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오아시스, 아프리카

패션에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지, 불모의 땅이라 여겨지던 아프리카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메마른 패션계에 시원한 물줄기가 되고 있다면?



어릴 적 할머니가 떠주신 스웨터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죽기보다 입기 싫지만, 엄마한테 야단맞을 게 두려워 억지로 머리를 집어 넣었던 경험 쪽일 것이다. 그때만 해도 백화점 조명 아래 반들거리는, 기계 니트 옷이 훨씬 멋져 보였으니까. 한때 패션이란 추종하는 무리나 유행의 선두 그룹이 입은 것과 똑같은 옷 입기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첫째, 주문 제작처럼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거나 둘째,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사람 손으로 만든 수공예의 가치에 매료되는 추세. 그렇다면 이탈리아 장인처럼 인건비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독창적 스타일과 기술을 보유한 수공업자를 찾아 패션 하우스들이 탐험하고 있는 신대륙은 어디? 바로 아프리카. 쿰바야!

혹시 ‘메이드 인 아프리카’를 ‘메이드 인 이태리’보다 ‘메이드 인 차이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옷과 액세서리의 출신 성분에 깜짝 놀랄 것이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여자들의 팔목을 장식한 ‘챈 루’의 비즈 랩 팔찌는 아카시아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케냐 여자들이 마사이 비즈를 엮어 만든 것. 부족 역사상 마사이 비즈를 가장 많이 주문한 걸로 기록될 디자이너 챈 루는 케냐산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어디서 만들어졌든 중요한 건 모두가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런던의 코스튬 주얼리 ‘벡스 록스’의 알록달록하고 묵직한 체인 팔찌와 반지들 역시 런던 외곽 허름한 공방에서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중 상당수는 설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레베카 매너스가 ‘크레아 아프리카’의 크리스티나 시실리노에게 소개받은 케냐 공방에서 주문 생산한 것. “정말 많이 팔려요. 손으로 정성껏 만든 데다 예쁘잖아요. 소량을 독점 공급할 수 있는 것 역시 매력이죠.” 이후 아프리카에 매료된 매너스는 케냐 라이키피아의 야생동물 보호 지역을 운영하는 사설 단체 ‘에나소이트’와 협업으로 아프리카의 야생미가 물씬 풍기는 주얼리(코끼리 얼굴이 장식된)들을 선보였다.

2008년 맥스 오스터와이스와 에린 비티가 설립한 수노의 첫 컬렉션은 빈티지 캉가(동아프리카의 전통 옷감)로 만든 것이다. “여자들이 아트 페어에 갈 때 입을 만한 옷을 만들고 싶었죠. 딱히 에스닉한 걸 원했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컬렉션을 구상할 때마다 빈티지 케냐 옷감을 참고함에 따라 수노의 스타일은 아프리카 전통 색감과 현란한 프린트에 고정되었다. 덕분에 무채색을 입고 점잔 빼는 데 지친 여자들은 수노의 거침없는 에너지에 반하기 시작했고, 두 디자이너는 2013년 CFDA 스와로브스키 여성복 디자이너 부문 수상자가 됐다.

이렇듯 아프리카를 향한 일련의 움직임은 시장성과 맞물려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시작은 윤리적 패션을 실천하려는 의도였다(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을 뿐). 윤리적 패션 개념이 처음 등장한 2000년대 중반, ‘패션 윤리주의자’들이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제품의 매력과 상관없이 도덕성에 호소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의 강매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흐름을 주도하는 이들은 자선이 아닌, 정당한 거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스터와이스 역시 수노 론칭을 결심한 건 케냐를 돕기 위함이었다. “6년 전 케냐에서 부정선거 폭동이 일어났죠. 형편이 어려워진 현지인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싶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재 수노 미국 본사는 케냐에서 제작되는(인도, 페루와 더불어)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매 시즌 기술력 있는 디자이너를 파견, 현지 재단사들이 고급 소재와 복잡한 디테일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회적 사명 때문에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윤리적 패션의 가장 최신 버전으로 꼽히는 ‘마이예’의 공동 설립자 다니엘 루베츠키의 설명이다. “최소한 계속해서 구입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확실하죠.” 제품력으로 시장에 어필한 마이예 제품들은 바니스 백화점에서 스텔라 맥카트니, 마르니, 프로엔자 스쿨러와 나란히 판매되고 있다. “아주 동시대적인 심미안을 갖고 있어요. 소재는 깔끔하면서 아름답고 디자인은 미니멀하죠. 옷은 물론, 가죽 제품, 주얼리 등 모든 카테고리에서 놀라운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니스의 여성복 수석 부사장 다니엘라 비탈의 말처럼, 마이예의 케냐산 주얼리들은 아주 아름답고 우아하다. 나이로비의 여러 부족들에게 하청 제작하는 물고기 목걸이(마이예의 인기 아이템)의 경우, 손으로 뿔을 깎아 제작됐기에 물고기 펜던트의 꼬리나 몸통 형태, 색감이 전부 조금씩 다르다. 수공업자들이 일일이 조각하고 마무리하는 과정(하나를 완성하는 데 20여 시간이 걸린다)을 동영상으로 보고 나면, 200만원에 이르는 가격 못지않게 제품의 특별함이 와 닿는다. 이든이 디젤과 협업 캡슐 컬렉션으로 론칭한 ‘스튜디오 아프리카’ 역시 아프리카의 의류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그러나 모든 의상은 우간다에서 생산한 최상급 CCI 면으로만 제작된다.

이렇듯 윤리적 책임감에서 시작된 관심은 아프리카 수공업과 전통문화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단계를 거쳐, 아프리카 자체에 대한 관심과 흥미로 이동하는 중이다. “대담하고 독창적인 프린트와 이탤리언 장인 정신, 그리고 동아프리카 여인의 뛰어난 수작업이 뒤섞인 컬러풀한 의상!” 수지 멘키스는 2014 S/S 밀라노 패션위크에 혜성처럼 등장한 디자이너, 스텔라 진의 옷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르마니의 ‘보은’을 입어 아르마니 테아트로에서 데뷔 컬렉션을 치른 그녀는 이탈리아 <보그>가 주최한 2011년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의 우승자. 이탈리아와 아이티 혼혈인 진은 파니에 스커트, 옵티컬 프린트, 헤드스카프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프리카 내륙 국가, 부르키나파소에서 손으로 짠 우븐 스트라이프 캔버스와 전통 왁스 코튼 소재로 호평을 받으며 급부상하고 있다. “정체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작업을 통해 발견했죠. 로마의 성장기와 캐리비안 흑인의 뿌리, 두 차이가 만나는 지점에서 저만의 패션을 찾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접근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설프게 마사이족을 흉내 내는 것보다는 진짜 마사이족의 것을 가져다 쓰는 편이 훨씬 아름답다. 패션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추구해왔으니까(심지어 추한 아름다움의 개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패셔너블한’ 긍정적인 움직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