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의리의 스타 군단

철새처럼 서식지를 옮겨 다니는 요즘 디자이너들. 그들 곁에는 충성을 맹세하는 의리의 스타 군단이 있다. 뜨거운 우정을 과시하는 디자이너와 친구, 바야흐로 B.F.F.F.(Best Fashion Friends Forever) 시대!



“댈러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해 12월 11일 샤넬 초대장을 받은 전 세계 900명의 손님들은 미국 남부 텍사스의 댈러스 외곽으로 모여들었다. 다코타 패닝, 알렉사 청을 비롯한 스타들, 패션 에디터들과 바이어, 그리고 샤넬 VVIP들이 샤넬 공방 컬렉션(샤넬이 소유하고 있는 파리 공방들의 장인 정신을 기리는)을 보기 위해 날아온 것.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라거펠트 곁에 자리한 어느 초대 손님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웬일?’ 투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헤로인, 크리스틴 스튜어트다.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여배우가 샤넬 쇼에 초대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굳건하게 발렌시아가 하우스를 지키고 있던 1년 반 전만 해도, 스튜어트는 발렌시아가 여자, 발렌시아가 뮤즈였다. 수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발렌시아가 쇼장에만 얼굴을 드러냈던 그녀다. 그리고 제스키에르는 새 향수 ‘플로라보타니카’ 모델로 반항기 가득한 이 여배우를 내세우며 우정에 보답했다. 두 사람은 종종 레드 카펫에도 손을 꼭 잡고 등장하며 자신들의 동맹 관계를 자랑하곤 했다. 그토록 발렌시아가에 충성을 맹세했던 배우가 샤넬 쇼장에 나타났다는 건? 제르키에르가 떠난 발렌시아가 하우스와 그녀의 관계 청산이 공식화됐다는 사실(그녀는 여전히 향수 모델로 활동 중이지만)! 게다가 쇼 다음 날 샤넬 하우스는 다음 시즌 광고 모델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낙점했다고 전 세계에 알렸다.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 이브 생로랑과 룰루 드 라 팔레즈 등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곁에는 그들의 친구이자 뮤즈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한 브랜드에 뿌리내리기 쉽지 않은 지금, 그토록 견고한 관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몇 년간 그 브랜드를 대표하는 뮤즈로 활동했더라도 디자이너가 바뀌면 당장 브랜드와 연을 끊어버리는 일도 잦아졌다.

“너라면 함께 도망칠 거야!” 청춘 영화의 한 대목처럼 들리던 이 대사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발렌시아가를 그만두기로 한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에게 보낸 우정의 고백 중 하나였다. 지난해 봄 독일 아트 매거진 <032C>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인터뷰에서 스튜어트가 맹세한 건 발렌시아가가 아닌 게스키에르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마지막 쇼가 끝난 후 니콜라스의 표정은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아이의 표정이었어요. 그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죠!” 발렌시아가를 상징하던 다른 뮤즈들도 스튜어트처럼 디자이너를 따라 발렌시아가를 떠났다. 덕분에 샬롯 갱스부르, 제니퍼 코넬리 등 한때 발렌시아가를 떠올리게 했던 멋쟁이 친구들을 알렉산더 왕의 발렌시아가 쇼장에선 ‘코빼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이들 모두가 오는 3월 파리에서 열릴 게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쇼장에 참석할 확률은? 거의 100%다.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이 진두지휘한 마지막 루이 비통 컬렉션이었던 이번 2014년 봄 시즌 광고 모델로 자신이 사랑해온 뮤즈를 총집합시켰다. 카트린 드뇌브부터 지젤 번천, 에디 캠벨,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까지. 그중 코폴라는 직접 디자인한 루이 비통 백 컬렉션이 있을 정도로 루이 비통과 돈독한 관계를 자랑해왔다. 하지만 그녀가 루이 비통 뮤즈가 된 건 온전히 마크 제이콥스와의 우정 때문. 마크가 떠난 비통 하우스에 코폴라가 남을지는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이렇듯 디자이너와의 친분으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이 된 스타들이 수시로 바뀌는 건 지금 패션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스테파노 필라티의 이브 생로랑은 제시카 채스테인이나 케이트 윈슬렛 등 우아한 여배우들 차지였지만, 에디 슬리먼은 깡마르고 신경질적 외모의 어린 팝스타 스카이 페레이라를 데리고 나타났다. 다리아 워보이, 애냐 루빅, 나타샤 폴리 등 지극히 ‘시크’한 슈퍼모델들만 고집하던 발맹 하우스는 인스타그램 중독자인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들어오면서 셀러브리티들에게 친절한 브랜드로 변신했다. 이번 시즌 광고 모델은 리한나. 발렌티노와는 함께 휴가를 떠날 정도로 발렌티노 숙녀들이었던 기네스 팰트로와 앤 해서웨이 역시 새 디자이너들이 들어온 이후 하우스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스타들도 있다. 디올 하우스의 굳건한 지지자인 나탈리 포트만과 마리옹 코티아르, 제니퍼 로렌스가 대표적인 인물. 갈리아노 사건이 터졌을 때 유대인 핏줄인 포트만은 적극적으로 갈리아노를 비난했으며(그녀는 대표적인 시오니스트), 코티아르 역시 갈리아노와는 상관없이 디올의 품속에 안겨 있다. 소란스러운 갈리아노가 떠나고 진중한 라프 시몬스가 디올에 입성한 후 오히려 나탈리 포트만은 환영의 박수를 보냈을 정도다. 이유가 무엇이든 브랜드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은 스타들에게 소중한 선택이며, 스타와 디자이너가 때로 천문학적 비즈니스 파트너를 뛰어넘는 우정을 지키는 것 또한 변덕으로 보기보다는 훈훈한 풍경이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열린 마음으로 모두와 친구로 지내는 틸다 스윈튼 아닐까? 샤넬의 칼 라거펠트, 랑방의 알버 엘바즈, 디올의 라프 시몬스, 아크네 스튜디오의 조니 요한슨, 겐조의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 빅터앤롤프, 하이더 아커만 등등 그녀의 디자이너 친구 리스트는 끝이 없다. “저는 모든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전화만 걸었다 하면, 정성스러운 포장과 함께 드레스를 보내주는 디자이너들이 줄을 섰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고 스윈튼은 전했다. “그들은 저마다 다양한 감수성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죠. 저는 그들과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신데렐라가 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