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페리뇽의 진정한 멋과 맛

탄생과 더불어 샴페인의 새로운 역사를
정립했고,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와인으로 칭송받는
‘신의 물방울’ 돔 페리뇽. 새롭게 단장한 오빌레르
수도원에서 돔 페리뇽의 진정한 맛과 멋을 경험할 수 있었다.

프랑스 샹파뉴에 위치한 샴페인의 성지, 오빌레르 수도원. 에르 페리뇽 신부에 의해 탄생한 돔 페리뇽은 매년 빈티지를 산하지 않는다. 포도 수확이 그저 그런 해에는 생산 자체를 중단한다. 회 동굴로 만들어진 지하 저장 창고에 보관된 돔 페리뇽은 소 6년의 숙성 기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판매를 시작한다.

프랑스를 통틀어 가장 부유하기로 유명한 지역이자 ‘샴페인’이라는 주종을 온 세상에 전파한 샹파뉴(Champagne). 1년 내내 지중해성 기후의 혜택을 받는 프랑스 남쪽 지방에 위치한 이곳은 파리에서 차로 1시간쯤 동북쪽 A4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금세 도착할 수 있다. 듣던 대로 샹파뉴의 공기는 습했고, 비가 부슬부슬 왔으며, 안개 또한 잔뜩 껴 우중충한 날씨였다. 질펀한 석회질 토양의 샹파뉴 지방이 프랑스 최고의 부촌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1668년, 피에르 페리뇽이라는 젊은 수도사가 오빌레르(Hautvillers) 수도원에 부임하면서부터다. 물론 ‘샴페인의 성지’로 불리는 오빌레르 수도원의 역사는 지금부터 650년 전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주교였던 성 니바르(Saint Nivard)가 수도원 자리를 물색하던 중,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신비의 새’에 인도돼 구름과 태양이 교차하는 언덕 위 성스러운 자리를 찾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오빌레르 언덕의 수도원이다. 그 당시 베네딕트 수도회는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통한 성경 공부와 신부 각자가 주어진 전문 분야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30세의 젊은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은 오빌레르 수도원으로 오면서 와인을 관리하게 됐고, 그가 평생을 바쳐 와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초기 와인 산업이 자연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돔 페리뇽의 돔(Dom) 역시 피에르 페리뇽 신부의 업적을 기려 그에게 내려진 존칭으로, 그것 하나만으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와인 관리자였던 그가 샴페인을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수도원 한쪽에 딸린 포도밭에서 포도주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수도원의 자원을 풍족하게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피에르 페리뇽은 어느 날 와인 창고를 순회하던 중 포도주 한 병이 ‘펑’ 하고 터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때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 겨우내 매서운 추위 탓에 발효를 멈춘 와인이 날이 풀리면서 스스로 2차 발효를 시작했고, 병 속 온도가 높아지면서 탄산가스의 압력과 맞물려 결국 유리병이 깨져버린 것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피에르 페리뇽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신이 내린 소명’이라 여기며 발효 연구에 평생을 매달렸고, 47년이란 긴 세월 끝에 샴페인 제조 기법 ‘샹파뉴’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의 예리한 관찰력, 포도주에 대한 열정, 포기를 모르는 근성이 ‘돔 페리뇽’이란 샴페인을 탄생시켰고, 그가 일생을 바쳐 연구한 포도주 정제술과 제조법은 샴페인 제조법의 근간이 되었다.

와인 산업에 미친 그의 업적은 후세에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적포도(피노 누아)로 화이트 와인 제조법을 완성했으며, 서로 다른 종류의 포도를 블렌딩해 최상급 와인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코르크 마개와 이를 고정하는 철실을 고안한 것도 모두 피에르 페리뇽의 업적이다. 물론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를 병목 부분으로 모아 마개를 열때, 그 압력으로 빼내는 ‘리들링 기법’을 개발한 것은 클리코 부인(Veuve Clicquot)의 작품이며, 후대 사람들이 샴페인의 압력을 견딜 만한 단단한 유리병을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샴페인의 대중화는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샴페인이 점차 대중적인 와인으로 자리 잡았을 때 돔 페리뇽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바로 전통 기법으로 만든 최고급 샴페인! 이런 럭셔리 마케팅이야말로 지금까지 돔 페리뇽이 아주 특별한 와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다른 샴페인과 구분되는 돔 페리뇽만의 특별한 점을 알아볼까? 우선 돔 페리뇽은 늘, 항상, 언제나 빈티지 와인이다. 또한 돔 페리뇽은 매년 다른 연도를 새겨놓은 샴페인을 생산하진 않는다. 이상 기온으로 인해 포도 작황이 좋지 않을 때 돔 페리뇽은 아예 그해에는 빈티지를 제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1989년이 그랬다. 또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토대로 섬세하게 블렌딩하는데, 샴페인 지방의 엄선된 포도 농장에서 그해 최고의 포도만을 선별해 만든다. 그래서 돔 페리뇽에 포도를 공급하는 농장들은 그 자체로 품질을 인정받기 때문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2000년대 생산된 빈티지 중 최고의 찬사를 받는 004년산 돔 페리뇽. 고소한 아몬드와 달콤한 코아 향이 점차 흰색 과일 맛으로 변하며 입안에 거움을 선사하고 마무리는 감칠맛이 돈다.

이렇게 양질의 포도주 한 병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6년.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치고 엄청난 정성을 기울여 만들기 때문에 한 병의 돔 페리뇽은 오직 단 한 병의 돔 페리뇽 빈티지가 된다. 1694년 9월, 와인 26병을 판매하면서 피에르 페리뇽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와인 26병’이란 자필 기록을 남겼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샴페인을 사랑했는지는 샴페인을 마시다 동료 수도사에게 걱넨 “형제님, 나는 지금 은하수를 마시고 있어요!”라는 시적 표현을 통해 역력히 드러난다. 수도사로서 비상한 직관력과 상업적 마인드가 있었던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이 있었다. 바로 최고의 와인, 돔 페리뇽이란 고유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후세에 이르러 ‘샴페인’이라는 상표등록으로 실현된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와인 상식 한 가지! 흔히 톡톡 튀는 발포성 와인에 대해 샴페인이라고 부르는 통칭은 잘못된 것이다. 샴페인이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르, 샤르도네 품종의 발포성 와인에 한해서만 그 이름을 쓸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분명 패션계 사람들은 법정 투쟁 끝에 제품의 이름을 바꾸어야만 했던 YSL뷰티의 향수 ‘샴페인’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만큼 ‘샴페인’이라는 명칭은 프랑스 상표법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다.

돔 피에르 페리뇽의 샴페인에 대한 열정을 기리는 곳이 바로 지금의 오빌레르 수도원이다. 그가 완성한 샴페인 한 병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샹파뉴 지역을 일으켜 세웠으며,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의 마음속엔 그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 담겨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샴페인 특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당시 유럽 최강국이었던 프랑스의 왕실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폐쇄된 생활에 익숙해진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은 하인들이 일일이 음료 서비스를 하던 당시의 테이블 매너를 귀찮게만 여겼다. 하인의 도움 없이 간단히 병을 딸 수 있으며, ‘빵’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쏟아져 내리는 샴페인은 축제와 쾌락의 음료로 특권층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와인이었다. 특히 페리뇽 신부의 와인이 최고의 와인으로 등극하는 데 있어 일등 공신은 루이 14세와 15세, 이들의 식탁에 오르면서부터다.

당시 시중에 판매하는 최고급 와인의 네 배에 이르는 높은 가격이 책정되면서 페리뇽 신부의 와인은 당시 포도주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로 인해 샴페인은 루이 15세 시대에 번성한 자유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술이 되는 한편, 특유의 관능적 매력 때문에 이 시대를 ‘향락과 쾌락의 시대’라는 칭호로 불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루이 15세의 후궁으로 왕권을 등에 업고 문화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한 마담 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얼마나 열성적인 샴페인 애호가였는지는 꽤 많은 역사 기록을 통해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그녀는 샴페인을 ‘여자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와인’으로 칭송했다. 2006년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무료한 베르사유 생활에서 탈출해 향락에 빠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넘치는 샴페인 글라스와 오버랩하지 않았나. 그 또한 샴페인이 당시 수많은 왕족과 귀족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예다. 말하자면, 루이 15세 때부터 왕실 납품 업체로 발돋움하며 국가의 모든 혜택과 영광을 누린 단 하나의 와인, 그것이 바로 ‘돔 페리뇽’이다.

그렇다면, 금욕 생활을 하는 수도사가 만든 와인이 당시 욕망과 권력의 대명사였던 베르사유에 의해 전성기를 맞은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례와 성찬식을 집행하던 수도원이란 배경은 샴페인이 쾌락의 이미지에만 빠지지 않고 성스러운 이미지를 갖게 하는 면죄부인 셈이다. 현재까지도 모든 의식이나 축하 세레모니에 빠지지 않고 샴페인이 들어가는 이유 또한 그것이다.

한편 돔 페리뇽이란 이름은 모엣&샹동 메종이 붙였다. 1832년 오빌레르 수도원을 복원하면서 수도사 돔 페리뇽에 대한 경의와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피에르 페리뇽의 이름을 따 샴페인 최고의 명품인 ‘돔 페리뇽’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후 돔 페리뇽은 세계의 왕가와 스타들, 부호들에게 사랑 받는 와인이 되어 스스로 에피소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1952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대관식용 샴페인으로 쓰인 후 각국의 공식 만찬과 행사에서 최고의 예의를 표하는 샴페인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981년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축하 샴페인으로 쓰이며 그 명성이 더 굳건해졌다.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 윈스턴 처칠, 마를렌 디트리히, 마릴린 먼로, 그리고 칼 라거펠트 같은 이도 돔 페리뇽 역사에 일조한 인물들이다. 과연 지구 상의 그 어떤 술이 이토록 우월한 유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대답은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