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 끔찍한 선물 리스트

얼마 남지 않은 밸런타인데이. 호불호가 뚜렷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남자 친구를 뒀다면, 그의 눈치 없고 감각 없는 여자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들이 손꼽는 끔찍한 선물 리스트를 참고할 것!



“남자 화장품 뭐가 좋아?” 매년 2월 초가 되면 뷰티 기자들은 친구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이럴 때 내 대답은 늘, “향수는 아르마니 프리베 ‘베티버’ 정도? 크림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크렘 이드랄리아’’ 가 좋겠지. 단, 그의 취향을 고려해야 해!”다. 그렇다면 이들의 최종 선택은? 열에 아홉은 뷰티 에디터의 추천 아이템으로 기울어지는 일이 다반사. 한가하게 선물을 고르고 있자니 너무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 반, 센스 있는 선택으로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는 의지 반의 결과지만, 솔직히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여자들이 봤을 때 완벽하게 준비된 밸런타인데이 선물이 남자들에겐 끔찍한 악몽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밸런타인데이의 참사를 경험한 남자들은 의외로 많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고백들은 꽤나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내 취향을 1%도 고려하지 않은 향수를 받을 때면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이 여자가 내게 관심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향수는 쉽지 않은 선물인데 말이죠. 그냥 향수면 다인 줄 아는 거죠!” “지나치게 달콤했던 향수 한 병이 떠오르네요. 함께 건네준 편지도 가관이었어요. 뭐라더라. 달콤한 향을 뿌려야 진정한 멋쟁이? 그녀 딴에는 굉장히 고민해서 준 것 같았지만, 받고 나선 쓴웃음만 났을 뿐. 한 번도 향수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남자에게 석류 향기가 웬 말이에요? 향수 선물을 할 거라면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겨주세요. 제발!” 프로스앤찬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원재훈과 센티멘탈 포스티드 디렉터 염승재의 아찔한 기억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실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싸구려 장미 향이 나는 동유럽산 비누는 또 어떻고요. 마치 단체 여행 전리품 같은 그 비누로 세수했다간 평생 얼굴에서 싸구려 장미 향이 날 것 같은 끔찍한 느낌이었죠. 게다가 섬세하게 조각된 장미 문양 탓에 막 쓰기엔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 들어 손을 닦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없었죠. 차선책으로 화장실 방향제로 활용해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진동해 머리가 지끈거렸다니까요. 차라리 장미 한 송이를 받았으면 좋았을걸. 장미비누는 정말 잘못된 선택인 듯해요.” 아모레퍼시픽 온라인 마케팅팀 신학재 대리 역시 ‘아저씨’ 냄새가 나는 스킨과 로션 세트를 건네받은 순간의 불쾌한 기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일진 몰라도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했다니까요.” 트루피알앤 크리에이티브 박종달 이사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긴 마찬가지다.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는 카피는 이제 먹히지 않아요. 지금은 피부 컨디션과 개인의 선호도를 고려해서 화장품을 고르는 시대라고요.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처럼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그루밍 세트는 사양합니다.” 아베다 홍보팀 한석동 대리는 최악의 선물로 립밤을 꼽는다. “집 안 곳곳에 차고 넘치는 게 립밤이에요. 게다가 아무리 립밤에 진귀한 성분을 넣는다 한들 립밤은 립밤일 뿐, 서너 개 세트로 구성된 제품이라도 성의 있어 보이지 않는답니다. 특히 물 마실 때마다 립스틱마냥 묻어나는 진득한 모 브랜드의 립밤은 정말 ‘NG’였어요!”

그렇다면 자기 관리 철저한 남자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밸런타인데이 선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적어도 여자들이 주로 구입하는 그루밍 세트(스킨과 로션이 한 세트로 박스 포장된 밸런타인데이 프로모션 아이템),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한물간 베스트셀러 향수가 아닌 건 확실하다. 정답은 진동 클렌저, 페이셜 미스트, 향초. 특히 클래식한 디자인의 면도용품에 의외로 관심이 높다는 사실! “요즘 손쉽게 쓸 수 있는 셰이빙 아이템이 많긴 하지만 부드러운 브러시로 셰이빙 크림을 바르고 면도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아요.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깝지만 선물로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죠.”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이우제 대리의 당당한 고백에 해외 마케팅 홍보 컨설팅 회사 시너지 힐앤놀튼의 성 앤드류 차장도 한 표 던졌다. “독일산 뮬러(Muhle)와 미국산 백스터 오브 캘리포니아(Baxter of California)의 면도기와 브러시를 받으면 최고의 밸런타인데이가 될 것 같네요. 국내에 수입되지 않지만 클래식한 디자인이 일품이랍니다. 이런 센스 있는 선물을 마련하는 그녀라면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안한 가격대의 만족도 높은 선물을 계획 중이라면 양태오 실장의 조언을 참고하자. “코레스의 샤워 젤을 ‘강추’해요. 이 샤워 젤에서는 정말 좋은 향이 나거든요. 아침에 샤워가 하고 싶어 일어날 정도였죠. 계속 맡고 싶은 좋은 향에 거품도 잘 나니 일석이조!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죠.”

남성미 짙은 마초 향수보다는 공간을 향으로 채워주는 은은한 향초(아베다, 조 말론, 딥티크, 카르마카멧 등), 한 손으로 세안할 수 있는 진동 클렌저, 사무실에 놓고 틈틈이 사용하기 좋은 페이셜 미스트, 스파 티켓(화장품보다 진심으로 힐링할 수 있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비눗 방울 향수, 깔끔한 손 관리를 위한 체크앤스피크(Czech & Speake)의 매니큐어 세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출장이 잦은 그에겐 휴대가 간편한 여행용 뷰티 파우치나 미니어처 사이즈의 향초를 선물하자. 여기에 ‘피부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처럼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흠뻑 묻어 있는 따스한 멘트까지 더해지면? 한 남자에겐 평생 잊지 못할 밸런타인데이로 기억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