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세련된 ‘스웨터 우먼’

겨울은 스웨터가 갑이다. 올겨울은 길고, 풍성하고, 늘어지는 오버사이즈 스웨터가 슈퍼 갑이다. 몸을 폭 감싸는 커다란 스웨터 한 벌이면 당신은 섹스어필한 ‘스웨터 걸’ 대신 우아하고 세련된 ‘스웨터 우먼’이 될 수 있다.

장신의 늘씬한 지젤 번천도 꼬마로 만들어버리는 캐시미어와 양모 혼방 소재의 오버사이즈 풀오버 스웨터는 샤넬(Chanel), 타이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빈티지 가죽 부츠는 킬리와치(Kiliwatch).

고전 영화 스틸 컷이나 은막의 스타 사진을 모아놓은 아카이브 사이트에서 스‘웨터’를 검색하면 주로 50년대 여배우 사진이 걸려든
다. 긴 가짜 속눈썹을 달고서 한껏 허리를 젖힌 그녀들을 보고 있자면 조금 민망할 정도인데, 이유인즉 스웨터 아래의 가슴(사이즈도 상당하다)이 마치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 1940~50년대엔 이렇게 가슴이 도드라지도록 뾰족한 모양의 브라 위에 꽉 끼는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을 ‘스웨터 걸’이라 불렀다. ‘스웨터 걸’이라는 표현은 40년대 육체파 배우로 이름을 날린 라나 터너가 37년 데뷔작 <그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에서 작고 딱 달라붙는 스웨터를 입고 출연하면서 얻은 별명. 지금 봐도 얇고 연약한 베이지 색 니트의 앞단추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 때문에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2013년 길거리에서 스웨터를 입은 아가씨를 보고 “어이, 스웨터 걸!”이라고 부르는 건 조금 부적절해 보인다. 그 매력적인 아가씨가 입고 있는 스웨터는 몸에 꼭 맞기보다, 품이 넉넉하고 풍성해서 핏이 여유 있게 떨어질 뿐 아니라 소매도 아주 길 테니까 말이다. 이번 시즌의 대표적인 오버사이즈 스웨터들은 다음과 같다. 엄마 스웨터 속에 들어간 일곱 살짜리처럼 손을 완전히 덮고도 늘어질 정도로 긴 소매의 셀린, 남성복에 사용되는 핀스트라이프 패턴을 사용해 무뚝뚝한 인상을 주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길고 헐렁한 터틀넥, 검정 도트가 시퀸처럼 반짝거리는 지방시 니트 스웨터, 워낙 사이즈가 커서 스커트 위로 스웨터 자락이 한 줌은 잡히는 드리스 반 노튼의 케이블 니트까지. 특히 에디 캠벨이 전원풍 꽃무늬 베이비 돌 드레스 위에 불량하게 걸친 생로랑의 별무늬 카디건은 매장에 내놓기 무섭게 팔려 나가 이미 온 · 오프라인을 통틀어 매진 상태에 이르렀을 정도다(케이티 홈즈, 픽시 겔도프, 스카이 페레이라도 샀을 정도).

아늑한 니트 스웨터의 유행이 지난여름 슬릿 스커트만큼이나 시기적으로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니트 스웨터가 어디서 왔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겨울=스웨터’의 공식이 아닌, 패션계를 휩쓸고 있는 스웨트 셔츠 연대기에서 파생됐음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지방시 니트 스웨터의 경우 오버사이즈 실루엣, 머메이드 스커트와 매치된 스타일링 등 같은 시즌 선보인 사이키델릭 밤비 프린트 스웨트 셔츠와 매우 유사한 인상을 준다. 최근 패션계를 완전히 장악한 스웨트 셔츠의 마력은 드레스업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감각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어떤 스타일의 스커트나 팬츠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고민 없이 머리를 쑥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는 것. 올겨울 스웨터는 이러한 유용함의 미덕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수지 멘키스는 이 실용적 아이템의 최신 양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상의는 장르와 성별을 넘나 들고 있다. 헐렁한 형태는 날렵하거나 여성적인 매력으로 충만한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몸매가 드러나도록 꽉 끼게 입었던 50년대 스웨터 걸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현대적인 상의에 매치되는 하의는 여전히 전통적인 디자인을 따른다. 비치는 소재의 긴 풀 스커트, 청키한 스웨터에 발목 길이 바지 차림의 마릴린 먼로를 연상케 하는 시가렛 팬츠 등. 그러나 진짜 차이는 어떠한 소녀적인 감성의 여성성도 부재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터 걸이라기보단 스웨터 여성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지난가을 시즌부터 감지되고 있는 ‘잇 스웨터’의 등장 또한 주목할 만한 현상. 필립 림이 작년 프리폴 컬렉션에 선보인 ‘붐!’과 ‘카-파우’ 그래픽 스웨터와 J.W. 앤더슨의 윈도페인체크 스웨터(탑샵 캡슐 컬렉션에 선보인 유령 무늬 스웨터도 인기)는 패션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아 보고, 사지 못해 안달했던 초히트 아이템이다. 기하학적인 패턴의 스포티한 셀린 풀오버, 이번 시즌 생로랑의 별 카디건 역시 한눈에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영국 <가디언>지의 패션 기자, 제스 카트너 몰리는 지난 패션 위크 때 경험한 스웨터의 높아진 위상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쇼가 시작되기 전, 옆에 앉은 여자가 덥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초대장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문제의 원인은 그녀가 입고 있던 2013 F/W 조나단 선더스 컬렉션의 핑크색 앙고라 브이넥 스웨터. 나는 이 쇼가 오늘의 마지막 쇼임을 상기시키며, 곧 그 니트를 벗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정신 나간 여자처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일 없어요! 이건 전 매장을 통틀어 단 하나 남아 있던 스몰 사이즈 핑크였다고요. 쇼 끝나고도 계속 입고 있을 건데요.”

얼마 전 니트 전문 브랜드 ‘리플레인’을 론칭한 디자이너 김정은은 오버사이즈 스웨터 유행이 지금 주목받는 특정 브랜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니트는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높고, 한 번 사면 오래 입기 때문에 베이식한 디자인의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죠. 치렁치렁하거나 큼지막한 니트웨어가 유행하는 건 지금 대세를 이끄는 브랜드의 주요 아이템이기 때문입니다(셀린이나 생로랑 등). 그러나 스타일을 막론하고 봄, 가을, 겨울 항시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천연 소재의 절대적인 감촉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니트웨어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분명하죠.” 마이테레사닷컴의 바잉 디렉터, 저스틴 오셔에 따르면 많은 여자들이 겨울에 새 코트를 사는 데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다. 그리고 큼지막한 니트웨어는 겨울 아우터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현대적인 새로운 니트와 장식적인 스타일의 스웨터들이 코트와 재킷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니트 웨어가 기성복 브랜드 생산 품목의 20~40%를 차지함에 따라 파리의 소재 박람회 ‘프리미어 비종’은 작년부터 니트웨어 섹션을 새롭게 추가했다.

“작년부터 특별한 니트웨어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지고 있어요. 여자들이 스웨터에 투자하는 경향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조셉 알투자라의 ‘증언’을 뒷받침하듯 뉴욕의 브랜드 전략가, 애니타 보르지코브스카는 조심스레 자신의 스웨터 중독을 고백했다. “전 커다란 니트를 일종의 외투라고 생각해왔죠. 소매에 프린지가 달린 벨스타프 스웨터가 있는데, 그 위에 무언가를 걸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거 하나로도 충분하거든요!” 그녀의 스웨터 중독은 매년 스웨터 구입만을 위해 독립된 예산을 세울 정도다. “룩을 세련되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기능적인 면이 크긴 하죠, 스웨터를 입으면 코트처럼 입었다 벗었다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루 종일 그냥 입고 있으면 돼요. 제겐 그게 훨씬 실용적이랍니다!” 마지막으로 니트 디자이너 김정은이 알려준 니트 선택 팁 한 가지. 볼륨감 있는 몸매를 가리겠다는 의지로 크게 입는 건 금물! 니트에는 치명적인 넓은 어깨, 소위 ‘떡대’가 좋을 경우엔 래글런 소매나 어깨선에서 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소매통이 넓은 디자인을 고르자. 자, 스웨터 사냥할 준비가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