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쇼핑을 하는가?

도대체 왜 우리는 입지도 않을 옷, 신지도 않을 구두를 사들이는 걸까? 쇼핑 욕구의 미스터리에 대한 자가 진단서.

가죽 터틀넥 톱, 카키색 재킷과 스커트, 가죽 장갑, 크로커다일 토트백은 모두 구찌 (Gucci), 깅엄체크 토트백과 플랫폼 슈즈는 프라다(Prada), 뱅글은 샤넬(Chanel), 레오파드 프린트 토트백은 CH 캐롤리나 헤레라(CH Carolina Herrera), 골드 펌프스는 미우미우(Miu Miu), 컬러 블록 미니 백은 디올(Dior).

“이게 다 뭐지? 언제 산 거지? 이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샀지?” 얼마 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패션 블로거인 가랑스 도레가 자신의 블로그(garancedore.fr/en)에 올린 글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현명한 소비자라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장 속에는 생전 입지도 않은 아이템이 가득한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혹은 오늘 아침 신발장 앞에 선 순간, 당신이 느낀 바로 그 감정과 놀랍도록 일치한다고? 두말할 것도 없이 예스, 예스, 예스!

누군가는 원피스, 또 누군가는 재킷, 가방, 주얼리···, 내 경우는 구두다. 현관 앞 조립형 신발장은 점점 높이 쌓여 천장에 닿을 듯하고(3년 전 이사할 때 5층으로 시작해 지금은 11층까지 올라갔다), 미처 그 위에 올리지 못한 구두들이 바닥에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는데도, 호시탐탐 예쁜 구두를 살 생각뿐이다.

그런데 출근할 때 손이 가는 건 고작 5~6켤레 밖에 안 된다는 게 문제. 도대체 신지도 않을 구두를 왜 샀을까? 돌이켜 보면, 사는 순간에도 그 구두를 신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란 불편한 진실은 온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카드를 꺼내는 순간만큼은 오만 가지 합리적인 근거가 분명 있었다.

이건 굽이 높지만 플랫폼이 있어 의외로 편할 거야, 이건 평소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있을 친구 결혼식에는 딱인걸, 이건 할인을 무척 많이 해주니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거야···. 그 순간 떠오른 이유들은 놀랍도록 창의적인 데다가 화수분처럼 끝없이 쏟아진다. 특히 발이 90도 가까이 꺾일 정도로 높은 굽에다, 너무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100m 밖에서도 시선을 끌 법한 프라다 불꽃 슈즈를 사던 순간엔 ‘평생 신을 일이 없겠지만, 소장 가치는 있을 거야’라는 것이 이유였다. 도대체 신을 수 없는 구두의 ‘소장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고 옷장 속엔 실용적인 아이템이 가득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비슷한 디자인의 크롭트 맨투맨은 온갖 색상별로 있고, 어디가 다른건지 말해주기 전까진 알 수 없는 플레어 스커트들도 한가득. 그나마 이는 취향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닌 와이드 팬츠, 핀스트라이프 셔츠, 혹은 결코 못 입을 작은 사이즈의 옷들은 왜 옷장 속에 고이 모셔놓은 걸까? 도대체 여자들은 왜 입지도 않을 옷, 신지도 않을 구두를 사들이는 걸까?

놀라운 사실은 100년 전부터 이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쇼핑 욕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것. 정신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은 1924년 자신이 쓴 심리학 교과서에 ‘오니오마니아(Oniomania)’라는 증상을 소개했다. 이는 그리스어로 판매를 의미하는 ‘오니오스(onios)’와 광기를 의미하는 ‘마니아(mania)’의 합성어로, 강박적인 쇼핑 욕구를 지칭하는 의학 용어.

‘오니오마니아’의 핵심적인 특징은 어떤 아이템을 구입하는지와 상관없이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 자체를 통해 심리적인 쾌감을 느낀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마감이 끝나면 이달에도 수고한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는 이유로 꼭 사고 싶은 게 없는데도 뭔가 사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 적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동안 ‘득템’을 해서 스트레스가 해소됐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산다는 것 자체가 기뻤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바로 ‘오니오마니아’는 아닐까?

<오프라 쇼>에 출연해 유명세를 탄 테렌스 슐먼 박사(여러 가지 중독 문제를 다루는 미국 슐먼 센터의 설립자)는 열 가지 질문을 통해 쇼핑 중독 증상을 확인한다. 그 질문에 하나하나 직접 대답해보기로 했다.

 

1) 부정적인 감정 상태일 때 쇼핑을 하는가?

(가끔 그랬다. 우울하니까 사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2) 가족 혹은 친구들에게 쇼핑한 사실을 숨기거나 가격을 더 낮게 말한 적이 있는가?

(이 부분에선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현관을 완전히 점령해버린 구두들이 부모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선물 받은 것이라고 둘러댄 경우도 많다.)

3) 신용카드가 없었다면 사지 않았을 아이템을 구입하는가?

(뜨끔! 그동안 조금 비싼 옷과 구두를 구입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신용카드 덕분이다.)

4) 쇼핑이 끝난 후 죄책감을 느끼는가?

(잠들기 전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건 당연한 수순. 그럴 때마다 또다시 온갖 이유를 대가며 죄책감을 무의식의 세계로 묻어버리곤 했다.)

5) 구입한 아이템을 거의 사용하지 않을 때가 있는가?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

6) 쇼핑 습관 때문에 가까운 지인들과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는가?

(다행히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7) 쇼핑으로 인해 식사 혹은 취침 시간이 극단적으로 바뀌었나?

(쉴 틈 없이 바쁜 컬렉션 출장 중에 식사 시간을 포기하고 쇼핑을 해본 적도 있고, 세일 중인 온라인 사이트를 구경하느라 밤을 지새워본 적도 있다.)

8) 신용카드 없이는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인가?

(이건 아니다. 신용카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날도 많으니까.)

9) 쇼핑 습관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나?

(아직은 아니지만, 이러다간 위기에 처하겠다고 느낀 적은 있다.)

10) 멈추려고 노력해봤지만 멈출 수 없었는가?

(현명한 소비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은 수없이 많지만, 쉽지 않았다.)

오 마이 갓! 열 가지 질문 중 절반 이상이 내게 해당됐다.

어떤 중독이든 마찬가지지만, 심리학자들이 ‘오니오마니아’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결핍, 충격적인 경험, 현실의 스트레스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독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그 이유를 단정 지을 수 없다. 패션이라는 강력한 변수가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평소 즐겨 입는 아이템은 ‘내 스타일’이기 때문에, 시도해보지 않은 아이템은 이번 시즌 트렌드이기 때문에, 평생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아이템은 그 자체로 작품처럼 간직하고 싶기 때문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패션의 함정인 것이다.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이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해낸 자그마한 해결책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했을 때 가격표를 보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이것의 가치는 얼마다’라고 미리 마음속으로 정해두는 것. 그리고 실제 가격이 짐작한 가격보다 비쌀 경우엔 절대 사지 않기.

가격표를 먼저 볼 경우, 분명 비싸다는 느낌이 대뇌 전두엽까지 전해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그래, 그 정도 값어치는 있어 보여’ 하며 또다시 타협하게 되니까. 미리 상한선을 정해둔 후 가격표를 보면, 자신의 ‘체감 가치’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실수를 막을 수 있다.

지난 주말, 갑작스럽게 쌀쌀해진 날씨에 적합한 옷을 사러 명동 SPA브랜드 매장을 차례대로 들렀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SPA 브랜드는 ‘티끌 모아 태산’ 식의 과소비를 하게 되는 위험 구역. 마음이 흔들린 아이템은 수십 가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쇼핑백 안에는 눈꽃송이가 그려진 카디건, 옷장 속에 가득한 맨투맨들과 잘 어울리는 도톰한 데님 스커트, 그리고 독특한 플랫폼 슬립온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보다 실제 가격이 한참 낮은 아이템들만 구입한 것이다. 애초의 쇼핑 목적에서 벗어난 플랫폼 슬립온이 끼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변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