적인 사진 셀렉팅으로 ‘촉’을 뽐낼 수 있으니 패션계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열풍에 안 빠질 리 만무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어색하고 두려웠던 디자이너, 모델, 스타일리스트 등도 인스타그램엔 푹 빠졌다. 어시스턴트가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칼 라거펠트(@karllagerfeld)의 팔로워 수는 15만 명을 육박하고, 스텔라 맥카트니의 공식 계정(@stellamccartney)은 약 36만 명이 지켜보고 있다. 버버리(@burberry), 마크 제이콥스(@marcjacobsintl), 프라다(@prada), 루이 비통(@louisvuitton)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한 적 없는 백스테이지 사진이나 아틀리에 풍경을 슬며시 보여준다. SNS의 매력은 가까이할 수 없는 공인들의 사적인 일상을 훔쳐보는 스릴과 짜릿함에도 있다. 열정적인 ‘인스타그래머’인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_rousteing)을 팔로잉하면 친구들과 몬트리올에서 찍은 사진부터, 미국 <보그> 패션 뉴스 디렉터 마크 홀게이트의 생일 파티 풍경까지 훔쳐볼 수 있다. 프라발 구룽(@prabalgurung)은 여행에서 마주친 풍경을 감각 있게 포착하고, 올리비에 데스켄스(@theyskenstheory)는 뷰티숍에서 찍은 깜찍한 ‘셀카’를 올리기도 한다. 겐조 듀오의 움베르토 레온(@humbertotoo)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파트너 캐롤 림이 LA ‘나성한미교회’에서 자기 딸의 세례식을 가졌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

스타일리스트나 에디터, 그리고 사진가와 모델들의 계정들을 살펴보다 보면 패션 피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파리 <보그> 편집장 엠마뉴엘 알트(@emmanuellealt)와 사진가 이네즈와 비누드(@inezvinoodh)는 아들딸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루이 비통의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그랜드(@kegrand)와 <인터뷰> 편집장 파비언 바론(@fabienbaron) 등 베일에 싸인 인물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공개한다. 카렌(@misskarenelson), 지젤(@giseleofficial), 칼리(@karliekloss) 등 슈퍼 모델들 역시 인스타그램 팬이다. 요즘엔 15초까지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어 패션계를 훔쳐보는 재미는 더 쏠쏠해졌다. 어디서 마리오 소렌티(@mario_sorrenti_2)의 어린 시절 사진을 구경하고, <W> 패션 디렉터 에드워드 에닌풀(@mredwardenninful)의 강아지 ‘루’가 산책하는 동영상을 구경할 수 있겠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토커’ 기질을 발휘하고 싶다면, 패션 스타들의 친구들 계정을 살펴보길! 그들의 사진 속에서 톱 모델의 새 애인을 발견할 수 있고, 디자이너의 지극히 사적인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의 기능과 역할이 스타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도구로만 그치는 건 아니다.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보그 페스티벌(영국 <보그> 행사로 패션계 거물들이 대중들을 상대로 강연과 토론회를 가진다)’에서 ‘Net-a-Porter’의 나탈리 마스넷 회장은 인스타그램의 새로운 기능을 알렸다. 평범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대신 인스타그램(@nataporter_mystorysofar)에 자기 삶의 중요한 사진을 한 장씩 올린 뒤 거기 어울리는 캡션을 단 것. 덕분에 런던까지 날아가지 않고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124장 사진을 구경하며 모델에서 패션 에디터, 그리고 세계 최대 패션 쇼핑몰 CEO에 이르는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인스타그램은 디지털이 준 근사한 패션 선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