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가 선별한 2013 가을 패션 트렌드 1

N극과 S극, 북극과 남극, 동양과 서양, 남과 여 등등. 우리는 상반된 것들 사이에 낀 채 살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프라이드와 양념치킨, 물냉면과 비빔냉면, 팥빙수와 과일빙수,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틈에서도 갈등한다. 그리고 2013년 가을, 패션에서는 직선과 곡선, 大자와 小자, 안과 밖, 신사와 숙녀 등 상반된 유행이 동시다발 등장했다. 좌측으로 갈지, 우측으로 향할지 망설여지나? 명쾌한 답이 있다. 둘 다 누릴 것!



Large vs. Small
영화 <설국열차>에서 요나는 아빠 남궁민수와 함께 기차를 점령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진! 그 과정에서 가운데 칸쯤 마주친 클럽 죽순이와 죽돌이들에게 대형 모피 코트를 강탈한다. 아빠가 열차 탈출을 감안해 엄동설한에 필요하니 챙기라고 사인을 줬기 때문이다. 소녀에게 날라리들이 입은 코트는 커도 너무 크다. 하지만 2013년 가을에 맞게 설정된 유행 관점에선 우스꽝스럽지 않다. 충분히 ‘리얼리티’가 있는 양감이었다. 사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이런 큼지막한 형태를 두고 빅 사이즈, 오버 사이즈도 성에 안 차 ‘슈퍼 사이즈’로 지칭했다. 그런데도 아직 대형 옷이 어렵다고? 요나가 걸친 모피 코트가 설인 코스프레처럼 보였다고? 그렇다면 피비 파일로, 스텔라 맥카트니, 올리비에 루스테잉 등이 여러분을 설득할 것이다. 셀린과 맥카트니 코트는 여러분이 여름 내내 뽐낸 각선미를 커튼 치듯 감추고 만다. 하지만 그래서 신비로운 가을이다. 막스마라의 낙타색 테디베어 코트는 뒤로 살짝 젖혀 입어야 빅 사이즈의 매력을 두 배로 즐길 수 있다. 피비와 스텔라가 이렇게 계몽하고 있는데도, 지조와 정절을 지키듯 빅 사이즈에 거부감을 표하는 아가씨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깜찍하고 발랄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미의 기준을 거대한 쪽으로 굴복하기 힘들다. 작고 아담한 것에 목숨 거는 여성들을 위해 에디 슬리만, 칼 라거펠트, 올리비에 테스켄스, 피터 던다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피에르 피치올리가 염려 말라는 표정으로 기다린다. 샤넬, 푸치, 발렌티노, 빅터앤롤프, 데스켄스 티어리 등은 60년대 마리 콴트 시대를 향해 손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줄자를 대고 무릎 위에서 치마 길이까지 대체 몇 cm나 올라왔는지 재고 싶을 정도로 짧게 잘랐다. 특히 생 로랑 마지막 무대는 말 그대로 몸뚱이만 가린 토르소 드레스들의 행렬. 에디 슬리만의 열혈 팬이라면, 블랙 토르소 드레스 무리에 끼어 모델이나 아이돌 걸그룹 멤버처럼 걷는 상상에 빠졌을 것이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면, ‘빅’과 ‘스몰’을 동시에 즐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냐고 되물을 타이밍. 충분히 가능하다. 생 로랑의 리틀 블랙 드레스 위에 막스마라의 테디베어 코트를 걸치면 끝!



Street vs. Bedroom
뉴욕의 펑크 전시가 올가을 유행 몇 가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펑크라는 거친 덩어리들을 체에 걸러보면 펑크의 잔재는 물론, 약간의 바이크 스타일, 약간의 그런지 느낌, 약간의 스포츠 분위기 등의 알갱이들이 쌓인다. 사실, 길거리 펑크족 옷차림에서 바이크 재킷은 기본(준야 와타나베, 아크네, 필립 림, 알투자라의 바이크 재킷이나 바이크 조끼는 어떤 옷에든 잘 어울리니까). 여기에 너덜너덜한 그런지 요소(코트니 러브의 전성기를 그대로 재현한 생 로랑, 헝겊 조각으로 여기저기 기운 준야 와타나베 청바지, 온갖 와펜을 덕지덕지붙인 필립 림의 올인원이야말로 21세기식 스트리트 그런지!), 아주 강력하고 역동적인 스포츠 성분(알렉산더 왕과 알투자라의 권투 글러브인지, 곰발바닥인지 애매한 모피 장갑은 스트리트 분위기의 마스코트!), 그리고 펑크 그 자체(‘너 죽을래?’라고 면도날 씹으며 노려볼 듯한 베르사체!) 등이 와글거리는 패션 스트리트의 유혹은 솔직히 거부하기 힘들다. 반면, 이런 젊은이들이 무서워 죽겠다면, 루이 비통의 올가을 광고 모델들처럼 그저 침실과 응접실에 축 늘어져 책이나 읽고 차나 마시는 게 속 편할 것이다. 그들의 유니폼으로 딱 알맞은 옷이 여기 있다. 바로 슬립과 파자마! 마크 제이콥스는 뉴욕 컬렉션과 파리의 루이 비통 무대에 늘 한 가지 특정 아이템을 공유하는데, 이번엔 슬립과 파자마의 반복을 보여줬다. 물론 파자마가 올가을 특수는 아니다(작년 가을, 파자마처럼 디자인된 재킷과 팬츠를 입고 대기업 빌딩과 명동 거리를 쏘다닌 <보그> 패션 기자의 체험기를 기억하시는지?). 이번엔 로샤스의 마르코 자니니도 합류했다. 하지만 위아래 한 벌을 파자마 룩으로 쫙 빼입는 건 몽유병 환자로 오해받으려고 작정한 짓이다. 그렇다면 이번 섹션은 현실성이 없는 유행인 걸까? 체크 유행이 그랬듯, 파자마 수트는 다른 옷과 짝지을 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룩은 패션 기자나 스타일리스트, 패션 쇼장 주위에서 파파라치들에게 사진 찍히고 싶어 안달 난 인간들을 유혹하려고 만든 옷. 그리하여 붙은 별명이 포토제닉 룩, 혹은 에디토리얼 룩이다.



Check vs. Flower
f(X)가 ‘첫 사랑니’로 컴백했을 때, 뭘 입었는지 기억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다. 푸시버튼의 박승건이 올가을 컬렉션을 위해 마련한 게 붉은색 타탄체크 시리즈였으니까. 가로와 세로, 위도와 경도, 수직과 수평 등을 90도 딱 맞춰 면 분할한 체크는 누가 봐도 명확해 뇌리에 확 박힌다. 식을 줄 모르는 스트라이프에 대한 공격일까? 계절마다 물방울무늬며 뭐며 다채로운 패턴들이 등장하는데, 올가을을 기점으로 체크가 스트라이프를 유행의 벼랑 끝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지. 작품성과 반향을 일으키는 측면에서 오른쪽과 왼쪽 손의 엄지를 하나씩 도맡은 셀린의 피비 파일로와 생 로랑의 에디 슬리만이 체크를 동시에 부르짖었다. 또한 학교 선후배 출신에다 영국 여자, 그리고 같은 패션 하우스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 때문인지, 동시대성에 기인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피비와 스텔라는 상대 디자인팀에 프락치라도 심었는지 비슷한 체크를 선보였다. 캣워크 유행을 성실하게 베껴 덜 비싼 값에 유행을 즐기도록 배려하는 자라, H&M, 톱숍, 에잇세컨즈 같은 SPA 매장엔 이미 생 로랑의 체크(붉은 버전과 푸른 버전 모두)에서 영감 얻은 옷들로 차고 넘친다. 모스키노, 파우스토 푸글리지, 페이 등의 밀라노 브랜드들 역시 영국풍의 타탄체크로 가을 컬렉션을 꾸몄다(다들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백파이프 연주자들과 함께 아서 엘고트 카메라 앞에서 유쾌하게 촬영한 91년 9월호 <보그> 화보를 연상했을 듯). 모두가 타탄체크를 큼직큼직하게 직조하고 있을 때 프라다는 베이비 블루와 파우더 핑크처럼 야릇한 색깔로 앙증맞게 깅엄체크를 짜맞췄다. 타탄체크만큼 패션쇼 분위기를 확 바꾸진 않았지만 두고두고 여운이 남았다. 만약 당신이 분명한 걸 좋아하고 어딘지 각져 있다면 아무래도 체크에 끌릴지 모른다. 평소 성격이 둥글둥글하단 소릴 듣는다면 구불구불 곡선으로 묘사된 꽃무늬가 더 편할까? 성격에 따라 체크냐, 꽃무늬냐를 구분하는건 억지스럽지만, 올가을 패션 성격은 각진 것과 둥근 것으로도 나뉜다. 체크의 반대편이 바로 꽃무늬. 사실 지금 우리는 기상이변이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에 산다. 코스모스는 더 이상 가을에만 피지 않는다. 봄의 시골길에도 핀다. 지방시, 지암바티스타 발리, 어덤, 로다테, 발렌티노, 크리스토퍼 케인 등이 가꾼 가을 정원에도 꽃무늬가 만발했다. 뭘 고르든, 한 가지 주의사항. 제발 f(X) 크리스탈처럼 모자와 옷을 같은 체크로 맞추진 마시길. 그건 무대용일 뿐. 설리처럼 검정 티셔츠에 체크나 꽃무늬를 맞추는 게 현실에선 안전하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