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츠 VS. 드레이프

올봄 대유행할 주름 패션은 이세이 미야케 파와 마담 그레 파로 나뉜다. 반듯한 모범생 같은 매력을 발산하고 싶다면 빳빳한 플리츠를, 우아한 방식으로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다면 드레이프를 선택할 것!

이세이 미야케는 100% 폴리에스테르 천을 두 장의 종이 사이에 끼우고 열과 압력을 가해서 영구 주름을 개발했다. 주름 종이처럼 보이는 이 천은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다리미질이 필요없으며 빨리 말라서 매우 실용적이었다.

Following Issey Miyake

지난해 9월, 2014 봄여름 컬렉션이 진행될수록 패션 에디터들은 이세이 미야케 얼굴을 자주 떠올렸다. 뉴욕의 알렉산더 왕이 박스 플리츠의 베이비 돌 드레스와 복서 쇼츠를 선보이고, 프로엔자 스쿨러 쇼에 금박으로 장식한 롱 플리츠 스커트가 등장할 때만 해도 수첩에 휘갈긴 유행 키워드 리스트에서 플리츠는 중간 아래쪽 위치였다. 하지만 파리의 셀린, 지방시, 알렉산더 맥퀸, 클로에, 디올 같은 주요 쇼에서 부채처럼 골 진 천이 컬렉션의 중심을 차지하자 이들은 플리츠 단어에 밑줄과 동그라미, 별표를 반복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봄옷 위에 반듯하게 접힌 주름들은 리베르탱고를 연주하는 아코디언처럼, 모델 워킹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비록 <파이낸셜 타임스>의 빨강 머리 바네사 프리드맨이 “회고전이 열리거나 방대한 리뷰 관련 책자가 발간된 것도 아닌데 플리츠가 등장한 것은 정말 수수께끼”라고 잠시 의문을 제기했지만, 올봄 가장 의외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패션 인물은 현대적 플리츠의 대가, 이세이 미야케다.

그렇다면 여자들의 플리츠에 대한 인상은 어떤 것일까? 샐리 싱어는 플리츠의 등장이 “섹시한 룩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바 있으며, 린 예거는 “플리츠를 입으면 매우 세련된 여학생처럼 보여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베로니크 브랑키노 역시 퇴폐미의 정반대쪽에 위치한다는 의견. “크레이프 소재의 긴 선레이 플리츠 스커트는 ‘헤로인 시크’에 대한 반작용이에요. 피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여성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고픈 여자들을 위한 거죠. 스커트의 볼륨은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고요.” 93년도에 미야케가 개발한 열처리 방식의 100% 폴리에스테르 소재 영구 주름은 여성미를 드러내는 은근한 방식에 현대성과 실용성이라는 획기적인 방식을 추가했다(미야케는 “유연하고 땀을 잘 흡수하며, 얼룩이 남지 않을뿐더러 빨리 마르는” 성질로 자신의 플리츠를 정의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을 위해 디자이너들은 미야케의 플리츠에 열과 성을 다해 나름의 방식으로 경의를 표했다.



먼저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클로에는 마치 일본에서 플리츠 플리즈 천을 직접 공수한 게 아닐까 의심케 할 정도. 주름 결 방향을 가로세로 대각선으로 바꿔가며 재단한 감각은 이세이 미야케가 직접 디자인하던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에이폭(A-POC)처럼 바닥에 평평하게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클로에 드레스와 달리, 드리스 반 노튼은 자잘하게 주름진 천을 길게 잘라 코사지처럼 돌돌 말아 붙이거나 러플처럼 층층이 장식하는 입체적 방식을 참고했다. 지느러미처럼 제멋대로 펄럭이는 ‘플리츠 뭉치’에 대해 반 노튼은 농담을 날렸다. “각성제에 취한 러플!” 모델을 감싼 거 대한 사탕 껍질처럼 보이는 랑방의 루렉스 플리츠 드레스는 ‘직물 산업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는 알버 엘바즈의 진지한 의도와 상관없이, 어린 여자아이들이 금색 골판지로 지어 입은 종이 드레스 같았다. 이처럼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2차원적 특성의 소재(유동적으로 흐르는 천 대신)는 하트 여왕의 카드 병정들처럼 색다른 입체적 미학을 표현한다.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죠. 새로운 소재에 대한 탐구였습니다.” J.W. 앤더슨은 지그재그로 주름을 잡은 천과 오리가미, 핀칭의 대담하고 복잡한 시도는 흑백 옷 표면에 3차원적인 효과를 입혔다(사람들은 플리츠 플리즈 끈 주머니를 쏙 닮은 가방을 히트 아이템으로 점찍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 역시 옷의 질감과 차원(선, 면과 입체)을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식물성 섬유인 라미 코튼을 박스 플리츠로 종이접기 한 다음 수직 줄무늬처럼 옷 위에 붙여 흥미로운 효과를 자아냈다.

몸의 곡선에 반응하는 동시에 면의 성질을 유지하는 플리츠 의상은 마치 보호대나 갑옷처럼 보인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모던한 절제미에서 아프리카 부족의 활기로 급전환한 셀린 컬렉션에 등장한 플리츠의 별명은 ‘트라이벌’ 플리츠. 몸의 곡선을 따라 수축과 확장을 넘나드는 박스 플리츠 홀터넥의 운동감은 자하 하디드 건축물의 유선형을 연상케 한다. “힘과 강함에 대한 것이죠.” 피비 파일로의 의도와 유사한 호전적 플리츠의 양상은 알렉산더 맥퀸에도 적용된다. 사라 버튼은 미래의 아프리카 전사들에게 3중으로 겹친 도톰한 박스 플리츠로 킬트 느낌의 스커트 갑옷을 선사했다. 플리츠를 포함, 디올 하우스의 요소들을 재해석한 트랜스-디올에 대해 라프 시몬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부족의 여성이죠. 우아한 동시에 야만적인 감각을 갖춘.” 결국 올봄 활동적인 현대 여성들의 옷장에 적합한 건? 좁아터진 펜슬 스커트(종종걸음을 유발하는), 꽉 조이는 블라우스(산소 부족 현상을 초래하는) 대신 깔끔하게 날 선 플리츠라는 것!

조각가 출신인 마담 그레는 살아 있는 모델의 몸 위에 직접 옷감을 두르고 주름을 잡으면서, 옷의 형태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촘촘한 드레이핑은 280cm의 천을 단 7cm 폭으로 줄여버릴 정도였다.

Madame GrÈs School

플리츠에는 종이를 접어 만든 듯한 빳빳한 주름도 있지만, 우아하게 물결치는 마담 그레의 드레이프 주름도 있다. 보다 우아한 방식으로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다면 성숙한 드레이프 쪽을 권한다.

패션 스무고개. 원래 조각가였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다 꾸뛰리에로 전향한 인물. 처음 열 당시 부티크 이름은 알릭스 바통. 1차 세계대전 때 나치 장교 아내의 드레스 맞춤 제작을 거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누구 수하에서 일하기에 지나치게 실력이 뛰어나다고 판단, 그녀를 고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자신의 부티크를 열도록 격려했다. 이제 마지막 고개. 2014년 봄 지방시 컬렉션을 준비하던 리카르도 티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답은? 마담 그레!

이번 시즌 모든 패션 평론가들이 이세이 미야케의 이름을 마르고 닳도록 외치는 동안, 리카르도 티시는 백스테이지 구석에서 특유의 강한 이탈리아어 악센트로 반역을 모의하듯 비밀스럽게 고백했다. “마담 그레에 완전히 사로잡혔어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집착했습니다. 색상은 아주 로맨틱하며, 매우 어둡고, 아프리카적이에요.” 아프리카와 일본의 코드가 묘하게 뒤섞인 지방시 컬렉션에서 카키, 브라운, 오렌지, 블랙의 저지와 실크는 목덜미부터 배꼽까지 거대한 타원형으로 늘어지거나(과장된 카울 넥이나 둥글게 만 고무호스처럼) 부분적으로 주름을 잡아 옷 표면에 건축적 형태와 반복적인 선을 만들고 있다. 미스터 티시가 기본적으로 안티 패션적 성향이 강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2014년 현재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장하는 최신 유행 제조기 역시 티시다. 놀랍게도 칼날 같은 모서리의 플리츠를 갖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다른 디자이너들의 옷 사이에서 티시 같은 마담 그레의 후예들은 플리츠의 또 다른 표현 방식으로 드레이핑을 주창하고 있다.

21세기에 가장 시적인 드레이핑 의상을 만드는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하이더 아커만이다. “미쳐 돌아가는 세계에서 느린 패션의 상징”이라는 수지 멘키스의 표현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는 이번에도 촘촘한 주름의 투명한 시폰과 메탈릭한 실크로 꿈결 같은 실루엣을 완성했다. 밀도 높은 주름이 아래를 향해 방사형을 그리며 펼쳐지는 극적인 운동감! “디자이너들은 대표적인 아이템을 갖고 있지만 나는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듯 똑같은 주름이라도 오리가 미식 플리츠가 활기차고 당찬 소녀라면, 드레이프는 우아함과 관능미를 갖춘 성숙한 여인 쪽이다.



알투자라는 시그니처 아이템인 슬릿이 깊게 들어간 펜슬 스커트에 소용돌이치는 미니어처 드레이프 장식을 덧댔다. “소녀와 반대되는 성인 여성의 옷 입기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녀들은 감각적인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이나 성적 매력을 친근하게 받아들이죠.” 허리 아래가 꽃잎처럼 봉긋하거나 엉덩이 쪽으로 늘어지는 드레이프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절정에 달했을 때처럼, 허리는 더욱 잘록하고 엉덩이는 한층 볼륨감으로 충만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알투자라의 풍성한 드레이핑은 지난 몇 시즌간 유행했던 페플럼의 글래머 버전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인해 미국 여고생들은 졸업 파티에 입고 갈 프롬 드레스로 뷔스티에 드레이프 드레스를 가장 많이 선택해왔을 것이다.

에디 슬리먼은 80년대풍의 반항적인 젊은 세대에 대한 생로랑 컬렉션에 당시 프롬 드레스를 복각한 복제품을 끼워 넣었다. 성실하게 드레이핑한 복고풍 원 숄더 조젯 드레스는 사이키델릭한 조명 아래 몸을 흔드는 청춘마냥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풍성한 스커트 자락을 팔락였다. 한편 글래머러스한 드레스의 대가 잭 포즌은 많은 시간과 공이 드는 드레이핑의 기술적인 측면에 방점을 찍는다. 고전적인 신화 속 요정이 입을 법한 그리스풍 드레스들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모든 기술을 통한 수작업 과정과 장인 정신에 대한 갈구를 포착한 디자이너의 노력의 산물이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로맨티시즘은 엄청난 양의 옷감을 불과 몇십 분의 일로 줄여버렸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드레이핑 과정과 정교한 바이어스, 가슴 곡선의 입체감도 놓치지 않는 완벽한 재단으로 완성됐다.

비오네의 고가 아쉬케나지는 이번만큼은 마들렌 비오네보다 마담 그레에 대해 훨씬 많은 연구를 했음이 분명했다. 노란색과 연하늘색 하늘거리는 튤 플리세의 그리스풍 드레스는 카린 로이펠트가 스타일링한 면 티셔츠와 포플린 셔츠가 없었다면 마담 그레가 활동하던 당시 옷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우아했다. 그 외에 패션 에디터들이 특히 호의를 보인 단순한 기모노 코트와 풍성한 풀 스커트 드레스의 마르니, 오글오글한 포르투니 플리츠 샤르무즈로 지아니 베르사체의 본디지 드레스를 재현한 베르사체 등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런더너들은 고전미와 우아함으로 박제될 뻔한 드레이프를 좀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도용하고 있다. 토마스 타이트는 연한 오렌지색 얇은 나일론을 슬립 드레스 위에 드레이핑 방식으로 덮어씌웠고, J.W. 앤더슨은 척추와 갈비뼈처럼 중심선 양옆으로 얼기설기 드레이프를 만든 독특한 질감의 홀터넥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게 전통적인 방식이든 새로운 접근이든, 올봄 구식처럼 느껴지던 드레이프 의상의 재등장이 동시대 여자들의 옷장에 다채로움을 더할 것은 분명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