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유감

토마토라고 모두가 같은 토마토는 아니다. 각각 다른 품종이 구분되지 못하고 그저 토마토, 감자, 포도, 사과로만 불리는 것은 김씨 성을 가진 모든 이를 ‘김씨’로 개명시키는 것과 같다.



이태원 ‘인스턴트 펑크’의 셰프이자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이 투덜댔다. “토마토소스라도 할라치면 깡통이나 써야돼!” 거기에 덧붙였다. “한국 감자는 죄다 수미야!” 또 한 마디 더 보탰다. “업자들이 품종을 구분 안 하고 팔아!” 이탈리아 유학 중 밭에서 갓 딴 산 마르차노 토마토의 맛을 봐버린, 서울 사는 셰프의 분통은 정당하다.

가로수길 ‘세레브 데 토마토’가 화제가 된 것은 이 맥락이다. 세레브데 토마토에서는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60여 종의 메뉴에 단맛, 신맛, 짠맛의 균형이 제각기 다른 다양한 종류의 토마토가 맞춤 재료로 사용된다. 매번 경작 현장을 방문해 토마토 상태를 체크한 후 이뤄지는 산지 직거래를 통해 여러 품종의 토마토를 확보한다. 그린, 오렌지, 옐로 대추 토마토와 흑토마토, 레드 방울토마토, 도태랑 등의 품종이다. 다만 토마토 주스의 경우 국내에서 해결이 안 돼 본사에서 공급한다. 캐롤세븐, 아이코, 옐로 아이코, 레드오레 등의 품종을 사용한 주스다.

토마토는 농익으면 물렁해져 유통 과정에서 그 가치를 버리는 작물이다. 아무도 농익어 터진 토마토를 사지 않는다. 그래서 푸릇푸릇할 때 따서 유통 과정 중 열매째 숙성시킨다.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과실의 숙성은 차라리 변색이다. 오죽했으면 GMO 토마토도 가장 먼저 완숙 후에도 무르지 않는 성질을 갖도록 개량했다. 넙치 세포를 이식한 것이다. 육종이 어떻게 되었는가의 문제 이전에, 한국의 토마토는 아무튼 어느 종자이고 유통하기 좋은 것을 심고, 유통하기 좋은 상태에서 딴다.

토마토는 원래 생식용과 가열용으로 구분한다. 원래 이탈리아에서 토마토소스에 쓰는 토마토 품종은 가열용 토마토 품종, 그중에서도 산마르차노다. 국내에서는 가열용 토마토를 유통상 약점 때문에 천시한다. 그래서 정작 가정보다도 토마토를 많이 소비하는 레스토랑은 토마토가 골치다. 국내에서 130여 종의 토마토를 재배하는데도 정작 토마토소스 재료로 쓸 것이 없는 것이다. 수입된 산마르차노 홀 토마토 통조림을 쓰는게 차라리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다. 생토마토만으로 산마르차노 맛을 비슷하게나마 내자면 당도가 높은 방울토마토에 손을 대야 한다. 토마토소스를 만들자면 토마토를 끓는 소금물에 퐁 담갔다 빼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발라 씨앗을 제거하고 과육만 추렴해 갈아 쓴다. 번거롭다. 그래서 막내 요리사가 도망가지 않도록 배려해 일반 토마토를 쓸 때는 소스에 들어가는 양파 양을 늘리거나, 양파를 뭉근히 조려 캐러멜라이즈해버리거나, 대파를 넣거나, 마늘을 볶아 넣는 제각각의 비책을 강구한다.

감자도 토마토와 비슷한 신세다. 해마다 6월이면 햇감자가 나왔다. 여름 내내 이 하지감자를 쪄 소금이나 설탕을 쳐 먹거나 마요네즈를 듬뿍 발라 먹는 것은 어린 시절의 맛있는 유희 중 하나였다. 요즘은 감자를 쪄 먹으면 그 포슬포슬한 맛이 안 난다. 세월이나 입맛의 변화가 아닌 품종의 차이다. 셰프 박찬일의 말대로 이제 농부가 생산하고 시장에 유통되는 감자 품종은 수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과거에 먹던 감자는 남작 품종이다. 수미는 녹말이 많아 쫀득한 질감에 은근한 단맛이 난다. 감자칩의 상품명이 수미칩이 될 정도로, 가공해 먹기에 적당한 품종이다.

대신 뇨키라도 할라치면, 수미 감자로는 시시한 결과가 나온다. 분이 많이 나는 남작 감자가 뇨키를 빚기에 적당한 품종인 것이다. 흔히 남작을 ‘강원도 토종 감자’ 혹은 ‘재래 감자’로 오인하지만, 애초에 토종 종자가 아니고 이제 강원도에서도 수미를 짓는다. 최근 뉴스를 보면 수미를 연 2회 수확하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앞으로도 강원도에서는 수미 감자 농사의 쏠쏠한 재미를 놓지 않을 것이다. 남작은 품종 구분에 무신경한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는 품종이다.

과일에서도 품종의 편중과 획일화는 같다. 포도의 품종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름이면 청포도, 캠벨과 거봉이 나오고, 곧 있으면 머루포도가 나온다. 그리고 칠레나 캘리포니아에서 수입하는 몇 가지 포도 종류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고, 와인에 조예가 있다면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누아르, 시라, 모스카토가 와이너리 주인 이름이 아니라 포도 품종임을 잘 알 것이다.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포도 품종 리스트가 와인의 그것보다 빈약함을 문제시해본 적이 없다면, 슈퍼마켓에서 붙여놓은 ‘꿀포도’라는 광고 문구를 품종으로 오인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과의 경우 ‘꿀사과’가 어느 우수한 개량 품종쯤으로 강력하게 오인되고 있다. 사과 과육 안에 달콤한 꿀 같은 농축액이 맺혀 있는 이 현상은 품종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사과의 생리 현상이다. 과육 조직 일부에 과당이 축적되는 현상이 정상은 아니라서 과실이 너무 크거나 햇빛에 너무 노출됐을 때, 수확 시기를 놓쳤을 때, 성숙기 고온에 노출됐을 때, 일교차가 클 때 생긴다. 즉, 사과 농사를 잘못 지었을 때 생기는 병이다. ‘밀병’이라고 부른다. 천편일률적으로 달콤한 사과를 찾다보니 사과의 병을 오히려 대접하는 것이다.

어릴 때 먹던 새콤달콤하고 육질이 치밀한 사과 맛이 요즘 사라져가는 것은 단맛에 편중된 과일 품종의 비극이다. 겉면에 왁스를 칠한 듯이 반질반질하고 새빨간, 단맛도 있지만 산미도 매력적인 그 사과는 홍옥이었다. 1년 내내 볼 수 있는 것이 사과지만, 홍옥은 추석 시즌이나 돼야 잠깐 어렵게 구할 수 있는 희귀 품종이 돼버렸다. 대신 퍼석퍼석한 질감을 가졌지만 당도가 우수한 부사 계열 품종을 사과 농부들이 선택하고 있다. 원인은 백과사전에 명기된 홍옥의 특징으로부터 집약적으로 알 수 있다. “홍옥이 익는 시기는 10월이며, 만생종이다. 품질은 중상이나 병에 약하고 수확 전에 낙과가 심하다.” 농부들은 수확이 빠른 조생종을 선호하며, 품질이 보장되면서도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사과를 선호한다. 거기에 유통 과정 중 상품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품종을 찾자니 사과는 점점 맛이 없어진다. 부사는 맛은 고약할지언정, 저온 냉장해놓고 다음 수확기까지 야금야금 꺼내 팔기에는 최적인 품종이다.

이 상황에서 요리사들을 위한 가열용 사과 품종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서양권으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한번씩 난처한 상황에 놓이곤 한다. “슈퍼마켓에 갔는데 사과 종류가 너무 많은 거예요. 노란 사과, 녹색 사과, 분홍색 사과, 빨간 사과… 빨간 게 그나마 맛있겠지하고 사 왔더니 엄청 시기만 하고 맛이 없었어요.” 흔히 듣는 이 경험담은 외국의 사과 품종이 생식용과 가열용으로 엄격히 구분되기 때문에 나왔다. 돼지고기 로스트나 스테이크에 사과 콤포트를 곁들여 먹는 레시피가 흔한 서양권에서는 그냥 먹으면 도통 맛이 없지만, 가열했을 때 맛있는 조리용 사과가 따로 나온다.

품종의 구분은 애먼 일일 수 없다. 품종의 맛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요리하자면 제대로 된 맛을 내는 재료를 써야 한다. 미셸 푸코라면 서울 한가운데 어느 슈퍼마켓에서 기표와 기의 사이의 기호학적 혼돈에 빠져 신경질적으로 외칠 것이다. “이것은 토마토가 아니다. 이것은 감자가 아니다. 이것은 포도가 아니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제각각 다른 품종이 구분되지 못하고 그저 토마토, 감자, 포도, 사과로만 불리는 것은 김씨 성을 가진 모든 이를 ‘김씨’로 개명시키는 것과 같다. ‘보기에 좋고 맛이 달아야 좋다’는 소비자의 무지가 그 작은 시초였을지 모른다. 농부, 그리고 유통업자의 편의와 수익을 위해 획일화되어가는 품종의 비극은 탐식가에게 돌아와 미식의 한계를 제한한다. 한국의 농업과 미식 시장, 그리고 미식 소비자는 복잡한 단맛이 나는 토마토소스, 포슬포슬한 감자와 새콤달콤한 포도와 사과를 맛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