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의 프리 선언

파라벤, 오일, 알코올, 향, 염료 등 요즘 화장품 업계에 프리 선언이 유행이다. 정말 ‘프리’라는 딱지가 내 피부에 더 좋은 화장품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너도나도 프리(free) 선언을 한다. 방송계 이야기가 아니라 화장품 얘기다. 파라벤, 알코올, 향, 오일, 설페이트, 디에탄올아민, 실리콘, 염료 등 우리 피부에 해악을 미친다는 주홍 글씨가 붙은 수많은 성분이 퇴출된다. 스킨케어 화장품의 대표적인 프리 대상은 파라벤. 대표적인 방부제인데 유방암에 걸린 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파라벤이 검출됐으며, 이것이 디오더런트 등의 화장품 때문이라는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른바 ‘파라벤 파동’이 일어났다. 이후 파라벤은 발암물질처럼 취급되면서 현재 국내 식약처에서도 유아용 화장품에 파라벤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설페이트 등의 합성 계면활성제, 석유계 미네랄 오일은 트러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향이나 색소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으며, 알코올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프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헤어 업계의 화두는 실리콘. 모발을 찰랑거리게 만들어 주지만 모발에 들러붙어 결국 모발이 다른 영양분을 흡수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 고급 브랜드뿐만 아니라 팬틴, 시세이도 등 대중적인 샴푸 브랜드도 실리콘 프리를 선언했다.심지어 헤어 살롱에서는 ‘실리콘 디톡스’라고 해서 모발에 들러붙은 실리콘을 뜯어내는 시술이 인기를 끌고 있다. 더 진귀하고 효과적인 성분을 함유했다며 경쟁하던 뷰티 마케팅과 반대로 뭔가를 뺐다고 선전하는 ‘프리 선언’은 이미 강력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더 잘났어’라며 장점을 부각시키던 마케팅에서 ‘나 빼곤 다 위험해’라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바뀐 것! 그렇다면 정말 프리 선언을 하지 않은 제품은 안전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프리’ 마크는 내 피부에 더 좋은 화장품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폴라 비가운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렇게 언급했다. “오일 프리라고 쓰여 있는 제품도 오일이나 실리콘처럼 오일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성분이 반드시 모든 피부 타입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일 프리 제품에 오일이 들어 있다는 것은 ‘오일 프리’라는 용어가 화장품 업계에서 날조된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의 피부 타입에 가장 좋은 화장품을 고르는 데도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숙명여자대학교 향장미용학과 이윤경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트러블의 원인이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성분을 소비자들이 인식할 수 있고, 이것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을 대체할 더 좋은 성분 개발로 이어진다면 프리 선언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마케팅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죠. 파라벤, 미네랄 오일, 실리콘 등이 모든 이의 피부에 해악을 끼친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견해도 바뀔 수 있단 얘기죠. 또 이들을 대체할 만한 획기적인 성분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결국 MSG 대신 미원이나 다시다를 넣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프리 선언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가격을 올리는 등 마케팅으로 이용될 수 있는 거죠.“

보라매병원 피부과 조소연 교수는 아예 ‘프리’란 단어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상관없어요. 파라벤은 수십 년간 써왔어도 문제가 없었던 방부제입니다. 오히려 소량의 파라벤은 피부 속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분해되는 것을 막아 피부에 바르면 노화가 억제되는 효과가 있죠. 주름살도 줄어들고요. 그렇지만 화장품 속 파라벤의 양은 이런 장점을 누리기에도, 유방암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에도 너무 소량 들어 있어요. 또 실험실에서 특정 성분만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과 여러 성분이 섞였을 때 나타나는 효과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파라벤을 대체한 방부제가 더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죠. 또 실리콘은 일반인이나 피부과 환자들을 위한 화장품에 대부분 사용될 정도로 자극이 없고 알레르기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알코올도 개인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에겐 따갑고 자극적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죠. 만약 당신이 알레르기, 접촉성 피부염, 아토피 피부염 등을 앓아서 아무거나 바를 수 없는 환자라면 화장품 선택에 훨씬 신중해야 하고 무향 · 무취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테스트를 받거나 경험상 특정 성분에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물론 ‘프리’ 표시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그렇지만 일반적인 피부라면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분 개수가 적은 제품(10개 이하)을 선택하는 게 피부엔 더 좋을 수 있어요.”

미엘 이경희 원장도 “‘프리’ 제품을 맹신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으려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가령 오른쪽 입술 주변에 트러블이 많은 이에겐 리치한 립스틱, 립밤을 쓰는지 물어봐요. 메이크업을 지울 때 오른손잡이들은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입술을 닦는데 이것이 피부에 닿아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또 볼에만 여드름이 많으면 혹시 붉은 블러셔를 사용하는지 묻죠. 간혹 ‘Red 43’이란 염료에 트러블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거든요. 이렇듯 자신의 피부를 관찰하고 올바른 제품을 선택해야합니다. 여드름 피부라면 오일 프리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건성 피부라면 오히려 건조함만 가중시킬 수 있죠. 알코올도 피부 타입에 따라 여드름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죠.”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피부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노력이 귀찮아 ‘프리’라는 문구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피부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그전에 거울로 자신의 피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꼼꼼히 체크한 후 사랑 에너지를 듬뿍 넣어주자. 당신의 피부 건강을 ‘프리’라는 마크에 떠맡기는 것보다는 분명 나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