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식의 품격

우리가 집 밖에서 먹는 행위는 대체로 매식이다. 맛집을 탐험하고 식경험을 자랑하는 ‘외식 취미’도 호기롭지만, 사실상 반복적인 매식에서 품격은 더 필요하다. 품격은 음식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팔고 사 먹는 사람이 품격을 만든다.



산업사회 이전, 그러니까 대부분의 인간이 농민이었던 시대에, 밥은 집에서 먹었다. 집 근처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밥때가 되면 온 식구가 모여 끼니를 때웠다. 산업사회의 노동자가 된 인간은 집에서 밥 먹는 일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집 밖에서 먹는 음식을 두고 흔히 외식(外食)이라 한다. 음식을 먹는 장소에 의미를 둔 단어인데, 밥을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처지가 반영된 단어는 아니다. 외식 중에 돈을 주고 사 먹는 음식은 매식(買食)이다. 우리가 집 밖에서 먹는 음식은 대체로 매식이다. 매식 중에 자본이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음식으로는 급식(給食)이란 게 있다. 자신의 기호와는 무관한 음식을 ‘스텡’ 또는 플라스틱 식판에 받아다 먹는다. 고급 노동자들은 가끔 접대 명목의 공짜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 음식에 대한 적절한 단어가 없는데, 공짜이니 이 역시 걸식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은 농민의 나라에서 돌연히 노동자의 나라로 변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70%가 농민이었는데, 2013년 현재 농민은 겨우 4%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은 매식에 익숙하지 않다. 농업 사회에서 가족끼리 먹던 음식 관습을 매식 장소에 적용하려 한다. 적용이라는 단어도 적절하지 않다. 매식을 두고 그 옛날 집밥이기를 강요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이러니 음식을 파는 사람이나 이를 사서 먹는 사람이나 서로의 기대는 항시 어긋나고 불만이 쌓인다. 한국이 돌연 농민의 나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산업사회의 매식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품격은 음식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팔고 사 먹는 사람이 품격을 만든다. 어떤 일의 내력과 사정을 익히 알고 그 일과 관련한 상황에 익숙해져서 마치 생래적인 일인 양 구는 것을 두고 “품격이 있다”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매식에 적응해야 품격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일단 밥 사 먹는 일에 당당해야 한다. 일반 직장인이 비싼 매식을 할 수는 없다. 점심 한 끼에 6,000원을 넘어도 부담이다. 저녁의 술 한잔 자리에서도 쇠고기 굽기는 버겁다. 평범한 식당에서 뭔 품격을 따질 수 있을까 하고 주눅이 드는 순간 품격은 저 멀리 달아나게 된다. 내가 노동을 하여 번 돈으로 음식을 사는 것이다. 훔친 돈이 아니다. 당당해야 한다.

대박집은 대체로 품격을 지킬 수 없게 만든다. 줄을 세웠다가 식탁을 치우지도 않고 자리에 앉게 한다면 다 치울 때까지 버텨주어야 한다. 신발을 주머니에 넣고 식탁 밑에 넣게 하는 식당이면 그냥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 바쁘다고 주문하는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를 한정하여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품격을 지키는 일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때에 인사가 없으면 먼저 말을 던지고, 그래도 인사가 없으면 되돌아 나와야 한다. 식탁 위에 두루마리 휴지가 놓였으면 자리에 앉을 일 없다. 밥 먹는 곳과 화장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식당에서 어찌 품격을 챙길 수 있겠는가.

공용의 음식이 깔리면 개인 접시를 달라 하여야 한다. 집에서야 한 가족이니 침이 섞인들 어떠하겠냐마는 집 밖에서 타인들과 그럴 수는 없다. 밥이 ‘스텡’ 그릇에, 반찬은 멜라민 그릇에 담기는 것은, 아직은 참아야 한다. 식당 주인들도 한때는 농민이었거나 농민의 자식이었다. 그들도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일에 벅차다. 셀프의 물도 참자. 행주 겸 걸레도 참자. 종업원이 집어 던지는 그릇도 참자. 그 더러운 참이슬 앞치마도 참자. 아직은 참아야 할 것이 많다. 그 정도를 못 참으면 매식을 못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꽤 정갈한 음식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조금의 정성과 섬세함이 음식 맛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품격 있는 주인 또는 요리사가 있는 식당들이다. 이 품격의 식당들을 구별하는 요령이 있다. 매식에서는 밥이 제일 중요하다. 1인용 돌솥밥 같은 것도 괜찮지만 요즘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되는 식당이 많다. 밥은 정성이다. 밥은 갓 지었을 때가 가장 맛있다. 손님이 올 때에 맞추어 그때그때 작은 솥에 지은 밥을 고슬고슬 담아내는 식당이면 품격을 아는 식당이다. 어느 지역 무슨 품종의 쌀인지 아는 식당이면 단골 삼아도 된다. 밥에 그만큼 신경을 쓰면 그 외는 믿어도 된다.

탕이나 전골 등의 음식은, 주방에서 완성한 상태로 내와 식탁에서는 데우는 일만 하게 한다면 품격을 안다 할 수 있다. 요리에는 순서가 중요하다. 온갖 재료 다 쓸어 넣고 끓인다고 탕이 되고 전골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주방에서 순서에 따라 요리하여 간까지 맞추어 내놓아야 한다. 구이도 같다. 삼겹살조차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주방에서 숙련된 요리 노동자가 먹기에 딱 좋게 구워서 내야 한다.

한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는 반찬이 중복되어 깔리면 품격이 없는 것이다. 가령, 배추 김치에 깍두기, 파김치, 오이소박이 등을 같이 내놓아서는 안 된다. 김치는 한 가지면 된다. 산나물정식이 아니면, 나물도 같다.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등이 함께 깔려서는 안된다. 볶은 반찬도 그렇고, 구이도, 무침도 그렇다. 제각각의 조리법에 해당하는 하나씩의 반찬이 식탁에 놓인다면 그 식당은 고품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냉면이나 동치미, 수정과 등 찬 음식을 빙수처럼 낸다면 품격이 없는 것이다. 음식은 너무 차면 혀가 마비되어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너무 매운 음식도 마찬가지다. 아주 맵게 조리되는 음식은 그 식재료가 아주 형편없기 때문이다. 매우면 달아야 하고, 달아야 하니 짤 수밖에 없다. 맵고 달고 짠맛을 중심에 둔 음식을 내는 식당이면 당신의 품격을 위해, 아니 당신의 위장을 위해서라도 피하시라. 맛집을 탐험하고 식경험을 자랑하는 ‘외식 취미’도 호기롭지만, 사실상 반복적인 매식에서 당신의 품격이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