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네 신드롬 2

패션의 쿨한 현상이자 세련된 신드롬의 주인공, 아크네 스튜디오가 서울에 상륙한다. 8월 말 서울에 첫 번째 숍을 오픈하는 아크네의 수장, 조니 요한슨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보그>를 초대했다. 그가 말하는 아크네의 모든 것.

아크네 스튜디오를 쿨하게 만드는 다양한 활동들. 아티스트들부터 랑방,  등과의 협업 프로젝트와 까지. 요즘은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도 아크네의 인기가 뜨겁다.

Vogue 건물이 정말 근사하다. 자갈이 깔린 바깥부터 노란색 외관, 그리고 내부까지. 상상 그 이상이다.

Jonny Johanson(이하 J.J.) 고맙다. 원래 스웨덴의 아주 부유한 가문이 소유했던 은행 건물이다. 쇼룸으로 쓰는 2층은 무도회장이었다. 문화재로 보호되는 곳이라 함부로 간판도 달 수 없다.

Vogue 1996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런 건물에서 일하진 않았을 것 같다. 아크네의 시작은 어땠나? 초기에는 패션이 아닌 건축, 디자인, 필름 회사였다.

J.J. 음, 그 이야기엔 긴 버전이 있고 짧은 버전이 있다. 어떤 걸 원하나?

Vogue 뭐든! 여기 이 자리라면 영원히 앉아 있을 수 있다.

J.J. 1995년, 난 친구 세 명을 선망하고 있었다. 아주 재능 있는 친구들이었고, 그들이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우쭐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난 마지막 멤버였다. 세 명은 컴퓨터 디자인 작업이 익숙했고, 난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시작한 뒤 나만 두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일을 맡겨주기만 기다렸다. 그래도 행복했다. 처음 맡은 일이 스튜디오 사무실을 새로 디자인 하는 거였다. 가구부터 구조까지 모두 내 손에서 탄생했다. 그런 뒤 패션 관련 일들이 내게 맡겨졌다. 내가 컴퓨터 작업을 못했기 때문이지만, 사실 내가 그들 중 가장 ‘패셔너블’했기 때문이다.

Vogue 어떤 옷을 즐겨 입었나?

J.J. 당시 스웨덴에서 구할 수 있던 유일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는 헬무트 랭과 프라다였다. 그 옷을 즐겨 입으면서 나도 일종의 패션 ‘종(Species)’이 될 수 있었다.

Vogue ‘종’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그렇다면 아크네 이전의 조니는 뭘 하던 청년이었나? 헬무트 랭을 입을 정도면 꽤 세련된 취향이었는데.

J.J. 뮤지션이었다. 스웨덴 북부 도시에서 밴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만하다는 이유로 잘렸다. 그래서 스톡홀름으로 왔다. 새로운 밴드로 성공해 나를 버린 나머지 멤버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몇몇 밴드들과 만나 연주하며 공연했다. 그 와중에 가구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스케치하고 직접 프로토타입을 만들기도 했다. 또 패션숍에서도 일했다. 음악으로 돈 벌기가 쉽지 않으니 일종의 부업인 셈이다. 그러다 패션을 발견했다.

Vogue 어떤 음악을 했나?

J.J. 기본적인 록 음악이었다. 음악이 자기 표현이었다면, 패션은 또 다른 방식의 자기 표현이었다. 다행히 나와 잘 맞았다.

Vogue 아크네에서 100벌의 청바지를 만들고, 그 이후 성공기는 이제 신화처럼 알려져 있다.

J.J. 난 운이 좋았다. 당시 패션계는 해체주의와 앤트워프 디자이너들이 득세할 때였다. 그렇기에 단순하면서도 쉬운 디자인으로 그 사이에 슬쩍 낄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내가 스물다섯 살의 디자이너 지망생이라면 당장 낙제하고 말 것이다. 요즘 패션은 옷의 완성도, 구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경쟁자들도 너무 많다.

Vogue 하지만 당시에도 경쟁자들은 있었다. 아크네와 비슷한 시기에 관심 받은 스웨덴 브랜드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성공을 이룬 건 아크네뿐이지 않나?

J.J. 그건 다른 브랜드들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닐까? 농담이다. 하지만 이곳은 인구가 800만명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나라다. 그렇기에 패션에 재능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고 성공률도 낮을 수밖에.

Vogue 그렇다면 스물다섯 살의 조니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한다면?

J.J. 내가 늘 패션 학도들에게 충고하는 게 있다. 실용적(Pragmatic)으로 사고하라는 것. 실용적 사고가 기본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건 그저 허상일 뿐이다. 실용성을 놓치지 않은 게 우리 성공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Vogue 실용성을 중시하는 디자이너가 청바지를 첫 번째 상품으로 선택한 건 적절한 선택이다.

J.J. 초반에 청바지 하나만으로 유럽에서 꽤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불만이었다. 단순히 데님 하나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대비해 작업을 준비했다. 청바지 성공을 ‘희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데님 말고도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많았다. 우리 스튜디오의 기본 아이디어를 재창조하기 위해 작업을 계속했다. 패션에 대한 아이디어도 새롭게 다지고 싶었다.

Vogue 정확히 언제까지 이어졌나?

J.J. 2002년쯤까지였다.

Vogue 처음으로 아크네를 알게 된 건 2004년 말 파리 <보그>에 나온 기사 덕분이었다. 그때 알게 된 아크네는 새로운 아크네인가?

J.J. 기억 난다. 난 너무 긴장해서 바닥에 드러누워서 카린 로이펠트의 전화를 받았었다. 웃긴 건, 난 누운 채로는 아무 생각도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명한 패션 인사가 우리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게 고맙고 두려웠다.

Vogue 타이밍은 훌륭했다.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걸 찾고 있었고, 스트리트 브랜드와 하이패션이 어느 정도 섞인 아크네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J.J. 깊은 고민의 결과였다. 우리는 단순히 패션 브랜드로 알려지기 싫었다. 실제로 단순한 패션 브랜드는 아니었다. 다양한 면을 지닌 창조적 집단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Vogue 지금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아크네를 만날 수 있나?

J.J. 휴….(곁에 있던 홍보 담당자가 60개국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Vogue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패션 브랜드가 여전히 쿨한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란 쉽지 않다.

J.J. 희생 정신 때문이다. 하나만의 아이디어만 고집해선 안 된다. 예상치 못한 면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사업적 측면에서는 위험이 따르지만 중요한 일이다. 그건 개인적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난 흥미로운 직업을 가진 인물이 되고 싶다. 만약 내가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한다면, 그건 지루한 직업이 되고 말 것이다.

Vogue 지금 아크네에 만족하나?

J.J. 다행인 건 우리가 지금은 ‘좋은 파일’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 파일 속 어디쯤인진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아직 ‘나쁜 파일’에 속해있진 않다.

Vogue 쿨하다는 건 아크네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정작 당신에게 쿨한 건 뭔가?

J.J. 쿨한 것을 정의 내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적어도 내 생각엔 유행과 연관된 ‘쿨’은 위험하다. 트렌드를 좇는다면, 그건 패셔너블한 거지 쿨한 게 아니다. 가장 쿨한 건 솔직한 것 아닐까. 솔직함이야말로 섹시하다. 또 솔직함은 당당함이다.

Vogue 솔직히 말해, 아크네라는 이름이 쉽지만은 않다. 아마 한국 고객들은 아크네 뜻이 ‘여드름’이라는 걸 알면 깜짝 놀랄 거다. 게다가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는 야망’이라는 원대한 꿈의 약자라니!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 이름은 아니다.

J.J. 난 한 번도 그 이름을 좋아한 적 없다(인터뷰 내내 그는 아크네라는 이름 대신 스튜디오 혹은 브랜드라고 지칭했다). 함께 시작했던 동료가 이름을 골랐고, 억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직도 가끔 이름을 이야기할 때면 부끄럽다. 특히 은행 같은 곳에서 이름을 말하면 당황해 한다. 하지만 그 이름은 주어진 일은 해냈다.

Vogue 이름에게 주어진 일이란 그 이름이 독특하고 새롭다는 건가?

J.J. 전 세계 공통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숨은 능력자의 느낌도 있지 않나?

Vogue 이번 봄부터 아크네에 스튜디오를 붙여 ‘아크네 스튜디오’라는 라벨로 표기하고 있다.

J.J.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점점 더 새로운 곳에 우리 이름을 알려야 하는데, 가령 멕시코에선 우리 이름을 등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뒤에 뭘 붙여야 했는데 스튜디오라는 단어가 가장 맘에 들었다. 스튜디오야말로 패션이 탄생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멋진 균형을 이룬 것 같아 만족스럽다. 다만 브랜드 이름이 길어져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했던 건 쉽지 않았다.

Vogue 패션이 시작되는 스튜디오를 강조한 의도는 이번 가을 컬렉션 느낌과 비슷하다. 파리 뮤제 갈리에라(국립 의상 박물관)의 오래된 옷들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했다고 했는데, 점점 더 패션의 테크닉에 관심 갖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정식 패션 교육을 받지 않았던 디자이너로서 구조와 완성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는 건가?

J.J. 처음 시작했을 때 난 형편 없었다. 고객으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처음부터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패션을 만들었다. 오히려 그건 우리의 강점이었다. 물론 어떤 마무리나 완성도가 떨어질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습득했다. 아직 더 배워야 할 게 있지만, 예전처럼 피팅할 때 아무것도 못하진 않는다.


지난 3월 2일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선보였던 아크네 스튜디오의 가을 컬렉션. 파리의 의상 박물관인 ‘뮤제 갈리에라’에서 영감을 받은 세련된 컬렉션으로 호평을 받았다.


Vogue 스스로 어떤 미학을 지닌 디자이너로 생각하나?

J.J. 모던하고 그래픽적인 옷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작품을 보며 감탄한다. 내가 추구하는 볼륨과 그래픽한 디자인이 있으니까.

Vogue 또 다른 디자이너로 누굴 꼽겠나?

J.J.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던 헬무트 랭,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창의성을 지닌 미우치아 프라다.

Vogue 스톡홀름의 데님 브랜드에서 이제 그랑 팔레에서 쇼를 여는 브랜드가 됐다. 파리 첫 쇼는 어떤 경험이었나?

J.J. 힘들었다. 넘어야 할 거대한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파리로 가야지!’라고 대단하게 결심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뮤제 갈리에라로 작업을 시작했고, 프랑스 정부가 연관돼 있었기에 파리에서 쇼를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프랑스의 옛날 옷에서 영감 받은 옷들을 런던에서 선보이는 건 왠지 어색했다.

Vogue 쇼가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인사를 건넸을 때, 당신은 어딘지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쇼가 근사했었다고 전하자 당신은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J.J. 정신 없었다. 모두와 인사를 마치고 무대로 다시 나가자 우리 쇼를 본 두 사람이 남아 쇼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Vogue 그 정도로 흥미로운 쇼였다는 방증 아니겠나?

J.J. 패션쇼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쇼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면 그 흔적이 모두 사라진다. 사람들은 빠르게 쇼장을 빠져나가고, 인부들은 세트를 철수한다. 이번에도 그 풍경을 지켜보다 호텔로 돌아갔는데, 사흘 동안 아무런 문자 메시지나 메일이 오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 모두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니까 아예 연락을 안 한 거다. 솔직히 기대도 높았고 사람들도 많았다. 끝나서 기쁠 뿐이다.

Vogue 하지만 계속해서 쇼는 열어야 한다.

J.J. 이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그 경험에 맞춰 일하면 된다.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 뿐이다.

Vogue 어떤 옷을 만들고 싶나?

J.J. 내가 어렸을 때 패션은 기능적이면서도 컨셉추얼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패션이 환상 속에 푹 빠져버린 시대가 찾아왔다. 나도 환상을 좋아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패션 환상은 현실 감각을 잃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현실을 붙잡았고, 다행히 패션에 다시 현실감이 돌아왔다. 환상이 현실 안에서 머무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Vogue 크리에이티브한 걸 좋아하지 않나?

J.J. 난 패션 비즈니스라는 카테고리 안에 머물고 싶다. 가끔 패션을 예술로 여기는 사람을 만난다. 내게 패션은 패션이고, 예술은 예술이다.

Vogue 제 아무리 부자라도 제프 쿤스의 강아지 풍선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J.J. 그렇다. 패션은 좀더 쉽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Vogue 당신이 스웨덴 출신이라는 게 작업에 영향을 끼치나?

J.J. 현실감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스웨덴적인 유산이다.

Vogue 사실 스톡홀름에 오기 전, 스웨덴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 스웨덴 역사책을 읽었다. 하지만 13세기가 넘어가면서 너무 많은 왕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결국 끝내지 못했다.

J.J. 나도 그런 책은 못 읽을 거다!

Vogue 읽은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인상적인 게 있었다. 청동시대가 처음 스웨덴에 펼쳐졌을 때, 당신들의 조상은 농기구보다 장신구를 먼저 만들었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스웨덴 사람들의 피 속에 흐르는 걸까?

J.J. 그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음, 스웨덴은 아주 가혹한 자연을 지녔다. 거친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뭔가 새로운 문화를 만났을 때 그걸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또 하나 특성은 아주 국제적이라는 점.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여행을 즐긴다. 좁은 지역에 갇히고 말 거라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Vogue 또 하나, 스웨덴 사람의 특성 중 ‘옌테의 법칙’과 ‘라곰’이라는 표현도 기억에 남는다.

J.J. 옌테의 법칙은 개성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걸 피한다는 것이다. 라곰(Lagom)은 스웨덴 정신을 대표할 만하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적당한 것을 지칭한다. 소금이나 설탕도 적당히. 그게 바로 라곰이다. 그건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Vogue 당신도 라곰에서 영향 받았나?

J.J. 분명 그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아직까지 어느 정도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 사실이 그저 기쁘진 않다. 어떤 면에서 그런 특징은 자유로운 표현을 제한하기도 하니까. 적당한 선이나 기준을 넘어설 때면 꼭 성공하지 못할 듯한 불안감을 준다.

Vogue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 경험을 꼽는다면?

J.J. 음, 다리가 세 개짜리 가구들? 난 아주 즐거웠다. 그걸 본 스웨덴 사람들은 과하다고 여겼겠지만!

Vogue 가구와 건축을 좋아하는 듯하다. 또 뭘 즐기나? 아직도 밴드에서 연주하나?

J.J. 그럴 시간이 없다. 대신 기타를 모은다. 60개가 넘는 빈티지 기타를 모았는데, 대부분 50~60년대 디자인이다.

Vogue 또 수집하는 건 없나?

J.J. 가구와 사진. 예술 작품은 별로 없다.

Vogue 어떤 사진가를 좋아하나?

J.J. 사라 문과 파올로 로베르시 등이다.

Vogue 두 사람 모두 <아크네 페이퍼>와 함께 작업했다. 단순히 카탈로그가 아닌 신개념 잡지를 탄생시켰다. 앤디 워홀이 <인터뷰>를 만들었다면, 조니 요한슨은 <아크네 페이퍼>를 만든 셈이다.

J.J. 친구인 스타일리스트 마티아스 칼슨(Mattias Karlsson)이 편집장 토머스 페르손(Thomas Persson)을 소개시켜주면서 시작됐다. 우린 창조적 의미에서 사랑에 빠졌다. 토머스는 우리가 디자인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인 리서치 과정을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패션의 역사를 과거와 현재, 미래에 비춰 바라보는 힘을 지녔다.

Vogue 당신은 매거진 작업에 얼마만큼 관여하나?

J.J. 시간이 없어 거의 손을 뗀 상태다. 물론 큰 그림에 대해선 의논하지만, 그걸 아름답게 만드는 건 토머스의 몫이다.

Vogue 오늘도 <보그> 인터뷰 전에 다른 미팅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나?

J.J. 100명이 넘을 듯하다.

Vogue 거기에 런던, 파리, 뉴욕, 코펜하겐, 오슬로, 도쿄에 자리한 사무실까지. 스웨덴 북부 마을에서 복수를 위해 스톡홀름을 찾은 청년치곤 꽤 성공한 삶 아닌가?

J.J. 난 성공하고 싶었다. 게다가 패션계에서 일하게 돼 기쁘다. 난 인정하기 싫지만, 내 안의 어딘가에는 일반적인 직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음악은 일반적인 직업은 아니다. 게다가 아주 나쁜 스트레스를 준다. 하지만 패션은 좋은 스트레스로 여기는 중이다.

Vogue 아직도 야망이 남았나?

J.J. 물론이다. 난 뚱뚱하지만 행복하진 않다! 스웨덴식 농담이다. 아직 꿈은 많다. 아주 조금씩 한 단계씩 나아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더 똑똑해지고 싶다. 패션에 집중하길 원한다. 그러면 행복할 듯하다.

Vogue 그렇다면 아크네 스튜디오라는 라벨을 달고 나올 궁극적인 상품은 뭘까? 무엇을 디자인하고 싶나?

J.J. 나의 여름 별장 근처에 완전히 새로운 집을 짓고 싶다. 유명 건축가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모든 걸 내가 전부 디자인한! 그게 꿈이다.

Vogue 그 꿈이 실현되는 날 꼭 다시 초대해주길.

J.J.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