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플레이

로고 부활! 10여 년 전 럭셔리 젯셋족을 위한 로고냐고? 젊은 디자이너들의 혁명적 기질, 도발적 풍자, 스웨트 셔츠 인쇄, 최첨단 기술을 통한 패턴 등등. 패션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시작된다.

셀린 로고 풍자 스웨트 셔츠는 리즌 클로징(Reason Clothing by Around the Corner).

옷의 안감에 자카드 처리된 채 숨어 지내는 게 로고였다. 그러나 2000년대 뉴 밀레니엄이 개막되자마자 로고는 기다렸다는 듯 세상 밖으로 탈출했다. 그저 그런 탈출은 아니었다. 부와 명예를 뽐내는 패션의 신흥 세력 ‘럭셔리 젯셋족’들이 유명 상표를 자신의 새 명찰쯤 되는 듯 으스대며 드러냈고, 로고와 심벌로 구성된 새로운 무늬와 프린트가 속속 개발돼 전에 보지 못한 패턴으로 쓰였다. 그야말로 로고의 위대한 탈출! 보디 오일이라도 된 듯 온몸에 로고를 바른 모습은 개성적이고 우아한 멋을 향해 뒤통수를 갈기는 듯했다. 한 마디로 시대를 규정하는 별난 문화적 열병이었다. 얼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 부위를 로고 패션으로 감싸거나 감췄으니까. 때론 도살장의 암소에 찍힌 낙인이나 헤스터 프린 가슴의 주홍 글씨처럼 보였지만, CC, GG, FF, LV 등은 한 시대를 가장 간결하게 기록하는 알파벳으로 손색없었다. 옷 자체의 디자인, 품질이나 장신 정신은 둘째였다. 패션 하우스 명패에 새겨진 알파벳을 치켜세우는 게 먼저였다. 한마디로 더블 G가 없으면 구찌 백이 아닌 것처럼 여기던 시절.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금, 감쪽같이 없어졌다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나오기를 반복하며, 전혀 새로운 방식과 형태로 로고가 또다시 출몰하고있다. 지난 9월 중순, 뉴욕에서 열린 2014 S/S 패션 위크에서 신개념 로고를 부활시키려는 혁명적 순간이 종종 있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자기 이름을 대대적으로 밀어붙일 때로 판단한 알렉산더 왕부터 보자. ‘알렉산더 왕’ 영문 철자를 레이저 커팅을 이용해 다가올 봄의 대형 트렌드 중 하나인 메시 형태로 완성시켰다. 이런 시도는 90년대 헬무트 랭이 되고 싶은 청년의 유쾌한 도발이자 파격이었다. 도나 카란은 되돌아온 90년대 유행에 힘입어 당시를 정의한 자신의 두 번째 브랜드에서 로고 부활 운동을 일으켰다. 상업성 짙은 DKNY가 요즘 젊은 세대에게 다시 인기를 끌기 위해 온통 DKNY 로고로 도배된 시리즈를 내놓은 것. 이렇듯 두 사람은 패션에서 로고 부활 운동을 벌이는 데 선봉적인 역할을 맡았다(두 사람 모두 브랜드의 머리글자 정도가 아닌, ‘풀네임’을 새겨 넣었다).

로고 부활 운동은 몇몇 디자이너들의 내년 봄 컬렉션이 발표되기 전, 좀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일어났다. 셀린, 생로랑 등은 우리 시대 멋쟁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다. 이 패션 하우스를 책임지는 피비 파일로와 에디 슬리먼은 만인이 기대하는 프랑스 패션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 맨 처음 로고 교체 작업부터 시도했다. 피비 파일로는 E에 ‘악상테귀’를 얹었고, 에디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가문의 또 다른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Yves를 삭제했다.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셀린과 달리 생로랑의 로고 혁신은 처음에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식이다. 혁명가들의 단호한 결단은 다른 패션 하우스에 새로 임명된 후배들마저 슬슬 부추겼다. 알렉산더 왕이 발렌시아가로 들어가 맨 처음 저지른 일이 바로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시절에 쓰이던 로고에 조용한 혁명을 단행하는 업무였다. 그래픽에 관해 소수의 예민하고 예리한 사람들이나 눈치챌 만한 로고 교체 작업이 이뤄진 것(자세히 비교해보면, 이전 로고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느껴질 것이다).

패션 혁명가들이 하나의 심벌로 각인된 브랜드 로고를 자기 입맛대로 손질하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브랜드 상표를 꼬고 비틀고 풍자하는 일을 겁도 없이 저지르는 중이다. 로고에 대한 열광의 끝에서 기발한 패션 풍자가 생기기 시작한 것. 이제 우리에게 하나의 현대 전설로 길이 남은 ‘꼼데퍽다운’을 기억하는지(꼼데가르쏭을 이끄는 레이 카와쿠보의 남편은 이를 아주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울러 호미에스(Homies), 셀린 디온(Céline Dion)이나 펠린(Feline), 발린시아가(Ballinciaga), 브라울맹(Brawl Main)이나 발린(Ballin), 일 샌더(Ill Sander), 부찌(Bucci), 기라운치(Giraunchy), 보데가 벤데타(Bodega Vendetta), 에인 로랑 위다웃 이브(Ain’t Laurent without Yves), 컨티에(Cuntie) 등등. 어떨 땐 발음하기도 민망한 게 사실이지만,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서 비롯된 로고 풍자는 특별한 현상이 됐다. 이젠 그만 좀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패션 위크 주변에서는 이런 티셔츠를 입고 사진 찍히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리한나와 카라 델레바인 같은 유명 인사들이 입어준 덕분에 대히트 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옷들이 하비 니콜스나 레인 크로포드 같은 매장에서 판매된다면, 우리는 로고 자체의 놀라운 성장과 진화를 보고 있는 셈이다.



지난 봄 시즌을 위해 디스퀘어드2의 쌍둥이 형제는 자기들의 성 ‘Caten’을 샤넬과 까르띠에만의 전용 서체로 풍자해 카라 델레바인과 콘스탄스 자블론스키 등 톱 모델들에게 입혀 무대로 내보냈다. 안타깝게도 딘과 댄의 티셔츠는 크게 히트 치지 못했지만, 다른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티셔츠와 스웨트 셔츠에 이름을 크게 박아 재미를 실컷 누리고 있다. 자기 이름에서 손 뗀 뒤 더 잘나가는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새 브랜드 이름인 ‘No.21’을 스웨트 셔츠에 인쇄해 말 그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자기 생일 1962년 12월 21일과 개인적인 행운의 숫자에서 비롯된 브랜드 이름의 훈훈한 효과 덕분일까? 그는 얼마 전 마르코 자니니가 빠진 로샤로 발탁됐다. 뉴욕 뮬레비 자매의 ‘Rodarte’라는 매혹적인 이름 역시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도 로다테를 검색하면 지식쇼핑 같은 카테고리에서 로다테 로고 티셔츠 옆에 ‘주문 폭주’라고 써있다. 그나저나 로다테 티셔츠를 입는 사람들 가운데, 그 이름이 뮬레비 자매 엄마의 결혼 전 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겐조, 까르벤, 로샤, 아크네 등 로고 티셔츠의 인기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또 언젠가 제레미 스콧은 보석상 티파니 로고를 패러디한 J‘ eremmy & Co.’를 개발한 뒤 티파니 블루빛 의상에 인쇄해 패피들을 웃겼다. 젊은 기운으로 충만한 요즘 로고 의상의 특별한 점은? 입는 사람들이 브랜드 직원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요새 로고를 가슴에 큼지막하게 새긴 티셔츠를 보며 회사 유니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겐조, 아크네 등의 알파벳을 보면 침을 꼴깍 삼키며 부러워할 뿐. 이런 현상은 10년 전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로고 붐과 딴판이다. 한 시절을 풍미한 로고 마니아들의 속물근성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때는 로고가 패턴화되어 ‘덕지덕지’라거나 ‘로고로 도배됐다’라는 표현이 딱이었지만, 지금은 로고의 ‘결정적 한 방’이다. 쾅하고 찍힌 압도적 로고의 패션 승리이자, 도리어 더 쿨하게 보일 뿐이다.

부활한 로고가 맞닥뜨린 중요한 논점이라면, 대체 무엇이 로고 트렌드를 살렸느냐는 것이다. 주범은 로고 자체의 상징성이라는 효과를 본 수혜자들이다. ‘브랜딩’은 90년대 후반, 패션 전문가들 사이에 쓰이던 전문 용어였다. 그때만 해도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디자이너는 물론 브랜드 관계자들이 미친 듯 날뛰었고, 온갖 상표는 스타일 감각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창의성 없는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절의 결과가 로고 붐(유행이긴 했지만, 참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고약한 냄새마저 나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모순이 있다. 그것만큼 효과 빠른 홍보가 없었으니까. 모든게 뻔하고 한 치 앞의 경제 상황이 깜깜한 시기에 브랜드의 이름 하나 떡하니 박아 멋쟁이들에게 입혀 파파라치 사진에 찍히게 하면, 그걸로 끝이다. 또 명망 있는 패션가문을 이끌 신세대 디자이너에겐 집안 간판부터 갈아치워야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이런저런 반향을 일으켜 주목을 끌 수 있지 않겠나. 게다가 스펠링의 조작을 통해 풍자된 상표들은 유명하지 않으면 언급조차 안 되는 게 로고 패러디의 속성이다.

샤넬 투톤 슈즈는 늘 발끝에 검정 모자를 쓸 테고, 에르메스 백은 늘 오렌지색 상자에 보관될 것이며, 버버리 트렌치코트에는 늘 체크 안감이 쓰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 로고들이 패션에서 상징성과 영속성을 띨 수 있을까? 에르메스, 샤넬, 루이 비통, 구찌처럼? 패션 하우스에 새로 임명된 디자이너들이 수정한 로고는 그들의 재임 기간 내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로에베로 간 J.W. 앤더슨, 메종 스키아파렐리로 발탁된 마르코 자니니, 그리고 루이 비통에 새로 올 누군가 역시 기존 상표를 어떻게 쥐고 흔들지에 대한 기대 자체가 이제 패션계에서 새로운 흥미 유발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리저리 비틀고 풍자된 로고나 스웨트 셔츠에 인쇄된 젊은 독립 디자이너들의 브랜드 이름을 향해 그런 기대를 갖는 건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지금의 로고는 그저 가볍게 즐기고 마는 패션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