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라는 이름의 무한 동력 2

사람을 끌어들인다. 흥미로운 일을 벌인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주변에 모인다. 그에게 장착된 이 무한 동력의 정체는 욕망이다. 억센 욕망으로 가득한 배우가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에 <보그>를 초대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래핑버스, 승무원 복장의 홍보 아르바이트, 하정우의 그림을 프린트한 샛노란 티셔츠를 통해 어디에서나 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부산국제영화제 전체가 하정우의 팬 미팅장인 것 같았다. 역시 하대세! 어딜 가나 팬들과 플래시가 밀려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동떨어진 서면의 한 카페에서 방송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이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인파가 몰렸다. 어느새 하정우를 향한 팬들의 환성은 “멋있어요!”에서 “잘생겼어요!” “섹시해요!”로 바뀌었다. 팬들은 “선글라스 한번 벗어주세요!” 하고 조르며 하정우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 했다.

배우 하정우로 말하자면, 그간 나홍진 감독과 <추격자>(2008) <황해>(2010)를, 윤종빈 감독과는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를 완성하며 그 감독들의 존재감 있는 페르소나로 ‘믿고 보는 배우’ 칭호를 강렬하게 거머쥐었다. <두 번째 사랑>(2007) <멋진 하루>(2008) <국가대표>(2009) <러브픽션>(2011) <의뢰인>(2011)을 통해서는 영역 없는 연기를 증명했고, 2013년에는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진지한 연기자로서 대중적인 스타의 꼭대기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작 그가 감독 겸업을 선언하며 내놓은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는 그간의 ‘하정우’를 철저히 배반했다. 최근 몇 년간 개봉한 영화마다 대박을 터뜨린 흥‘ 행 보증수표’, 광고계의 특‘ A급 스타’ 하정우를 예상한다면 <롤러코스터>는 반전이 될 것이다. 배우 하정우의 묵직한 존재감은 증발시켰다. 감독 하정우의 목적은 오로지 웃기는 것이다. 원체 코미디의 열렬한 지지자다. <베를린>을 함께한 류승범의 경험담에 살을 붙인 <롤러코스터>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스태프롤이 다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관객을 웃긴다. 욕쟁이 한류 스타와 진상 승객들, 막 나가는 승무원과 조종사들이 탄 비행기가 태풍을 만나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펼쳐나가는 코미디다. 그 감성은 그간 한국 영화가 취해온 감성마저도 배반해, 혹자는 ‘병맛 코드’라고도하고, 혹자는 ‘<개그콘서트>적’이라고도 한다. 그렇기에 감독 하정우의 <롤러코스터>는 배우 하정우에게는 위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주변 감독들이나 영화계 사람들 반응이 “미쳤냐?”라는 투였어요. 왜 배우로서 잘해나가고 있는데 굳이 감독을 하려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죠.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모두가 의심하겠죠. 배우가 그냥 한번 찍어본 영화라고 생각하기 쉬울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품고 <롤러코스터>를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우직한 확신 덕분이다. 하정우에게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반지하의 영화감독’이라 표현하기도 하는 그는 <롤러코스터>를 준비하고 촬영하는 동안 배우로서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마주했다. 나흘간의 짧은 관찰로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배우로서 보여지는 하정우와 그 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하정우 사이에는 대양만큼이나 큰 간극이 있다. 또한 <롤러코스터>의 시나리오에는 어디선가 만나본 듯한 평범한 ‘동네의 잘 노는, 꽤 멋진 오빠’ 하정우의 자아가 많이 보인다. 바로 그 점이 배우 하정우의 자아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친구들이랑 있을 때 어떤지 아시죠? 제가 가진 이미지와는 다른 면이 많았을 거예요. 연기할 때는 감독이 창조한 캐릭터 뒤에 숨을 수 있었는데, 감독이 되고 보니 무의식까지도 모두 내보여주는 기분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쓰고 있을 때는 속살을 드러내는 것 같았고, 제가 만든 캐릭터를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저만 아는 제 본모습을 마주하곤 은밀하게 쑥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죠.” 욕설이 난무하고 왁자지껄한 말장난이 끝없이 오가는 <롤러코스터>는 분명 어떤 의미로든 하정우의 민낯을 투영하는 영화다.


왼쪽부터 의사 역할의 이지훈, 하정우 감독, 기자 역할의 최규환. 세 사람은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다.(위)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루는 모든 방송 프로그램과 지면 매체가 하정우와의 인터뷰를 바랐다. 현장의 취재 경쟁이 심해질수록  팀의 휴식 시간은 줄어갔다.(아래)

취재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7일, 하정우를 만난 곳은 비로소 그가 혼자 있을 수 있게 된 부산 웨스틴 조선호텔에서였다. 10월 17일로 예정된 개봉을 열흘 앞둔 감독 하정우 안에서는 자신감과 자괴감이 이상한 가역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매일 아침 6~7시에 출근해서 하루를 열흘처럼 쓰며 프리 프로덕션과 촬영을 진행했어요. ‘멘붕’에 빠진 것도 여러 번이었죠.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객관성을 잃게 됐을 때, 시야가 좁아져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영화 현장에서 배우라기보다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쌓은 경험, 특히 베테랑 감독조차 ‘멘붕’에 빠지는 때가 있음을 가까이서 겪고 학습한 덕분에 그런 ‘멘붕’조차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받아들이며 조바심 내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촬영을 마치고 음악과 편집 등 포스트 프로덕션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역시 내가 초보 감독이구나’ 하는 자괴감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촬영을 마쳤으니 더 이상 뭘 할 순 없는데 자꾸만 빈 곳이 보이는 거죠. 그 부분들을 다 메우긴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아요.” 후일담으로, 하정우는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 작고 사소한 기술적 불안 요소가 끝까지 마음에 걸려 불가능에 가까운 일정으로 영화를 다시 마무리했다.

배우로서 영화를 이끄는 하정우를 봤을 때보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이끄는 하정우를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태워야 하는 일이었다. 주변에 끊임없이 사람이 모여들고, 그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그 관계를 챙기는 데에 익숙한 이 남자. 배우로서 자신을 고문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고, 이제는 감독으로서 자기 자신을 깎아내 스스로를 닮은 비누 인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남자의 삶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하정우는 온몸을 자유자재로 쓸 줄아는 배우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세포까지 연기하는 배우”라고 하기도 했다. 호텔에서의 촬영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하정우의 세포는 찰나마다 새롭고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줬다.

그동안 하정우의 오랜 화두는 ‘결핍’이었다. 하정우는 그것의 정체를 언어화하지 못했고, 그래서 연기를 통해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상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다들 강한 생존 본능을 갖고 있다는 거죠. 배우로서의 저를 괴롭히던 것이 바로 그 결핍이라는 녀석이었어요. 제겐 연기가 그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었던 거죠. 예술가들에게는 결핍과 콤플렉스, 불안과 예민함이 내재돼 있어요. 그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창작에 대한 강한 욕구로, 혹은 생존 본능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결핍, 콤플렉스, 불안, 예민함은 더 나은 것을 욕망할 때만 알아챌 수 있는 고독한 감정이다. 완성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부단한 의심과 미움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하정우의 결핍은 더 나은 자신에 대한 욕망으로 대체되고, 연기를 통해 채워진다. 니체는 이 억센 욕망을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라 정의했고, 이 욕망을 모두 채운 인간을 ‘초인(übermensch)’이라 불렀다. 하정우에게는 이 욕망의 이름이 생존 본능이라는 말로 각인되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창작하려 하는 그의 무한 동력원이 되고 있다.

이야기는 다시 2006년, 스물아홉 살의 하정우가 베라 파미가를 지켜봤을 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격자>를 통해 충‘ 무로 블루칩’으로 부상하기도 전에, 이 젊은 영화인은 “10년 후에도 영화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좋을 것이고, 그 사이에 칸 영화제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의 하정우는, 그때와 똑같은 욕망을 태우며 살아가고 있다. <롤러코스터>가 개봉하고 나면, 11월까지 예정된 <군도: 민란의 시대> 촬영을 마치고 또 곧바로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위화 원작의 <허삼관 매혈기> 준비에 들어간다. 그 뒤로는 앙드레 김의 생애를 다룬 <앙드레 김>(가제) 출연이 약속돼 있고, 충분히 무르익어 손만 대면 톡 터져 나올 만큼 온전한 형체를 갖춘 여러 편의 영화 아이디어가 그 안에서 뛰쳐 나올 준비를 마쳤다.


경탄하며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사진을 위한 연출이다. 명배우의 세포는 스틸 카메라 앞에서도 사진가의 의도를 기민하게 파악해 정확하게 연기했다. 페이즐리 패턴이 막연한 존재감을 주장하는 재킷은 에트로(Etro), 깊은 버건디 컬러의 니트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하정우의 듬직한 손과 어울리는 두툼한 시계는 IWC, 날렵한 발목이 드러나는 베이식한 검정 팬츠는 씨와이 초이(Cy Choi by Beaker).

그는 이제까지보다 더 숨 가쁘게 실린더를 돌리는 나날을 보내려 한다. “앞으로도 쭉 배우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살아갈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꿈꿨던 삶이 바로 2013년 현재, 지금이에요.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고, 목표했던 삶이 그대로 이뤄졌죠.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앞으로도 더 이뤄야 할 꿈이 남았어요. 몇 해 전부터 이미 해외에서 수많은 제의가 오고 있지만 번번이 일정을 맞출 수 없어 포기해야 했어요. 이제는 적극적으로 한국과 해외에서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해보려 해요.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직접 땅을 일구고 품종을 개량해 내가 원하는 나무를 심어 과실을 수확하는 게 저에게 맞는 방법이죠. 지금은 나무 심기 좋은 땅을 보러 다니는 단계예요. 머지않은 미래에 해외로도 진출할 거예요. 영화인으로서 제 목표는 세계적인 배우, 그리고 감독이니까요.”

여러 배우와 감독이 이미 세계로 진출했다. 한국 영화인의 성공적인 세계 진출은 어느새 익숙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하정우라는 이름은 익숙함 이상의 반전을 기대하게 한다. 그는 영화를 꿈꾼 그때부터 놀랍게도 ‘세계적인 거장’을 욕망했고,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묵묵히 자신을 완성해왔기 때문이다. 하정우는 다르다. 그래서 이제껏 우리가 상상하지 않았던 일을, 이 남자가 해낼지도 모른다. 무한 동력의 배우이자 감독, 하정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