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아세톤의 두 얼굴

2016.03.17

by VOGUE

    아세톤의 두 얼굴

    여자로 사는 재미를 알아가는 뷰티의 시작은 손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떠올려보면 매니큐어를 처음 접한 시기는 유치원 시절. 명절 때마다 사촌 언니와 약국에 들러 아세톤을 구입한 후 서로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주입된 ‘아세톤=매니큐어 지우개’라는 공식은 성인이 돼서도 한 달에 한 번 약국을 찾는 이유가 됐고, 매니큐어를 지우는 용도는 물론, 유리병 라벨을 떼고 난 뒤 ‘끈끈이’를 제거할 때도 유용한, 베이킹 소다 못지않은 ‘만능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평소 주유소(휘발유) 냄새에 거부감이 없던 터라 뚜껑을 열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향도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최근 ‘히로뽕’으로 알려진 ‘메스암페타민’의 주성분이 아세톤이라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다. 영양 크림은 무조건 “비싼 게 진리”라 외치는 반면, “싼 게 비지떡”인 미용 소비재 중에서도 대표 격은 네일 리무버. 특히 매니큐어는 3만원짜리를 덥석 집으면서 리무버는 약국에서 판매하는 공업용 ‘갈색 병’에 의존해오진 않았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세톤의 유해성에 대해선 이쯤에서 감이 잡힐 것이다. 현재 미국에선 아세톤을 함유한 네일 리무버를 구입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18세 이하는 구입조차 할 수 없는 유해 물질 아세톤은 무색의 액체이며 물에 잘 녹는 유기용제다. 다른 유기물질과 잘 섞이는 만큼 페인트처럼 물로 세척되지 않는 물질을 지우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유기용제인만큼 휘발성이 뛰어나 공기 중에 유해가스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아세톤을 공기로 흡입할 경우 코와 목 안의 점막을 자극하여 염증, 두통, 현기증, 구토 등을 일으킵니다.

    심할 경우 마취 작용에 의해 의식을 잃을 수도 있죠.”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피부과 전문의 유화정 교수의 설명에 차앤박 피부과 김세연 원장도 한마디 거든다. “아세톤 자체의 독성이 강해 피부나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흡수될 경우 신경세포, 호흡기, 소화기 및 각종 장기에 장애를 일으키는 유기용제 중독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제조 및 취급하는 사업장에서는 환풍기 같은 각종 안전시설 설치 및 보호구 착용 등이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의 사항 없이 조제하고 남용하고 있기 때문에, 약국에서 임의로 구입할 수 있는 아세톤 사용은 매우 위험한 행위죠.”

    하지만 여자들은 며칠에 한 번씩 아세톤으로 매니큐어를 지운다. 각성제의 주원료로 쓰이며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이 유해한 액체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이쯤이야 괜찮겠지, 무시해온 것도 사실. 매니큐어를 자주 바르다보면 손톱 표면이 갈라지고, 색이 바래며, 작은 마찰에도 쉽게 부스러지는 손상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데, 여기에 매니큐어를 지우기 위해 아세톤을 사용하면 더더욱 손톱이 약해지는 것이다.

    일단 아세톤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손톱 표면이 하얘지면서 수분이 증발되는 기분이 든다. 차움 세포성형센터 최유진 교수는 이런 현상을 ‘아세톤에 의한 단백질 파괴 현상’이라 지적한다. “손발톱은 반투명하고 단단한 사각 모양의 판으로 그 속은 케라틴 섬유가 빽빽하게 들어찬 상피세포로 구성됩니다. 아세톤은 휘발성이고 공기에 노출되었을 때 빨리 날아가버리는 특징이 있죠. 아세톤이 손발톱에 닿는 즉시 단백질을 파괴하고 수분을 안고 날아가서 표면이 건조해지는 겁니다.” 도자기처럼 굽는 방식의 젤 네일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젤 네일은 일반 매니큐어를 지울 때와는 달리 ‘속 오프(soak off)’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전용 리무버를 솜에 적셔 손발톱에 올린 후 10~15분 정도 호일에 감싸 젤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일반 매니큐어 전용 네일 리무버로는 젤 네일을 지울 수 없지만, 아세톤으론 가능해 비용도 아낄 겸 집에서 시도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

    “피부 손상 부위에 연고를 바른 다음 일회용 밴드나 붕대로 덮으면 흡수율이 수배 높아집니다. 일종의 밀폐 요법이죠. 아세톤을 듬뿍 묻힌 솜을 올리고 포일로 감싼다는 건 그만큼 손발톱 아세톤의 흡수율을 높이는, 일종의 자살행위예요. ‘속 오프’ 비용 1만원 아끼려다 손발톱이 얇아지고 갈라지며, 쉽게 부스러지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결론은?

    아세톤 성분이 포함되지 않는 착한 리무버를 선택하는 것. 한 예로 부르조아에서 판매하는 네일 리무버 3종은 아세톤을 함유하지 않는 아세톤 프리 제품들이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은 네일 리무버를 선택할 때 특히 유효하다. 중저가 로드숍 브랜드의 경우 네일 리무버의 종류가 1,000원대부터 6,000원대로 다양한데, 1,000원짜리 제품의 전 성분 표시 라벨을 확인해보면 어김없이 ‘아세톤’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에서 ‘유병 장수 시대에 무병장수하는 법’에 관한 연재 기사에서 ‘작은 것부터 건강하게 관리하자’는 캠페인을 제시했다. 치아, 손발처럼 신체의 아주 작은 부분을 신경 쓰다보면 어느새 우리 몸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은 물론, 손과 발에 힘을 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반짝이는 액세서리 못지않게 장식적인 역할을 도맡는 손발톱이 메마르고 부스러진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손톱 지우개는 아세톤인가, 착한 리무버인가?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주현
    포토그래퍼
    차혜경
    모델
    장민영
    스탭
    페디큐어 / 임미성(브러시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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