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아크네 신드롬 1

2016.03.17

by VOGUE

    아크네 신드롬 1

    패션의 쿨한 현상이자 세련된 신드롬의 주인공, 아크네 스튜디오가 서울에 상륙한다. 8월 말 서울에 첫 번째 숍을 오픈하는 아크네의 수장, 조니 요한슨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보그>를 초대했다. 그가 말하는 아크네의 모든 것.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에 자리한 멋진 아르누보 건물 본사에서 만난 아크네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 그가 포즈를 취한 곳은 금색 몰딩 장식이 멋진 로비 공간.

    “서핑해본 적 있어? 서핑이 최고야!” 빽빽한 수염과 햇빛에 잘 익은 사과처럼 홍조를 띤 덩치 큰 남자가 성큼 걸어 들어오며 누군가에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그순간 북유럽의 태양이 내리쬐던 느긋한 4층 카페테리아에 일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진짜 서핑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니까!” 목이 파인 하얀 티셔츠에 검정 재킷, 아킬레스건이 드러나는 검정 팬츠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남자가 기다란 원목 테이블 한쪽에 앉으며 다시 한번 감탄사를 더했다. 이번엔 ‘푸슈!’ 하는 소리를 내며, 양팔을 휘저은 채 보드 위에 누워 수영하는 동작까지 취했다. 카페테리아 한편에서 커피를 마시던 직원들, 손님들을 접대하던 임원,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보그> 기자도 이 남자의 행동을 주시할 수 밖에. 이곳은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쿨한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의 스톡홀름 본사 카페테리아. 바이킹의 외모를 그대로 닮은 그는 브랜드의 수장 조니 요한슨(Jonny Johansson)이다.

    스웨덴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뭔가? 누구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완벽한 복지사회, 또 다른 누구는 끝없이 이어지는 백야의 로맨틱한 밤을 상상할지 모른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잉마르 베르만과 그레타 가르보를 떠올릴 테고, 음악을 좋아한다면 아바의 멜로디를 흥얼댈 것이다. 또 요즘 세대라면 팝 가수 로빈과 <밀레니엄> 시리즈에 열광한다고 고백할 듯하다. 그렇다면 패션은? 패스트 패션의 고수라면 H&M의 고향이 스웨덴임을 자랑하듯 떠들 테고, 패션 마니아라면 로샤스 디자이너 마르코 자니니가 스웨덴 출신이라며 자신의 패션 지식을과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스웨덴이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이름은 바로 조니 요한슨이 이끄는 아크네 스튜디오다.

    스웨덴의 부유한 가문이 소유했던 은행 건물을 본사로 사용하고 있는 아크네 스튜디오. 왼쪽 위가 조니 요한슨의 개인 사무실.

    아크네의 시작은 사실 패션과 거리가 있다. 1996년 스톡홀름의 감각적인 젊은이 네 명이 ‘필름,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컬렉티브’란 거창한 타이틀아래 시작한 게 아크네였다. ‘여드름’이란 뜻의 패션 브랜드답지 않은 이름은 사실 ‘Ambition to Create Novel Expression’의 약자. 앤디 워홀의 ‘팩토리’처럼 재능 있는 창작 집단을 꿈꾸던 아크네가 패션 영역에 진출한 건 1997년부터다. 4인방 중 한 명이었던 조니 요한슨이 빨간 박음질이 독특한 청바지를 100벌 만들면서 시작된 것. 그가 스톡홀름의 멋쟁이 친구들에게 청바지를 선물한 뒤부터 아크네라는 독특한 이름이 패션계에 알려졌다. 타이밍은 절묘했다. 2000년대 초반 스키니 진의 열풍과 함께 아크네는 케이트 모스와 시에나 밀러가 입는 데님 브랜드로 유명해졌고, 파리의 꼴레뜨와 뉴욕의 오프닝 세리머니, 바니스 백화점은 재빨리 이 컬트 브랜드를 앞다퉈 소개했다.

    하지만 아크네는 평범한 데님 브랜드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미카엘 쉴러(Mikael Schiller)가 경영 전문가(지금은 ‘체어맨’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로 합류했고, 조니와 미카엘은 창립 멤버들의 지분을 사들이고 새로운 아크네를 정립했다. 2010년엔 드디어 스톡홀름을 벗어나 런던에서 공식 패션쇼를 열었고, 랑방과 함께 100% 데님으로 구성된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며 패션 브랜드로서 욕심을 드러냈다(데님 턱시도, 데님 웨딩 드레스 등등). 또 다니엘 실버, 스노우든, 윌리엄 웨그먼 등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 컬렉션 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을 비롯, 아크네가 그들만의 취향을 큐레이팅한 멋진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아크네의 방향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아크네 페이퍼>라는 브랜드 매거진. 평범한 마케팅 도구를 뛰어넘는 이 잡지는 매번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심도 깊은 아이디어를 펼친다.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철학가 노암 촘스키 인터뷰를 싣는가 하면, 카린 로이펠트와 함께 에로스에 대한 역사 공부를 기획한다. 화보 페이지에 등장하는 옷도 아크네만 고집하는 촌스러운 접근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독특한 아크네의 행보에 패션계 모두가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고있다.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건 지난 3월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첫번째 파리 컬렉션. 아크네의 파리 진출을 맨 처음 목격하려는 이들로 쇼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뒤늦게 쇼장에 도착한 몇몇 셀러브리티들 조차 서서 쇼를 관람할 정도. 또 파리와 런던, 뉴욕, 도쿄 등의 ‘아크네 스튜디오’ 매장은 핑크색 쇼핑백을 손에 들려는 쇼핑객들로 늘 붐빈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처음 탄생한 오래된 은행 건물에 있는 아크네 스튜디오 스톡홀름 매장. 오른편은 조니가 디자인한 1인용 소파. 마우스 커서로 길게 늘여놓은 듯한 모양이 독특하다.

    다시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에 있는 근사한 아르누보 장식의 아크네 본사로 돌아가보자(본사는 오래된 은행 건물이었고, 거기서 멀지 않은 아크네 스톡홀름 매장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시작된, 인질 강도 사건이 발생한 은행 건물에 있다). <보그 코리아>는 한국에 첫 매장을 여는 아크네의 초대로 이 근사한 건물을 방문했다(8월 말에는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10월에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 차례로 매장을 연다. 플래그십 스튜디오는 내년 초 오픈 준비를 위해 서울 모처를 ‘찜’한 상태). 스톡홀름 근교 섬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다 잠시 손님을 맞기 위해 돌아온 조니 요한슨은 연어구이와 각종 콩을 기본으로 한 건강 샐러드가 놓인 식탁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서 오간 대화 주제는 서핑부터 잉마르 베르만(그는 최근 이 전설적인 감독이 각본을 쓰던 옛 별장을 구입했다), 스웨덴의 가구 디자인, 전통 스웨덴 음식 레시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대화 도중 함께 서핑을 배우는 사랑스러운 세 명의 아들 사진을 휴대폰으로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전, 그는 건물 곳곳을 안내했다. 7월 내내 휴가를 즐기는 스웨덴의 특성상 사무실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조용한 건물 속 미로 같은 사무실에선 당장 모델로 나서도 좋을 듯한 멋진 외모의 디자이너들이 삼삼오오 모여 목소리를 낮춘 채 내년 봄 컬렉션 컨셉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또 로비의 안내원부터 카페테리아 직원까지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Hej, Hej(스웨덴식 인사말)”라고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뒤 요한슨은 웅장한 로비의 왼쪽 방으로 안내했다. 아크네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그의 사무실이었다. 바닥에는 영감을 줄 만한 이미지들이 정돈돼 있었고, 한쪽 벽에는 오래된 기타가 있었다. 패션계 유명인사들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와 축하카드가 꽂힌 보드 앞에 앉아 그는 인터뷰 내내 중저음으로 아크네의 정신을 느긋하게 이야기했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포토그래퍼
      TOBY kNOTT, KIM WESTON ARNOLD
      기타
      COURTESY OF ACNE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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