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른 지상 최고의 패션 쇼걸!

시카고, 물랭 루주, 디타 본 티즈, 빅토리아 시크릿, 그리고 루이 비통, 카르멘 카레라…. 대체 무슨 연관을 지닌 나열일까? 잠시 후, 지상 최대의 패션 쇼걸들이 무대에 오른다!



‘쑈’가 시작됐다! 패션 사이클로 볼 때 내년 봄 컬렉션은 이미 끝나지 않았냐고? 1월에 열릴 오뜨 꾸뛰르를 이토록 성급하게 선전하냐고? 지상 최고의 패션 걸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대기실에서 준비 중이다. 화려하고 육감적이며 때로 선정적인 그녀들, 바로 쇼걸! 사실, 패션은 카디건을 어깨에 걸친 음전한 숙녀부터 스커트 수트 차림의 똑 부러진 직장 여성까지 세상의 모든 ‘이브’들을 탐닉해왔다. 최근에 패션이 꽂힌 여인이 쇼걸이다. 아무튼 ‘패션쇼에 서는 아가씨’가 아니라, 여러분이 상상하는 바로 그곳에서 춤추는 여인의 옷차림과 태도에 패션이 홀딱 반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 비통과의 밀월을 청산하는 의미에서 거창하게 기획한 패션쇼 무대에 쇼걸들이 초대됐다. 에바 헤르지고바, 나타샤 폴리, 그리고 케이트 업튼! 육체파 모델이라고 해도 좋을 세 명은 검은 물줄기처럼 하늘로 솟은 거대한 공작 깃털 장식의 모자를 쓴 뒤 검정 셔츠를 가슴 아래 묶어 입었다. 하의? 거의 안 입었다고 봐도 좋다. 몇 군데 비즈 장식만 있는 그물 스타킹을 신었으니까. 그런 뒤 검은 새털로 된 부채를 든 채 유유히 회전목마를 타고 돌았다. 컬렉션에 고스란히 반영된 그들의 쇼걸 복장은 고별 쇼를 위한 장치로 은근히 적절해 보였다. 우울하면서도 화려했으니까. 슬프긴 해도 거창하게 끝내고 싶은 의도가 아닐지. 루이 비통과 16년 인연의 종지부를 찍은 뒤, 마크 제이콥스가 남긴 말. “우리의 내면에 있는 쇼걸을 위하여!”

루이 비통 쇼에 나타난 쇼걸 이미지는 사실 조금만 뒤로 후진한다면 ‘아하!’라고 할 만한 여인이 떠올라 무릎을 칠지 모른다. 미국판 가 올해 ‘셉템버 이슈’를 위해 스티븐 마이젤에게 의뢰해 찍은 영화 같은 화보를 본 적 있으신지. 대규모 화보에서 슈퍼 중의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조연에 불과했다. 에바 롱고리아를 떠올리는 외모의 카르멘 카레라는 실제 쇼걸로서의 특기와 재능을 원 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리하여 카르멘의 쇼걸 복장은 디자이너들이나 스타일리스트들이 아이디어를 충분히 얻을 만하다. 여기서 잠깐 카르멘 카레라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85년생 미국 출신으로 드랙퀸 리얼리티쇼에 참가한 남자였다. 대회에서 우승은 못했지만 결국 그는 성전환 수술을 통해 그녀로 환골탈태!



지난가을 뉴욕 패션 위크에서 열린 몇몇 쇼의 애프터 파티 때 섭외돼 또 한 번의 쇼를 펼친 그녀가 곧 패션 스타가 될지도 모르겠다(한때 루이 비통부터 쇼파드까지 패션계가 디타 본 티즈에게 얼마나 열광했는지 기억해보시라). 무려 2만3,000여 명의 팬들이 그녀를 2013년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서게 해달라고 빅토리아 시크릿 쪽에 청원서를 보냈으니 말이다. 하긴 쇼걸 하면 우리는 패션쇼의 슈퍼볼로 불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쇼를 놓칠 수 없다. 소녀와 팜므 파탈, 소녀와 요부 등등 지상의 모든 여성상이 란제리 바람으로 천사의 날개를 달고 등장해 일순간 패션 유토피아를 실현시키는 바로 그 무대 말이다. 톱 모델들 역시 다른 어느 패션 위크보다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서만큼은 쇼걸로서 자신의 끼를 맘껏 부린다.

쇼걸이 떠오른 디자이너들의 신작은 꽤 있다. 미우미우를 위해 미우치아 프라다는 “쇼걸, 스쿨걸, 그 모든 것들!”이라고 설명하며, 중고 매장에서 발견할 듯한 쇼걸의 비즈와 프린지 브라, 주름 장식의 50년대 댄스 드레스 등을 준비했다(미우치아는 미우미우를 위해 마카오에서 ‘크레이지 호스 파리’ 팀과 행사를 연 적이 있다). 가레스 퓨에게 ‘쇼걸+스쿨걸’은 맹숭맹숭한 결합. 대신 그는 자신의 공격적 기질을 발휘해 쇼걸 이미지에 드랙퀸을 곁들였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쇼걸을 기웃거렸다는 건 꽤 뜻밖이다. MMM은 쇼걸들이 쓰던 빈티지 액세서리 느낌의 의상을 테일러드 의상에 짝지어 크로스오버를 보여줬다. 화끈한 볼거리로 충만한 디스퀘어드2 쇼가 끝난 뒤 스타일닷컴은 이렇게 품평했다. “오늘 쇼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티키 라운지(1950~60년대 유행하던 이국적 분위기의 바)’의 한 장면. 프랭크 시나트라의 작품 속, 스스로를 ‘베가스의 신’이라 여기는 남성 우월주의자들이 자고 싶어 할 아름다운 쇼걸들로 가득했다.”

<원초적 본능>을 만든 폴 버호벤 감독의 95년작 <쇼걸>이 얼마 전 디지털을 통해 재탄생해 무삭제 무암전으로 원본의 노출을 살렸다(라스베이거스에서 암투를 벌이는 쇼걸들 이야기). 아울러 토플리스 쇼를 그대로 살리는 건 물론, 관중의 환호와 음악이 실제 쇼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란다. 물론 그 작업이 패션계의 쇼걸과 별 관련이 없겠지만, 비통이나 마르지엘라, 그리고 패션 아이콘이 될지 모르는 카르멘 카레라를 보면 영화 <쇼걸>을 참고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쇼걸에 너무 도취된 채 노출에 지나치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SBS 새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 1회에서 엄지원이 친구 서영희의 웨딩드레스를 보며 던진 말 한마디를 당신도 듣게 될지 모른다. “주례 선생님이 키가 크면, 위에서 가슴 다 보이겠다. 쇼걸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