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남자들의 친구가 된 아미

알렉상드르 마티우시의 라벨, ‘아미’는 불과 2년 만에 전 세계 멋쟁이 젊은 남성들의 친구가 됐다. 파리 패션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이 유쾌한 파리지앵이 서울을 찾았다.



“네 살 때부터 무용을 했어요. 춤추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파리 외곽의 빌리 엘리어트였던 셈이죠.” 10월 중순답지 않게 후끈한 기운에 소나기까지 내린 오후, 아미(Ami)의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마티우시가 서울 갤러리아백화점 옥상에 앉아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하지만 열네 살이 되어 오페라 극단에 입단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제가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를 빼고는 모두들 무용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건 듯한 아이들뿐이었어요. 전 그저 춤추는게 즐거웠을 뿐이거든요.” 열네 살의 소년은 발레리노 대신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게 됐다. 적어도 소년에게 발레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 세계는 패션이 주는 감흥과 아주 비슷했다. “그때부터 패션 키드로 성장한 거죠.”

론칭 2년 만에 전 세계 200여 개 멀티숍에서 판매되는 아미의 옷은, 그렇지만 발레 무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매일 아침 남성들이 옷장에서 손쉽게 꺼내 입을 수 있는, 현실에 바탕을 둔 남성복. 환상에 빠진 남성복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며 접근 가능한 남성복이다. “이전에 디올과 지방시, 마크 제이콥스 등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디자인한 옷들과 제 현실이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마티우시는 자신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전 세계 남자들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멋쟁이 친구들이 자랑스럽게 입을 수 있는 브랜드 ‘아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입술을 검은색으로 바르고 행위 예술을 하는 듯한 쇼, 결코 거리에서 입을 수 없는 무대 의상들이 넘쳐나는 파리 남성복 시장에서 지금 당장 입고 싶은 옷으로 가득한 아미의 존재는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의 옷들은 아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첫 번째 컬렉션을 뉴욕 바니스, 르 봉 마르셰, 10 꼬르소 꼬모, 미스터 포터 등의 숍에서 당장 바잉해갔고, 데뷔 1년 만에 파리 마레 거리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무엇보다 제 주변 친구들이 제 옷을 즐겨 입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사람들이 제 옷을 입고 행복하다면 저도 행복해요. 행복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니까요.” 한때 스승이었던 피에르 하디, 파리 컬렉션의 큰손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역시 아미의 팬임을 자랑 삼아 덧붙이는 그다.




물론 아미의 옷은 충분히 현실적이지만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다. 그는 쇼에서 그만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프레젠테이션으로 그 현실적인 옷들에 상상력을 부여한다. 덕분에 친구들끼리 모인 근사한 저녁 파티, 출근길 지하철, 휴가철 공항 등을 주제로 한 아미의 무대와 프레젠테이션은 심각한 패션쇼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서울로 날아오기 한 주 전, 마티우시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주어졌다. 파리 컬렉션에 서는 젊은 디자이너들 중 가장 가능성이 돋보이는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안담 어워즈’의 올해 수상자로 뽑힌 것. 가레스 퓨, 자일스 디컨, 하칸, 안토니 바카렐로의 뒤를 이어, 파리 패션계 일원으로 대환영을 받은 셈이다. “피에르 베르제가 시상식에서 제게 축하 인사를 건넸어요. 아주 예전에 디올 인턴으로 일할 때 길거리를 산책하던 그와 이브 생로랑을 마주친 적이 있어요. 이제 같은 패션 업계 일원으로 마주치다니 정말 감격스러웠죠.”

파리를 넘어 전 세계로 아미의 친구들을 만들고 있는 마티우시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 “남프랑스의 아주 근사한 별장? 파리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멋진 집? 하하. 농담이에요. 하고 싶은 건 너무나 많아요. 죄다 아미와 관련된 것들이죠.” 그는 속사포처럼 자신의 꿈을 펼쳐 보였다. 아동복, 새로운 파리 매장, 카페 혹은 레스토랑, 그리고 당장 11월 중순부터 시작될 인터넷 쇼핑 사이트(amiparis.fr)까지.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여성복도 시작할 겁니다. 전 사실 남성복보다 여성복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요.” 물론 단정한 셔츠, 몸에 꼭 맞는 재킷, 10년을 입은 듯 편안한 팬츠 등은 지금 남성복에서 추구하는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서울에 오기 전 밀라노에 있었어요. 그곳에서 이네즈 드 라 프레상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하지만 깊은 곳에서 뿜어 나오는 멋. 멋진 그녀에게 어울리는 여성복을 만들고 싶어요.” 옷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 디자이너가 만든 현실적인 여성복은 또 얼마나 많은 여성을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