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디올’로 변신한 전지현 1

CF 퀸이자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여배우로서 그리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 줄 누가 짐작했을까? 명실공히 대한민국 톱 여배우 서열 맨 위칸에 오른 그녀가 〈보그 코리아〉카메라 앞에 섰다. 새롭게 해석된 ‘뉴 룩’과 새롭게 평가되는 여배우 전지현 사이엔 분명 닮은 점이 있다.

더스트 핑크색 뷔스티에 위에 언밸런스한 새틴 케이프를 두르고 검정 러플 스커트를 입었다. 메시 스트랩힐, 트위드와 가죽 위빙백으로 스타일링을 하자 우아한 ‘미스 디올’이 탄생했다.

흰색 리본 칼라 장식의 연핑크색 재킷과 검정 볼륨 스커트의 페미닌한 만남. 투톤 펌프스, 타원형 귀고리, 눈썹 반지로 ‘캐주얼 시크’를 가미했다.


전지현은 그동안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돼왔다. 그녀는 ‘천하의 전지현’이지만, 또한 잘 재단된 연예 비즈니스 시스템 속에서 뛰쳐나오는 법이 없는, 그래서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스타였다. 그런 전지현이 <보그 코리아> 커버와 화보 모델로 결정되자 양가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현대적인 이미지의 여배우로 은둔하던 그녀가 디올의 클래식한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설 모습을 상상하면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다가도, 또 어느 여배우보다 모델에 가까운 그녀의 몸을 떠올리면 ‘왜 이제서야!’란 생각이 밀려왔으니까.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자아내는 이름. 여전히 친근한 CF 퀸이지만, 최근 여배우로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전지현. 이런 생각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고 나니,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가 남았다. 전지현은 ‘스타일’과 ‘젊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는 사실. 다른 여배우들도 예쁘고 매혹적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그녀만큼은 아니었다. 전지현은 등장했을 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킨 타고난 아이콘이다.

지난 7월 1일, 그녀는 파리에서 열린 디올 F/W 오뜨 꾸뛰르쇼에 초대 받았다. 디올이 한국 셀러브리티를 쇼에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그녀와 파리에서 화보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빠듯한 일정과 최적의 촬영 조건 등을 조율한 끝에 서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디올은, 무엇보다 옷이 예쁘고 우아해요. 저는 매 시즌 해외 컬렉션에 참가하는 기자나 바이어들에 비하면 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파리로 출발하기 전까지 쇼 과정에 제가 포함돼 있다는 기분으로 충분히 설렜어요. 그 예쁜 의상들을 눈앞에서 직접 보는 느낌은 의상을 입었을 때와는 또 달랐죠.” 여배우가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와 쇼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만나는 일들이 점점 흔해지는 풍경 속에서, 사실 전지현은 그런 ‘이벤트’를 벌인 적이 거의 없다. 디올이 그녀를 택한 이유도 그런 의외성과 신선함 때문이었다.


튜브 톱과 펜슬 스커트의 클래식한 만남. 어빙 펜의 뮤즈가 환생한 느낌이다.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가느다란 목걸이와 반지는 디올 파인 주얼리.

하운드투스 패턴의 튜브 톱과 검정 팬츠 위에 유선형으로 커팅된 연핑크색 베스트와 아플리케 장식 랩 스커트를 레이어드했다.


우리는 최근 영화 <도둑들>과 <베를린>을 통해서도 여배우 전지현의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 초 <베를린>이 개봉할 무렵, ‘전지현 사용매뉴얼’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에 관한 오해와 이해를 풀어보는 기사를 기획했다. 영화감독, 영화 평론가, 광고인 등의 입을 통해 전지현에 대한 환상을 명쾌하게 해석하고자 마련한 기사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역시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정말 신랄하게 풀이해주길 기대했건만(이 얘길 전할 때 그녀는 “오! 그런 거 좋아요!”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모두가 나름의 해석을 거쳐 도달한 결론은 한마디로 ‘전지현이 괜히 전지현인 줄 알아?’였다. 한 광고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지현은 특이하다. 공효진보다 예쁘고, 이나영보다 철없고, 수애보다 사악하고, 송혜교보다 건강해 보이며, 김태희보다 표현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지현의 특이성 혹은 위대함을 다 말할 수 없다.” 재능의 경지로 승화된 외모뿐 아니라, 감정적 콘텐츠를 지닌 분위기 자체가 전지현이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경지’로 이끈다는 것. 그 광고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전지현이 요즘 제2의 전성기라고? 전지현은 쭉 전지현이었다. 영화계 쪽에선 이제야 겨우 그녀의 사용법을 익힌 것일 뿐.”

그녀가 두 대작에서 연달아 ‘홈런’을 친 것은 최동훈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전지현이란 고유명사의 신비감을 잘 활용한 덕이 크다. <도둑들>의 ‘예니콜’은 최동훈 감독이 전지현을 그리며 쓴 캐릭터지만, 전지현이 직접 연락해 꼭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으니, 그 무렵 그녀가 얼마나 별렀을지 짐작이 간다. “처음엔 본때를 보여주자고 맘먹었죠.(웃음) 그런데 막상 결정되고 나니까 눈앞에 점점 여러 배우들이 보였어요. ‘아, 여기선 2등만 해도 내가 안 보이겠구나, 살아 남아야지….’ 하지만 기획 이후부터 촬영 할 때까지 기간이 꽤 길었기 때문에 다양한 심정의 변화를 겪었어요. 촬영 시작했을 땐 살아남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잘 섞일까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처음 각오고 뭐고 그냥 예니콜을 즐기고 있었죠. 네, 제가 잘할 수밖에 없는 역이었어요.” 전지현은 진심을 담은 우스갯소리로 ‘최동훈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말간 얼굴로 긴 생머리 휘날리던 전지현이 ‘어마어마한 쌍년’ ‘니주가리’ 같은 비속어를 원래 입에 달고 살던 여자처럼 내뱉을 때,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환희의 ‘개다리춤’을 출 때, 거기엔 전지현 자신이 그녀를 전복시켜버리는 통쾌함이 있었다. “과거의 저는 제게 주어진 시나리오만 봤어요. 그때도 저를 <도둑들> 캐릭터처럼 쓰려는 작품들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어릴 때 예니콜을 연기했다면, 제대로 맛이 안 났을지도 몰라요. 때맞춰 판이 잘 깔린 거예요.”

라프 시몬스가 만들어낸 2013년형 뉴 룩!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흰색 라펠 장식 검정 롱 코트.

리본 칼라의 빨강 오버 사이즈 코트 또한 무슈 디올의 유산 중 하나. 안에는 검정 민소매 니트와 언밸런스한 디자인의 볼륨 스커트를 입었다.

결혼 일정도 바뀌게 했던 <베를린>을 촬영할 때, 류승완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지령까지 내리며 그녀를 귀하게 ‘모시지’ 않았다. 당의 지령을 받은 북한 첩자이자 임신한 몸으로 고위 간부를 ‘접대’해야 하는 한 남자의 아내가 철저하게 외롭길 원했기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은 전지현에게 ‘련정희’ 캐릭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며, 그녀가 잘해야 영화가 산다는 말을 계속 했다. “감독님이 저를 못 믿으셨는지…(웃음) 이해가 가요. 어둡고 비장한 영화에서 당시의 제게 가련한 홍일점을 맡긴다는 게 도전이었겠죠.” 그녀는 결혼 직후 안정감과 행복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정반대 여자로 갈아타야 했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현실의 충만감은 모진 운명에 처한 한 여자를 더욱 성숙한 감정으로 여유 있게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물론 전지현은 여배우의 중요성을 설파한 감독이나 현장에서 예민하고 집요하게 집중하는 타입의 동료 배우 류승범과도 달랐다. 그녀는 유쾌한 성격의 하정우와 곧잘 낄낄대며 촬영을 즐겼다. “나중엔 저희가 눈치를 봤을 정도였다니까요.(웃음) 저는 기본적으로 심각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뭔가를 어렵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심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