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패션에 입성한 더플 코트

90년대 캠퍼스를 누비던 모범생들의 유니폼이 올겨울 하이패션 무대에 입성했다. 클래식하거나 포멀하게, 미니멀하거나 섹시하게 등장한 이번 시즌의 더플 코트.

캐멀색 더플 코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눈 모양 자수 프린트 스웨트 셔츠는 겐조(Kenzo), 플리츠 스커트와 쁘띠 스카프는 미우미우(Miu Miu), 사첼 백은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케이블 TV의 인기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97>에 등장해 다시 한 번 추억의 패션 아이템으로 회자된 더플 코트! 당시 ‘떡볶이 단추’라 불리던 토글이 달린 더플 코트는 교복 위에 덧입거나 대학생들의 캠퍼스 룩으로 대인기를 누렸다. 평균화되고 정형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패션계에서 더플 코트는 프레피 룩이란 한계에 부딪혀 몇몇 교복 광고를 제외하고는 패피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지 오래. 하지만 올겨울 그 더플 코트가 극적으로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패션계의 ‘핫 가이’이자 이슈 메이커, 에디 슬리먼의 선택 덕분이다.

잠시 더플 코트의 역사를 더듬자면, ‘더플’이란 17세기 벨기에 작은 도시, 더플 지역에서 생산되는 거칠고 값싼 양모 소재의 이름. 북유럽 어부들이 처음 더플 소재로 만든 코트를 입기 시작했고, 그 후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들의 방한복으로 사용하면서, 매끄럽게 깎인 토글 단추와 프로그(군복에 많이 쓰이던 끈으로 된 여밈 장식) 장식 코트는 더플 코트라 불리게 됐다.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쇼에서 컴백한 회색 더플 코트는 아주 짧은 미니 드레스에 클래식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알고 보니 더플 코트는 에디 슬리먼이 가장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 디올 옴므를 맡고 있던 시절에도 그는 스키니한 수트 위에 걸쳐 입는 더플 코트를 자주 제안했다. 에디가 전통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다면,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는 더플 코트의 특징인 후드를 없애고 가죽 요크(어깨와 등 부분을 이어주는 천)와 큼지막한 아웃 포켓으로 패셔너블하게 변신시켰다. 또 아방가르드 전사, 릭 오웬스의 무톤 더플 코트는 가늘고 긴 소매 라인과 동물 뼈로 만든 뾰족하고 길쭉한 토글, 큼지막한 후드로 완성됐다. 반면 데렉 램은 간결하고 단아한 형태를 선택하되 어깨선을 감싸는 부드러운 패턴의 요크와 프로그를 지탱해주는 앙증맞은 사각 패널, 부드러운 캐멀 컬러로 모범생 여학생 이미지를 남겼다.





한편 아메리칸 클래식의 수호자, 랄프 로렌은 1900년대 러시아 해군에서 영감을 받아 클래식한 노끈과 나무 토글, 세일러 칼라처럼 보이는 후드를 더해 빈티지 더플 코트의 매력을 강조했는데, 커머셜 라인에도 굵은 케이블 니트 소재로 된 더플 코트를 선보이며 토글 코트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트렌치코트와 더불어 더플 코트의 원조 격인 버버리는? 버버리 하우스는 역시 애정이 남다르다. 버버리 PR에 따르면 트렌치코트 다음으로 더플 코트를 스테디셀러 아이템으로 선보이고 있다는 것. “버버리 하우스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매 시즌 컬러와 원단을 조금씩 바꿔 판매하고 있어요. 특히 겨울철 키즈 라인의 더플 코트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죠!”

“학창 시절 더플 코트는 부의 상징이었죠. 친구들 대부분이 교복 위에 더플 코트를 덧 입었어요. 교칙에 위배되지 않는 유일한 사복이었죠!” 모델 김원경이 더플 코트에 대해 추억하자 <보그> 패션 디렉터가 맞장구를 쳤다. “남편이나 저나 더플 코트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그런데 지난겨울 남편이 회사에 더플 코트를 입고 갔는데 동료들이 다들 ‘대학생인 줄 아느냐’고 비웃었대요. 패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죠. 더플 코트가 유행이 따로 있나요? 스테디셀러 아이템이죠.”

90년대를 학생 신분으로 보냈다면 더플 코트의 이미지는 대개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올겨울만큼은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버버리 하우스의 클래식도 있지만,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지방시), 미니멀한 오피스 룩(데렉 램), 매력적인 밀리터리 룩(랄프 로렌), 섹시한 그런지 룩(생로랑)도 있다. 각기 다른 표정의 더플 코트를 만날 수 있는 올겨울 부디 학창 시절 추억도 즐기고 유행도 잡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