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라는 이름의 무한 동력 1

사람을 끌어들인다. 흥미로운 일을 벌인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주변에 모인다. 그에게 장착된 이 무한 동력의 정체는 욕망이다. 억센 욕망으로 가득한 배우가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에 <보그>를 초대했다.

하정우는 “민머리가 태양열을 저장하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태양의 온도가 아닐 것이다. 감독으로 첫발을 내딛는 하정우가 발산하는 흥분의 온도다. 왼손에 찬 시계는 IWC, 검정 팬츠는 씨와이 초이(Cy Choi by Beaker).

하정우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늦은 밤이었다. “이번에 감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가요. 인터뷰를 부산에서 하면 어떨까요? 저의 모든 일정을 취재해주세요. 감독 하정우의 다큐멘터리!” 광고 촬영을 마치고 심야의 자유로를 달리고 있는 그와 바로 기획 회의를 시작했다. 그것은 놀이를 도모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흥분에 가까웠다. 이제껏 패션지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유례없는 세 명의 사진가가 투입되고 많은 예산이 필요한 블록버스터급 프로젝트의 긴장된 전조는 없었다. 어떤 복잡한 수식에 의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가 아닌, 자연 발생적인 욕구로부터 자라난 작은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보그>가 함께한 연출, 각본 및 주연 하정우의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잠시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영화 촬영 현장에 <뉴욕 타임즈 매거진>이 찾아왔다. 김진아 감독의 <두 번째 사랑> 촬영 현장이었다. <뉴욕 타임즈 매거진>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를 통해 30대 나이에 이목을 집중시킨 베라 파미가를 심층 인터뷰 중이었다. 취재 첫 날, 식사 자리에서 <보그> 팀을 배우들에게 소개하며 하정우는 그때의 기억을 얘기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하정우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에서 가장 쇠락한 차이나타운에 덩그러니 놓인 동양 출신의 낯선 배우, 보잘것없는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이미 칸 영화제에 두 편의 영화를 출품해 한 번은 블루 카펫에 섰고, 한국에서는 ‘독립영화의 왕자’ 정도는 되는 위치였지만, 뉴욕은 낯선 기회의 땅이었고, 하정우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하정우는 거기서 태풍의 눈 같은 감정 신과 멜로의 근간으로 작동하는 정사 신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그때 하정우의 눈에 비친 ‘베라 누나(베라 파미가)’ 는 선망 어린 미래였다.

태풍이 북상하다 소멸해버린 부산에 서른여섯 살이 된 하정우가 있었다. 당시 할리우드의 베라 파미가보다 더 활황 중인 배우가 된 하정우는 생애 처음 감독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10월 4일부터 7일까지 빼곡히 들어찬 공식 일정을 소화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지휘했다. <롤러코스터> 래핑버스를 꽉 채운 출연 배우들과 제작사, 투자사, 홍보사 스태프, 매니지먼트와 경호 팀까지 대대적인 인원이 투입됐다. 버스에는 수많은 방송카메라가 수시로 들락거렸고, 이동 시간마저도 휴식 시간일 수 없었다. 매일 영화제의 아침인 정오부터 시작된 일정은 자정까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졌다. 방송을 녹화하고, 이런저런 지면 매체의 인터뷰를 하고, 파티에서 인사를 나누고, 행사장에서 팬들을 만나고, 버스에 실려 다녔다. 하루 치의 홍보를 그렇게 전투같이 치르고 나면, 모든 스태프가 모여 공통의 피로를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4일 동안 장수 하정우를 비롯,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얼굴엔 다크서클이 하루게 다르게 자라났다.

팬들과의 만남을 위해 레드 카펫을 걷던 주연배우 정경호와 감독 하정우가 수많은 취재진 속  카메라를 발견하고 환한 웃음을 보냈다.(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팀은 어딜 가나 인파를 몰고 다녔다. 남포동 야외 행사에는 무려 1,800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쉽게 들뜨지 않았다.(아래)

둘째 날, <롤러코스터>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서 주최한 성대한 ‘CJ엔터테인먼트의 밤’ 파티에서 <롤러코스터> 팀은 무대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VIP 테이블 세 개를 배정받았다. 같은 시기 개봉한 다른 영화의 배우는 구석 테이블에 간신히 앉아 있었고, 또 어떤 배우는 테이블 없이 난간에 기대 있기도 했다. 영화에 쓰인 곡 ‘나혼자’를 부른 씨스타의 공연 중에는 <롤러코스터>의 홍보 영상까지 상영했다. 한 해에도 수십 편의 영화를 개봉하는 CJ엔터테인먼트에서 한 편의 영화에 이렇게까지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전례 없이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날 <롤러코스터>의 부산국제영화제 첫 공식 상영을 통해 좋은 반응을 확인하고, 하정우가 응원하는 야구팀 LG 트윈스가 페넌트레이스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결과까지 얻어 파티장으로 향하는 하정우는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 해운대 그랜드호텔 지하 ‘클럽 하이브’에서 열린 이날 파티에서 <롤러코스터> 팀은 그 어느 때보다 흥겨운 모습으로 샴페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겼다. 하정우는 다음 파티에 들르기 위해 자리를 뜨려다가 크레용팝이 무대에 등장하자 “어이구, 크레용팝은 보고 가야지. 다시 앉아, 앉아. 아니다. 난간에서 본격적으로 봐주자” 하며 스태프들과 함께 직렬 5기통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좀더 편한 술자리 컨셉으로 열린 ‘쇼박스의 밤’ 파티로 자리를 옮겼다. 송강호, 류승룡 등 쟁쟁한 배우들이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고, 하정우는 김지운, 김용화, 한재림 감독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의 화제는 잠시 <롤러코스터>가 아닌, 한창 촬영 중인 쇼박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로! 2014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에 대해 하정우는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여름께 개봉할 이 영화에서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조선 최고 검객 강동원과 대척점을 이루는 도적 하정우는 힘센 민머리 백정 역할이다.

알코올이 낮 동안 경직된 근육을 풀어놓기 시작할 때 행복한 하정우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눈에 띄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8회를 맞기까지 역대 최고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하정우 역시 고개를 내젓는다. “말도 안 되는 일정이죠. 배우 하정우로서 영화제에 참가했다면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한 스케줄은 다 소화하지 못했을 거예요.” <군도: 민란의 시대> 촬영 때문에 <롤러코스터> 홍보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총력을 기울여 인지도를 끌어올려놔야 하는 입장이니 일정이 바쁘다고 불평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영화에 대한 반응이 한결같이 좋지만, 원래 영화제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는 점도 잊지 않고 있어요.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시작되는 기자 시사회부터가 진짜 평가의 시작이죠. 더 부지런히 해야 해요. 부담? 책임감? 물론 갖고 있죠. 하지만 낯선 종류의 것은 아니에요. 주연배우로 영화에 참여해 느끼는 부담이나 책임감과 다르지 않아요. 감독으로서의 책임감 역시 간접적으로 경험해왔고요.” 그에게 다만 새로운 것은 이번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과 제작사 스태프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는 점 정도다. 그 어떤 작품보다 내 것 같고,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든든한 지점이다.

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화제를 독차지했다. 야외에서 진행된 오픈 토크 행사와 공식 상영 때마다 일대의 교통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경호 팀이 없었다면 배우들의 안전까지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 배우들은 환호가 쏟아질 때마다 즐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의 첫 상영을 본 관객들을 만났을 때는 뿌듯한 감격을 느꼈다. 하정우는  외에도  관련 스케줄도 소화해냈는데,김병우 감독과 함께 GV에 참석해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주변에 끌어들인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중 선택받은 사람들은 실제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하기도 한다. 하정우가 타고난 별의 운행이다. 하정우의 영화엔 대학 시절부터 함께 보낸 지기들이 함께했다. 바로 <롤러코스터>의 배우들이다. 시나리오 초고를 마칠 즈음, 이 의욕적인 배우는 친분 있는 배우들의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었던 그들이 돌려준 답은 장고 끝의 거절. 명배우이지만 신인 감독인 하정우를 반신반의한 것이 자명했다. 그는 자존심을 다치는 대신 감독으로서 결단을 내렸다. 인지도는 없더라도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마침 <577 프로젝트>를 통해 끈끈한 팀워크도 준비된 상태였다. 하정우는 거기에 새로운 목표를 하나 더 세웠다.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창피한 결과물이 나와서는 안 되는 거죠. 어‘ 디에 이런 배우들이 숨어 있었나’ ‘대단한 배우를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죠. 그래서 고심 끝에 고안한 방법은 맹연습이었어요.” 정공법이다. 그리고 다른 영화 제작 과정에는 없는 단계다. 다른 영화에서는 크랭크인 전에 상견례처럼 형식적으로 치르는 리딩 일정을 두 달 반으로 잡고 배우들을 특훈시켰다. 대학 시절 연극 연습을 하던 것처럼 동선부터 애드리브까지 미리, 모두 결정하고 연습했다. 특훈의 결과는 일정 중 틈날 때마다 영화 얘기를 나눈 배우들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김현기 기자 역을 맡은 최규환은 하정우의 조언대로 제임스 딘이 했던 것처럼 카메라 앞에 전라로 서보기도, 바보 연기를 해보기도 하면서 어떤 경지의 득음을 경험했다. 강신추 사무장 역을 맡은 강신철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같이 하면 영업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했어요. 빈말로 여겼는데 <더 테러 라이브> 현장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니 진짜 영업 비밀을 나눠준 게 맞더라고요.” 승무원 미나미토역을 맡은 고성희는 “하정우 감독님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배웠죠”라고 말했다.

덕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하루하루 무르익어갈수록 <롤러코스터>를 통해 발굴되고 세상을 놀라게 한 배우들은 가슴을 활짝 펴고 호평을 받고 있었다. 버스에 실려 쉴 새 없는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에, 하정우는 문득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즘 우리끼리 이런 얘기를 자주 해요. ‘이렇게 출세해서 너희와 뭔가를 나누고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성훈(하정우의 본명)이 네가 영화 찍을 여건도 되고, 많은 사람을 알고, 영화제에 초청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행복하죠. 정말 다행이고,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시종일관 하정우가 평상심과 용맹함을 유지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감독이었다는 듯 원숙한 명장의 얼굴로 팀을 이끌던 하정우는 때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분주한 스케줄 속에서 하정우를 닮은 무엇인가로 기능하는 기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방송 카메라는 며칠째 코앞까지 다가와 따분한 질문을 던져댔다. (“평소에도 욕을 잘하나요?” “이번 영화에도 먹방이 있나요?”) 영화를 본 관객들은 환호했지만, ‘관객과의 대화’ 때는 영화에 대한 대화보다 사진 촬영에 더 관심이 많았다. (“너무 잘생겼어요!” “욕해주세요!”) <롤러코스터> 야외 무대 인사를 보러 몰려든 1,800명의 인파를 헤치고 버스에 올라타면 하정우는 이내 냉정한 표정으로 영화에 대한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핸드폰을 꾹 움켜쥐었다. 그럴 때도 여러 취재진의 카메라는 하정우를 붙들고 있었다. 셋째 날이었다. 영화제의 피로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거기에 남은 하정우는 장구한 시간 동안 절벽에 매달려 파도에 깎여 나가는 사암같이 쓸쓸했다. 감독이라는 책임의 버릴 수 없는 무게나, 모든 것을 쏟아낸 후의 소모감은 아니었다. 일정의 과부하 때문에 느끼는 육체적인 피로도 그저 순간에 불과할 뿐. 그를 괴롭힌 것은 그보다는 예민한 자아였다. “예술가들에겐 자국이 많이 남아요. 모른 척, 아닌 척하고 살긴 하지만 모든 자극이 피부를 통해 꽂히고 있어요. 누군가 무심코 흘린 말 한마디가 잔상으로 남아 내내 자아를 괴롭히기도 하는 그 예민함은 인간으로 살아갈 때는 불편한 것이지만 창작할 때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고난이에요. 평상시에는 가벼운 조깅을 한다거나 해서 해소할 수 있는 자국인데, 대개는 안고 가야 하죠. 특히 이런 영화제 기간에는 모든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자꾸만 큰 자국이 남는데 그걸 해소할 시간이 없어 힘들 때가 있어요. 온전히 쉴 시간을 갖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시달리는 것이 괴로워요.” 그래서인지, 하정우가 밤마다, 혹은 순간순간 형체를 잃었다가 되찾을 때마다 윤동주의 시가 떠올랐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간 사나이는 미워하고, 가엾어하다가 또다시 미워하고, 이내 그리워한다. “그래도 별수 있나요? 제가 원해서 많은 매체를 만났고, 더 많은 팬을 만나고 싶어 스스로 계획한 일이니까 견디고 있어요. 무엇보다 감독으로서 첫 영화의 반응을 가까이 지켜보는 건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