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업 제품에 혹하는 이유

여러 성분들이 섞일수록 성분은 불안정해지고 효과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용 직전 섞어 사용하는 믹스업 제품들. 연금술사라도 된 듯, 오늘 나만의 신선한 화장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첩보 액션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작지만(보온병 사이즈) 도시 하나 정도는 너끈히 날려버릴 수 있는 초강력 폭탄의 버튼을 악당이 누른다. 따로 나뉘어 있던 액체들이 섞이는 중이고, 주인공은 이를 저지하려고 악당과 난투극을 벌인다. 그들 틈에서 나뒹구는 폭탄을 보며(대개 알루미늄 캔에 형광 녹색 액체가 들어 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내용물이 섞인 이상 폭탄은 무척 불안정해 작은 충격에도 금방 폭발할 것 같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성질이 다른 성분들을 섞으면 좋든 싫든 서로 영향을 미치고 여러 성분이 섞일수록 활성 성분은 불안정해진다. 그래서 성분표가 같다고 해도 이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충돌 없이 섞을 수 있는 가가 관건이고 그 결과 효과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런 위험성을 애초에 차단하고 활성 성분의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품들, 사용 직전 활성 성분을 섞는 제품들이 등장하게 됐다. 다른 성분으로 인해 파괴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안정적인 활성 성분을 곧바로 섞어 신선하게 사용하라는 것.

물론 이런 컨셉의 제품들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라프레리가 처음으로 캐비아 제품을 출시했을 때. 거즈에 캐비아 비즈를 덜어 얼굴에 직접 눌러가며 도포하는 형식이었다. 그렇지만 25년 후 출시된 ‘스킨 캐비아 리퀴드 리프트’는 훨씬 안전하고 손쉽다. 파랗고 반짝이는 통 안에는 얇은 레드 알게막으로 싸인 금색 알갱이가 보인다. 은색 활성화 버튼을 누르면 두 개 방에 각기 따로 들어 있던 세 개 포뮬러(안티링클 펩타이드, 캐비아 추출물, 히알루론산)가 마법처럼 하얗게 섞인다. 단, 활성화시켰다면 6개월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 비오템 ‘스킨어제틱 브로콜리 항산화+ 에센스’도 마찬가지. 브로콜리의 강력한 항산화 능력으로 사용한 다음 날 아침이면 칙칙한 피부 톤이 한층 밝아진 걸 느낄 수 있는 놀라운 에센스. 피로의 흔적을 지워주는 브로콜리 항산화 성분을 개발했지만 성분의 불안정한 특성 때문에 이 추출물을 캡슐에 분리시켰다. 겔랑 ‘아베이 로얄 유쓰 트리트먼트’도 로열젤리 농축액을 최대한 순수한 상태로 제공하기 위해 캡슐에 따로 담았다. 크림에 스패출러로 로열젤리 비즈를 떠 넣고 저으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데 일단 섞었다면 1개월, 길어도 3개월 내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 이런 컨셉의 화장품들은 유효기간이 짧다. 유화제, 방부제 등을 섞지 않는 경우가 많고(섞을수록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섞었을 때 안정성과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분리 포장한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클라란스 ‘더블 세럼’은 아예 두 개의 포뮬러를 따로 펌핑한 후 밖에서 섞이도록 패키지를 개발했다. 수분, 유분 각각의 온전한 파워를 보존하기 위해 각 유리병은 분리된 펌프 용기를 갖고 있고, 펌핑과 동시에 두 개의 포뮬러는 이상적인 비율로 나오며 섞인다. 혹은 유효기간이 짧은 포뮬러를 고려해 포뮬러를 일주일 분량으로 작은 통에 담은 제품들도 있다. 라프레리의 ‘쎌루라 파워 인퓨전’도 일단 활성화된 후 세포 에너자이저 성분의 유효기간은 7~10일. 어떤 보존제나 유화제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타민 C처럼 쉽게 파괴되는 성분을 이용한 화이트닝 화장품 중에도 이런 제품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헤라 ‘화이트 프로그램 바이오제닉 파우더 앰플’은 한 번의 펌핑으로 비타민 C 미백 파우더와 피부 재생 앰플이 섞이도록 디자인됐다.

‘성분은 같지만 가격은 반값’이라며 카피캣임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요즘, 이런 신선함을 추구하는 믹스업 제품들은 ‘같은 성분이라도 같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제품들을 사용할 때는 나름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직접 내 눈앞에서 활성 성분이 섞이는 것을 보는 쾌감 말이다. 마치 연금술사라도 된 듯,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오늘 밤 가장 신선한 나만의 화장품을 만들어보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