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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인도 명상 여행

2016.03.17

by VOGUE

    7일간의 인도 명상 여행

    많은 사람들이 관계 혹은 불행한 사건으로 상처를 받는다. 생각하기 나름이라지만 머리론 이해해도 마음이 따라주질 않는다.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아 떠난 7일간의 인도 명상 여행기.

    가로등 하나 없이 새카맣게 어두운 인도 밤거리를 승합차가 달리고 있었다. 대시보드 위 가네샤(코끼리 모양의 신)상에는 하얗고 붉은 꽃 목걸이가 걸려 있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 백미러에 달린 비슈누(창조의 신) 사진이 달랑거렸다. 길가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개들만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느릿하게 반응했다. “인도에 왔구나.” 홍콩을 경유해 첸나이(인도 남부)로 들어오는 데까지 14시간,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거기에 캐세이패시픽 항공의 불친절함과 쓰레기 같은 기내식, 고장 난 모니터에 대한 짜증으로 이미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자니 차가 멈췄다. OWA(One World Academy)로 들어가는 관문, 보리수나무가 새겨진 커다란 문이 열리고 동남아 리조트풍의 리셉션 건물 앞에 차가 멈췄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잘 오셨습니다. 오는 길은 어떠셨나요?” 하얀 사리를 입은 인도 남자가 온화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맞이했다. 새‘ 벽 5시야! 18시간 비행기를 탔으니 당연히 고단하지. 그딴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우릴 방에 넣어달라고!’ 그러나 그는 운전사와 느긋하게 인사를 나누고 영수증을 건네는 손까지 슬로모션처럼 움직였다. 그 와중에 나는 누구와 룸메이트가 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새로운 사람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더 피곤함을 느꼈다. 새벽 5시 30분 드디어 취침. 축축한 머리카락을 말릴 겨를도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3시간의 짧은 수면 후 아침 8시 30분 아침을 먹기 위해 억지로 일어났다. 방은 넓고 깨끗하고 쾌적했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테라스로 나가자 산책로 끝으로 바다가 보였다. “아름다운 곳이구나!” 열정과 탐구욕을 다시 몸에 장착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잘 먹고 계속 자도록 하세요. 내일부터 시작될 수업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골프 카트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며 알피타 선생님(오와에 도착하면 담당 인스트럭터를 배정받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 계속 개인 면담을 받는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이 말했다. 그제야 건물 생김새가 보였다. 숙소는 브라운과 베이지의 현대식 건물이다. 교실과 매점, 차 마시는 공간은 리조트풍이고, 식당까지 가는 돌길 산책로는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로 잘 꾸며져 있다. 목조 건축물인 식당은 나지막한 지붕, 높은 천장고,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로 멋스럽다.

    오와에서의 첫 아침은 브라운 라이스 오트밀에 걸쭉한 두유를 붓고 땅콩버터와 무화과 절임을 곁들여 먹는 메뉴. 신기하게도 의외로 맛있다. 오와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마이크로 비오틱이다. 채식 메뉴이며, 특히 뿌리, 잎, 줄기 등 특정 부분을 자르지 않고 온전한 채소를 모두 이용해 조리한다. 고기처럼 씹히는 버섯 탕수육, 두부 패티에 곡물을 빼곡히 박아 오독오독 식감까지 경쾌한 햄버거, 레드빈과 마늘,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갈아 만든 중독성 강한 페이스트, 매콤한 커리, 잘 익은 깍두기 맛이 나는 비트 샐러드, 촉촉한 초콜릿 케이크(버터와 달걀을 넣지 않았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다) 등등.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좋아서 굶주린 사람마냥 게걸스럽게 먹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번을 자고 몇 번을 먹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기분은 점점 우울해졌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어색했다. 나의 룸메이트는 ‘안쉬’란 이름의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긴 눈에 잘생긴 눈썹, 도톰한 입술, 요가 지도자가 직업인 만큼 한 줌에 들어올 듯한 허리, 여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몸매를 지녔다. 저녁 무렵 그녀가 내게 물었다. “왜 이렇게 자꾸 혼자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도 편안해 보이진 않았다. 당찬 포부로 신청했지만, 정작 출발일이 다가오자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던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머릿속도 복잡했다. 마무리되지 않은 회사 일이 마음에 걸리고, 남편도 보고 싶고, 그동안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낸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어색했다. ‘난 대체 여길 왜 온 거지?’

    5년 전 요가 명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직업, 관계, 건강, 미래, 모든 것이 힘에 부쳤다. 요가는 ‘합일, 하나 됨’이란 뜻이다. 몸과 마음, 나와 타인, 나와 세상, 나와 생각, 나와 신 간에. 물론 요가와 명상은 어떤 종교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내 마음 속 신과 가깝게 해주는 훈련이다. 그리고 요가는 명상을 잘할 수 있도록 나를 집중시키고 근육과 마음, 호흡을 풀어주기 위해 개발됐다. 그렇게 5년간 요가를 하고 각종 힐링 명상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책도 읽고, 전문가를 만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고, 그래서 실천에 옮기기는 더 힘들었다. 그래서 인도까지 왔다. 이곳 요가와 명상의 발원지인 인도의 스승이라면 마음의 평화를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그러나 도착한 첫날, 난 벌써 7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음 날 드디어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몇 가지 룰이 제시됐다. 핸드폰 휴대 금지(교실 안으로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건 노트와 필기구, 그리고 텀블러뿐), 졸리면 일어서서 수업을 받을 것, 점심·저녁 식사 시 대화 금지, 침묵을 유지할 것, 충분한 물을 마실 것, 맨발로 산책로를 걷지 말 것 등. 의자와 담요, 아이필로, 방석, 노트, 펜이 준비된 교실로 들어서자 입구에서 아침 요가 수업을 진행하는 붉은 머리 아난야지(이름 뒤에 붙는 ‘지’는 선생님이란 뜻이다)가 엄지로 미간 사이에 붉은 점을 찍어주며 꼭 껴안아줬다. “웰컴 홈.” 그녀의속삭임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진 않았지만, 마음이 따뜻했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깡마른 몸매, 커다란 눈, 길쭉한 손가락, 곱슬머리를 지닌 사마달 신이지가 강단 위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기대, 열의, 흥분,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교실이 그녀의 침묵에 고요해졌다. 눈을 감고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7일 간의 ‘freedom in living’ 코스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우리가 하게 될 일은 오직 한 가지라고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아닌, 꼭 필요한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목적은 의식의 변화입니다. 뻔히 일어난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며 갈등 속에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고통은 부모, 업보, 신, 부정적 기운 때문일까요? 우리는 스스로의 진실을 관찰하지 않고 고통에 대해 변명합니다. 진실을 피하기 위함이죠. 그렇게 위안을 하면 고통이 사라집니까? 중요한 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오와의 가르침은 간단명료했다. 요약하자면 세상엔 단 두 가지 상태 뿐이다. ‘고통 속에 있는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린 왜 고통스러운가. 자기 중심적인 생각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갖가지 불필요한 감정을 일으키는데,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이 ‘자각’이다. 그리고 자각의 상태를 지속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삶의 ‘비전’을 세우는 것이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간단명료했다. 그렇지만 그건 사인, 코사인 법칙을 처음 접한 사람에게, “자, 법칙을 알았으니 이제 변의 높이를 구해봐”라는 것처럼, 어떻게 내 삶에 대입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아리송했다. 그럼에도 뭔가 시원해졌다. 세상은 내가 두려워했던 것만큼 헤쳐나가기에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었다. 사마달 신이지가 물었다. “화진, 지금 고통스러워요?” 여기선 ‘괜찮은 것 같아요’ 따위의 애매한 대답은 씨알도 안 먹힌다. 그냥 인정해야 한다. “고통 따윈 없어’ 혹은 ‘지금 고통이 있어’. 만약 전자라면 자각한 상태고, 후자라면 이제 자각하면 된다. 어쨌든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나자 신기하게도 용기가 생겼다. 공포 영화에서도 뿌연 안개 속에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대상이 가장 무섭지 않은가. 아무리 흉악스러운 괴물이라도 그게 무엇인지 알고 나면 두렵지 않다. 문제를 알았으니 이제 해결 방법만 찾으면 되니까. 드디어 출발 선상에 선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바닷가 데크에서 양쪽 콧구멍을 번갈아 막아가며 몸의 밸런스를 맞추는 호흡 명상 ‘나디 소다나’로 시작해 1시간 동안 아침 요가를 했다. 앞에는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어슴푸레한 하늘엔 은빛 활 같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변호사 토니와 스웨덴에서 온 미란다도 유연하게 동작을 따라 해 깜짝 놀랐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새소리, 눈을 감아도 붉게 느껴지는 태양, 삼각 자세에서 손에 잡힐 듯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 머리카락을 휘감는 짭조름한 바람, 시원한 돌바닥 느낌까지 모든 것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첫 날 수업을 받은 후 컨디션은 훨씬 좋아져 있었다. 실타래가 풀리는 듯 가볍고 흥미로웠다. 그건 룸메이트인 안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실망하거나 더 혼란스러워하는 이도 있었다. 모두 요가를 끝내고 아침을 먹고(이땐 신나게 떠들어도 된다) 9시까지 강의실로 모였다.

    수업은 함싸 호흡 명상으로 시작했다. 함싸(hamssa)는 ‘I’m you(우린 하나)’라는 뜻이다. 사마달 신이지의 첸팅에 맞춰 ‘함’ 할 때 들이쉬고 ‘싸’ 할 때 내뱉는다. 구령은 점점 빨라지고 길어졌다. 세 세트로 구성되는데,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 동물, 그리고 지구까지 내가 세상과 연결돼 있음에 대해 명상을 한다. 숨소리가 확실하게 들릴 정도로 강하게 호흡을 하는데, 땀이 나고 손끝과 목뒤가 저릿하고 약간 전기 자극을 받은 듯 신체적으로 이상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은 기쁨, 든든함, 편안함, 감사함이었고, 이는 앞으로의 일정에 큰 힘이 돼주었다(한 참가자는 이 명상 후 동물과 연결성을 강하게 느껴 이후로 육식을 못하게 됐다). 그러나 모든 명상이 이렇게 성공적이진 않았다. 기도가 ‘신에게 말하는 것’이라면 명상은 ‘듣는 행위’라고 한다. 이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원하는 걸 떠들라고 하면 하루 종일도 문제없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고 들어주는 일은 익숙지 않았다. 마음에게 고요히 쉬라고 말할 때마다 놀랍게도 그것은 금세 다음의 상태로 변한다. 불안, 외로움, 자책, 지루함, 분노 앞의 것 모두. 행복하다가 금세 불안해진다. 그런 자신이 한심해서 자책하다 분노하고, 갑자기 자기 연민에 빠지며 우울하고 세상에 혼자인 듯 외롭다. 그게 보였다. 기회만 닿으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고, 이것이 감정을 낳고, 결국 내가 거기에 지배당하고 있는 모습이. 그 때문에 이제까지 고통스러웠다는 것이.

    오와에서는 고통(suffer)과 어려움(difficulty)을 구분한다. 어려움은 상황이다. 과다한 업무, 싸움, 부당한 대우, 누군가의 죽음, 병, 실연 등. 그러나 어려움이 종료된 후에도 이를 감정적으로 곱씹으며 괴로워한다면 이건 고통이다. 즉, 고통의 시작은 ‘타인’이지만 이를 지속시키는 건 ‘나’다. 예를 들어 동료와 언쟁을 했다고 하자. 집에 와서도 억울하고 분해서 잠이 안 온다. 결과는? 동료는 나를 한 번 상처 줬지만 그 상처를 100번 곱씹으며 100번 상처를 받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나다. 놀랍게도 우린 불행을 즐긴다. 그리곤 엄청나게 열중한다. ‘어떻게 복수하지?’ 아카데미 각본상도 울고 갈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서 영화화 돼 상영된다. 심지어 대사까지 자세하게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 “발뺌을 하려고 이렇게 말하면 요렇게 받아쳐야지. 그런데도 꼬리를 내리지 않고 저렇게 말한다면 바로 저번 일을 들먹이며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어!” 수목 드라마나 아침 막장 드라마도 필요 없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고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그러느라 온갖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을 몽땅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채.

    심지어 고통 경쟁에도 참가한다. 이를테면 누군가 ‘몸이 아파서 일을 못했어’라고 했다면 내 마음은 곧바로 이렇게 속삭인다. ‘넌 더 심하게 아팠어도 할 일은 다 했잖아. 뭘 저 정도로 난리래. 그렇지 않아?’ 고통을 통해서도 우월감을 가지려 하고, 그러면서 상대방의 고통을 무시한다. 그러고 있는 ‘나’를 보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난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날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꼈다. 더없이 미안해졌고 ‘이대로 살 순 없다’고 다짐했다.

    넷째 날 사마달 신이지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인도에서는 어린 코끼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쪽 발을 밧줄로 묶어 말뚝에 묶어둔다. 평생을 그렇게 자란 코끼리는 어른이 돼서도 발목에 밧줄을 묶어두면 도망을 못 간다. 밧줄에 묶여 있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과거 생각, 이념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미 바닥에 박힌 말뚝을 충분히 뽑아버릴 힘이 생겼는데도 말이다. 사마달 신이지는 침묵을 유지한 채 38년 동안 나의 발목을 묶어둔 생각과 이념들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다. 노을이 은은하게 물든 저녁이었다. 짙은 회색빛 돌이 촘촘히 박힌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꽃 향기와 분홍빛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저녁 시간이었다. 성별, 고향, 부모, 학벌, 어린 시절 경험(물건에 욕심을 냈던 수치심, 착한 아이 신드롬), 뇌리에 박혀 있는 이념들(성장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튀지 마라), 열등감과 우월감 등,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보듬었다. 그러자 밧줄이 풀리듯 그것들이 느슨해져 사라졌다. 그날 밤 모두는 식당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서울 하늘에서 볼 수 없었던 별들이 어떤 보석보다 찬란하게 반짝였다. 은하수도 보였다. 우주가 나와 함께하는 듯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밤이었다.

    <어바웃 타임>이란 영화에서 시간 여행이 가능한 주인공은 똑같은 하루를 두 번 살아본다. 첫날 일어난 그를 짜증 나게 했던 온갖 사건들(커피가 늦게 나오고, 지하철 옆자리 승객의 헤드폰에서 울리는 음악 소리가 너무 크고, 상사에게 혼난 친구를 위로하다 들키는 등)이 다음 날은 즐거운 일상이 된다(커피가 나오는 동안 웨이트리스와 인사를 나누고, 옆자리 승객의 음악 소리에 같이 춤을 추고, 친구와 상사를 골탕 먹인다). 난 시간 여행을 할 능력은 없지만, 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인도로 가는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새 비행기를 타야 했고 항공사, 동행자, 공항도 똑같았다. 그러나 전혀 달랐다. 비행은 즐거웠고, 친구들과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심지어 연결 편을 기다리는 공항에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는 낯선 사람도 나타났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뀌었고,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분명한 건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든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마치 스키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 가파른 상급자 코스를 내려가라고 하면 두렵고 괴롭고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정지할 수 있는 하키스톱 기술을 익히고 나면, 그곳은 오히려 흥미진진한 슬로프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생애 처음으로 들여다 본 마음속은 신천지였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으면서 정작 내 안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니. 그리고 알게 됐다. 내 마음은 스머프 마을이다. 그 안엔 욕심 많은 가가멜, 잘난 척하는 똘똘이 스머프, 지혜로운 파파 스머프, 불평불만 투덜이 스머프, 식탐 대장 먹보 스머프, 맨날 실수하는 덜렁이 스머프 등이 모두 함께 모여 살고 있다. 과거엔 내쫓고 싶은 스머프가 한둘이 아니었고, 왜 난 남들처럼 행복한 마을을 만들지 못할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젠 투덜이 스머프가 불만이 많다고, 똘똘이 스머프가 잘난 척한다고 퇴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는 이들이 심지어 귀여워 보인다. 그들이 나의 일부이고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를 알기에. 이제, 드디어 나는 마음의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알고는 있었지만 권리 주장을 하지 못했던 마음의 평화 속으로.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이화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모델
      모델 / 한으뜸
      스탭
      메이크업 / 이미영, 세트 / 윤혜성, 헤어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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