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행운의 패션 마스코트

2016.03.17

by VOGUE

    행운의 패션 마스코트

    신년을 맞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잉크를 가득 채운 새 펜, 말끔한 새 다이어리, 그리고 액운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행운의 패션 마스코트!

    아름답고 신선하며 세련된 것만 숭배하는 패션계. 지구 상에서 가장 물질주의적인 세계지만 알고 보면 이 곳만큼 점과 사주, 미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팽배한 곳도 없다. “아마 플라시보 효과겠죠!” 모델 릴리 콜은 얼마 전 아담 존스가 론칭한 신비주의 캐시미어 브랜드 ‘얀라이트 콜렉티브’에 홀딱 반했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어쨌든 특별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 확실하니까요.” 그러나 허무맹랑하기가 허경영 수준인 ‘얀라이트 콜렉티브’의 컨셉은 다음과 같다. 캐시미어와 대나무 외에 24K 금, 4% 탄소로 직조(금은 ‘어메이징’한 치유력의 상징, 탄소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이기 때문)된 니트에는 30명의 숙련된 치유자들이 직접 불어넣은 치유 에너지로 충전돼 있어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 옥장판에 사기 당한 동네 할머니들도 코웃음 칠 얘기지만, 놀랍게도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릴리 콜뿐 아니라 디벤드라 반하트의 여자 친구인 가구 디자이너 애나 크라스, 디자이너 줄리 버호벤 등 벌써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패션계를 스쳐가는 수많은 유행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패션계와 ‘오컬트’는 생각보다 진지하고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지난해 공개된 마드모아젤 샤넬의 캉봉가 파리 아파트에서도 다분히 ‘미신적인’ 행운의 상징들이 발견됐다. 수정의 치유력을 믿었던 그녀는 방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걸고, 번영과 행운의 상징인 개구리, 밀 이삭, 자신의 별자리인 자 장식품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했다. 샤넬 N°5와 관련해선 그녀가 5를 행운의 숫자로 여겨 향수 이름으로 명명했다는 사실 또한 유명하다.

    이런 주술적 믿음은 요즘 디자이너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명한 ‘기’ 치유자 파올로 비사자의 치유 세션에 참여했어요. MA 과정의 일부로 수정 요법을 연구 중이라 수정을 사용한 기 치유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최근 주목받는 레바논 출신 주얼리 디자이너 누르 페어스는 현대판 연금술사로 빙의, 자신의 주얼리에 주술적 힘을 불어넣는다. ‘지오메트리 101 컬렉션’의 기하학적인 펜던트는 마음, 신체, 영혼을 의미하는 고대 상징 중 하나. 중동 지역의 회교 신비주의와 파리의 멋스러움을 결합한 백수정 반지(인체에 좋은 에너지를 발산한다)와 흑단나무 팔찌(나무를 만지며 행운을 비는 프랑스 미신을 응용한 것), 주얼리 잠금장치 안쪽에 작은 사파이어를 촘촘히 박아 만든 ‘이블 아이’ 표식 같은 것들이 누르 페어스를 착용한 이들을 악귀로부터 지켜준다고 그녀는 의미를 부여한다. “우스꽝스럽고 사소한 미신들을 정말 많이 알고 있답니다!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으면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편이죠.”

    마술적 힘의 상징을 패션 아이템에서 발견하는 건 의외로 쉽다. 이번 시즌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이 차용한 전시안 모티브는 보호와 악귀를 쫓아내기 위한 것으로, 다른 디자이너들도 앞다퉈 여러 버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요즘 누구나 팔목에 두른 매듭 팔찌의 경우, 크루치아니C처럼 특별한 의미가 담긴 색실을 엮어 자신만의 부적을 만드는 게 대표적인 방식. 거기에 손바닥 모양 부적인 ‘함사(힘과 행운의 숫자인 5를 뜻한다)’나 ‘위시본(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새의 빗장뼈로, 몸에 지니고 다니면 소원을 이뤄준다)’ 같은 행운의 상징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행운의 참 장식들을 조합해 만든 판도라 팔찌, 행운의 상징들을 펜던트로 만들어 히트 친 에밀리 엘리자베스 주얼리 등도 있다.

    간직하기 용이한 건 주얼리지만, 명상과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발이나 가방에 마술적 이미지를 장식한 아이템도 등장했다. 샬롯 올림피아의 코스믹 컬렉션은 각기 다른 12가지 색과 별자리로 장식된 생‘일’ 플랫 슈즈와 ‘별자리 판도라’ 박스 클러치로 구성되었다. 정성스레 손으로 채색하고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한 이들 제품을 구입하면, 해당 별자리 설명이 담긴 샬롯 올림피아 별자리 책자는 덤이다. “신비주의적인 거라면 뭐든 흥미를 느껴요. 전적으로 점성술에 의지하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별자리 맞히는 건 좋아해요. 꽤 잘 맞히거든요.” 데럴의 별자리는 쌍둥이자리다. “쌍둥이자리의 특징은 활기차고 재치 있는 성격이에요. 바로 내 컬렉션에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죠!” 디자이너 매튜 셰바야르는 델 토로의 2014년 봄 컬렉션에서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행운의 상징인 꿀벌과 제비를 수놓은 핑크색 슬립온 슈즈를 선보였다.

    “미쳐 돌아가는, 통제 불가능한 시스템이 악영향을 미쳤죠. 알렉산더 맥퀸도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아담 존스는 얀라이트 콜렉티브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지나치게 빠르게 회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패션계에 근원적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패션계에 주술적 믿음이 팽배하는 이유는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존스의 말처럼 모든 것이 과부화인 환경에서 평안한 도피처를 찾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비록 허황된 착각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어쨌든 소원을 담은 이들 패션 아이템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 새해 쇼핑 목록에 올릴 만하지 않을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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