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비싼 김밥

1,500원짜리 만만한 음식이었던 김밥 시장에 그 두 배 가격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됐다. 브리야 샤바랭이 돌아온다면 이렇게 고쳐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어떤 김밥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요즘 ‘SSG청담’이나 ‘고메이494’ 같은 프리미엄 슈퍼마켓, 이름있는 김밥전문점에서는 김밥 가격이 4,000원대 이상을 호가한다. 지난해 압구정동에는 무려 1만5,000원짜리 김밥도 등장했다. 맛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 하나같이 좋은 재료를 사용했다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장마철에도 동부이촌동 로얄상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모종의 현상을 야기했던 슈니발렌이나, 지금 뉴욕에서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는 크로넛을 사려는 줄이 아니다. 고작 김밥 한 줄을 사려는 줄이었다. 오픈한 지 갓 한 달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소문이다. 전화예약도 받지 않고,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다는 김밥전문점, ‘김선생’이다. 이 김밥전문점의 김밥은 2,800원부터 4,500원까지. 이례적인 줄에, 이례적인 가격이다.

‘김밥천국’의 등장 이후,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내려 앉았던 김밥은 물가 상승으로 가격이 조금 올랐지만 그래봐야 1,500원 안팎의 만만한 음식이었다. 밥과 온갖 반찬을 먹기 편하게 두꺼운 김에 돌돌 말아 한입 크기로 썰어 놓았으니 비빔밥의 번거로움조차 축약해버린 한국적인 패스트푸드요, 김밥천국으로 대표되는 대중식당에서는 1,500원, 편의점에서는 1,000원이면 한 줄을 구입할 수 있으니 껌보다도 싼 음식. 김밥은 지갑 두께와 관계 없이 누구라도 사서 한 끼 때울 수 있는 만만함의 미덕을 갖췄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저렴한 그 가격이 어떻게 나왔는가에 있다. 김밥의 기본적인 재료라면 달걀지단, 시금치나물, 당근볶음, 햄이나 맛살, 단무지, 밥, 김, 겉면에 뿌리고 발라주는 통깨와 참기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많은 재료를 1,500원짜리 한 줄에 추려 넣자면 단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김밥은 사람 손으로 싸야만 하는 노동집약적인 음식이니 인건비 문제까지 더해진다.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이렇게 말한다. “한 식당에서 김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조리한다면 김밥의 가격은 1,500원에서 훨씬 올라야 마땅하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는 재료를 대량구매해 밑재료를 대량으로 조리하고, 가맹점에선 최종 단계의 조리만 하기 때문에 판매가격을 확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식당에서는 도매시장을 통해 재료비와 인건비 부담을 덜기도 한다. 달걀지단 같은 경우도 도매시장에서 구워 파는 것을 구입할 수 있다. 식품위생법에 저촉되는 위법성이 없는 한 모두 정당한 음식 재료다.”

그러나 ‘친환경’ ‘유기농’ ‘무항생제’ ‘건강한’ ‘바른’ ‘자연주의’와 같은 표현이 모든 식품 광고를 뒤덮고 있는 요즘이다. 음식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법 테두리의 헐거움이 의심을 낳았다. 그리고 그 의심은 괴담으로 자라났다. 1,500원짜리 김밥을 둘러싼 도시괴담이 횡행한다. 흙투성이 무에 빙초산을 넣어 만드는 단무지, 5년 묵은 구미나 중국에서 어떻게 쪘을지 알 길 없는 찐쌀에 찹쌀을 섞어 가까스로 윤기를 낸 밥, 부화에 실패한 달걀, 분변 묻은 깨진 달걀 등 판매할 수 없는 달걀을 뒤섞어 만든 액란, 정체불명 고기를 갈아 넣은 식품첨가물 투성이 햄. 엽기적이지만 실제로 사회적인 문제가 됐거나, 확인된 실체가 없음에도 꾸준히 구전되고 있는 괴담들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김선생으로 대변되는 프리미엄 김밥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조리해 만든 재료에 대한 신뢰가 깨진 탓에 나왔다. 전통적인 동네 김밥의 강자들이 독보적인 프리미엄 김밥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죠스떡볶이에서 ‘바른 김밥 식당’을 컨셉으로 김선생 1호점을 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갖춘 프리미엄 김밥 체인의 등장이다.

이 새로운 김밥에는 다음과 같은 재료가 들어간다. 사카린, MSG, 합성보존료, 표백제, 빙초산을 넣지 않고 만든 5無 백단무지, HACCP 인증을 받은 청정농장의 무항생제란, 남해에서 채취한 원초를 말려 두 번 구운 김, 나트륨 함량이 낮은 고급 저염햄, 국내산 햅쌀, 최상급 통깨를 ‘찜누름 방식’으로 짜낸 방앗간 참기름. 풀무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안전성이 검증된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소비자의 마음을 잡았다. 김선생 마케팅팀 이송록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좀더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선생은 그런 소비자들을 위한 브랜드다. 그리고 판단은 적중했다. 바른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망은 우리의 인식 이상이다.”

200여 년 전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평론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미식가의 성경이라 할 만한 <미식예찬>을 세상에 남긴 브리야 샤바랭의 한마디 말은 최근 몇 년간 음식을 다룬 글에서 가장 흔히 인용됐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하지만 브리야 샤바랭의 시대엔 음식의 안전성에 대한 고민이란 기껏해야 부패에 대한 걱정이었을 것이다. 음식에 있어서는 맛이 주요한 가치의 근거였으며, 더하자면 재료의 희귀성이나 조리의 까다로움이 그 음식의 가치를 보태는 변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이 공장에서 가공되고 포장되는 현재에 있어 진정 중요해진 건 음식의 본질인 맛 이전에 그것이 안전한 음식인가의 여부다. 프리미엄 김밥 시대의 도래는 우리가 먹는 음식의 고지서에 ‘식품으로서의 안전성 보장’이라는 항목이 공식적으로 추가된 상징적인 사례다. 황교익의 지적대로 1,500원짜리 김밥은 무고하다. 괴담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일 합법적이고 양심적인 1,500원짜리 김밥에겐 억울할 일이겠다. 하지만 괴담에 대한 공포는 실체 없는 유령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괴담이 실체를 드러내는 사례 역시 충분히 겪었다.

다만 씁쓸한 건, 만만하던 김밥이 안전성을 볼모로 감히 우리의 계급과 경제력을 설명하는 지표가 됐다는 사실이다.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 김훈이 “5,000원이던 밥값이 1만원과 3,300원으로 분리되었다. 3,300원짜리 밥의 질은 말도 못할 지경이다. 이는 1만원짜리 밥을 먹을 수 없는 젊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중요한 사태다”라고 말한 것처럼, 김밥 시장이 양분된 것은 중요한 사태다. 1,500원만큼만 만족할 것인지, 4,000원으로 안도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 브리야 샤바랭이 돌아온다면 이렇게 고쳐 말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어떤 김밥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