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내려앉은 깃털

누군가는 자연의 기적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희망의 상징으로 꼽은 깃털. 신비함의 상징인 깃털이 이번 시즌 여자들 곁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스타일의 희망으로 떠오른 깃털 이야기.



“희망에는 깃털이 달려 있어, 우리의 영혼에 사뿐히 내려앉고,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에밀리 디킨슨은 희망은 깃털과 같은 것이라 이야기했다. 미국의 여류 시인이 깃털을 미래의 상서로운 징조이자 갈망의 대상, 영혼의 움직임 등 오래된 정서로 떠올렸다면, 올가을 디자이너들은 깃털을 새로운 패션의 희망으로 선택했다.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리스 반 노튼, 크리스토퍼 케인, 프로엔자 스쿨러 등 디자이너들이 깃털을 사용한 옷을 잔뜩 선보인 것이다.

부드러운 선율의 ‘Cheek to Cheek’가 흐르는 가운데 모델들이 긴 런웨이를 걸을 때 색색의 타조 깃털이 나부끼던 드리스 반 노튼 쇼야말로 깃털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컬렉션. 깃털로 장식한 드레스와 스커트가 익숙한 스타일이었다면, 남성적인 코트와 셔츠 위에 장식된 깃털은 새로운 표현법이었다. “남성복 스타일과 소재를 지극히 여성적인 장식으로 뒤덮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타조 깃털로 장식한 영국산 울 소재처럼 말이에요.”

드리스 반 노튼의 말대로, 깃털은 패션에서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장식 중 하나였다. 영화 속에서 케이트 윈슬렛은 푸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목에 걸고 포즈를 취했지만, 실제로 타이타닉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에 잠긴 물건 중 가장 값비싼 건 깃털 상자였다. 깃털에 대한모든 것이 담긴 소어 핸슨의 <깃털: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이란 책에 따르면, 1912년 당시 깃털은 가장 값비싼 물건 중 하나. 특히 타이타닉 속에 담겨 있던 최상급 깃털 마흔 상자는 요즘 가치로 환산할 때 230만 달러 상당의 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무게당 가치를 따졌을 때 당시 깃털보다 비싼 건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멋 좀 부린다는 여자들의 모자에는 죄다 깃털 장식이 들어가 있었고, 파리에만 300명이 넘는 깃털 공예가들이 있었다. 당시 독수리, 백조, 공작, 타조 등의 깃털은 남아프리카에서 수입됐는데, 한때 타조 원정대가 생길 정도로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여성들이 살롱 대신 일터로 나서고, 실용적인 패션이 주류가 되면서 깃털에 대한 선망은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깃털과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샤넬이 소유한 깃털 전문 공방인 르마리에는 한 해에 깃털 장식 까멜리아만 2만 개 이상 만들어내고 있으며,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의 뒤를 잇는 수많은 패션 천재들이 깃털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여전히 적극적으로 쇼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번 시즌 젊은 디자이너들은 깃털을 전혀 새롭게 해석했다. 대표 주자는 뉴욕의 프로엔자 스쿨러. 그러데이션한 듯한 프린트의 스웨터들과 매치된 찰랑이는 깃털 스커트가 그 주인공이었다. 유난히 도회적으로 느껴진 이 깃털 장식의 비밀은? “실은 그건 깃털이 아니라 가죽을 길고 얇게 잘라서 붙인 거예요. 깃털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노력했죠.” 새하얀 코트 위에 검은 실로 자수를 놓은 셀린의 피비 파일로, 깃털을 확대한 프린트 시리즈를 선보인 스텔라 맥카트니 역시 새로운 깃털 응용법을 제안한 이들. 깃털로 맨투맨 티셔츠를 뒤덮고, 킬트 스커트 사이사이에 짧은 깃털을 장식한 크리스토퍼 케인 역시 깃털 사용법을 확장한 디자이너로 꼽힐 만하다.

살랑살랑 마음을 간지럽히는 깃털의 유혹은 내년 봄까지 이어진다. 이제 막 끝난 2014년 봄 컬렉션에도 깃털 장식이 자주 등장했다. 가레스 퓨는 거대한 깃털 장식 헤어피스를 만들었고, 마지막 로샤 컬렉션을 선보인 마르코 자니니는 신고 다니면 절로 먼지가 쓸려 나갈 듯한 타조 깃털 슬리퍼를 선보였다. 깃털과는 거리가 멀 듯한 준야 와타나베까지 거대한 꿩 깃털 장식으로 컬렉션에 방점을 찍었을 정도. 여기에 깃털을 잔뜩 사용해 여전사 이미지를 표현한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과 루이 비통에서의 마지막 쇼를 ‘우리 안의 쇼걸’들을 위해 헌정하면서 거대한 깃털 머리 장식을 모든 모델들에게 선사한 마크 제이콥스까지!

“이 세상에 여자들이 있는 한 깃털은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깃털 장식이 전성기를 누린 1911년 파리의 한 깃털상은 이렇게 장담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깃털 장식 모자를 쓰고 다니진 않지만, 그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10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깃털이 여성들 곁에 살포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레이스와 스팽글보다 더 매혹적이며, 무엇보다 모피보다 덜 잔혹하게 느껴지는 깃털 장식. 과연 깃털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드리스 반 노튼의 코트를 놓고 보자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