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간 한식

파인다이닝에서의 한식 세계화가 명예를 얻는 관직이라면, 캐주얼 다이닝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식 세계화는 만인을 위한 평등한 무상교육이다. 쇼를 앞세운 한식 세계화 사업의 효과가 느린 대신, 한식 세계화 현상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미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10월 발표된 2014년 미슐랭 뉴욕 레드 가이드에는 몇 개 되지도 않는 투스타 레스토랑 중 하나로 낯익은 이름이 올랐다. 2013년 원스타를 받으며 서울을 깜짝 놀라게 한 정식당의 오너 셰프 임정식이 2011년 9월 뉴욕에 오픈한 ‘정식’이다. 파인다이닝의 카테고리로 한식을 끌어들인 그의 전략은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에서도 통했지만, 뉴욕에서까지 승승장구 중이다. 임정식보다 앞서 뉴욕에서 한식으로 이름을 날린 이민 1.5세대 후니 킴(김훈이)의 레스토랑 ‘단지’ 역시 3년째 원스타를 유지하고 있고, 그의 두 번째 레스토랑 ‘한잔’도 올해 미슐랭 원스타를 받았다. 물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의 ‘모모푸쿠 코’도 투스타에 함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런가 하면 대서양 건너 런던에서는 CJ푸드빌이 레오 강과 머리를 맞대고 바&다이닝 컨셉으로 현지화한 ‘비비고’가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됐다. 별은 받지 못했지만 의미는 있다.

지난 정부로부터 현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적극적인 한식 세계화 사업이 그간 비리와 허무맹랑한 전개 방식, 우스꽝스러운 광고 전략으로 돈키호테의 허풍쯤 되는 비웃음거리가 됐다. 빈번한 슬로건인 ‘한식은 몸에 좋은 슬로푸드’ ‘한식은 우수한 음식’이라는 명제는 언뜻 보고 즐기기엔 좋을지 몰라도 한식의 장점을 설명하는 명제가 될 수 없다. 슬로푸드라는 점이 한식의 장점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자연 재료를 정석적인 방법으로 조리하는 슬로푸드가 좀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음식에 접근하는 방법이긴 하나, 한식이 가진 독보적인 자랑거리라기엔 이 지구에 슬로푸드가 너무나 많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먹는 한식은 너무 빠르다. 한식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 또한 공감할 수 없다. 전통적인 한식 개념 자체는 물론 몸에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균적인 동시대 한식이 여전히 건강한가? 저염식, 혹은 무염식의 맹점 또한 줄기차게 지적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나트륨을 평균 4,791mg(2011년 질병관리본부 조사), 그러니까 WHO 권장량의 약 2.4배에 이르는 나트륨을 섭취하게 하는 음식이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건강에 좋다는 의견은 억지다. 무턱대고 한식이 우수하다는 말은 한식의 어디가 어떻게 우수한지를 설득하지 못한다. 차라리 ‘구수한 된장’ ‘고추장의 독특한 매운맛’ ‘숙성이 만들어낸 깊은 감칠맛’이 훨씬 한식의 장점을 잘 설명하는 명제다. 한식 세계화는 한식을 세계에 팔겠다는 세일즈 전략이다. 한식을 내다 팔고는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제대로 모른다. ‘한식이 무엇인가?’ ‘한식의 장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당한 답변을 하기 까지는 한식 세계화를 사업화하기 이전에 해둬야 할 숙제가 더 많을 것이다.

‘로맨틱한 버섯’같이 형이상학적인 광고 카피로 웃음거리가 된 2013년 뉴욕의 ‘한국 음식 박람회’ 등 한식 세계화 사업이 남긴 그동안의 실책에는 분명 반성의 여지가 많지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사례도 분명히 남겼다. 가장 영향력 있는 미식 행사인 ‘마드리드 퓨전’의 주제가 발효 음식으로 선정된 2012년에 주빈국으로 초청받아 간장, 된장, 고추장 등 한식의 핵심 재료들을 한국인 셰프는 물론, 세계적인 스타 셰프가 시연하게 한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성과다. 2013년 마드리드 퓨전에는 샘표식품이 뛰어들어 스페인 스타 셰프, 키케 다코스타에게 장을 활용한 레시피를 시연시키기도 했다. 이런 ‘사업’이 곧바로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겠지만, 그 취지는 천천히 숙성되어 발현되고 있다. 비빔밥이나 불고기, 잡채, 김치 같은 전략 메뉴의 경우도 물론 한식 세계화 사업의 홍보 전략 덕분에 좀더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인식 전환을 목표로 하는 사업일수록 그것이 비즈니스가 됐을 때 좀더 장기적인 안목을 요한다. 조급하면 그르친다.

한식 세계화에 있어 관 주도 사업보다도 먼저 두각을 드러낸 개인들의 성공은 두 갈래 방향에서 나타난다. 앞서 예로 든 미슐랭 뉴욕 레드 가이드에서처럼 파인다이닝에서, 그리고 캐주얼 레스토랑에서다. 두 갈래의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그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파인다이닝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닌 문화로 봐야 하는 광의의 개념이기 때문에, 파인다이닝에서의 세계화는 비약하자면 결국 프렌치, 혹은 오뜨 퀴진의 계보에 어떻게 결합되는가의 문제라 해도 넘치지 않는다. 뉴욕 CIA요리학교를 마치고 미국과 유럽의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셰프 임정식은 이렇게 말한다. “한식은 일상적으로 한국 사람이 먹는 한국 음식이죠. 제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프렌치 퀴진의 조리법이나 재료에 한식을 적극적으로 접목시킨 거예요. 뉴욕 정식의 문어 요리는 두부 질감이에요. 한국에서 잘 삶은 문어를 먹을 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탄력은 느낄 수 없죠.” 파인다이닝에서는 프렌치 퀴진의 완성된 조리법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프레젠테이션 역시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임정식은 초등학생도 간식으로 사 먹는 음식인 닭강정을 파인다이닝으로 흡수시켰어도 그것이 파인다이닝에 속하도록 재창조한다. ‘코리안 프렌치’라는 조어가 성립된다면, 어디까지나 그 조리법이 프렌치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식의 조리법만 아는 요리사는 파인다이닝의 문법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 공부하지 않으면 ‘잘못 조리된’ 요리를 낼 수밖에 없다.

파인다이닝에서의 한식 세계화는 앞서 ‘일식 세계화 사업’을 궤도에 올린 일본의 사례로 설명하면 쉽다. ‘재패니스 프렌치’라는 독보적인 장르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엔 일본의 버블 경제가 단단히 한몫했다. 자국에서 넘쳐나는 재화를 국내외로 펑펑 쓰던 시대에 프렌치, 그러니까 파인다이닝이 발달하면서 미식의 인프라가 발달했다. 외국의 미슐랭 스리스타 레스토랑이 긴자에 분점을 내고, 일본인 요리사들이 프렌치 퀴진을 배우기 위해 서양으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세계화는 이 지점부터가 시작이다. 서양 조리 테크닉의 근간으로 군림하는 프렌치 퀴진과 일본인 사이에 왕성한 크로스오버가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는? 유학을 떠났던 일본인 요리사들은 긴자로 돌아와 재패니스 프렌치 레스토랑을 오픈했으며, 그대로 외국에 자리를 잡은 요리사들은 현지 레스토랑에 일본 음식을 접붙여갔다. 그리고 일본에 파견 나온 서양인 셰프들은 이제 고국에서 일본에서 배워간 재패니스 프렌치를 접목시킨다. 프렌치 코스 중 미소 소스를 발라 구운 아스파라거스 요리가 나와도 놀라지 말아야 할 재패니스 프렌치의 요리 관습이 서양권으로 역수출되어 하나의 조류로 위상을 유지한다.

한식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양상으로 일어난다. 샌프란시스코의 ‘베누’는 일곱 살 때 미국 서부로 이민 간 교포 이동민(코리 리)의 레스토랑이다. 메추리알과 간장으로 만든 피단, 김치, 굴, 삼겹살을 우아하게 쌓아 올린 파인다이닝 문법의 보쌈, 멸치볶음과 감자샐러드 같은 메뉴를 선보인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40분 거리에있는 작은 마을의 레스토랑 ‘레흐뒤땅’은 여섯 살 때 입양된 밀양 출신의 상훈 드장브르의 것이다. 그는 서울 고메, 마드리드 퓨전 등을 통해 경험하고 고국에 대한 향수에 자극을 받아 자습한 한식의 에센스를 적극적으로 음식에 풀어낸다. 두 셰프 모두 미슐랭 투스타를 받았다. 굳이 미슐랭의 권위에 기대지 않더라도, 업스케일된 한식 레스토랑들은 이미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한국의 패션 피플들에게까지 익숙한 이름이 된 파리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 ‘권스 다이닝’은 현지인들이 일부러 예약해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 곳이다. 전통적인 맛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담음새 등 맛 이외의 부분에서 파인다이닝의 원칙을 받아들인 방식이다. 별을 달지는 않았지만 파리 미슐랭에 소개됐다. 비엔나의 ‘김코흐트’, 그러니까 김소희 셰프가 오스트리아에서 성업 중인 레스토랑은 유럽전역에서 유명세를 떨치며 테이크아웃 전문점, 카페로까지 분화됐다. 한식을 베이스로 아시안 퀴진과 프렌치의 방법론까지 모두 크로스오버했다. 미슐랭 스리스타의 피에르 가니에르가 롯데호텔서울 35층에 레스토랑을 연 것 역시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린 재빠른 예다. 이미 유학을 마치고 현지에 정착했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레스토랑을 연 요리사들은 우리에게도 있다. 지구 상 어딘가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김칫국으로 만든 튀일을 낸다 해도 그다지 놀랄 것 없는 시기는 이미 왔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돕지 않았으며, 어딘가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실생활적인 침투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 뉴욕에서 턱수염과 콧수염, 구레나룻을 죄다 덥수룩하게 기른 힙스터 청년들이 반미(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는 모습은 흔하고 핫한 정경이다. 비누 맛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고수가 잔뜩 들어가고 군내처럼 느껴질 수 있는 피시 소스의 향까지도 지방시의 새로운 캐릭터쯤으로 여겨진다(반미 이전에도 그쯤이야 벌써 경험해본 맛이므로). 맨해튼을 나와 일부러 퀸즈 플러싱까지 찾아와 트렌디한 차이니즈 램 누들을 낑낑대는 젓가락질로 먹고, 요리 프로그램과 잡지들은 반미와 차이니즈 램 누들 레시피를 앞다퉈 다뤘다. 간단한 식사, 혹은 출출할 때 찾는 스낵으로 이국적인 요리가 자리 잡는 속도는 파인다이닝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한국 음식도 그런 방식으로 더 활발히 퍼져나간다.

핫도그나 샌드위치에 고추장을 우겨 넣던 무신경한 시도조차 이제 낡았다. 애써 퓨전하지 않고도 한식 그대로의 맛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이민자나 유학생, 관광객들이 향수를 달래려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의 ‘우리집’에 찾아가 먹던 떡볶이는 이제 플랫아이언 디스트릭트의 미슐랭 원스타 캐주얼 레스토랑 ‘한잔’에서 뉴요커들이 먹는다. 일본 각 도시에 한국식 삼겹살 전문점이나 삼계탕집이 얼마나 많으며, 거기에서 일본인들이 몇 번이나 ‘오이시!’ 하고 말하는지 세려는 시도는 이제 무의미할 정도다. 파리에서는 지금 비빔밥이 인기 있는 점심 식사다. ‘메 키첸’은 테이크아웃 비빔밥 전문점이다. 점심시간마다 줄을 서는 것은 고추장 맛이 그리운 한국인 유학생이 아닌 파리의 회사원들. 아예 상호부터 ‘비빔밥’으로 내건 비빔밥 전문 식당도 역시 파리지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 전역에서의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의 열풍은 기막힐 정도다. 프라이드 치킨의 종주국에 새로운 맛을 제안하는 당돌한 한국식 치킨의 여러 가지 레시피가 역으로 전파되고 있다.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은 그들에게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물엿 맛을 가르친다.

파인다이닝에서의 한식 세계화가 사실상 특정 계층만을 겨냥하는 대신 명예를 얻는 관직이라면, 캐주얼 다이닝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식 세계화는 만인을 위한 평등한 무상교육이다. 후자의 한식 세계화 현상을 통해 빠르게, 널리 학습된 고추장, 간장, 된장 맛은 점차 낯선 것에서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맛있는 것으로 인지될 것이다. 한식 세계화의 목적은 아무튼 ‘맛’을 공유하자는 것일 테다. 설득되지 않는 방법으로 성급하게 예산을 펑펑 써가며 무조건 우수한 음식임을 인정받으려 하기 이전에,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나누자는 순진한 의도로 접근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방법이다. 또한 그 맛을 이해시킬 수 있는 그들 음식 언어의 문법도 충분히 알아야 한다. 한식의 현대적인, 그리고 전통적인 맛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좀더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물건을 내다 팔려 할 때 파는 물건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사야 하는지 설득하는 것은 남이 정해줄 일이 아니다. 한식, 그리고 한식 세계화의 주체인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우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