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의 화려한 귀환

학창 시절에도, 대학을 거쳐 사회인이 된 지금도 늘 내 등에 붙어 있던 백팩. 한동안 잊고 있던 추억의 백팩이 다시 유행의 중심에 설 예정이다. 값비싼 소재와 유명 디자이너 라벨로 치장한 백팩의 화려한 귀환!



나는 주변을 배회하며 흘끔흘끔 조짐(살 것인가, 말 것인가)을 살피는 매장 스태프의 눈빛에 굴하지 않고 거울 앞에 서서 한쪽 어깨에 배낭을 걸쳤다가 내리기를 몇 분째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면 출장 갈 때마다 맥북(에어임에도 점점 무거워진다)을 넣은 캔버스 백 때문에 한쪽 어깨가 파여오는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모든 게 엉망으로 뒤섞이는 캔버스 백보다는 안팎으로 포켓도 많으니 수납하기에도 좋겠는걸. 지퍼나 스트링으로 야무지게 닫을 수 있으니 물건이 빠질 걱정도 없을테고. 요모조모 다 따져봐도 여행 갈 때 백팩만 한 건 없군! 그렇지만 백팩이라니, 아줌마 소리까지 듣는 판에 대학생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일 거야, 끔찍해!’ 조급해진 판매 직원은 ‘한 피스밖에 남지 않았다’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지만, 결국 난 슬그머니 백팩을 선반 위 제자리로 돌려놓은 다음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매장을 빠져나왔다.

내가 백팩을 포기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백팩은 20대 특유의 젊음과 활동성의 상징이다. 둘째, 백팩이란 아무리 예쁘고 멋지고 고급스럽게 만들더라도 결국엔 패션보다 실용성이 강조된 필수품(누구든 학교를 다니니까)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셋째, 반짝 유행하고 나면 금세 ‘철 지난’ 가방이 돼버린다는 것. 곰곰이 돌이켜본 백팩에 대한 개인사는 백팩의 역사와 함께했다. 90년대 중반 중학생이 되었을 때 ‘범생이’ 같던 이스트팩과 잔스포츠 대신 선택한 건 통통 튀는 베네통. 수녀와 신부가 키스하는 파격적인 광고 비주얼과 체제 전복적인 코드가 굉장히 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교 시간이면 버건디나 네이비, 검정 이스트팩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던 고교 시절엔 잠시 ‘이스트패커’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외삼촌이 미국 유학할 때 쓰다가 물려준 사파이어 블루 컬러 이스트팩은 로고 아래 ‘Made in U.S.A.’가 적힌 ‘진짜’였다). 그리고 대학생이던 2000년 초반은 메트로시티와 MCM의 시대였다. 신촌 현대백화점 가판대에서 행사를 하면 긴 생머리에 올리비에 머리핀을 꽂은 여대생들이 엄마와 함께 줄을 서서 사재기를 해댔다(‘세 개 이상 구입 불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하나 혹은 두 개의 앞 포켓이 있고, 끈으로 당겨 입구를 닫은 다음 뚜껑을 덮는 형태)의 가방은 하나같이 광택 나는 검정 가죽 소재에 번쩍거리는 황금색 로고 장식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백팩과 럭셔리의 개념을 최초로 연결시킨 백팩계의 영웅적 인물은 단연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다. “누구도 백팩을 원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전혀 럭셔리하지 않았거든요.” 프라다 여사는 <럭셔리 :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의 저자 데이나 토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당시를 회상했다. 역사상 최고의 백팩 신드롬으로 기록될 프라다의 포코노 나일론 백팩은 84년 처음 출시된 후 10년간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대중이 프라다 여사의 앞선 감각을 따라잡았을 때 이들은 하이엔드가 실용성과 캐주얼함을 갖춘 전무한 접점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값비싼 디자이너 브랜드지만 물에 젖어도 닦으면 그만이고, 낙하산처럼 질기니 부담 없이 사용해도 좋은 가방. 프라다 백팩의 여운은 그 파격만큼이나 꽤 오래 지속되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여성용인 벨라의 인기가 수그러들자 남성용인 V135 백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때가 바로 수트에 배낭을 멘 ‘스마트’한 차림의 젊은 비즈니스맨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다(초기엔 배낭 멘 수트맨들은 전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다가 스카우트된 비즈니스맨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성 패션과 달리 남자들 사이에서 백팩은 실용적인 이유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한편, 2013년 현재 백팩이 패션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백의 형태가 된 데는 아이돌 문화와 힙합 패션의 공로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명품 브랜드의 로고 플레이로 시작된 MCM 꼬냑 비세토스는 루이 비통, 구찌, 펜디가 그랬듯 ‘블링블링’한 스타일의 힙합 뮤지션에게 어필했고, 그들을 위한 아이템을 제작하면서 MCM 백팩의 전설도 함께 시작됐다. 인기 초절정의 힙합 아이돌-잘 생각해보라. YG에서 쭉 성장한 지드래곤은 힙합 뮤지션이다-이 제값 다 주고 이 가방을 사서 착용하면서(해외에서만 판매하던 당시에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600만 개가 팔린 상황이었다) 명품 라벨 백팩의 대명사가 된 스토리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렇듯 하이패션과 백팩은 처음엔 체제 전복적이었지만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며,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 백팩이 고급스러움과 패션의 면모를 앞세우며 등장하고 있다. “과거의 백팩은 보다 캐주얼한 편이었죠. 최근엔 패션 디자이너들이 고가의 소재를 사용할수록 새로운 고객에게 어필하는 추세입니다.” 바니스 뉴욕의 패션 디렉터 도모코 오구라의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더 로우(가장 베이식한 아이템을 최고가에 내놓기로 유명한)에서 복주머니 모양의 백팩을 처음 선보였을 때, 대부분 ‘별 특징 없는 백팩을 3만9,000달러(한화 약 4,100만원)라는 가격에?’라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실제 그 가방은 매장에 진열되자마자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 나간 제품이었다. 이후 하나둘씩 등장한 백팩 리스트는 알렉산더 왕의 프리즈마 스켈레탈 백팩(이번 시즌 대리석 무늬 버전)과 마르티 백팩(이미 왕의 클래식 아이템이 된), 남녀 공용의 AV01 백팩에 이어 숄더와 토트, 백팩의 3단 변신이 가능한 EV04 백을 선보인 피에르 하디, 필립 림의 집 어라운드 백팩, 스파이크가 박힌 크리스찬 루부탱의 동테즈 백팩, 금속 체인으로 테두리 장식을 한 샤넬풍의 스텔라 맥카트니에 이르기까지 점점 길어지는 추세. 최근 눈에 띄는 건 2013 가을 겨울 런웨이에 등장한 마르니 백팩들이다. 샘 롤린슨이 손에 들었던 건 진짜 백팩이고, 마리 피오베산이 들었던 건 모양만 백팩인 토트백, 캐롤라인 브라쉬 닐슨이 들었던 모피 장식 카스토리노 호보백은 백팩으로도 들 수 있는 투웨이 백이다.

“남성용과 여성용 모두 잘 팔려요. 우리 매장 같은 경우 입고되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죠.” 움베르토 레온은 오프닝 세레모니에서 매 시즌 백팩을 판매해왔다고 말한다. “꾸준한 인기 아이템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눈에 띄게 판매율이 높아진 게 사실입니다.” ‘값비싼 소재로 만든 캐주얼 아이템’ 컨셉의 디자이너 라벨 백팩에 대해 평가할 때 우리는 편리함과 실용성을 우선으로 꼽기 쉽다. “백팩은 무게를 가장 잘 분산시키기 때문에 들고 다니는 가방 중 가장 편합니다.” LN-CC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스켈튼의 의견에 클럽 모나코와 협업으로 백팩을 디자인한 스트리트 사진가 토미 톤도 동의한다. “가방을 손에 들거나 한쪽 어깨에 메는 것에 비하면 양쪽 어깨에 백팩을 메는 쪽이 훨씬 편하죠. 팔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뛰어다니거나 이동할 수 있다면 생활하기가 훨씬 쉽거든요. 특히 저처럼 거의 매일 여행을 다녀야 한다면 필수적인 아이템이에요.” 물론 이 시대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여행이나 이동이 잦을 뿐 아니라, 일상에서 즐기는 여가와 운동에 대한관심 또한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백팩이 과거와는 또 다른 형태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실용성보다 패션적인 측면 때문이다. 누군가 디자이너 라벨의 백팩을 구입한다면 그건 편하기 때문이 아니라(알렉산더 왕의 마르티 백팩을 살 때 누구도 “어깨끈에 쿠션은 충분히 들어갔나요?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되었겠죠?”라고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 가방을 어깨에 멨을 때 자신이 멋져 보이기 때문이니까. 대중적인 백팩 전문 브랜드들이 돌아온 백팩 유행에 대처하는 방식이 바로 그 증거다. 추억 속의 브랜드로 잊힐 뻔한 이스트팩은 크리스 반 아쉐, 라프 시몬스, 아페쎄 등 요즘 가장 뜨는 디자이너, 가장 쿨한 라벨과의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학창 시절 우리가 기억하는 이미지에서 업그레이드된 이미지-패셔너블한-로 현명하게 시대에 발맞추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백팩도 100% ‘건강 친화’적인 가방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다. 근골격계 질환을 야기하거나, 어린이의 성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등(그래서 요즘 초등학생들은 백팩을 메는 대신 트렁크를 끌고 다닌다). 결국 백팩의 인기는 실용성 반, 패션성 반인 것이다(옷장 속에 묵혀둔 옛날 백팩을 꺼내 들지 않는 이유). “백팩을 멨을 때 신경 쓰지 않은 것(혹은 애써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그걸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오프닝 세레모니의 레온이 설명한 것처럼 백팩을 어깨에 척 둘러멘 사람은 몇 달 점심값을 모아서 산 가방을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들고 다니는 것 같지도 않으며, 부드러운 나파가죽으로 만들어졌거나 값비싼 밍크털이 달려 있을지언정 의자 위에 고이 얹는 대신, 당연히 의자 아래 더러운 바닥에 가방을 던져둘 것처럼 보인다. 백팩이란 잇 백, 빅 백, 아이콘 백을 모두 넘어서는 쿨한 애티튜드에 대한 것. 결국 백팩은 최종적이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