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빛나는 스타, 슈퍼 루키 이종석 2

이종석은 지금 가장 빛나는 스타다. 철모르는 소년인 줄만 알았던 이 아름답고 영리한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성실하게 쌓여가는 중이다. 정작 그는 지난여름 자신에게 일어난 드라마 같은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바쁘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요즘은 모두 이종석을 찾는다.




오늘 촬영을 위해 생로랑 파리 본사에서는 이번 시즌 컬렉션 의상들을 잔뜩 보내왔다. 이종석은 전날 미리 쇼 룸에 들러 사이즈를 체크했다. “<노브레싱>이 끝나자마자 너무 많이 먹었어요. 오랜만에 벗은 몸을 봤는데, 정말 그새 몸이 변했더군요.” 수영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영화에서 이종석은 전 국민의 마린보이 ‘우상’ 역을 맡았다. 상반신 노출 때문에 한동안은 식단 조절을 하느라 힘들었다. “어떤 신은 그래도 제법 볼만한데, 또 어떤 신에서는 몸이 형편없어요. 정말 무슨 간디 같아.” 그때에 비해 살이 쪘다는 그의 우려와 달리,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생로랑의 슬림한 의상들은 그의 몸에 딱 맞았다. 허리 29사이즈의 스키니한 바지들은 아무리 배가 납작해도 종아리나 발목이 조금만 두꺼우면 입을 수가 없다. 이종석이 런웨이 무대에 선 우리나라 최연소 남자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에디 슬리먼도, 생로랑도, 원래 좋아했어요. 디올 옴므가 한창 유행할 땐 모델들이 죄다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해 살을 뺐어요. 어제 생로랑 2014 봄 · 여름 컬렉션 북을 봤는데, 패션 일러스트처럼 가느다란 모델들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났어요. 예전엔 저도 저런 옷들이 잘 맞았던 것 같은데, 연기하면서 몸을 좀 키우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느낌은 안 나요.”

요즘 그는 단벌 신사다. 드라마를 촬영하던 여름, 석 달 내내 추리닝한 벌로 버텼다. 보다 못한 팬들이 오늘 입고 나온 회색 후드티를 선물해줬다. “옷방엔 옷이 많은데, 어차피 미용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제 옷을 입을 일이 없으니까, 점점 옷에 신경을 안 쓰게 돼요.” 공교롭게도 그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줄곧 단체복만 입었다. <알투비>에서는 군복, 〈코리아>에서는 배드민턴 선수 유니폼, <관상>에서는 한복이었고, <노브레싱>에서는 수영 팬티 한 장만 입는다. 교복은 종류별로 입어봤다. <피 끓는 청춘>에서는 심지어 80년대 스타일이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나, 남들과 같은 옷을 입어도 눈에 띄는 말갛고 고운 얼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돈을 쓸 일이 없어요. 옷도 안 사고, 운전면허는 있지만 친구들처럼 차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술도 잘 못 마시는 데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종석은 “소개팅을 하고 싶을 때는 〈짝을 보고,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정글의 법칙>을 보고, 바다가 보고 싶을 땐 인터넷으로 바다 사진을 검색해서 본다”고 했다. 수영도 이번에 수영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 배웠다. 급한 대로 촬영에 필요한 자유형까지만 마스터한 상태. 야외 활동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유일한 취미 생활이 있다면 드라마 시청이다. 단, 드라마는 반드시 1회부터 봐야 한다는 게 철칙이다. “<굿 닥터>에서 주원 씨가 연기를 참 잘한다고 들어서 궁금한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 나중에 시간 되면 몰아서 봐야죠.”

부스스한 머리와 잘 어울리는 오버사이즈 블랙 케이프와 체크 셔츠. 여기에 거칠게 워싱된 데님 팬츠로 파리지앵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연출했다.

목선이 늘어지는 풀오버 니트 스웨터와 거칠게 찢긴 체인 장식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의 세련된 매치.


화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이종석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 꼼꼼하게 자신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는 누구보다 자기 얼굴이 가진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내 얼굴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다양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이종석은 자신의 얼굴에 불만이 있다. 설탕처럼 하얀 피부에 도톰한 붉은 입술, 긴 속눈썹과 오른쪽 눈 밑의 까만 점, 여자보다 더 고운 턱 선과 섬세한 이목구비, 순하고 여린 기운.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예쁜 얼굴이지만, 오히려 그는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친구 김우빈의 개성적인 마스크나 연기 귀신 하정우의 남자다운 분위기가 부럽다고 했다. “난 한계가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내가 어떤걸 할 수 있을지 빨리 확인하고 싶었죠.” <학교 2013>이 막 끝났을 때였다. 당시 그의 손에 들어온 작품의 배역은 전부 학생이었다. 이종석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기로 했다. “아, 모르겠다. 그럼 정공법으로 가자! 직업군은 같아도 캐릭터는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럼 다양한 성격을 가진 고등학생을 한번 연기해보자 싶었죠. <피 끓는 청춘>까지 전부 다 그때 결정한 거예요.”

89년생인 이종석은 드라마로 세상을 배운 텔레비전 키드다. 때로는 현실보다 가상현실 속의 이야기들이 훨씬 더 흥미로운 법.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워준 것도 드라마였다. 현실에서는 존재감 없는 평범한 소년도 드라마 속에서라면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영화 <늑대의 유혹>은 소년의 환상에 방점을 찍었다. “그냥 강동원이 정말 멋있었어요. 연기에 대한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었고, 막연히 저 사람처럼 되고 싶었던 거예요.” 일곱 살 때부터 계속하던 태권도를 그만두고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장 놀란 건 아들의 소심한 성격을 아는 어머니였다. “정말? 네가? 몇 번이나 되물었어요. 학교에서 발표하라고 하면 손도 못 들 만큼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힘들어했거든요.” 그 후 스토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경기도 용인의 집과 여의도 연기 학원을 오가던 중 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 아이돌 멤버가 될 뻔한 우여곡절을 거쳐, 수차례 오디션에서 낙방한 끝에, 2010년 <검사 프린세스>로 데뷔. <시크릿 가든>을 통해 처음으로 배우 이종석의 존재감을 알렸다. 박재범을 비롯해 숱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오디션을 본 빨간 머리 천재 뮤지션 ‘썬’ 역할이었다. 당시 썬이 짝사랑한 오스카 윤상현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다시 만난 이종석에 대해 “어리숙하고 촬영장에서 말도 잘 못하던 이종석이 말도 잘하고 촬영장에서도 잘 뛰노는 것을 보면 내가 키운 것처럼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번엔 이종석의 사랑이 이뤄졌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만. 이보영은 9월 27일 지성과 결혼한다. 길 잃은 강아지마냥 장혜성(이보영)을 졸졸 따라다니던 수하는 고민에 빠졌다. “결혼 선물은 뭐가 좋을까요? 누나가 결혼식에 안 오면 죽는다고 그랬는데….”



느슨하게 짠 스트라이프 패턴 스웨터와 타이트한 가죽 팬츠, 길게 늘어지는 니트 머플러와 메탈 장식 앵클부츠.

클래식한 타탄체크 패턴의 블루종과 타이트한 가죽 팬츠와 가죽 셔츠. 거기에 메탈 액세서리를 더하자 ‘에디 슬리먼 보이’ 이미지가 완성됐다.


최근 들어 그는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스스로 선택한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만은 아니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빠른 시간에 많은 걸 배웠지만, 제가 그걸 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나봐요. 여러모로 과부하가 걸린 상태예요.” 그는 슬럼프라고 했다. “<노브레싱>은 개봉일이 다가오는 게 두렵고, <피 끓는 청춘>을 촬영하면서도 ‘난 왜 안 되지?’만 계속 반복해요. 전 왜 안 될까요?” 이건 순전히 엄살이다. 그는 배우로서 자신은 아직 미완의 상태라고 했다. 이제 겨우 데뷔 3년 차니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조급증이 생긴다고도 했다. 진지한 배우라면 아마 모두 그럴 것이다. 영화 <관상>에서 그와 함께 출연한 관록 있는 배우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이종석은 그 쟁쟁한 선배들의 연기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송강호 선배와 정석이 형. 이 콤비는 정말 자유롭게 연기해요. 그런데 저는요, ‘내가 이렇게 대사를 치면 이상하겠지?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톤이니까 어색할거야’ 불안하다 싶으면 차라리 안전한 쪽을 택해버려요. 아직도 틀을 깨지 못했어요.” 특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찍을 때는 매회 대본이 나오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들, 사용해보지 않은 감정들을 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인 민준국(정웅인)을 향한 분노도 그중 하나였다. 사춘기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터뜨리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데뷔해서는 신인이니까, 사람들이 보는 직업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계속 제 감정을 누르고만 살았어요.”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화약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누구든 불을 붙이기만 하면 금세 폭발해버릴지도 모른다. 이 걱정 많은 청년은 그래서 또 한번 고민이다. “확실히, 사람이 지치고 힘들다보니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에도 스태프들에게 짜증을 부리게 되고, 감정 조절이 힘들어요. 뭔가 반복되는 소리만 나도 미쳐버리는 거죠.” 여전히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종알종알 고민을 털어놓는 그는 겁먹은 사슴 같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너무 피곤한 상태다. 몇 달째 거의 잠을 자지 못 했다. 꿈꿔온 일들이 현실이 되자 도통 꿈을 꿀 시간이 없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처음에 연기자가 되려고 할 땐 유명해지면 해보고 싶은 게 분명 있었을 텐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나요.” 막상 지금 그가 꼭 해보고 싶은 건? “일단은 쉬고 싶죠.”

생로랑의 그런지 룩에는 체크 아이템이 빠지지 않는다. 넉넉한 니트 후드 카디건과 체크 셔츠, 빈티지한 데님 스키니 팬츠와 스웨이드 앵클부츠. 화보 속 의상과 슈즈, 액세서리는 모두 생로랑(Saint Laurent).

물론 유명해져서 좋은 것도 있다. 이 어여쁜 아들은 요즘 부모님의 자랑이다. 매번 오디션에 떨어져도 “연기자는 보여주는 직업이니 예쁘게 입고 다녀야 한다”고 용돈을 챙겨준 어머니에게 요즘은 그가 선물을 한다. “특히 가방을 자주 사드려요. 예전에 엄마가 어느 모임에 나갔는데, 어떤 아줌마가 남편한테 명품 가방을 받았다고 자랑했대요. 무뚝뚝한 아빠한테 괜히 화가 나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나중에 돈을 벌면 꼭 두 달에 한 번씩은 우리 엄마 가방, 내가 사드린다!’” 그는 애교 많은 첫째 아들이다. 처음엔 연기자 생활을 반대한 아버지도 지금은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최근엔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빠가 운영하는 펜션에 기자들이랑 연예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자꾸 찾아와서 곤란한가봐요. 하루 걸러 엄마한테 전화가 와요. 갑자기 또 취재하러 왔다고. 그건 좀 스트레스죠.” 이종석은 순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순간의 인기나 허세에 젖어 흥청망청 청춘을 낭비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숱하게 등장해온 멋진 스타들 중 끝까지 살아남는 건 예쁘고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는 영리한 배우였다. 이종석의 필모그래피는 제법 그럴듯하게 쌓여가는 중이다. 소속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찾아 선택한 결과물들이다. “저는 요, 솔직히 제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요. 저 혼자 힘으로 이렇게 자라고 있는 것이. 이건 소속사 대표님도 인정한 부분이에요. 하하.” 자신에게 당당한 건 그만의 귀여운 매력이다. <학교 2013>에서 고남순은 왕따를 당하는 반 친구를 위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어줬다. 그건 풋풋한 스물다섯, 이종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시는〈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2011년 10월 20일, 수하의 일기장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그리고 우린 이 사랑스럽고 씩씩한 풀꽃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