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스웨트 셔츠의 신분 상승기

2016.03.17

by VOGUE

    스웨트 셔츠의 신분 상승기

    스웨트 셔츠의 변신은 무죄! 운동복과 유니폼에서 출발해, 갈수록 패셔너블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스웨트 셔츠의 신분 상승기.

    1 오간자 배색 스웨트 셔츠는 준지(Juun.J). 2 자수와 비즈 장식으로 스타일 변형이 가능한 지퍼 달린 스웨트 셔츠는 3.1 필립 림(3.1 Phillip Lim). 3 블랙 리본 장식 스웨트 셔츠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4 눈동자가 인상적인 스웨트 셔츠는 겐조(Kenzo).

    응답하라 1991! 내게 스웨트 셔츠가 그저 그런 체육복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결정적 장면은 바로 청춘스타 최진실이 91년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입고 있던 로고 자수 장식 빨간색 맨투맨 티가 등장했을 때. 단발머리에 헐렁한 맨투맨 티, 그리고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어찌나 상큼해 보이던지. 다음 날 당장 매장으로 달려가 손에 넣고야 말았다. 패셔니스타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한국의 마돈나, 김완선이 맨투맨 티셔츠에 튤 스커트를 입고 브라운관에서 춤추던 모습은 또 어떻고.

    갑자기 케케묵은 추억의 앨범을 들춰 보는 이유는 요즘 쏟아져 나온 스웨트 셔츠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옷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80년대를 거쳐 90대 초반 이미 대학생이나 20대의 유니폼이자 전유물이 된 핫한 아이템이었으니까. 솔직히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맨투맨 전성시대가 시작될 줄은 누구도 몰랐는데, 이름 또한 맨투맨 티에서 스웨트 셔츠(땀을 흡수하는 도톰한 면 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로 슬쩍 갈아탄 지 오래다.

    알다시피, 패션계에서 맨투맨 티가 스웨트 셔츠로 불리면서 인기에 제대로 불이 붙게 된 계기는 뉴욕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그 스웨트 셔츠를 재해석한 후 각자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더하면서부터. 그들은 스웨트 셔츠의 면 소재에다 네오프렌이나 오간자, 실크, 가죽, 모피를 덧댔고, 재미있는 프린트를 넣거나,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거나, 비즈나 코사지로 화려하게 장식해 몸값을 올렸다. 대표적인 예는 알렉산더 왕을 비롯, 필립 림, 랙앤본, 프로엔자 스쿨러 등 뉴욕 신성들. 겐조의 캐롤과 움베르토 커플,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역시 이 흐름에 진작부터 합류했다.

    특히 눈동자가 커다랗게 수놓인 겐조의 이번 시즌 네오프렌 소재 스웨트 셔츠는 모조품까지 제작될 정도로 빅 히트를 쳤고, 자수는 물론 가죽과 지퍼 장식으로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한 필립 림의 스웨트 셔츠 역시 패피들의 머스트 바이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또 프린트와 펀칭 장식에다 커다란 스팽글로 소매를 장식한 지방시의 그것은 꾸뛰르 스웨트 셔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부엉이 비즈 스웨트 셔츠는 쟈뎅 드 슈에뜨(Jardin de Chouette). 6 눈동자가 인상적인 스웨트 셔츠는 겐조(Kenzo). 7 스팽글 소매 배색 스웨트 셔츠는 지방시(Givenchy).

    스웨트 셔츠 붐은 한국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맹렬히 불붙었다. 5~6년 전부터 올빼미 프린트 맨투맨 티셔츠를 선보여온 쟈뎅 드 슈에뜨의 김재현은 국내에선 독자적으로 스웨트 셔츠의 업그레이드를 정착시켜온 인물. “워낙 맨투맨 티를 좋아했어요. 어릴 적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디즈니랜드 맨투맨 티, 아이비리그 대학 맨투맨 티 같은 외국 문화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호감이죠. 미국의 클래식한 스웨트 셔츠처럼 만들기 위해 소재를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제작하기도 했어요. 촉감도 좋고 오래 입을수록 근사해지는 프렌치 테리 같은 기모나 폴리가 적당히 섞인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죠.”

    스웨트 셔츠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얼마 전 선보인 쟈뎅 드 슈에뜨와 럭키 슈에뜨 내년 봄 시즌 컬렉션에서도 느낄 수 있다. 비즈와 자수 장식은 물론, 산둥 실크 리본 장식이 어깨 위에 장식돼 걸을 때마다 휘날리는 드레시한 모습까지. “노동자들이 입었던 진이 프리미엄 진으로 180도 변신했듯이, 스웨트 셔츠 역시 유니폼이나 운동복 개념에서 탈피, 실크 블라우스 버금가는 하이패션 아이템으로 탈바꿈되는 중이죠. 요즘엔 일상적이면서도 세련된 스웨트 셔츠를 입고 파티에 가는 게 오히려 쿨해 보일 정도라니까요.”

    준지로 파리에서 활동 중인 정욱준에게도 스웨트 셔츠는 특별한 아이템이다. 지난 시즌 발표한 올록볼록 입체적 무늬가 돋보이는 스웨트 셔츠는 파리 <보그> 화보를 장식했고,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해 제작한 네오프렌 소재 스웨트 셔츠는 서울과 파리 모두에서 히트 쳤다. “디자이너의 스웨트 셔츠는 좀더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년 봄 컬렉션을 위해 프린트 대신 지난봄 스웨트 셔츠에서 발전시켜 커다란 숫자가 부각돼 보이게끔 했죠.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소재 발굴과 기술 개발을 통해, 보다 아이디어 있고 품질도 좋은 스웨트 셔츠를 만드는 게 관건이죠.”

    꾸뛰르급으로 진화한 스웨트 셔츠는 당대 유행을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한 벌쯤 마련해둘 것을 권한다.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을 넘나들기에, 동시대적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룩을 연출할 때 그만이니까. 게다가 올겨울은 물론, 내년 봄에도 스웨트 셔츠 유행이 이어질게 분명하니, 평범을 가장한 이 비범한 셔츠에다 낡은 진과 심플한 펌프스만으로도 ‘게임 오버’ 아니겠나!

    에디터
    패션 에디터/ 이지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