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지금 LA가 이토록 뜨거운 이유!

2016.03.17

by VOGUE

    지금 LA가 이토록 뜨거운 이유!

    천사들의 도시가 패션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톰 포드와 에디 슬리먼의 땅, 로스앤젤레스로 패션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 LA가 이토록 뜨거운 이유!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 전 세계 패션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4대 도시의 위상은 굳건하다. 하지만 때로 패션계는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제5의 도시를 찾는다. 디자이너들은 신선한 영감을 찾아 그곳으로 떠나고, 바이어와 프레스들은 그 도시의 흥미로운 공간과 인물을 탐색한다. 아울러 그곳만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렇게 패션계가 인정한 도시들은 주기적으로 변한다. 10년 전에는 베를린으로 몰려들었고, 5년 전에는 스톡홀름이 전 세계 멋쟁이들로 붐볐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바라보는 곳은 천사들의 도시, LA다.

    1~2년 전부터 LA에는 새로운 패션 기운이 감지되었다. 올 초 콜드워터 캐니언에 자리한 자신의 저택에서 파티를 연 뉴욕 패션의 여왕,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아무래도 LA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존 갈리아노가 뉴요커들 눈치를 피해 LA에 집을 구하러 다닌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또 다프네 기네스와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비벌리힐스의 어느 부동산에서 마주쳤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스티븐 마이젤은 LA에서 드림 하우스를 찾았고(지난 8월호 <보그 리빙>에 소개됐다), 마리오 테스티노도 촬영이 없을 땐 이곳에 머문다(지난해 미국 <보그>에 소개됐다). LA에 집을 구하진 않았어도 이 도시를 찾는 디자이너들은 나날이 늘고 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시간이 날 때마다 LA를 찾고, 라프 시몬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리카르도 티시 등도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파리로 돌아간다.

    본격적으로 LA 패션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뜨내기들이 아니라 아예 이곳에 뿌리를 내린 디자이너들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제가 LA 디자이너라는 사실이 너무 좋아요.” 지난해 미국 <보그>와 미국 디자이너 협회가 후원하는 패션 펀드 우승자 ‘엘더 스테이츠먼’의 그레그 체이트는 최근 미국 <보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네트워크를 갖춘 아주 창조적인 도시입니다.” 그는 가고시안 갤러리와 에디 슬리먼의 상륙을 지난 6~7년 사이에 일어난 LA의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의 스콧 스턴버그 역시 3년 전 <보그 코리아>와 만났을 때 뉴욕 대신 LA에 자리 잡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친 듯 돌아가는 뉴욕에서 벗어나 이곳에 사는 건 정말 좋습니다. 이유는 너무 많지만, 친구들이 다들 여기 사는 것도 그중 하나예요.” 친한 친구들이란 로다테의 멀리비 자매, LA 현대미술관 MOCA의 디렉터 제프리 다이치는 물론, 커스틴 던스트, 케이트 보스워스 등등. 멋쟁이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이 도시는 지난 10년간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디올 옴므를 떠나 사진가로 변신해 LA에 정착한 에디 슬리먼은 2009년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평화를 이곳에서 느낍니다. 창조적인 면에서 이 도시는 전 세계를 이끌어간다고 믿습니다.” 생로랑 하우스에 입성한 뒤에도 그는 파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70년대 빈티지 롤스로이스를 몰며, 웨스트 할리우드에 자리한 디자인 스튜디오와 비벌리힐스 동쪽 트루스데일(스티븐 마이젤과 이웃사촌) 집을 오가며 LA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나 역시 LA를 방문했을 때 웨스트 할리우드 거리에서 에디 슬리먼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그의 LA 사랑은 지난 2011년 MOCA에서 전시한 사진전 <California Song>이나 LA 거리의 소년 소녀들을 연상시키는 생로랑 컬렉션에서도 실컷 엿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는 걸 싫어하겠지만, 톰 포드 역시 리하르트 노이트라가 디자인한 저택을 일찌감치 마련하곤 LA와 런던을 오간다. 2년 전 <보그> 인터뷰를 위해 그는 LA 저택에서 서울 <보그>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그 먼 거리를 오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곳 햇빛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LA 열풍은 그저 디자이너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올가을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파워풀한 트렌드는 LA 소녀 스타일을 닮은 그런지 룩이다. 또 요즘 서울 패션 피플들이 급작스럽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스케이트 보드, 서핑 문화와 스트리트 브랜드의 인기 역시 LA의 영향이다. 블랙이 유니폼인 뉴요커들과 달리, 수많은 옵션이 존재하는 캐주얼한 LA 스타일은 흥미롭기만 하다. 이자벨 마랑, 엠마누엘 알트, 에린 왓슨 등 당대 멋쟁이들이 LA 스타일을 눈여겨보고 따라 하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렇다면 왜 지금 LA 스타일인가! 한때 핑크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셀러브리티들이 스타벅스 벤티를 들고 파파라치에 쫓기던 모습을 이탈리아 <보그>에서 풍자한 적도 있었지만, LA 스타일이 언제, 또 다시, 이렇게 쿨해졌을까? “사실 제가 LA에 머물던 2007년까지만 해도 그곳은 프리미엄 데님과 워싱 티셔츠 정도가 다였어요.” 오랫동안 LA에 머물렀고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태평양을 건너는 신세계백화점 바이어 최재혁이 LA 스타일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련된 캐주얼로 완성된 편이에요. 다들 편안하게 패션에 접근하기 때문에 패션계를 나누는 경계선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죠. 가령, 아주 편안한 제임스 펄스의 저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과 아방가르드한 릭 오웬스과 크롬하츠로 차려입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죠. 이질적인 조합이 쉽게 이뤄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은 LA만의 장점(그는 최근 유럽의 강력한 세금 정책을 피해 많은 유러피언이 LA로 몰리는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12년 전부터 LA와 서울을 오가는 쿠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석정혜 역시 이런 자유로움을 LA만의 특징으로 꼽았다. “다문화 사회가 정착돼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이는 곳이죠. 그 안에서 새로운 시너지가 탄생할 수 있는 거고요.”

    13년째 LA에 머무르면서 ‘언디피티드(Undefeated)’라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LA 패션계의 숨은 실력자 이규범(최근엔 아트 디렉터 진관희와 함께 ‘Emotionally Unavailable’이란 브랜드도 시작했다)은 스트리트 문화의 유행이 사람들로 하여금 LA를 다시 보게 했다고 말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취미와 레저를 즐기려고 합니다. 그럴 때 어떤 옷을 입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해졌죠. 그러니 서핑, 모터사이클, 스케이트 보드 등의 중심지 LA 스타일이 부각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LA에는 할리우드라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 공단’이 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영화와 음악이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영향력은 엄청나죠!”

    “할리우드 스타들이 없었다면, 뉴욕과 유럽에서 매 시즌 선보이는 하이엔드 컬렉션은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뉴욕 타임스>는 패션계에서 LA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제니퍼 로렌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디올 드레스, 킴 카다시안이 입은 스텔라 맥카트니 드레스는 금세 전 세계 수억 명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유럽 브랜드들이 LA 스타들만 관리하는 홍보팀을 따로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여기에 레이첼 조, 르렌 스캇 등 할리우드 스타일리스트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한 스타들도 LA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LA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떤 식일까? “‘포멀’한 스타일은 아닙니다.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느냐에 따라 입는 옷도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편안하죠.” 이규범은 스트리트 브랜드의 시작이 LA였음을 지적했다. 그렇다고 모든 LA 여성이 부드러운 티셔츠에 플란넬 셔츠, 청바지에 맥시 드레스만 입고 지내는 건 아니다. 미국 <보그>에 두 번이나 소개된 파워 블로거, 제인 민은 LA에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좀더 실용적이지만 전문적인 쇼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뉴욕에서는 계절별로 다른 옷을 입을 수 있죠. 게다가 낮에 입는 드레스와 저녁에 입는 드레스도 달라요.” 하지만 1년 내내 같은 날씨를 유지하는 LA에서 이런 법칙은 별 소용이 없다. “기본 아이템을 바탕으로 좀더 전략적으로 스타일을 꾸며야 해요. 액세서리 활용이 관건이죠.”

    지금도 패션계와 문화계는 LA로 몰려들고 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은 얼마 전 스톡홀름에서 <보그>와 만났을 때, 올가을에 LA 매장을 준비 중이라며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LA 다운타운에 방치된 건물을 완전히 새롭게 변신시키는 중이라는 것. 이곳에는 요한슨이 가장 좋아하는 스톡홀름의 카페까지 함께 구성된다. 뉴욕의 힙스터 호텔인 ‘에이스’ 역시 LA 다운타운에 새 호텔을 곧 연다. 또 데미안 허스트와 더 로우의 올슨 자매는 새로 문을 연 멀티숍 ‘Just One Eye’를 위해 5만5,000달러(약 6,000만원)짜리 악어가죽 백팩을 만들고, 한국 여성들은 LA 가방 브랜드 클레어 비비에의 클러치를 사기 위해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 가격을 비교하느라 바쁘다.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디자이너 윤한희 역시 내년쯤 LA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개한다.

    LA의 새로운 전성기는 어쩌면 지리적 영향 때문일지 모른다. 엘더 스테이츠먼의 그레그 체이트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만약 중국, 일본, 한국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LA야말로 세상의 중심에 가깝습니다.” 대서양을 중심으로 유럽과 뉴욕만 오가던 패션의 시선이 아시아로 옮겨지면서 자연스럽게 LA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LA는 캘리포니아 태양만큼 뜨거운 도시다. ‘틴슬타운(Tinseltown)’이란 별명 그대로 뜨겁게 반짝이고 있다.

    LA’s Address Book
    지금 LA로 향한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

    Just One Eye 7000 Romaine Street Los Angeles, CA 90038 / justoneeye.com
    뉴욕에 ‘오프닝 세레모니’가 있다면, LA에는 ‘저스트 원 아이’가 있다. 파리와 뉴욕의 쿨한 디자이너 의상은 물론 빅터 두이엡, 노부요시 아라키 등의 예술품까지 판매하는 새로운 컨셉의 멀티숍. LA의 전설적인 존재 하워드 휴즈의 옛 사무실을 개조한 공간도 매력적이다.

    Mohawk General Store 4011 W Sunset Blvd. Los Angeles, CA 90029 / Mohawkgeneralstore.net
    LA만의 편안한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멀티숍. 전 세계에서 건진 패션&리빙 아이템이 단정한 인테리어에 잘 어울린다. 지금 LA 힙스터들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Fred Segal 8118 Melrose Avenue Los Angeles, CA 90046 / fredsegal.com
    LA 스타일을 대변할 만한 가장 오래된 멀티숍. 1960년 오픈할 때는 청바지 전문 매장이었지만, 이제 꾸뛰리에들의 작품부터 캐주얼한 티셔츠까지 모두 판매하는 대형 멀티숍으로 성장했다.

    MaxField 8825 Melrose Avenue Los Angeles, CA 90069 / maxfieldla.com
    샤넬과 셀린은 물론 일본의 빈티지 데님까지 패션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빈티지 에르메스 핸드백과 귀중한 예술 서적까지. 맥스필드의 오너인 타미 펄스는 편안한 저지 브랜드로 유명한 제임스 펄스의 아버지다.

    RTH 537 N. La Cienega Blvd. West Hollywood, CA 90048 / Rthshop.com
    미국의 원주인, 즉 인디언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소품을 판매한다. 소량의 가죽 액세서리와 인디고 염색 제품은 이곳만의 특징. 근사한 매장 인테리어도 구경거리다.

    Undefeated 112.5 S. La Brea Avenue Los Angeles, CA 90036 / Undefeated.com
    한국 디자이너 이규범이 2001년 시작한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미국에 다섯 곳, 일본에 매장 두 곳을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캐주얼한 LA스타일과 문화를 읽고 싶다면 이곳을 놓치지 말 것.

    Chateau Marmo nt 8221 Sunset Blvd. Hollywood, CA 90046 / Chateaumarmont.com
    린지 로한이 옆 테이블에 앉아 있고, 문 앞으로 스칼렛 요한슨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싶다면 이 전설적인 호텔로 가야 한다. 할리우드와 패션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호텔 바는 빼놓을 수 없다.

    Gjelina 1429 Abbot Kinney Blvd. Venice, CA 90291 / Gjelina.com
    해변에서 가까운 베니스에 자리한 타파스 바. 다양한 음식을 편하게 만날 수 있고, 늘 멋쟁이로 붐빈다. 인기에 힘입어 근처에 새로운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도 준비 중.

    Pressed Juicery 13050 San Vicente Blvd. Brentwood, CA 90049 / Pressedjuicery.com
    건강에 집착하기로 소문난 LA 사람들이 열광하는 주스 가게. 요즘 유행하는 ‘클렌징’주스를 집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도 마련돼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주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Farmshop 225 26th Street, STE. 25 Santa Monica, CA 90402 / farmshopla.com
    농장에서 식탁으로 산지 직송되는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 신선한 재료로 완성한 샐러드도 일품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프라이드치킨!

    Arcana: Boo ks on the Arts 8675 Washington Blvd. Culver City, CA 90232 / Arcanabooks.com
    20세기 예술, 건축, 디자인, 사진집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 이곳에선 LA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Kayne Griff in Corco ran 1201 S. La Brea Avenue Los Angeles, CA 90019 / kaynegriffincorcoran.com
    올해 제임스 터렐 전시를 선보이며 LA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갤러리로 떠올랐다. 겨우 스물아홉살의 갤러리스트 매기 케인이 이끄는 이곳에서 젊은 LA 예술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Regen Proj ects 6750 Santa Monica Blvd. Los Angeles, CA 90038 / Regenprojects.com
    갤러리스트 션 케일리 리전은 지금 활동 중인 LA 아티스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니시 카푸어를 LA에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화제!

    Refo rm Gallery 6819 Melrose Avenue Los Angeles, CA 90038 / reform-modern.com
    큐레이터 제라드 오브라이언이 꾸민 디자인 스토어. 동시대 캘리포니아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부터 20세기 작품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Lo ngm i Lashes 441 N. Bedford Drive Beverly Hills, CA 90210 / longmilashes.com
    할리우드 여배우의 깃털처럼 길게 이은 눈썹이 부러웠다면, 속눈썹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곳에 가볼 만하다. 베트남 출신의 전문가 다니엘은 자신만의 기술로 특허까지 받았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기타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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