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스케이트보드 룩의 화려한 비상

2016.03.17

by VOGUE

    스케이트보드 룩의 화려한 비상

    반항적인 비주류, 하위문화의 상징인 스케이트보드가 주류를 압도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과 쿨한 감성으로 경직된 패션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스케이트보드 룩의 화려한 비상!

    모자는 뉴에라(New Era at Beaker), 목에 두른 스카프는 제인 칼(Jane Carr at Beaker), 스웨트 셔츠는 노스 프로젝트(Norse Project at Beaker), 재킷은 서리얼벗나이스(Surrealbutnice), 허리에 두른 스웨터는 롯 홀론(Lot Holon at Beaker), 체크 셔츠는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Band of Outsiders at Beaker), 반바지는 보이 by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Boy by Band of Outsiders at Beaker), 슈즈는 반스(Vans), 금색 체인에 실을 엮은 팔찌와 크리스털이 박힌 스웨이드 매듭 팔찌, 컬러 스톤 목걸이는 모두 엘리오나(Elyona), 색실 팔찌는 모두 모리(Moree), 오른손 반지는 큐포트(Q-Pot), 스케이트보드는 팀버샵(Timbershop).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의 패션 위크 기간. 한 쇼장에서 다른 쇼장으로 부리나케 뛰어다니는 기자들과 바이어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드레스업 아이템은 하이힐이다. 아니, 여태까진 그랬다. ‘허름’해 보일 정도로 캐주얼한 옷차림도 늘씬하게 잘빠진 하이힐 한 켤레면 금세 ‘드레스 업’한 느낌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2014 봄여름 컬렉션 때 목격한 건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므로) 체제 전복적이고 의미심장한 슬립온 슈즈의 폭발적 증가였다. 한때 유행했던 뉴발란스나 나이키 에어 맥스, 심지어 피에르 하디와 릭 오웬스의 하이톱조차 패션 위크 기간 중에는 소수 특정 그룹에 한정된 ‘마이너’였건만, 슬립온 스케이트 슈즈는 셀린부터 겐조, 지방시, 자라, 갭, 반스에 이르기까지 브랜드를 불문하고 이름처럼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하이패션의 주류로 안착했다. 겸손하다 못해 소박하게 생겨먹은 이 슈즈의 급부상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면, 요즘 패션계가 무엇에 주목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자. 그건 바로 스케이트보드 룩!

    “옷장에 아름다운 알라이야 드레스가 가득 걸려 있지만, 입지 않은 지 꽤 오래됐어요. 큼지막한 바지와 오버사이즈 티셔츠에 매료됐거든요.” 야스민 스웰의 말처럼, 최근 패션계는 편안한 스웨트 셔츠, 후디, 스타디움 재킷, 운동화 같은 스트리트 패션의 게으르고 태평스러운 매력에 중독돼 있다. “처음 회사를 차린 건 그저 우리가 원하는 걸 만들고 싶어서였죠. 맨 처음 만든 게 스케이트 슈즈였어요, 스케이트보더들은 특수한 신발이 필요하거든요. 그다음으로 필요한 건 반바지와 데님 팬츠죠.” 허프(Huf)의 창립자인 키스 허프나겔은 대부분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들이 스케이트보더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2002년 소규모로 창립한 허프는 10년 만에 드레이크 같은 유명 힙합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지명도 높은 스트리트웨어 라벨로 성장했다.

    스케이트보드가 탄생한 계기는 1950~60년대 서퍼들이 파도가 없을 때 땅에서 파도 타는 기분을 즐기기 위해 시작됐다. 그래서 초기에는 보더와 서퍼들의 옷 입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이즈가 큰 밝고 선명한 무늬의 배기 팬츠나 서퍼 트렁크, 과감한 그래픽 티셔츠, 맨발 혹은 테니스 슈즈와 반스 등등. 서퍼와 보더의 옷차림이 구분되기 시작한 건 70년대부터였다. 서퍼들이 네온 컬러를 사용해 한껏 밝고 경쾌하게 꾸미는 반면, 반항적인 비주류 성향이 더욱 짙어진 보더들은 펑크 룩에 매력을 느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으로 입거나, 해골과 뼈 같은 으스스한그래픽 이미지를 선호했다. 90년대에는 힙합 뮤지션들과 함께 포대 자루처럼 큰 오버사이즈 옷을 입기도 했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스케이트보드 패션이란 어떤 옷을 입건 간에 본인이 보드를 탈 때 편하게 느끼면 그만이다. 산타 바바라에 위치한 세계스케이트보드협회 사무국장 짐 피츠 패트릭은 스케이트보딩이 ‘다르게 입기’에 이바지했다고 말한다. “옷 가게에 가서 ‘오, 스케이트보더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런 걸 살 수 있는 게 아니죠. 그건 보더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기에 달린거니까요.”

    오늘날 스케이트보드 패션을 차용하는 디자이너들 역시 스케이트보더들의 옷차림을 구체적으로 참고한다기보다는 그들의 태도나 성향을 표현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셀린의 2011년 봄 광고 캠페인에서 다리아 워보이가 마치 클러치처럼 옆구리에 끼고 있는 건 흰 바퀴가 달린 오렌지색 보드였다. 이 이미지는 피비 파일로가 구축한 느슨하고 자유로우며, 독립적인 셀린 우먼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동시에 하이패션계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의 쿨한 무드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2012년 봄여름 시즌 송치 소재 슬립온을 선보인 셀린과 함께 겐조의 움베르트 레온과 캐롤 림도 “반항적인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의 ‘쿨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반스와 콜라보레이션으로 보드 슈즈를 제작하고 있다(두 브랜드의 보드 슈즈는 매 시즌 최고 인기 아이템).

    토마스 타이트는 2013 봄여름 시즌 스케이트보드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준비하는 동안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구체적 미적 기준이라기보다 감성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그래서 버뮤다 쇼츠를 입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죠. 현장에 감도는 어떤 에너지, 일종의 자유 같은 거예요.” 스텔라 맥카트니는 오버사이즈 남성복 테마의 2013 가을 · 겨울 컬렉션에서 스케이트보드 신발과 보드 데크, ‘skate’ 문구의 그래피티가 프린트된 헐렁한 실크 소재 크롭트 점프수트를 끼워 넣었고,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로 충만한 칵테일 드레스에 송치 소재 슬립온을 매치해 반전을 꾀했다.

    2014 봄여름 시즌에 가까워질수록 하이패션은 보더 룩에 대한 흥미를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쏘니의 세컨드 라벨 M 미쏘니의 2014 리조트 컬렉션 룩북에는 무릎 위까지 오는 산뜻한 스커트 룩(과감한 거리 낙서풍 프린트)을 입은 소녀들이 한 손에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있다. 안젤라 미쏘니는 이 컬렉션을 위해 베니스 해변의 하위문화와 거리미술을 포착했다. “캘리포니아 걸의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태도를 표현했죠!” 로다테의 2014 봄여름 컬렉션에서 아찔한 핫팬츠와 브라톱을 입고 스냅백을 뒤집어쓴 거친 LA 소녀들은 껄렁한 모습으로 런웨이를 걸었고, 습한 정글로 둔갑한 몽클레르 감므 루즈 쇼장은 젊고 건장한 진짜 스케이트보더들이 머리카락을 날리며 보드를 타고서 런웨이를 질주했다.

    그런가 하면 패션 위크 기간 중 런웨이 쇼를 선보인 최초의 ‘진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로 기록될 ‘후드 바이 에어’는 지난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중 최고의 인기 쇼로 등극했다. 실제로 보드 문화에 푹 빠진 스티브앤요니의 경우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보드 걸 테마의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실제 보딩을 할 때 입을 수 있을 만큼 활동적인 동시에 너무 가볍거나 어려 보이지 않도록 로맨틱한 요소를 더했습니다(귀여운 프린트와 레이스, 반짝이는 비즈 장식들). 미니스커트들은 경쾌할 뿐 아니라 아주 섹시해 보이죠.” 모델들은 스티브앤요니가 LA 기반의 유명 롱보드 라벨 래리(Larry), 독일 베를린의 바스틀(Bastl)과 협업으로 제작한 롱보드를 각기 손에 들거나 팔에 낀 채 발랄하게 캣워크를 걸었다. 한마디로, 냉정한 고고함, 혹은 압도적인 화려함으로 일관했던 런웨이에 등장한 젊고 낙천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의 에너지!

    지난 5월 야스민 스웰이 런던 쇼디치의 빈 수영장에 3개월간 오픈했던 70년대 캘리포니아 스케이트보드 문화 컨셉의 팝업 스토어 ‘비치 인 더 이스트’에는 고가의 디자이너 제품과 데님, 스니커즈, 디지털 프린트 티셔츠 같은 스트리트 아이템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하이엔드 라벨로만 이뤄진 셀렉트 숍보다 덜 고급스러울지는 몰라도, 이런 공존은 이곳을 훨씬 활기차고 쿨한 곳으로 만들었다. 재야의 실력파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데 능한 스웰은 이번 팝업 스토어에도 LA 기반의 데님 디자이너 프레데릭 맥스웰 킹거리, 런던의 조 듀크 같은 이의 컬렉션을 입점시켰다.“맥스웰은 생초짜 신인이지만, 그의 자연 염색 기법은 정말 남다르죠.” ‘비치 인 더 이스트’를 위해 검은색과 흰색 블록으로 코팅한 빈티지 리바이스 데님 재킷을 제작한 조 듀크는 캐롤리나 헤레라, 알렉산더 왕, J.W. 앤더슨, 필립 림, 겐조 같은 디자이너들이 컬렉션에 사용할 프린트에 대해 자문을 구할 때 찾는 실력파다.

    이렇듯 패션계는 하이엔드와 로엔드가 서로 교차하며 뒤섞이는 스케이트보드 패션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영국 <보그> 스타일 에디터 엠마 엘윅 베이츠는 ‘독타운(진보적인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발상지) 패션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키니한 턱시도 팬츠나 아주 긴 시퀸 스커트에 슬립온을 매치한다. 반면 야스민 스웰은 넉넉한 스웨트 셔츠와 팬츠를 하이힐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걸 즐긴다. 또 90년대 스트리트웨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DKNY는 2014 봄 광고 캠페인 모델로 카라 델레바인, 조단 던, 에이셉 라키와 함께 스케이트보더 딜런 레이더를 등장시켰다(귀여운 훈남 보더들이 많다는 것 또한 스케이트보드의 매력 중 하나).

    패션은 오랫동안 레이디라이크 룩에 집착해왔고, 지금 보여주는 움직임은 다음 단계로의 이동을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지난 2007년 LA로 이주한 후 도처에 스케이트보더와 서퍼들이 깔린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에디 슬리먼은 파리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LA의 동시대성과 파리의 순수한 전통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고 싶어요. 패션은 두 가지 모두의 영향에 대한 것이니까요.” 당신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보드 룩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느긋하고 편하게 패션을 즐기게 해줄 테니까. 물론 보드를 탈 줄 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HYEA W. KANG, COURTESY PHOTOS
      모델
      이혜정
      스탭
      헤어 / 김승원, 메이크업 / 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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