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인 모피와 가죽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지금은 패션이란 이름 아래 희생되고 있는 동물들. 하지만 패션계 한쪽에선 보다 윤리적인 방법으로 모피와 가죽을 얻고, 인조모피와 인조가죽 등 대체품 개발에 힘쓰는 이들이 있다.

지그재그 패턴의 인조모피 재킷은 푸쉬버튼(Pushbutton), 네오프렌 톱은 커밍스텝(Coming Step), 인조가죽 팬츠는 맥큐(McQ), 체인 장식 목걸이는 샤넬(Chanel), 양손에 한 실버 반지는 모두 엠주(Mzuu).

인류에게 동물의 털과 가죽은 없어서는 안 될 생존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 본능적이고 절대적인 목적은 패션에 의해 인위적이고 선택적인 목적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피가 호황이던 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피 반대 운동은 그 후 모피가 패션 소재로 크게 각광받으면서 후퇴하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SNS를 통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실 매년 펜디나 장 폴 고티에, 프라다 등 모피를 많이 사용하는 패션 하우스는 가을 · 겨울 시즌 패션 위크 기간만 되면 페타(PETA)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표적이 되고 있다 해서 이들 패션 브랜드에서 모피를 포기할 일은 앞으로도 없어 보인다. 모피와 가죽을 능가하는 하이패션 소재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더해져 SPA 브랜드까지 동물들의 털과 가죽을 사용한 헐값의 옷들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 부유층의 관심사일 뿐, 대다수 평범한 여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패션계에 의한 동물들의 희생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세이블과 밍크, 폭스, 라쿤 등에나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겨울철만 되면 으레 꺼내 입던 보송보송한 스웨터들도 그럴 수 있다. 최근 앙고라 니트가 화두에 올랐다. 살아 있는 앙고라토끼의 털을 손으로 마구 뽑는 잔혹한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동물 학대 방지에 대한 인간들의 무관심과 무지를 일깨워줬다. 이에 즉각 반응한 H&M은 앞으로 앙고라 털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윤리적으로 채취한 앙고라 털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끔찍한 동영상을 보면 앙고라에 대한 거부반응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래서 H&M은 앙고라 제품 생산을 즉시 중단했고, 고객이 몇 년 전 구입한 제품이라도 반품을 요구한다면 그대로 환불 처리해주고 있습니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약품 사용 금지와 정기적인 감사를 통해 비윤리적 과정으로 채집한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H&M이 동물 보호에 이처럼 큰 목소리를 내자, 국내 베이직하우스도 동물자유연대와 협약해 모피 반대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겨울 아우터에 빼놓을 수 없는 모피 트리밍을 대신해 라쿤 털과 가장 흡사한 섬유를 개발했습니다.” 베이직하우스의 마케팅 담당은 가죽 대신 인조가죽을 사용하고 있으며, 동물 학대로 이어지는 소재 사용을 대체할 신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2011년 론칭한 백 브랜드, 그리니치는 천연 가죽을 일절 쓰지 않고 가죽의 조직과 기능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PU(폴리우레탄) 가죽을 사용해 백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니치의 디자이너 김성준은 “PU 가죽은 색상이 다양하고 방수성이 좋으며 때가 잘 묻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인조가죽의 장점을 강조했다. 또 ‘LUV Me’ 캠페인(판매 수익금의 일정액으로 유기 동물을 위한 사료 지원)도 전개하고 있다. 뉴욕의 액세서리 브랜드, 프렌즈 뉴욕은 100% 아크릴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운 캐시미어 촉감을 재현했다. “이제 더 이상 양의 옷을 훔치지 않고도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을 보낼 수 있습니다” 프렌즈의 CEO 키어 딜런은 말했다. 이번 시즌 세 가지 컬러로 선보인 프렌즈 뉴욕의 아크릴 머플러는 캐시미어와 달리 물세탁도 가능하다.

한편 동물 털을 사용하되 잔혹 행위와는 거리가 먼, 보다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방법도 있다. 로로 피아나는 안데스 산에 서식하는 비쿠냐의 털을 채취하기 위해 나무 덩굴을 이용한다. 초원에서 자유롭게 방목하는 비쿠냐들이 나무 덩굴을 지나가면서 나뭇가지에 흘리거나 묻힌 털만을 사용하는 것. 아주 극소량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비쿠냐 스웨터 가격은 꽤 비싸다. 오리와 거위의 깃털 없인 존재할 수 없는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역시 윤리적인 깃털 사용을 위해 꼼꼼한 자체 검열을 한다. 대표적인 예는 캐나다 구스. 거위나 오리 깃털을 살아 있는 채로 뽑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또 캐나다 모피 자치기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멸종 위기 동물을 제외시켰으며, 역시 철저한 통제 아래 선별된 코요테 모피만 사용한다. 그렇다면 모피를 안 쓸 수는 없을까? “극한의 추위에서 모피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입니다. 캐나다 구스가 인조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극한의 추위에서 코요테 모피 같은 뛰어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조모피는 인도주의 패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겠지만,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몸을 보호해주지는 못하니까요.” 캐나다 구스의 홍보 담당자는 인도주의를 외치면서도 모피를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의식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요건 중 의복이 첫 번째를 차지한다. 그 카테고리 안에서 모피는 중심에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고, ‘패션과 트렌드’라는 이름 아래 즐거움까지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생존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면서까지 모피 옷을 입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혹자는 고기를 먹고 가죽 신발을 신으면서 동물 보호를 부르짖는 것이 과연 일관성 있는 행동이냐며 아이러니를 주장하겠지만, 아이러니 속에서도 인도주의적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어서 가해자로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다지만, 적어도 동물을 학대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만은 당장 멈춰야 하지 않을까? 패션계가 나이 많은 여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모피를 극적으로 소생시켜, 결국 지금과 같은 모피 천국, 모피 춘추전국시대를 창조해냈다면, 그걸 거둬들여야 하는 것도 패션계의 몫이다. 지금이야말로 동물의 털과 가죽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 개발, 보다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방법 마련에 패션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