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의 연기 인생

지난 6년간 연기자 대신 경영자로 살아온 케이트 블란쳇이 돌아왔다. <블루 재스민>에서의 완벽한 연기, 그리고 조지 클루니의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을 통해 그녀는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웠다. 그녀의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BEYOND MEASURE“케이트는 위대한 여배우들 중 한 명입니다.” 의 감독 우디 앨런이 말한다.자수가 놓인 황금색 실크 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귀고리는 베르두라(Verdura), 18K 반지, 팔찌와 다이아몬드 장식 시계는 모두 까르띠에(Cartier).

케이트 블란쳇과 시간과의 관계는 기묘하다. 예를 들어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나이를 모른다. “그것을 분석하려면 제 나이와 비교해야 계산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제 뇌는 그런 정보는 계산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한번은 자동 응답기-안에 아직 작은 카세트테이프가 들어 있던 시절-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것을 처음 구입한 해가 88년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최근이라고요?”

그러므로 10월 말 어느 아늑한 밤에 내가 런던 남동쪽에 있는 한 극장에서 블란쳇을 만나기로 했을 때, 그녀가 지각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런던 브리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는 편안하고 수수한 장소 중 하나로, 미니애폴리스나 암스테르담에 있을 법한 펍 겸 극장이다. 나는 너무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로비 바에서 음료를 한 잔 사 들고 천천히 걸으며 옛날 포스터들을 구경했다. 로비는 입장하길 기다리는 행복한 티켓 소지자들로 금방 꽉 찼다. 그리고 내가 “늦게 도착한 사람들 입장 금지. 어떤 예외도 없음”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케이트예요.” 그녀는 그 걸걸한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라도 되는 양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사인 피터가 “귀신처럼 요리조리 운전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25분 후에나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15분 후에 커튼이 올라간다고 하자 그녀는 “몇 주 동안 이 연극을 보려고 애썼어요”라고 말했다. “제 삶이 늘 이렇다니까요.” 잠시 침묵. “늦게 온 사람들을 들여보내주나요?” 나는 그녀에게 안내판에 적힌 것을 읽어주었다. “맙소사. 인터미션은 있어요?” 네. “그 사람들 좀 인색하네요.”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다고 했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극장 측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살아 있는 연극배우 중 한 사람인 케이트 블란쳇이 늦게 온다고 말할까? 규칙을 그저 약간 바꾸지 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 출연진들이 실망하진 않을까? 딱 이번 한 번만? 한편 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고, 본인이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블란쳇이라면 자신을 위해 막을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건 꿈도 꾸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 후에 나는 매표소로 가서 젊고 수줍은 여성에게 지각한 나의 데이트 상대가 케이트라고 말했다. 그녀는 눈이 커지며 허둥지둥 뛰어갔다. 몇 초 후에 헤드셋을 한 의욕적인 여성 무대감독이 내 앞에 나타났다. “몇 분이나 늦는 거죠?” 5분이요, 라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가능한 한 오래 커튼을 잡고 있을게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10분 후에 블란쳇이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올라왔다. 우리는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급하게 우리 자리로 떠밀려 갔다. 조명이 꺼지자 그녀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힘을 주더니 “고수네요”라고 말했다.

휴! 무대와 영화에서 흠잡을 데 없는-다시 말해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본능적 감각으로 유명한 배우이지만 오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블루 재스민>에서 그녀를 감독한 우디 앨런은 “그녀는 메릴 스트립,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모린 스태플턴 같은 세계적인 위대한 여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녀는 위대한 배우들 중 한 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건망증이 심하고, 뒤죽박죽인 블란쳇의 록 스타 같은 매력이었다. 염색한 헝클어진 금발에 디킨스풍의 랙앤본 수트과 밝은 오렌지색 브이넥을 입고 여기에 랙앤본 남성용 옥스퍼드화를 매치한 그녀는 애쓴 듯하지 않으면서도 모던하고 멋져 보였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녀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1막이 시작되고 약 15분이 지났을 때 시종일관 시끄럽고 공격적이던 연극이 일순 조용해졌다. 바로 그 때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블란쳇이 그것을 떨어뜨렸다. 탁 탁 탁… 반지는 계단을 계속 굴러가다가 무대 가까운 줄에 앉은 누군가의 좌석 밑에 멈췄다. 블란쳇은 숨을 멈추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한동안 굳어 있었다. 마침내 영원 같은 1시간 후에야 1막이 끝났다. 조명이 켜지자 블란쳇은 자기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여성에게 말했다. “그건 제 약혼반지였어요. 그것을 잃어버린 게 이번이 세 번째예요. 저는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답니다.”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창피하고 뭐고 없어요. 손과 무릎으로 기어갈 거예요.” 그녀는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반지 찾기에 동참하자 신경질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마침내 은발의 중년 신사가 몇 줄 아래 좌석 밑에서 반지를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그를 포옹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며, 누누이 사과했다. 그런 다음 레드 와인을 마시러 로비에 있는 바로 걸어갔다. 우리가 얘기를 나누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녀의 신발 한쪽이 풀린 걸 알아챘다. 그녀가 그것을 묶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머리를 벽에 부딪쳤고 와인을 쏟았다. 이런 불안하고 이상야릇한 에너지 속에는 코믹한 채플린적인 요소가 있었다. 나는 블란쳇이 어떤 역할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을 때는 말 그대로 삶 속에 스스로를 내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들로네(Delaunay)’는 금요일 밤 10시 반이면 절정에 달하는 런던의 새로운 핫한 장소다. 블란쳇과 내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지배인은 점잖은 집사 모드에서 벗어났다. “맙소사, 얼마 전에 <블루 재스민> 봤어요. 연기가 정말 멋졌습니다.” 블란쳇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칭찬에 감사를 표했다. 우리가 칸막이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가식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여인인 재스민-매도프(다단계 금융 사기 사건의 주범) 같은 인물과의 결혼은 결국 그녀를 감정적, 재정적으로 완전히 망가뜨린다-이라는 놀라운 인물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데이비드 레터맨의 표현처럼 재스민은 “90분 동안 관객을 완전히 장악한” 캐릭터다. 나는 그녀에게 몇 년 동안 수많은 재스민들에 대한 기사를 써 왔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요. 아주 얇은 가면과 그 아래 숨어 있는 본래의 자신 사이에 균열이 있는 사람. 그 안에는 당신이 실제로 알게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 침묵. “그들이 허락한다면.” 또 다른 침묵. “혹은 그들이 신경쇠약으로 고통받다가 실제로 당신을 필요로 한다면 말이에요.” 그녀는 웃었다. “그러나 재스민은 부유하게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녀는 몸매가 아주 멋지지요. 그녀는 자신이 말하는 방식, 움직이는 방식을 꾸며냅니다. 그것은 모두 교묘한 속임수예요.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오, 그녀가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녀를 이해해요.’ 저는 그것이 간접적인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모두 속지 않나요? 분명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나는 깜짝 놀라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요? 저는 아닌데요.”

내가 우디 앨런에게 그 영화를 찍는 동안 블란쳇의 연기가 몇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연기라는 걸 알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대본이 매일 그런 식으로 연기되는 걸 보는 건 아주 짜릿했어요. 매일 그날 찍은 분량을 보며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주 황홀했어요.” 앨런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자신의 대본과 캐스팅에 부분적으로 영감을 주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2009년 뉴욕에서 블란쳇이 블랑쉬 뒤부와를 연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녀의 연기는 비평가들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판타지라는 섬세한 날개를 달고 극적으로 비상한다”라고 벤 브랜틀리는 <뉴욕타임스>에 썼다. 앨런은 “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한 그녀를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아내로부터 어떤 여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이미 여러 번 얘기했어요. 그 얘기가 영화 줄거리와 아주 비슷합니다.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내게 영감을 주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우디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정말 흥미로워요. 그리고 아주 영리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결말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리고 우디가 쓰는 각본은 아주 도회적인 현재 세계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실제로 전차에서 찍은 장면이 있었으니까요. 나중에 편집되었지만요.” 그녀는 와인 한 잔을 주문했고, 70년대 후반 데이비드 헤어가 쓴 희곡 <플렌티(Plenty)>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99년 그녀는 이 연극에서 자기 파괴적인 전직 비밀 첩보원 수전 트라헤른을 연기했다. “데이비드 헤어는 제게 말했어요. ‘그녀는 영국인이에요. 영국에서 그녀는 명예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맙소사, 그런 건 연기할 수 없어.’ 그리고 어떤 면에서 블랑쉬 뒤부와는 미국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연기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인의 마음속에서 그냥 본능적으로 이해되는 무언가가 있어요. 즉, 이 나라는 판타지를 성공적으로 퍼뜨립니다. 그렇다면 서사적인 몽상가, 예를 들어 재스민 같은? 앞으로의 전망을 면밀히 검토하는…?”

THE VIEW FROM HERE “무척 신나는 일을 앞두고 있는 기분이들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저지 소재 톱은 모두 니나 리치(Nina Ricci), 크리스털 귀고리는 쓰리 그레이스(Three Graces).

블란쳇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연극과 영화가 그녀의 작품과 삶에서 아주 매끄럽게 뒤얽혀 있는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이 두 가지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둘을 완벽하게 탐구하지 않고는 여배우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예를 들어 우리가 오늘 밤 연극-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 때문에 병실에 모인 비열한 가족에 관한 코미디인 <라이온스(The Lyons)>-을 보러 간 이유는 블란쳇이 HBO를 위해 <캔서 빅슨(Cancer Vixen)>-<뉴요커>지의 카투니스트인 마리사 아코첼라 마르케토의 베스트셀러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의 제작과 출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몇 가지 정찰을 하고 싶었다. 블란쳇은 줄리 델피와 각본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라이온스>를 쓴 닉 실버에 대해 수다를 떨게 됐다. “그의 희곡을 몇 편 읽어봤지만 실제로 공연을 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무대에서 어떻게 들리고 느껴지는지 알고 싶었습니다”라고 블란쳇은 말했다.

남편 앤드류 업톤과 시드니 극단을 공동으로 운영하다 6년 만에 손을 뗀-남편은 계속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블란쳇은 현재의 런던이라는 “나락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기회가 그리웠다고 말한다. “보세요. 그건 아주 공적인 직업입니다. 그곳은 주립 극장이에요. 정부로부터 운영비의 9%만 지원받지만 예술에 대한 국가적인 대화에 참여해야 하죠. 물론 대화 내용들은 놀라울 정도로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게 지겨워집니다.”

블란쳇은 분명 자신의 목소리를 당신의 머릿속에 심어놓는 재주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캐서린 헵번 역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영화를 오래 쉬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블루 재스민>을 찍기 전까지 블란쳇은 5년 동안 주인공 역을 맡지 않았다. “여배우 인생에선 25~30년과 맞먹는 시간이지요”라고 그녀는 농담을 했다. 그녀는 시드니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우리 대부분이 보지 못한 놀라운 연극에 출연하며 바쁘게 지냈다(당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장 주네의 <하녀들(The Maids)>에 출연한 그녀를 검색해보라!).

그러나 그녀는 곧 맹렬한 속도로 스크린에 복귀할 예정이다. 우리는 블란쳇이 보통 때 가는 조용한 장소 대신 들로네이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곳의 3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분위기가 2월에 개봉할 조지 클루니 감독의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의 정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2차 대전 중 나치가 훔쳐간 예술 작품의 행방을 비밀스럽게 기록하는 프랑스 여인을 연기한다.

결과적으로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은 아주 시기적절했다. 왜냐하면 나치가 압수한 그림 1,300점의 은닉처가 뮌헨에 있는 어느 노인의 아파트에서 발견됐다는 기사가 신문 1면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도난당한 걸작들을 되찾는 임무를 맡은 연합군 미술 전문가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블란쳇은 로즈 발랑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녀는 파리의 죄드폼(Jeu de Paume) 박물관에서 일하는 동안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요제프 괴벨스가 약탈한 많은 작품의 출처를 자신의 담배 마는 종이에 기록했다. 나는 블란쳇이 나온 몇 장면을 보았다. 그녀에게 그 캐릭터가 소심한 동시에 강철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웃었다. “맞아요. 그녀는 당신이 만날 법한 이중 첩자 중에 가장 의심받지 않을 그런 첩자였어요. 그리고 조지 클루니는 너무나 환상적인 이야기꾼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 만드는 방식에 활기 넘치는 디너파티 분위기를 가미하는 것 같습니다.”

블란쳇이 나오는 대부분의 장면에는 이미 결혼한 큐레이터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이 함께 나온다. 그녀에게 두 사람이 약 15년 전 <리플리>를 함께 찍은 후 자주 만났는지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아니요. 사실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그리고요? “우리 둘 다 아주 좋아보여요.” 블란쳇은 관객이 단 한 명이라도 대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안다.

2012년에 그녀는 LA와 텍사스에서 테렌스 맬릭과 그의 다음 프로젝트 두 편을 찍으며 며칠을 보냈다. “저는 과정의 일부였어요. 제가 작품의 일부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녀는 데이비드 마멧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스릴러 <블랙버드(Blackbird)>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4월에는 <캐롤(Carol)>-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러브 스토리-의 촬영을 시작하면서 토드 헤인즈(<아임 낫 데어(I’m Not There)>에서 그녀를 감독한)와 하이스미스(<리플리>의 원작자)의 작품과 재회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블란쳇은 외로운 젊은 백화점 직원(루니 마라)이 반하게 되는 결혼한 중년 여성을 연기한다.

블란쳇(44세)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좋은 배역을 얻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나이다. 그러나 그녀는 복잡하고 성숙한 역할들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현재 그녀는 디즈니의 <신데렐라>를 실사로 재현한 케네스 브래너의 작품-2015년까지는 개봉되지 않을-을 촬영 중이다. 여러분의 짐작대로 사악한 계모 역이다. 내가 그 캐릭터의 실제 이름(트레메인 부인)을 기억해내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이모의 이름을 따서 그녀를 베릴이라고 부릅니다. 맬리스 어포소트(Malice Aforethought, 계획적인 범행 의사)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희화화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어쨌든 블란쳇은 골치 아프고 까다로운 캐릭터들(<노트 온 스캔들(Notes on a Scandal)>의 쉬바 하트, <베로니카 게린(Veronica Guerin)>의 베로니카 게린)을 호감가게 만드는 재능을 갖고 있으니까. “제 친구가 세트장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건 신데렐라 이야기야.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동정하지. 하지만 내가 디너파티에 참석한다면 계모 옆에 앉고 싶을 거야.’”

블란쳇이 쉬지 않고 일해온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신데렐라>를 제외하고 이 모든 프로젝트들은 한 번에 몇 주 이상 찍지 않았다. “실은 상당히 게으르고 근사한 한 해였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뭔가 신나는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건 그 자체로 신날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모르지만요. 그리고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제게는 아주 창의적이고 파워풀한 6년이었어요. 앤드류는 아직 할 일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만두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잘나갈 때 그만두세요. 사실 지금은 무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제안이든 환영입니다.”

블란쳇은 멋진 저녁 식사 친구다. 재미있고, 수다스럽고, 맛있게 먹고 마신다. 나는 우리 사이에 녹음기가 없다면 그녀가 훨씬 더 편안하고 자유분방할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녹음기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유일한 목소리 녹음(그녀가 그대로 남겨둔)을 상기시켰기 때문에 그것이 거기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마흔 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블란쳇은 열 살이었다. “그건 전화 자동 응답기에 녹음된 메시지였어요. 크리스마스에 모두 약간 취했을 때 누군가 파티장 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 목소리를 녹음한 게 분명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올 한 해는 어땠나, 밥?’이라고 말하는 게 녹음됐습니다.”

NESCAPABLE PULL“항상 연기를 포기하려고 했어요”라고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곧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죠” 화려한 레이스와 튤 아플리케가장식된 실크 드레스, 귀고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Giorgio Armani Privé), 왼손 팔찌는 까르띠에(Cartier), 반지는 루시퍼 비어 호네스토(Lucifer Vir Honestus).

블란쳇은 아버지의 죽음이 성인이 된 그녀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길 주저해왔지만 그것이 그녀의 불안과 작품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블란쳇의 아버지 로버트는 텍사스 출신으로 그가 탄 해군 함정이고장 나는 바람에 멜버른에 머물게 됐다. 그는 그곳에서 블란쳇의 어머니 준 갬블을 만나 결혼했다. 그녀에게 자신이 미국인으로 느껴지는지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에선 많은 작가들과 배우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그런 아웃사이더의 시각이 느껴졌다. “글쎄요. 저는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미국에 산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맞아요. 모든 사람들이 미국인이라고 느끼는 방식으로 미국인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미국 문화와 미국 정치를 소비하니까요. 하지만 투표는 할 수 없지요.” 그녀는 어릴 때 텍사스 출신의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이 “아주 이국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호주는 작은 곳이니까요. 제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것을 알 수 있어요. 아이들 중 둘은 영국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호주에 오면 다른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되는 거죠. 다른 곳에서 태어난 부모가 있으면 세상을 자신이 사는 곳보다 더 크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머니는 어떤 분인지 물었다. 긴 침묵.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고 목소리 톤을 더 조용하고 낮게 바꾸었다. “우리가 자랄 때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리고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분이시죠. 늘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화 연결이 아주 힘들어요. 어머니는 모험을 상당히 즐깁니다. 하지만 늘 혼자세요. 궁극적으로 사교적이지만… 혼자 있길 좋아하십니다.” 그녀는 포크를 들고 잠시 노려본 다음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녀가 언론과 조심스러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사이에 줄곧 잡지 커버에 등장하고, 주요 광고의 모델로 활동함으로써(최근엔 파리의 한 건물이 그녀의 얼굴로 뒤덮였다) 모든 것을 보여주고 까발리는 광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예방접종을 해온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실제로 그녀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인터뷰 중에 이제 막 시드니에 도착한 큰아들 대쉴(12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두 아들 로만(9세)과 이그네이셔스(5세)는 <신데렐라>의 나머지 촬영 기간 동안 그녀와 함께 영국에 머물고 있다. 그녀가 통화하는 걸 듣고 있자니 마치 성인 두 명이 대화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것 보세요! 꼭 열일곱 살 같죠!” 그녀는 잠시 자신의 전화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작 학교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이제 막 도착해 상당히 흥분해 있어요.” 네 남자와 사는 건 어떤가요? 라고 내가 물었다. “글쎄요, 우리 강아지도 수컷이에요. 그리고 수컷 고양이도 한 마리 있고요.” 그럼 모두 여섯이군요, 라고 내가 말했다. “네 남자와의 생활이 어떤지 비교할 대상이 없네요. 앤드류와 저는 아주 빨리 결혼했어요. 상당히 충동적이었지요. 우리는 동시에 서로에게 반했고, 계속 같은 속도로 움직였어요. 그래서 딱 붙어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갖기 위해 결혼하진 않았어요. 제게는 그런 친구들이 많은데 어떤 커플들은 행복했고 어떤 커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생긴 건 아주 환상적이고 행복한 사건 같았어요.”

몇 주 후 늦은 밤 블란쳇과 나는 전화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쉬어서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1시간 동안의 대화가 즐거운 것 같았다. 사생활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제가 무엇이든 보호한다거나 신비주의를 고수하려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즉, 가족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고, 부주의하게 그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내가 아주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바로 그 점, 확실한 경계와 신중함 덕분에 그녀가 인터뷰에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하자 그녀의 목소리에 새로운 생기가 돌았다. “당신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수다를 떠는 동안 제가 제 주변에 보호막을 쳤다고 생각하나요?”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 말했다. “저는 기꺼이 시간을 내서 저를 오픈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인터뷰 때 한 얘기들이 방어적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래요?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그런 척할 수도 없습니다.”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제가 막다른 골목이라는 거네요!” 그녀는 훨씬 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러니까 대화의 막다른 골목이라는 거군요!”

전화를 끊은 후 내가 깨달은 건 실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단지 특정 주제에 대해 아주 비밀스럽다고 해서 그녀가 방어적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인터뷰에 대해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녀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고 날카로운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다. 먼저 그녀는 식사가 곁들여진 인터뷰를 소개팅에 비유했다. “어떤 사람은 데이트 상대에 대해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이 허용되고, 어떤 사람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만 빼고요.” 그런 다음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작품과 연관시켰다. “그것은 리허설 룸에 모인 첫날과 같아요. 그곳에는 당신과 다른 배우 사이에 무언가 일어날 거라는 기대감이 있지요.” 그런 다음 성적인 은유를 꺼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인 두 사람이 침대로 가는 것과 같아요. 종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요! 그러나 뭔가 특별할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더니 비즈니스 시나리오로 옮겨갔다. “몇 차례 디너파티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게 될지도 모를 누군가를 만나도록 미리 기획되어 있지요. 우리 두 사람이 뭔가 예술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의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인터뷰는 다소 그런 느낌이에요.” 그리고 문학적인 인용도 했다. “로알드 달의 그 환상적인 이야기 읽어보셨어요? 어떤 남자가 이런 상자를 발명하는 얘기예요. 어릴 때 읽어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상자를 통해서 물방울이 유리잔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리잔 안에 쏟아지는 물방울들의 즐거움. 그래서 결국 그는 그 상자를 조용하게 만들 수없지요. 그러다 창밖을 보니 누군가 잔디를 깎고 있었어요. 그는 잔디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아주 시끄러워졌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비유들은 배우로서 그녀의 준비 과정을 살짝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배역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을 철저히 검토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캐릭터들을 연구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고 자주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그녀가 다른 일을 하는 걸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학 때는 앞으로 무얼 할지 생각이 많았어요. 늘 연기를 포기하라고 스스로를 위협했지요.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해. 그만둬.’ 하지만 곧 유혹에 이끌려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창의적 직업에서나 생길 수 있는 그런 불안함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유능한 아티스트도 만족을 모릅니다. 마사 그레이엄은 그것을 ‘기묘하고 아주 멋진 불만족’ ‘축복받은 불안함’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그것이 실제로 당신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창의적으로 깨어 있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 “역할을 위해 어떤 기술을 습득해야 할 경우에도 세트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카메라 앞에선 그럴듯해 보이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없을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이 블란쳇과 시간과의 이상한 관계를 설명해주는 듯하다. 지금까지 연기한 모든 새로운 캐릭터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출발점에 서 있는 듯 보인다. 그녀는 테이프를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다시 런던에서의 인터뷰로 돌아가보자. 자정이 지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레스토랑 앞 거리에 서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기사는 도로변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나이 듦에 대해, 런던이 얼마나 변했고 뉴욕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는걸요”라고 블란쳇은 말했다. “이제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제 주변에 왜 완전히 도시를 떠나 해변으로 갔을까? 그냥 교외로 이사할 수는 없었나? 혹은 일을 그만뒀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것은 술을 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끔 삶이 너무 빠르고 절대적이어서 삶의 터전을 극단적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때가 있으니까요. 일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세미 혁명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