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옥션을 둘러싼 이야기

프린세스 다이애나의 블랙 드레스부터 수지 멘키스의 생 로랑 재킷, 마리오 소렌티의 케이트 모스 사진까지. 이것을 살 수 있는 곳은 부티크나 갤러리가 아니다. 패션 옥션을 둘러싼 솔깃한 이야기.



드레스 한 벌에 4억2,000만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격의 주인공은 빅터 에델스테인이 다이애나 비를 위해 만든 블랙 드레스다. ‘억’소리 나는 값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난봄 런던 케리 테일러 옥션이 개최한 경매에 이 옷이 나왔기 때문이다. 캐서린 워커, 잔드라 로즈, 브루스 올드필드 등 다이애나의 총애를 받던 디자이너들의 의상 10벌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에 패션계는 물론 대중들까지 들썩거렸다(다이애나가 자동차 사고로 숨지기 두 달 전, 직접 뉴욕에서 열린 자선 경매에 내놓았던 옷들이다). ‘후덜덜한’ 가격의 블랙 드레스는 1985년 백악관을 방문한 다이애나 비가 존 트라볼타와 춤 출 때 입던 것으로 경매 시작 전부터 화제였다. “동화 같은 순간이었다”라고 그날 밤을 회상한 트라볼타의 감흥 한마디가 드레스 가격이 지붕을 뚫고 올라가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이 기념비적 의상은 누구의 손에? 오로지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깜짝 선물로 구입했다는 한 영국 신사였다.

프린세스 다이애나의 의상 경매를 진행한 케리 테일러 옥션은 또 다른 다이애나의 옷을 공개했다. 전설의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소장품을 경매에 선보인 것.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 스타일을 추구한 브릴랜드였기에 사람들(특히 패션 피플들)은 얼마나 고급스러운 의상이 잔뜩 쏟아져 나올지 눈에 불을 켰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 받은 옷은 브릴랜드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뜻하는 아주 작은 붉은색 리본이 새겨진 이브 생 로랑의 남색 울 피코트. 사진가 세실 비통이 그린 초상화에서 그녀가 입에 물었던 담뱃대 역시 화제의 경매품이었다. 그녀가 죽은 뒤 23년이 흐른 지금, 마침내 공개된 옷들을 구경하고 구입해 소장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음은 물론이다.





두 명의 다이애나 의상 경매를 담당한 곳은 패션과 경매 전문가 케리 테일러가 이끄는 영국의 경매 회사다. 빈티지 의상을 전문으로 하며, 이미 유럽에선 빈티지 패션 경매 회사로 유명하다. 물론 경매 회사의 양대 산맥은 모두가 알다시피 크리스티와 소더비. 패션 경매 쪽은 크리스티가 더 두드러진다. 얼마 전, 움직이는 패션 대백과사전으로 불리는 패션 평론가 수지 멘키스의 옷장 속 80가지 물품이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 7월 11일부터 22일까지 이어진 온라인 경매에는 생 로랑의 칵테일 재킷, 빈티지 오시 클락 드레스, ‘SUZY’가 새겨진 샤넬 퀼팅백 등 80여 개 품목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큰 공간만 있다면 이 옷들로 아트 갤러리를 만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옷들은 트렁크에 방치돼 있었죠.” 멘키스 여사는 소장품이 트렁크 그늘에서 벗어나 낮에는 햇빛, 밤에는 클럽 미러볼 조명 아래 반짝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티가 준비한 다음 경매의 주인공은? 슈퍼 모델 케이트 모스! 9월에 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사진, 조각, 회화 작품을 경매에 붙일 예정이다. 경매인은 마리오 소렌티, 닉 나이트, 브루스 웨버, 마리오 테스티노 등이 촬영한 한정판 작품의 낙찰가를 700만~1,000만원으로 추정했다.

자, 그렇다면 패션 경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될까? 세련된 옷차림과 능숙한 제스처로 입찰가를 올리고 경매봉을 두드리는 것만이 경매인의 일이 아니다. 경매품을 지닌 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1997년 다이애나 비의 의상을 구입한 미국의 어느 수집가는 물론,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경매품은 파리에 머무는 그녀의 가족과 미국 <보그>의 오랜 친구들(대중 매체에선 앙드레 레온 탈리와 해미시 보울스라고 추측한다)로부터 공수했죠.” 두 경매를 진두지휘한 케리 테일러의 설명대로, 경매인은 경매가 결정되면 위탁인으로부터 물건을 운반하고 선별해 이를 손상 없이 판매할 수 있도록 복원한다. 또 다각도로 연구해 촬영한 뒤 카탈로그를 제작한다. 경매품에 관한 자료와 이미지를 찾는것도 중요한 일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 경매를 홍보하는 일도 경매사의 몫이다.





반면, 위탁인이 경매를 하기로 결정 내리는 계기는 간단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였죠. 작년 5월 V&A 뮤지엄에서 열린 <Ballgowns: British Glamour Since 1950> 오프닝 파티에서 수지 멘키스와 얘기를 나누다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리즈 테일러와 다프네 기네스의 의상 경매를 진행한 팻 프로스트는 크리스티의 국제 패션 전문가로, 이번 수지 멘키스 경매도 그의 작업이다. “전시를 보며 과거에 구입한 옷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수지가 1964년 이후 옷을 한 번도 버린 적 없다며 엄청난 소장품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다고 그러더군요. 우리의 대화는 결국 ‘경매’라는 결과를 낳았죠!” 케이트 모스 예술품 경매는 크리스티의 20세기 장식 예술과 사진 전문 국제 책임자 필립 가너와 독일 태생의 수집가 거트 엘페링의 합작이다. “2005년부터 엘페링과 긴밀하게 협조하며 그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네 가지 경매를 기획 중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케이트 모스 프로젝트죠. 케이트 모스를 동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판단한 엘페링이 그녀가 등장한 사진과 예술품을 꾸준히 수집해왔습니다. 우린 이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위탁인에게 경매가 매력적인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소장품 혹은 수집품을 편리하게 판매하고, 또 가격 경쟁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비의 경매는 총 13억원, 수지 멘키스의 경매는 1억2,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멘키스 경매의 최고가 의상은 1980년 생 로랑의 칵테일 재킷으로 무려 1,500만원대를 기록했다. 또 구입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으로 귀중한 경매품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무엇보다 경매품이 옷장과 지하 창고를 벗어나 세상에 나와 조명받고 회자되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창조적인 이벤트다. “이번 옥션을 통해 수지 멘키스의 손자손녀들이 빈티지 의상과 장식 예술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팻 프로스트는 덧붙였다. “이 또한 경매의 즐거움 아닐까요?”





그렇다면 경매에 참가해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불하고 경매품을 구입하는 이들은 대체 누굴까? 경매사들은 일반인들보다 큐레이터와 미술사 연구원, 패션 디자이너, 패션지 기자 등 패션과 예술계 종사자들이 관심이 많다고 전한다. 옷이나 작품을 실제로 입고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는 이들부터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디자이너, 예술품처럼 신성하게 모시는 수집가(따라서 옷을 착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투자를 위해 뛰어든 국제적인 딜러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 등등. 치열한 경매 전쟁에서 이긴 승리자들은 각양각색이다. 빈티지의 경우 의상 소유자를 향한 애정과 동경을 전제로 한다.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팬들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예다. “이번 옥션에서 다이애나가 1992년 한국 방문 때 입은 진주 장식 버건디 벨벳 드레스는 한국의 어느 구매자가 낙찰받았어요.” 현재 그 드레스는 ‘South Korea’로 배송 준비 중이라며 케리 테일러는 <보그 코리아>에 슬쩍 귀띔했다.

“패션 경매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할 겁니다. 패션이 점차 현대 예술을 반영하는 거울로 그 영역을 확장 중이니까요.” 최근 불어닥친 패션 경매 열풍에 대해 묻자, 팻 프로스트는 패션 경매품에는 특정 인물을 향한 향수와 대중들의 동시대적인 열정이 함축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열풍이 계속돼 언젠가 미우치아 프라다가 공산당원 시절 입었던 스커트나 1955년 칼 라거펠트가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코트가 경매에 나올지 누가 알겠나! 패션 옥션에 관심이 생긴다면 먼저 이베이에 접속해 빈티지 의상을 찾아보고 경매를 기웃거리는 일부터 시작해보길! 패션 역사의 한 조각을 소유하려는 열망만 있다면 옥션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