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둥글게

원, 사다리꼴, 우산, 종 등 연상시키는 것이 많아 별명도 한두 가지가 아닌 그 이름, 풀 스커트. 한때 여성을 향한 억압의 상징이었지만, 이번 시즌 절대 놓칠 수 없는 패션 아이템으로 부활한 풀 스커트의 매력!

화이트 민소매 터틀넥과 미디 스커트는 셀린(Céline), 발목까지 오는 도트 무늬 풀 스커트와 넓은 가죽 벨트, 줄무늬 스타킹은 모두 미우미우(Miu Miu), 소매 끝이 독특한 재킷과골드 스트랩 펌프스는 프라다(Prada).

1987년 크리스찬 라크로와는 거대하게 부풀린 스커트를 입은 모델들을 런웨이 위에 세웠다. 이를 본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은 “지옥의 불과 같은 분노”라고 당시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표현했다. 여성도 턱시도를 입고 멋져 보일 수 있음을 증명한 이브 생
로랑의 시도가 여성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면, 라크로와의 치렁치렁한 스커트들은 코르셋과 철제 크리놀린을 착용하던 시절을 연상시켰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해, 칼 라거펠트는 전형적인 샤넬 재킷 아래 극도로 과장한 풀 스커트를 매치한 룩을 선보였고, 90년대에는 거의 모든 디자이너 컬렉션에 풀 스커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한없이 여성스럽고 있는 대로 부풀린 풀 스커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리 여성들의 마음을 가장 완벽하게 읽는 디자이너 중 하나인 미우치아 프라다를 사로잡은 이번 시즌의 모티브는 바로 50년대! 평소 페미닌한 풀 스커트를 즐겨 입는 그녀는 극도로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풀 스커트를 산뜻한 컬러의 깅엄체크, 세로 스트라이프, 크로커다일 소재 등 다채로운 버전으로 선보였다. 프라다 쇼룸에서 직접 본 스커트의 특징은 커다란 원형 원단 가운데 구멍을 뚫어 허리 부분을 만들었다는 사실. 양옆으로 180도 이상 시원하게 올라가고, 걸을 때마다 너울너울, 찰랑찰랑한 자연스러운 주름이 만들어진 비결이다. 서클 스커트(circle skirt) 혹은 엄브렐러 스커트(umbrella skirt)란 별명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런 특징 때문. 박쥐 날개처럼 한껏 퍼지는 랑방의 블랙 스커트를 떠올려보시라! 오드리 헵번의 전성기를 연상시키긴 하지만, 몸에 딱 붙는 짧은 재킷과 종 모양 스커트를 매치한 디올의 ‘뉴룩’과는 분명 다르다.

21세기 버전 풀 스커트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다채로운 소재. 라프 시몬스의 디올 런웨이에는 허리를 잘록하게 졸라맨 재킷과 무릎길이 풀 스커트를 매치한 고전적인 룩들이 등장했다. 이 옷이 의상 박물관에 전시된 진짜 뉴룩과 달라 보인 이유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메탈릭한 오간자 소재 스커트를 매치했기 때문. 도나 카란과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는 시폰 소재의 특징을 살려 그 어떤 스커트보다 활짝 펼쳐지는 풀 스커트를 선보였고, 소재 믹스 매치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는 가죽과 패딩, 나일론 소재를 교묘하게 패치워크한 풀 스커트를 준비했다. 소재와 함께 또 다른 변화는 다양한 길이! 고전적인 풀 스커트는 모두 무릎까지 오는 길이였지만 지금은 자유롭다. 무릎을 훤히 드러내며 한껏 발랄한 느낌을 살린 스텔라 맥카트니와 니나리치, 종아리를 살짝 스치는 로샤와 프라다, 메리 포핀스가 입을 법한 발목까지 오는 가죽 스커트를 선보인 에르메스와 탑샵 유니크까지.



풀 스커트의 시대가 찾아왔으니 이왕이면 스타일리시하게 즐겨보자. 해답은 역시 런웨이에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니트 스웨터를 활용하는 것! 탑샵 유니크에선 바닥에 끌릴 듯한 풀 스커트에 허리가 살짝 드러날 듯 말 듯한 크롭트 프린트 스웨터를 매치했다. 로샤의 마르코 자니니는 라운드 넥의 도톰한 울 스웨터와 풍성한 풀 스커트, 소녀풍의 로퍼로 더없이 로맨틱한 룩을 완성했다.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 니트 카디건을 매치한 프라다 역시 참고할 만하다. 단, 풀 스커트의 매력을 제대로 뽐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은 바로 벨트! 카디건, 재킷, 베스트 등 어떤 아이템이든 벨트로 꽉 조여 허리를 잘록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핵심.

풀 스커트의 인기는 적어도 내년 봄 시즌까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음산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미드햄 키르초프의 화이트 레이스 스커트, 주머니가 달린 시몬 로샤의 네오프렌 소재 스커트, 파우스토 푸글리시의 정교한 펀칭 장식 스커트 등등. 어디 그뿐이랴! 알렉산더 맥퀸의 팔랑팔랑한 기하학 프린트 스커트들은 SPA브랜드에서 셀 수 없이 많이 복제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광택 있는 원단을 아무렇게나 잘라 허리에 졸라맨 듯, 비대칭적으로 나풀거리는 셀린 풀 스커트까지! 피비 파일로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면 더 이상 흐름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풀 스커트의 진짜 매력을 말해볼까? 자랑할 것이 못 되는 허리선이라도 잘록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줄 뿐 아니라, 빈약한 하체가 콤플렉스인 사람에겐 글래머러스한 굴곡을, 반대로 우람한 하체가 콤플렉스인 사람에게는 비밀을 감출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 한마디로 풀 스커트는 몸에 꼭 끼며 보디라인을 다 드러내는 타이트 스커트보다 훨씬 착한 스커트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쇼핑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