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스튜디오에 모인 서울의 젊은 디자이너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서울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치열하게 디자인하는 그들. <보그>가 만난 10팀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관찰하며, 무엇이 필요한가에 끊임없이 반응한 채 서울의 패션 풍경을 만들어간다.

왼쪽부터 여행에 대한 모티브를 프린트로 활용한 서리얼벗나이스 의상과 디자이너 이수형 · 이은경 커플, 강아지 얼굴을 확대한 분홍과 연두색 프린트의 슬릿 스커트와 톱, 은색 오버 스커트는 제이쿠, 월계수와 밧줄 프린트 스프링 코트는 아르케, 그 앞은 디자이너 윤춘호, 오른쪽은 제이쿠 디자이너 최진우와 구연주.

한때 패션이 우아한 살롱에 모여 앉아 고상한 취향과 심도 있는 이념을 나누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모습은 과거 속에 박제된 지 오래다. 21세기 서울 패션 지형도를 설명하는 세 단어는 ‘젊음, 친근함, 동시대성’. 재능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독립 디자이너 무리 중에 <보그>는 비로소 자신만의 공식 컬렉션을 선보이기 시작한 디자이너 10팀을 선별했다. 이들은 멋모르고 덤비는 ‘생초짜’들도 아니지만,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경력을 쌓고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부류도 아니다. <청춘 예찬>의 한 대목처럼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과 같은 그들은 현실과 이상을 저울질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2014년 서울 패션 청춘들과 그들의 시의적절하고도 뚜렷한 색을 지닌 작업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PRINT
모델들이 ‘프린트’를 주제로 묶인 첫 번째 그룹 촬영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스튜디오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준비 중이다. 12시 30분까지 도착 예정인 디자이너들 중 말쑥하게 차려입은 ‘제이쿠’의 최진우와 구연주가 먼저 도착했다(쇼 3일 전에 컬렉션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커플답다). 2010년 영국에서 론칭 후, 2011년부터 국내에서 전개하는 제이쿠는 이번이 네 번째 컬렉션이자, 서울 패션 위크 공식 스케줄에 포함된 첫 런웨이 컬렉션이다. “90년대 문화에 대한 향수가 미디어의 주요 테마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90년대엔 힙합에 완전히 빠져 있었죠. 당시 즐겨 듣던 음반 중에서 펑크 힙합 그룹 울트라마그네틱 엠씨즈의 데뷔 앨범 ‘크리티컬 비트다운’의 커버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최진우의 과거에서 출발한 컬렉션은 힙합 스타일의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남성복을 전공한 두 디자이너의 깔끔한 재단 실력, 신중하게 선택된 컬러(밝은 빨강, 분홍, 노랑)가 조합되어 제이쿠의 정체성인 스트리트 테일러링을 완성했다. “봄 컬렉션에는 늘 독특한 프린트가 등장하죠. 분홍색과 연두색 야자수 잎처럼 보이는 건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 얼굴 프린트를 크게 확대한 거랍니다!” 구연주가 모델이 입은 의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시 후, 윤춘호가 헐레벌떡 스튜디오로 뛰어들어왔다. 손에는 촬영 때 본인이 입을 만한 컬렉션 의상 몇 벌이 들려 있다. 그리스어로 시초, 시작이라는 뜻의 ‘아르케’는 윤춘호가 2010년에 시작한 ‘토’에 이어 두 번째 론칭한 브랜드다. 첫 번째 브랜드가 복고적 성향을 십분 반영했다면 아르케는 보다 대중적 접근을 염두에 뒀다. “누가 봐도 예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거든요. 즉각적으로 ‘예쁘다!’라고 반응할 수 있는 옷이 좋아요.”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한 첫 컬렉션의 주제는 ‘그리스의 하루’. 새벽부터 밤으로 이어지는 촬영 의상 중 아르케의 부드럽고 상큼한 실루엣과 잘 어우러지는 프린트가 눈에 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월계수 잎과 밧줄 모티브입니다. 토가 여자의 몸매를 드러내는 데 반해 아르케는 실루엣이 풍성한 편이죠. 트렌드를 반영하기도 했고요.” 동시대적 여성미를 추구하는 아르케는 같은 시점을 살아가는 여자들과 소통하며 성장 중이다.

‘서리얼벗나이스’의 이은경이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긴 더블브레스트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했다. 니트 모자를 눌러쓴 이수형도 곧 뒤따라 들어왔다. 이 커플의 도회적인 외모는 그들 의상과 싱크로율이 높다. “여행의 흔적! 원색과 그래픽적 디자인은 공항의 비행 스케줄 전광판에 표시되는 도시 이름의 약자, 항공우편 표시, 편지봉투 모양을 응용한 겁니다. 활동이 많은 데이타임용 스포티한 의상(이번 시즌 테마를 잘 살렸다)부터 우아한 저녁을 위한 이브닝웨어(시그니처 실루엣을 담았다)까지 여행지에서의 낮과 밤을 표현했죠.” 뷔스티에 미니 드레스에 종 모양 프린트 스커트를 매치한 룩은 이번 시즌 테마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 브랜드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매 시즌 입체적인 볼륨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시즌에는 네오프렌과 함께 본딩된 스웨트 저지 소재를 추가했어요.” 2011년에 론칭해 빠른 속도로 이름을 알렸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게 전부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린트, 네오프렌 톱으로 브랜드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건 일부일 뿐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서리얼벗나이스의 진짜 모습이 보일 거예요.”

동양적인 감성의 소울팟 스튜디오 의상과 김수진, 리드미컬한 소재 매치와 실루엣 변화를 강조한 제이 어퍼스트로피 의상과 이지선, 숨겨진 레이어를 테마로 한 크레스에딤 드레스와 김홍범, 디자이너 정미선과 가죽으로 여성적인 실루엣을 표현한 노케제이 의상.

AVANT-GARDE
첫 번째 그룹 촬영이 지체되는 사이, 두 번째 아방가르드 그룹 디자이너들이 속속 도착했다(세 팀은 제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다들 부지런한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제이 어퍼스트로피’의 이지선은 지금 임신 8개월의 아름다운 D라인이다. “꿈은 늘 디자이너였어요. 결국 내셔널 브랜드에서 일하던 친언니(출장 중이라 이번 촬영에서 빠졌다)와 의기투합해 브랜드를 론칭했죠.” 제이 어퍼스트로피 컬렉션은 철저히 분업으로 이뤄진다. 시즌 테마를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회의 과정을 거치지만 일단 디자인에 들어가면 이지선은 의상, 이지연은 가방으로 개인 작업에 몰두한다. “힘을 빼고 가볍게 진행한 이번 컬렉션은 칸딘스키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색감이 화려하거나 직선과 곡선이 뒤섞인 복잡한 구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칸딘스키에게서 느껴지는 리듬감을 표현했습니다. 웅장하고 과장된 톱에서 커졌다가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실루엣, 걸을 때마다 찰랑대는 프린지 목걸이의 움직임, 뻣뻣한 가죽과 부드러운 시폰의 차이 등등. 절제된 방식과 전위적 스타일이 결합된 룩은 바로 요즘 여성들을 위한 옷이다. “지선과 지연의 공통 이니셜인 J에 부호를 붙인 브랜드 이름은 ‘우리에 의해 창조되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디자이너 김수진과 동행한 ‘소울팟 스튜디오’의 스태프들 역시 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 가운데 아직 20대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그녀를 찾는 건 쉬웠다.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고 졸업하던 2009년에 데뷔했죠. 저는 패션 브랜드를 파급력이 큰 일종의 미디어로 봅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그녀는 패션계에 결핍된 윤리적 가치, 생각하는 방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모피나 가죽 대신 대체 원단을 개발하고, 인체에 직접 닿는다는 점을 고려해 천연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 “이번 봄 컬렉션은 2012년에 시작한 ‘천천히 흐르는 섬’ 시리즈의 완결판입니다. 12벌을 36가지 버전으로 선보였죠.” 구조적인 것과 전위적인 것, 절제된 감성이 공존하는 룩은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조금씩 변하면서 21세기 라이프 스타일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른 ‘아우라’를 풍기고, 적시 적소에 하나의 룩으로 해결되는, 그러면서도 편안한 룩이죠.” 허리를 끈으로 조절할 수 있는 팬츠,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오버 스커트, 룩을 색다르게 만드는 베스트와 크롭트 톱은 다소 난해하지만 하나를 덜어내거나 더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회색 몽골리안 모피 재킷을 입은 ‘노케제이’ 디자이너 정미선은 그녀의 옷을 입은 여자들이 그렇듯, 다가서기 쉬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2008년 패션 학도 시절 <보그> ‘아트 투 웨어’ 수상 경력도 이제 옛날 이야기다. “그림자 같은 실루엣에 대한 컬렉션이에요. 움직일 때마다 아른거리는 그림자처럼 실루엣이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내죠.” 기존의 비대칭 사선 커팅(여자의 몸을 가늘고 길어 보이게 한다)을 좀더 길게 확장하고, 잘록한 허리선을 강조하기 위해 페플럼 장식을 더한 의상은 섹슈얼한 매력과 함께 흥미로운 실루엣을 완성한다. “애정을 갖고 만든 옷이 빨리 소비된다는 데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오래 입고 입을수록 모습이 바뀌는 가죽을 주로 쓰게 됐어요.” 봄여름 시즌인 만큼 가죽에 우븐 저지, 시스루 소재를 매치하거나 가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코팅한 코튼으로 제작한 의상들은 한결 가볍고 부드럽다. 가죽, 어두운 색감, 금속 디테일은 전투복처럼 견고해 보이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우아함의 표출’이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적인 보호막. 그 안에는 지극히 여린 것이 숨어 있죠. 우리 여자들처럼.”

김홍범은 촬영 당일 새벽까지 ‘크레스에딤’ 컬렉션을 준비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촬영장으로 부리나케 뛰어왔다. 급히 작업하다 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생겨 이제부터 준비를 서두를 작정이다. 그의 다음 컬렉션에 대한 힌트는 2014년 봄 컬렉션에 있다. “3D 패턴으로 작업하는 작가 르네 버호벤과 3D 프린트 건축가 마이클 한스마이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버호벤의 작품 ‘숨겨진 겹(Concealed Layer)’을 컬렉션 제목으로 가져다 썼죠. 겉에서 볼 땐 단순하지만 내부에 복잡한 구조를 감췄거나 소재의 조합 같은 거죠.”

오늘 촬영한 드레스는 컬렉션 테마를 함축한 룩으로,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한 속옷과 겉옷이 한 벌로 결합된 형태(지퍼로 앞이 열린다). 옷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재단과 우주 이미지를 활용한 프린트는 컬렉션 전체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크레스에딤은 ‘점점 세게’라는 뜻의 크레셴도와 ‘점점 여리게’라는 뜻의 디미누엔도를 결합한 이름입니다. 강조할 부분과 축소할 부분을 구분하고, 최대한 간결하게 만들자는 의미예요.” 세련되고 단순하지만, 분위기를 전환하는 흥미로운 절개선이 더해진 크레스에딤 옷에 대한 김홍범의 정의는 단순 명쾌하다. “저는 동시대적인 의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사춘기의 감성을 스쿨 룩으로 표현한 로우클래식 의상, 축구 경기의 심판을 연상케 하는 문수 권의 의상, 청춘의 아픔을 위트 있게 표현한 카이의 반창고 의상, 금색 톱을 입은 카이 디자이너 계한희, 반바지 수트 차림의 권문수, 비옷을 입은 축구장 관중을 연상케 하는 문수 권 의상, 간결한 남색 드레스를 입은 로우클래식의 이명신,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카이 의상,세일러복을 응용한 로우클래식 의상.

CONTEMPORARY
이명신은 대학 신입생처럼 말간 얼굴로 촬영장에 다시 나타났다(2시간 전, 모델이 입을 ‘로우클래식’ 의상을 배달하기 위해 잠시 스튜디오에 들렀다). 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완성도 높은 컬렉션이 됐는지, 콧대 높은 패션계 사람들이 진가를 늦게 알아본 건지는 중요치 않다. 로우클래식은 론칭 5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주제를 잘 보여줄 만한 장소에서 쇼를 하고 싶어 단독 컬렉션을 진행했어요. 헬렌 반 미네의 사진 속 소녀들처럼 ‘사춘기의 불안한 초상’이란 테마에 어울릴 곳으로 학교만 한 곳은 없었죠.” 계동에 있는 중앙고교에서 열린 로우클래식 컬렉션은 보수적이고 단정한 교복 차림의 모범생으로 시작해 폭동을 일으키는 반항아, 시스루 소재 오버사이즈 농구복 등으로 이어졌다. 월계수와 이니셜 L로 디자인한 학교 마크, 책 표지가 그려진 신발 주머니, 실내화 디자인을 응용한 플랫폼 슈즈 등 로우클래식의 학창 시절은 풍성하고 흡입력 있게 전개됐다. “대부분 룩에 셔츠가 매치됐어요. 로우클래식의 기본은 단추를 끝까지 잠근 흰색 칼라의 정갈한 셔츠입니다. 거기에 유머를 더하거나 디자인을 응용한 셔츠 변형 아이템들도 많죠.” 신예 디자이너 라벨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브랜드.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여자들도 있는 만큼 젊은 여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룩을 제안하는 게 관건이다.

‘카이’ 혹은 계한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뇌가 반응하는 연관 검색어가 지드래곤이나 이수혁이라면 이 독특한 디자이너에 대해 잘못된 정보와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크다. 촬영 시간이 늦어져 웃지 않는 그녀를 보고 화가 난 거라고 짐작하는 것과 비슷한 오해일 것이다. “’아픈 청춘을 위한 힐링’은 학원 폭력과 청년 실업을 다룬 2013년 컬렉션의 연장입니다. 반창고, 깁스, 코르셋 모티브는 그런 것들로 내면의 고통이나 불안정한 심리를 치료할 수 없다는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죠.” 사탕 껍질처럼 반짝이는 반창고와 섹시한 슬릿(성형수술의 칼자국을 상징한다)을 본 뒤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금물. 사회적 메시지를 위트 있게 풀어내는 블랙코미디적인 이 브랜드에 접근할 땐 종잡을 수 없는 젊은 영혼을 대하듯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2011년도 졸업 컬렉션에서 ‘오브제’ 같은 룩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경력이 늘수록 접근 가능한 의상, 색깔이 뚜렷한 디자인 사이를 조율하기 위해 고민하게 돼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에 대한 인식도 아주 쿨해졌으니까요.” 언제까지나 젊은 세대를 대변할 것 같지만, 카이 컬렉션엔 그녀 자신이 투영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디자인도 달라질 거라는 그녀. 물론 지금으로선 그런 걱정은 기우다.

권문수는 선명한 빨간색 파카 안에 ‘문수 권’의 지난가을 컬렉션 의상인 빨간색과 남색 체크무늬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있다. 지난 컬렉션 주제였던 키덜트에 이어 2014년 봄 컬렉션은 축구에 대한 것. “지난 시즌 ‘제너레이션 넥스트’로 서울 컬렉션에 데뷔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어요. 일 외에 여가 시간에 하는 거라곤 축구 게임인 ‘위닝 일레븐’과 주말 등산뿐이더군요. 외부에서 영감을 찾는 대신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편이라 고민 끝에 축구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온갖 협찬사 로고가 난무하는 현대식 유니폼 대신, 무릎길이 반바지에 장식이라곤 흑백 줄무늬가 전부인 1920~30년대의 깔끔하고 단순한 축구복을 떠올렸고, ‘문수 권 축구장’에는 20년대 복식을 참고한 반바지 수트 차림의 심판, 운동복을 입은 선수, 정장을 입은 감독, 티셔츠를 머리 뒤로 넘겨 입은 훌리건과 관중이 등장했다. 다채로운 색감 덕에 화려해 보이지만, 의상들의 구조는 간결하다. “패션을 잘 몰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 제 옷은 옷장을 열었을 때 즉각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옷과 유연하게 융화되는 쪽에 가깝죠.” 브랜드를 드러내는 표식은 안감이 보이도록 등에 뒤트임이 있거나 앞가슴 포켓이 두 겹(포켓 안에 더 작은 포켓이 있다)으로 디자인된 디테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상을 만드는 게 목적이죠. 가령 여자 친구에게 ‘멋지다’란 칭찬을 듣거나, 면접을 볼 때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옷처럼요.” 그가 원하는 건 자신이 하고 싶은 건 사람들이 뭘 원하는 지 알고, 대중들에게 외면받지 않도록 두세 시즌 정도만 앞선 패션을 제안하는 것. 물론 그 점은 다른 아홉 팀도 다르지 않다. 다들 바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