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모델 자매 전성시대

2016.03.17

by VOGUE

    모델 자매 전성시대

    델레바인과 캠벨 자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패션계를 휩쓸고 있는 모델 자매들의 투톱 전성시대!

    패션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 자매는 도리안 리와 수지 파커일 것이다. 1940~5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화보와 패션지 커버 속 모델은 도리안 아니면 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타티아나 파티즈는 크리스티 털링턴, 린다 에반젤리스타, 신디 크로포드,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와 함께 90년대를 풍미한 슈퍼모델 ‘빅 식스’ 중 한 명. 동생 소피 파티즈 역시 모델이었지만 언니만큼 큰 성공을 누리지는 못했다. 카렌 엘슨의 이란성쌍둥이 자매 케이트 엘슨(카렌과 동시에 캐스팅됐다), 안젤라 린드발의 동생 오드리 린드발(언니를 만나러 뉴욕에 놀러 왔다가 캐스팅됐다) 역시 모델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첫 케이스를 제외하고는(도리안은 수지도 함께 소속시킨다는 조건하에 에이전시를 옮길 정도로 동생의 경력을 위해 애썼다), 선택된 한 명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모델 자매의 운명이다. 하지만 최근 셀럽 모델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델레바인과 캠벨가 아가씨들은 독특한 캐릭터와 차별화된 매력으로 이 케케묵은 룰을 깼다.

    “늘씬하고 금발인 데다 상류층 출신인 소녀들은 늘 있었죠. 조디 키드나 자케타 휠러처럼요. 그러나 델레바인 자매의 경우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특별한 뭔가가 더 있어요.” 영국 작가 겸 사회 평론가 피터 요크는 사교계 인사의 조건까지 두루 갖춘 영국 모델 포피와 카라 델레바인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자매가 ‘잉글리시 헤리티지(영국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재단)’ 대표였던 할아버지와 마가렛 공주의 수행원이었던 할머니, 부동산 개발업자인 아빠, 셀프리지 백화점 퍼스널 쇼퍼이자 요크 공작 부인의 절친인 엄마, 콘데나스트의 전직 이사인 대부 등 ‘런던에서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상류층 집안’ 출신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 포피와 카라는 맏이인 클로이와 함께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프랜시스 홀랜드 여학교를 다녔는데,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자애들이 많았던 그 학교에서도 델레바인 자매들은 특히 마르고 긴 다리로 유명했다. 이후 포피와 카라는 진보적인 기숙학교인 비데일스로 진학했는데, 같은 학교에 둘째 딸이 다니고 있던 스톰 모델 에이전시의 사라 두카스는 포피를 먼저 캐스팅했다.

    “우연히 딸 학교에 갔다가 포피를 봤죠. 아름다운 금발에다 런던과 뉴욕, 생 트로페즈를 넘나드는 파티 걸의 전형이었어요. 카리스마가 느껴졌고, 숨소리가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는 아주 매력적이었죠.” 데뷔 후 아냐 힌드마치, 망고, 토마스 사보 광고 캠페인과 루이 비통 2012 프리 컬렉션 룩북을 차례로 촬영하고 현재는 샤넬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그녀. 그러나 포피는 프로페셔널한 런웨이 모델보다 프런트 로나 파티장에 자주 출몰하는 ‘잇 걸’ 쪽에 가깝다.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는 시에나 밀러, 조지아 메이 제거와 친하고, 알렉사 청과 붙어 다니는 그녀가 어디에 초대돼 밤새 어떻게 놀았는지, 2007년부터 사귄 약혼남 제임스 쿡과 2014년에 결혼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들이다. 추측건대 두카스는 길고 마른 얼굴과 가늘게 뜬 긴 눈에서 록 밴드 멤버 같은 느슨하고 퇴폐적인 느낌을 포착한 듯. 그러나 포피는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취향의 전형적인 패션계 소셜라이트로 인기몰이 중이다.

    두카스는 포피를 먼저 데뷔시킨 다음 카라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카라는 두카스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섯 살 때부터 제너비브(사라 두카스의 딸)와 친한 친구 사이였어요. 사라가 학교에 왔을 때 젠이 나를 소개시켰죠. 그전까지 단 한 번도 모델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돼버렸어요.” 아소스닷컴(asos.com)에서 모델 일을 시작하자마자 그녀의 커리어는 우주 로켓처럼 엄청난 속도로 치솟았다. 버버리 패션, 뷰티, 향수뿐 아니라 샤넬, 펜디, DKNY 캠페인까지 골고루 석권한 그녀는 영국을 대표하는 얼굴에서 명실상부 패션계 뉴 아이콘, 제2의 케이트 모스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모델에게 기대하는 건 그들의 개성이죠. 카라는 그걸 가지고 있어요. 그녀만의 특별한 외모와 재미있고 독특한 성격 말이에요.” 영국 <보그> 편집장 알렉산드라 슐만은 그녀의 강력한 지지자다. “흥미롭고 새로운 영국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조롭지 않고 반향을 일으킬 만한 소녀들이 필요한 시기니까요.” 송충이 눈썹, 쏘아보는 듯 매혹적인 눈, 살짝 들린 코, 심통 난 어린애와 앙큼한 팜므 파탈이 묘하게 뒤섞인 얼굴, 기괴한 장난기(중학생 남자아이 수준)의 복합체는 결국 패션계에 ‘카라 델레바인 현상’을 낳고 말았다. 영국 미디어들이 앞다퉈 ‘카라, 그녀는 누구이며 그녀의 매력은 무엇인가’를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그녀의 인기 요인은 다음과 같다. 가장 인기 있는 셀러브리티 무리와 어울려 흥청망청 놀고 다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거들먹거리지 않고, 아이처럼 순수한 구석이 있는 패션계의 유쾌한 ‘미스 쿨’이라는 것. 카라와 수많은 작업을 해온 <러브> 편집장 케이티 그랜드는 이렇게 말했다. “카라는 스패니얼이나 지나치게 흥분한 래브라도처럼 사랑스러워요. 촬영장에 오면 사방을 들쑤시며 뛰어다니다가 구석에 쓰러져서 잠들죠(강아지처럼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어요). 그러다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 금세 다시 살아나요.”

    사교계 집안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성장한 만큼 환경을 기꺼이, 마음껏 즐기는 자세는 델레바인 자매에게 아주 자연스럽다. 이에 비해 모델 자매 붐을 이끄는 또 다른 대상인 캠벨가 아가씨들은 상당히 점잖고 신중한 편이다. 에디 캠벨의 외할머니는 50년대 잘나가던 모델 조안 힉스, 엄마는 전 <보그> 패션 에디터 출신의 건축가 소피 힉스다. 에디의 캐릭터는 마리오 테스티노가 2006년 8월호 영국 <보그> ‘영 런던’ 특집 화보 촬영 후 버버리 캠페인 촬영 때 그녀를 선택하면서 본격적인 모델 커리어가 시작됐다. 델레바인처럼 시끌벅적한 밤 외출을 즐기는 대신 독서(“최근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재발견했어요. 미친 듯이 페이스북과 이메일을 체크하며 사는 건 정신 사나운 일이죠”)나 승마 같은 평온한 일상을 즐긴다. 알렉산더 맥퀸 광고를 촬영한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는 “요구하기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하는 재주가 있어, 모든 걸 아주 쉽게 만들죠”라고 그녀의 영민함을 칭찬했다. 영리하지만 관조적이고 냉소 섞인 유머 감각을 소유한 전형적인 영국 아가씨 에디는 현실 감각을 지키려 노력한다. “엄마는 늘 ‘네 삶에서 더 중요한 걸 찾아야만 해, 왜냐하면 패션계가 널 영원히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말하곤 하죠.” 사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한 갈색 머리에 긴 앞머리를 고수했던 데뷔 초의 에디는 60년대 모즈 룩을 답습한 ‘잉글리시 로즈’의 전형적인 모델일 뿐이었다. 하지만 작년 5월호 미국 <보그>에 실린 스티븐 마이젤의 펑크 화보 ‘Rebel Yell’을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짧게 자르자, 가려져 있던 반항적 캐릭터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기네스 딘 같은 톰보이 외모에 날카로운 고스족 느낌이 더해진 네오-에디 이미지는 하이패션계에 확실한 좌표를 찍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보그>를 비롯한 패션지 커버와 랑방, 질 샌더, 알렉산더 맥퀸, 루이 비통 캠페인까지, 대중적 인지도에서 카라가 이겼다면, 패션계 서열은 단연 에디다.

    그녀에 대한 열광은 이제 막 모델로서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진 동생 올림피아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열한 살에서 열두 살 때쯤 이탈리아 <보그>에 실릴 엄마 기사를 위해 팀 워커가 우리 둘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모델 일을 꿈꾸긴 했지만, 그렇다고 꼭 이루고픈 인생의 목표 같은 건 아니었어요.” 올림피아는 엄마가 일한 분야에 언니가 발을 담그고, 자신 또한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 거라고 말했다. 이제 겨우 얼굴을 알린 단계지만, 2013 봄 시즌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광고 캠페인 메인 모델, 팀 워커 단편영화 <길 잃은 탐험가> 여주인공 같은 비중 있는 역할로 경력을 쌓고 있는 그녀다. “에디와 비교할 때 올림피아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죠.” 에디와 올림피아가 함께 소속된 비바 런던의 디렉터 나탈리 핸드는 이렇게 덧붙였다. “둘은 명민함, 예술적 감성, 삶에 대한 태도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 각자의 개성 또한 뚜렷하죠.” 변신 전 에디처럼 갈색 머리를 길게 기른 올림피아는 독특한 외모에 다소 냉소적인 언니에 비해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항상 키득거리는 귀여운 성격의 소유자. 지금은 런던의 여느 17세 소녀와 다를 바 없지만 패션계는 또 한 명의 캠벨가 모델이 어떤 순간에 어떤 존재감을 보여줄지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자 다른 매력으로 어필하고 있는 델레바인과 캠벨 자매들도 세상 모든 자매들처럼 질투와 경쟁의식에 사로 잡혀 있을까? “부모님께서 카라 기르는 걸 도우면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죠. 여러 가지 면에서 내 딸과 같아요.” 보기와 달리 포피와 카라는 사이가 좋다. “제일 친한 친구예요. 게임도 같이 하고, 가라오케도 함께 가고, 파자마 파티도 하죠. 바보같이 들리지만, 보통 자매들이 하는 건 다 해요. 서로 옷을 몰래 입고 나가거나 립스틱을 훔쳐서 다투기도 하죠!” 올림피아는 언니 에디와 모델 일 외에는 관심 분야나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함께 모델 일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좋아요. 훨씬 친근하게 느껴지고 일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첫 촬영이었던 <러브> 매거진의 화보 ‘Hip Hip Hooray’ 작업 때도 정말 긴장됐는데, 언니와 함께해서 다행이었죠!“

    적어도 패션계에서만큼은 자매, 질투, 경쟁이라는 3종 세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토록 매력적인 귀염둥이 자매들이 있는 한. 이제 독특한 캐릭터와 재능의 이들 자매가 패션 모델계에 도리안 리와 수지 파커 자매 이상의 역사를 쓰게 될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기타
      Sofia Sanchez&Mauro Mongiello, Angelo Pennetta,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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