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코리아>와 만난 빅터앤롤프

아이디어와 쇼맨십의 대가, 빅터앤롤프가 서울에 들렀다. 20주년을 맞은 이 견고한 디자인 듀오를 <보그>가
직접 만나, 진지한 얼굴과 내성적인 성향 뒤에 숨은 대범함과 실험 정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 온 빅터앤롤프. 왼쪽이 롤프 스노렌, 오른쪽이 빅터 호스팅이다. 모델 이솜이 입은 스터드 장식 셔츠와 체크 티셔츠, 네오프렌 반바지는 2014년 빅터앤롤프 봄 컬렉션.


“사람들은 20년째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어요. ‘혹시 둘이서 싸우기도 하나요?’라고 말이죠.” 메뉴를 살피던 롤프 스노렌(Rolf Snoeren)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싸우죠. 지금 점심 메뉴를 놓고도 싸우듯 말이에요.”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옆에 앉은 빅터 호스팅(Viktor Horsting)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이에요. 우린 이런 걸로 싸우곤 합니다.” 중세 유럽 종교학자라고 해도 어울릴 듯한 외모의 빅터와 롤프가 농담을 주고받은 이곳은 청담동 멀티숍 마이분과 분더숍이 자리한 청담대로변 건물 1층에 자리한 일식당 호무랑. 그들은 방금 두 건의 인터뷰를 끝내고, 점심 식사를 하려던 참이다. “어제 베이징에서 도착했어요. 그전엔 상하이에 있었죠. 내일이면 또 홍콩으로 떠나야 합니다.” 롤프가 차례대로 자신들의 숨 가쁜 일정을 읊어대자, 빅터가 한마디 보탰다. “우리만의 거대한 아시아 투어인 셈이죠.”

두 사람은 88년 네덜란드 아른험의 예술학교에서 처음 만났고, 이제 지구 반대편에서도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하는 스타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환대를 받은 건 아니다. 93년 프랑스 이에르 페스티벌에서 첫 번째 대상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패션계의 육중한 문을 두드리던 그들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90년대 후반. 거대 패션 그룹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패션 상업화가 판을 치던 당시, 그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쇼맨십, 그리고 비현실적 의상들로 이뤄진 꾸뛰르 컬렉션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빨강 머리 메기 라이저에게 러시아 전통 인형처럼 차례대로 아홉 벌의 옷을 착착 입히는 것으로 쇼를 완성하거나(1999 F/W 꾸뛰르), 셔츠의 깃과 재킷의 라펠 안에 은색 풍선과 반짝이 가루를 가득 채우거나(1998년 F/W 꾸뛰르), 캣워크에 오른 모델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칠해버리거나(2001 F/W). 한마디로 그들은 ‘충격요법’을 통해 패션의 변방을 벗어나 파리의 중심에 안착했다.

“‘스타일 쓰나미’만이 패션에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파도는 아니다.” 2000년 5월호 미국 <보그>는 네덜란드 출신 패션 청년 두 명의 성공기를 이렇게 비유했다. “패션은 자그마한 쇼룸이나 숨겨진 컬렉션 속에서 일어난 잔물결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잔물결을 일으키기 위해 기성복 컬렉션을 시작한 뒤에도 그들의 드라마틱한 쇼맨십은 계속됐다. 토리 아모스가 노래하는 가운데 모델들이 몽유병 환자처럼 머리를 부풀린 채 커다란 베개를 머리에 붙이고 워킹하던 쇼(2005 F/W),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감미로운 목소리 속에서 열린 무도회 패션쇼(2007 S/S), 모델들에게 각각 조명과 사운드 시스템을 지게처럼 지고 워킹하게 한 쇼(2007 F/W), 쇼 순서를 피날레부터 시작해 오프닝 옷으로 끝내고 의상은 위아래를 거꾸로 입힌 쇼(2010 F/W) 등등. 찬사를 받거나 때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그들만의 아이디어는 최적의 마케팅 도구였다. 덕분에 빅터앤롤프란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전 세계 사람들은 나막신 구두와 얼굴보다 커다란 리본이 장식된 드레스를 입지는 못해도, 빅터앤롤프 향수와 안경은 쉽게 살 수 있게 됐다.

전설적인 밴드가 뒤늦게 서울을 찾아오듯, 빅터앤롤프의 디자인 듀오도 20주년을 맞이한 다음에야 서울을 찾았다. “오기 전에 램 쿨하스를 만났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서울이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라고 귀띔하더군요.” 커다란 접시에 놓인 열다섯 가지 생선회를 둘이서 나눠 먹던 중 롤프가 말했다. “여기저기 봐야 할 곳들을 추천해줬어요. 심지어 꽃 시장도 가보라고 하던걸요?” 비록 추천한 그 어느 곳도 둘러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유쾌한 마음으로 서울 일정을 마쳤을 것. 분더숍에서 개최한 파티에는 서울 멋쟁이들이 죄다 모여 이 유명한 패션 듀오의 방문을 축하해줬으니까(근사하게 빼입은 남녀들은 두 남자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설 정도).

파티장으로 향하기 전, 빅터와 롤프는 <보그 코리아> 촬영을 위해 따로 시간을 냈다. 빽빽한 일정으로 인해 지친 모습이 역력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역시 프로다웠다.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롤프는 촬영 소품인 그네 위에 뛰어올라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빅터는 ‘<보그>답게’ 보이기 위해 헤어와 메이크업에 정성을 기울이고 포즈에 각을 세웠다. 스튜디오에 마련된 패션 놀이터에서 촬영을 끝낸 두 사람이 이제 자신들의 20년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보그 코리아>와 마주 앉았다.


교복에서 영감을 얻은 2014년 봄 컬렉션을 입은 모델 곽지영, 이솜과 포즈를 취한 빅터앤롤프. 왼쪽이 유쾌하지만 고집 센 롤프, 오른쪽이 좀더 과묵한 빅터.

VOGUE KOREA(이하 VK)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걸 축하한다. 어떤 식으로 자축하고 싶나?

VIKTOR HORSTING(이하 VH) 12월 초 파리 생토노레 거리에 매장을 연 것이 축하탄이다. 꾸뛰르 쇼도 다시 시작했다. 7월 꾸뛰르 컬렉션을 발표하며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ROLF SNOEREN(이하 RS) 아주 만족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꾸뛰르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단순히 20주년을 축하하는게 아니라, 오뜨 꾸뛰르와 프레타 포르테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VK 왜 구분해야 한다고 판단했나?

VH 가끔 우리가 기성복 컬렉션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애쓴 듯하다. 하지만 이젠 입을 수 있는 옷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가령, 올봄 컬렉션은 여학생들의 교복을 재해석한 옷들이다. 이런 옷들은 이전 컬렉션들보다 훨씬 가벼워진 셈이다. 대신 꾸뛰르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컨셉추얼’한 것들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다.

VK 그래도 오뜨 꾸뛰르 무대를 통해 놀라움을 선사한 것은 매우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RS 우리는 패션의 최정상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VK 꾸뛰르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뿐 아니라, 수준 높은 기술과 완성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들의 아이디어 뒤에 숨어 있는 기술이 놀라웠다.

RS 그래서 우린 암스테르담에 있는 아틀리에 팀이 늘 자랑스럽다. 그들은 우리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현실로 구현한다. 더 이상 모든 옷들을 손수 꿰매진 않지만, 예전에는 우리 몫이었다. 옷본을 뜨는 것부터 실제 바느질까지. 만약 뭔가 만들어내고 싶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그 방법부터 철저히 알아야 한다.

VK 당신들은 패션의 환상을 믿는 사람들이다. 여전히 패션에서 환상이 중요한가?

VH 패션은 늘 환상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패션의 환상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고, 현실을 잊게 한다.

VK 그런 환상을 바탕으로 한 패션은 예술인가?

VH 오뜨 꾸뛰르는 우리에게 있어 하나의 실험실이다. 우리의 컨셉추얼하고, 시적이며, 극적인 그 무엇을 실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곳!

VK 드라마틱한 패션쇼를 선보여온 당신들에게 컨셉과 스타일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RS 둘 다 중요하다. 우리는 뭘 어떻게 선보이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며 컬렉션을 시작한다.

VK 3년 전쯤, <보그>와 만났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플라워 폭탄(Flower Bomb)’ 쇼라고 답했다. 그 대답엔 변함이 없나?

RS 하나를 꼽는 건 늘 어렵다. 다시 생각해보면, 첫 오뜨 꾸뛰르 컬렉션인 바부슈카 컬렉션도 꼽을 수 있다. 당시 우리는 어렸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대담한 발상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플라워 폭탄’ 컬렉션도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VH 나는 옷에 커다랗게 ‘No!’라고 새겼던 블랙 컬렉션.

VK 그 ‘No’란 어떤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나?

VH 패션을 둘러싼, 정신 없이 빠른 속도!

VK 한 해 보통 몇 번의 컬렉션을 준비하나?

VH 이미 내년 가을 남성복컬렉션은 끝났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면 꾸뛰르를 마무리해야 하고, 내년 가을 여성 기성복 컬렉션을 준비한다. 한 해 여덟 개의 컬렉션을 디자인하고, 쇼를 네 번 연다.

VK 프리폴, 리조트, 남성복, 꾸뛰르 등 모든 걸 하는 셈이다. 스케줄이 굉장할 것 같다.

RS 우리가 안 하는 건 없다!

VK ‘No!’라고 외쳤지만, 그 스케줄에 익숙해진 건 아닌가? RS 그렇다. 이미 우리는 2015년을 살고 있다. 점차 그 스케줄에 어떻게 적응할지 알게됐다. 어차피 패션은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그 속에 포함돼 있다. 어쩔 수 없다. 우리 팀은 그 일정에 맞춰 잘 적응하고 있다.

VK 이런 패션 시스템에 변화가 있을까?

VH 몇몇 사람들은 변화를 꿈꾸지만 더 나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더 빨라지지 않을까? 누구도 ‘더 적게’를 외치진 않는다. 모두 ‘더 많이’라고 소리칠 뿐.

VK 이런 꽉 짜인 스케줄 속에서 정기적으로 패션쇼를 선보여야 하니, 요즘 디자이너들은 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패션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VH 캣워크 쇼는 중요하다. 패션쇼야말로 우리 브랜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떤 것도 생생한 경험을 이길 순 없다. 언젠가 우리도 샬롬 할로우와 함께 디지털 패션쇼를 공개한 적이 있다. 독특한 경험이었고, 당시만 해도 새로운 플랫폼을 시험하는 정도였다.

VK 20년이나 이 일을 했지만, 아직도 수많은 고민 속에서 컬렉션을 준비하나?

RS 물론이다. 만약 컬렉션이 아주 개인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면 더 힘들다. 하지만 뭔가 창조한다는 행위 자체는 보람이 넘치는 작업이다. 본질적으로 행복한 일이다.

VK 패션계에 일하는 이들 모두가 힘들어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당신들은 어떻게 휴가를 즐기며 평화를 찾나?

VH 요가와 명상을 통해 바쁜 스케줄로부터 도망친다.

VK 지난해 7월에 다시 시작한 꾸뛰르 쇼에서는 무대 위에서 명상을 하다가 쇼를 시작했다. 디자이너치곤 자주 무대에 등장하는 편이다. 혹시 처음부터 당신들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나?

RS 의도적인 건 아니었다. 우리가 떠올린 퍼포먼스 속에 우리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등장할 뿐이다. 록 스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릴 실제로 만나봐서 알겠지만, 결코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무대에 오르는 걸 즐기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쇼의 컨셉에서 우리가 메시지의 일부로 사용될 수 있다면 기꺼이 무대에 오른다.

VH 바로 그 꾸뛰르 쇼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가 잘못 결정한 거라고 후회했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RS 사실 나는 늘 그 생각뿐이다.

VH 그땐 긴장해서 이어폰으로 들리는 쇼 프로듀서의 숫자 소리에 맞춰 숨을 쉴 정도였다. 하나, 둘, 셋, 넷, 휴~. 하나, 둘, 셋, 넷, 휴~.

VK 무대에서 그렇게 긴장될 땐 무슨 생각을 하나?

VH 아무 생각도 못한다.

RS 그냥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할 뿐이다.

VK 덕분에 패션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얼굴들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당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듯하다.

VH 암스테르담에서도 가끔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RS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주 쿨하기 때문에 대부분 약간 거리를 유지하고 우릴 내버려둔다.

VK 요즘엔 디자이너들이 두 종류로 나뉜다. 완전히 뒤로 숨어 사생활은 공개하지 않는 부류, 그리고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으로 스스로를 널리 알리는 부류.

RS 우리도 모든 것을 한다. 고객은 우리가 직접 소통한다는 사실을 좋아하니까.

VK 방금 막 촬영한 사시미 접시 사진도 곧 인스타그램에 올릴 건가?

RS 1분마다 스마트폰을 체크하고 이것저것 올리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즐긴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는 건 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다.

VK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나?

VH 거의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각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익숙하다.

RS 함께 일하고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홀로 있는 시간이야말로 편하게 쉬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VK 개인적으로 가장 큰 럭셔리는 뭔가?

VH 당신이 원하는 답변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만의 자유 시간.

RS 난 프라이버시!

VK 그렇다면 패션 디자이너로서 럭셔리를 정의한다면?

RS 뚜렷한 절제.

VK 빅터앤롤프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VH 대담한 꾸뛰르, 컨셉추얼한 화려함, 그리고 예상치 못한 우아함.

VK 그러한 발상들 가운데 아직 실현하지 못한 게 있나?

VH 아직 공개하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많다. 앞으로 하나씩 선보일 예정이다. 일단 생토노레 매장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네 개 매장을 더 오픈할 예정이다. 고객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수많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곳. 빅터앤롤프를 처음 만나는 고객들이 단숨에 우리 세계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아이디어 말이다.

VK 3년 전 <보그>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졌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하나?

VH 아, 무슨 이야기를 했나? 우린 패션학과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RS 흠, 아마 “펜 빌릴 수 있어?” 정도가 아니었을까?

VK 그렇다면 최근에 서로에게 못했던 말을 여기서 전한다면?

VH “조만간 우리 함께 술 마시고 취해야 할 것 같은데?”

VK 요즘 행복한가?

RS 행복하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에 감사하고, 미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