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블로거 수지 버블의 서울 탐방기

전 세계 패션 도시들을 쉴 틈 없이 돌아다니는 패션 블로거의 눈에 서울은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일까? 통통 튀는 매력을 지녔지만, 패션에서만큼은 엄격한 수지 버블의 솔직한 서울 탐방기.



눈을 살짝 가리는 앞머리와 높이 말아 올린 ‘당고’ 머리, 알록달록한 프린트와 컬러를 마구 조합한 옷차림, 그리고 장난감 같은 독특한 액세서리까지! 거리에 출현했다 하면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들의 플래시 세례를 독차지하는 데다, 패션쇼의 프런트 로에서도 포착되는 이 아가씨는 대체 누구일까? 2006년 3월, 블로그 스‘ 타일 버블(stylebubble.co.uk)’을 시작한 홍콩 출신의 런더너, 수지 로우(Susie Lau)를 소개한다.

패션 블로거 1세대로 불리는 그녀는 패션계의 수많은 인기 블로거들과 다르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긴 하지만, <데이즈드&컨퓨즈드> 디지털 에디터 출신답게 사진보다 글에 중점을 둔다는 것. 흥미로운 패션 행사가 열리는 곳을 찾아 전 세계를 유랑하며 취재한 패션 소식은 물론, 새로 발견한 신인 디자이너나 브랜드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업데이트한다. 그녀의 분석은 블로거 한 사람 의 개인적 의견으로 치부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날카롭게 정곡을 찌른다. 그렇기에 수지의 블로그와 1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susiebubble)에 한번 뜨면 무엇이든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그녀를 수지 로우가 아닌 수지 버블이라 부르기 시작한 이유? 그녀가 자기만의 독특한 ‘버블’ 안에 사는 것 같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그녀만의 버블을 통해 바라본 서울은 어떤 곳일까? 홍콩과 일본을 제집 드나들듯 하지만, 한국은 처음이라는 수지의 2박 3일 서울 나들이에 <보그>가 동행했다. 런던으로 돌아간 그녀가 보내온 서울 이야기!

PM 05:00 GRAND HYATT HOTEL
못다 한 원고 작업 때문에 서울에서의 첫째 날 오후 내내 호텔 안에만 있었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 건 호텔 방의 끝내주는 전망. 서울의 모든 곳을 직접 가볼 순 없지만, 창밖으로 서울이 한눈에 다 보이는 듯했다. 저 멀리 아주 작게나마 N서울타워까지 보였다.

PM 06:00 JARDIN DE CHOUETTE 2014 S/S SHOW
서울 패션 위크는 처음이다. 그래서 기대가 컸는데, 특히 쟈뎅 드 슈에뜨 컬렉션은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애프터눈 티타임’이라는 고전적 주제가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우아하거나 판에 박힌 룩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신선한 재해석! 유일한 단점이라면, 양옆에 한국 셀러브리티들(유아인과 빅토리아)이 앉는 바람에 조금 민망했다는 것. 아마 두 사람은 ‘이 여자는 대체 누구기에 여기에 앉아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하!



PM 08:00 LUCKY CHOUETTE 2014 S/S SHOW
이토록 에너지 넘치는 패션쇼가 또 있을까? 관객 모두가 럭키 슈에뜨 모델들의 발랄한 에너지에 전염된 듯한 느낌. 귀여운 모델들이 워킹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모델들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 역시 무척 신선했다. 대부분의 룩이 내 옷장 아이템과도 잘 어울릴 듯했지만, 특히 마음에 든 것은 메탈릭 팬츠, 카무플라주 패턴 아이템들, 그리고 별이 장식된 세일러 프린트 드레스!

PM 09:00 AFTER PARTY
케이팝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한국의 힙합은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럭키 슈에뜨 쇼가 끝난 뒤 무대를 장악한 빈지노와 도끼의 공연은 최고였다. 나도 모르게 흥에 겨워 파티를 즐길 수밖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부탁해, 최소 50장쯤 잔뜩 취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은 것 같다. 결론은? 서울 사람들(Seoulites)은 파티를 제대로 즐기는 법을 알고 있다!



PM 02:30 VAN
호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승합차를 본 순간 반해버렸다! <보그>를 비롯해 두산매거진 잡지들의 로고와 표지들로 가득 콜라주된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이보다 귀여운 아이디어가 또 있을까? 패션 위크를 위해 잠정적으로 운영하는 패션지 리무진을 본 적은 있지만, 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마 전 세계 통틀어서 유일한 ‘<보그> 밴’이 아닐까? 세계 곳곳의 콘데나스트 지사에서 벤치마킹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PM 03:00 MUE
런던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런던 디자이너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바잉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게다가 전부 내 친구들이다! 이렇게 머나먼 서울의 편집 매장에서 친구가 만든 옷이 걸려 있는 걸 보니 아주 반가웠다. 특히 얼마 전 새로 오픈한 ‘무이 로프트’는 딱 내 취향. 아래층이 하이패션 아이템들로 채워져 있다면, 로프트에는 훨씬 젊고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PM 04:00 10 CORSO COMO SEOUL
신성모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10 꼬르소 꼬모 밀라노보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이패션 디자이너들과 한국 디자이너들을 아우른 브랜드 목록은 물론, 공간을 활용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나이키 에어맥스 골드는 나이키 마니아인 나도 처음 봤는데, 사이즈가 없어 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샤넬과 에르메스 빈티지 백을 리폼하는 디자이너 류은영을 알게 된 건 오늘의 큰 소득!

PM 05:00 BEAKER
매장 인테리어와 상품 디스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보여주는 곳. 아메리칸 프레피 룩이 주를 이루는 아이템 리스트는 별로 새로울 게 없었지만, 이를 진열한 방식이 색달랐다. 모든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가 재활용 된 것이라니! 굳이 패션 쇼핑을 위한 곳이라는 목적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주 들러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다.

PM 05:30 DAILY PROJECT
서울 방문을 앞두고 친구들이 적어준 ‘꼭 방문해야 할 곳 리스트’ 중에 데일리 프로젝트가 있었다. 독특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우선 유럽 디자이너들보다 카이, 피스러브앤언더스탠딩 같은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슈즈 브랜드 페넌트의 독특한 스카프 장식 샌들은 보자마자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의 첫 쇼핑! 이제 이 슈즈를 신으면 보는 사람마다 어디에서 샀는지 물어볼 거다. 곧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하.



PM 06:00 BOY PLUS
만화책에 나온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팝아트적 아이템들이 한가득! 한국 디자이너들은 개성 만점이다.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많아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결국 푸쉬버튼의 골드 팬츠를 구입했다. 평범한 데님 진 위에 골드 장식을 부착해 로봇 다리로도 변신할 수 있다. 가끔 나는 내가 까치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걸 보면 무조건 끌리니까.

PM 07:00 ProduCt Seoul
재능 있는 신인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멀티숍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아주 인상적이다. 프로덕트 서울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들은 아주 ‘웨어러블’한 데다 경쟁적인 가격이 인상적이다. 젊은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으로 가득했는데, 특히 니트 브랜드 미수 아 바흐브가 기억에 남는다.

PM 07:30 MMMG
평소 문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예쁜 문구 제품을 보면 일단 사들인 뒤, 쓰지 않고 놔두기 때문에 서랍에는 온갖 공책과 펜이 가득 쌓여 있다. 하지만 MMMG에서는 또 잔뜩 사고 말았다. 이토록 독특한 서체와 디자인을 보고 지갑을 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같은 건물의 가리모쿠 60 쇼룸에는 가능하다면 런던으로 들고 가고 싶은 가구들로 넘쳐났다. 조만간 새집으로 이사할 계획인데, 이런 가구 매장이 런던에는 없는 사실이 아쉬울 뿐.

PM 08:00 WOO RAE OAK
나는 뭐든 잘 먹는 편이지만, 서울에 와서 먹은 모든 한국 음식들이 정말 맛있었다. 우래옥은 깔끔한 가정식 같은 느낌. 불고기, 육회, 냉면, 김치 등 어느 것 하나 입맛에 맞지 않는 게 없었다. 심지어 달콤한 매실주까지. 이곳의 음식을 맛보고 나니 런던에 있 는 한국 음식점 음식들이 얼마나 형편 없는 맛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AM 11:00 GYEONGBOKGUNG
서울까지 왔는데 고궁에 가보지 않고 돌아갈 순 없었다. 낯간지러운 관광객 ‘인증샷’을 찍기 위해 경복궁만 한 곳이 또 있을까? 하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까지 더해져 모든 게 완벽했다. 경복궁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넓고 웅장했다. 은은한 컬러 조합 역시 아름다웠다. 섬세한 패턴들도 흥미로워서 시간적으로 여유만 있었다면 한국 전통 문양 박물관 같은 곳도 들러 보고 싶었다.

PM 12:00 GWANGJANG MARKET
어느 도시를 가든 가장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 곳은 역시 재래시장 아닐까? 광장시장은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많은 길거리 음식들이란! ‘마약김밥’은 정말 중독될 것 같은 맛이었고, 빈대떡은 런던에서도 먹어본 적 있지만 즉석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걸 보며 먹으니 훨씬 더 맛있었다. 순대와 돼지 껍데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의외로 먹을 만했다. 아무래도 한국 음식이 내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먹자골목을 지나 줄지어 있는 한복 가게를 발견했을 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국 전통 의상이 이토록 고운 옷감들로 만들어지는 줄은 몰랐다. 다음에 서울에 오면 한복을 꼭 한 벌 맞춰갈 예정이다. 아름다운 배색을 보니 한복을 활용해 연출할 수 있는 룩이 수십 가지도 더 떠올랐다.



PM 01:30 DOOTA
서울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친구들이 모두 입을 모아 추천했던 두타! 밤새 쇼핑할 수 있고 실제로 새벽 5시까지 손님이 드나든다는 얘기를 듣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와보니, 한 건물에 이렇게 많은 매장이 모여 있어 구경하다가 밤을 새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신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모인 지하 1층 ‘두체 존(Dooche Zone)’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꽤 괜찮은 아이템들을 너무 저렴하게 팔고 있어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았다. 또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J.W. 앤더슨 혹은 아크네풍의 미니멀한 룩들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제 한국 소녀들은 그런 옷을 사 입는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너무 세련된 취향 아닌가! 만약 내가 열 살 정도 어렸다면 두타에서 정말 정신없이 쇼핑했을 것 같다. 아마 킬로그램 단위로 옷을 싹 쓸어갔을지도!

PM 07:00 POP-UP PARTY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은 골드로 물들었다. <보그> 파티가 열린 멀티숍 마이분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스팬다우 발레의 노래 ‘Gold’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서울의 패션 피플들이 골드로 차려입고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한류와 서울 패션에 대해 내게 의견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럴 때마다 곤란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이제라도 서울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패셔너블한 서울에서의 밤이 저물어갔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