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패션계와 사랑에 빠진 흑진주들

올봄 패션계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나?
악마처럼 어둡지만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빛 피부의 흑진주들이다.



매년 초 열리는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배우들의 드레스를 주목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한 가지. 그 시점에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가 그해 패션계 사랑을 독차지할 확률이 가장 크기 때문(디자이너들 또한 누구에게 옷을 입히는 게 가장 현명한지 가늠할 수 있다). 작년 이맘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2013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제니퍼 로렌스는 라프 시몬스의 만개한 꽃송이 같은 디올 오뜨 꾸뛰르 드레스를 입었다(그녀를 시상식 계단에서 넘어지게 만든 문제의 드레스!). 그렇다면 올해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은 레드 카펫 퀸은 누구이며 그녀는 무엇을 입었을까? 바로 립스틱 레드 빛깔의 랄프 로렌 드레스를 입은 케냐 출신 여배우 루피타 엔욘고!

사실 그 드레스는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네스 팰트로가 입었던 톰 포드 드레스와 유사하다는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녀를 패션계 잇 걸로 만드는 데엔 다소 결격 사유가 있다. 그럼에도 미디어들은 엔욘고 이름 앞에 ‘패션 A 리스트의 선두 주자’ ‘패션 잇걸’ ‘레드 카펫 패션 시상식의 우승자’라는 화려한 수식어 붙이기를 망설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작년 연말부터 참석한 크고 작은 시상식에서 요즘 ‘뜬다’하는 디자이너부터 ‘먹어주는’ 패션 하우스 의상들까지 죄다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블랙 드레이프 드레스, 크리스토퍼 케인의 엘라스틱 패널 장식 드레스, 프라발 구룽의 턱시도 코트 드레스, 로다테의 ‘중세 판타지’ 드레스, 미우미우의 앵무새 프린트 드레스, 프라다의 그물 문양 시퀸 장식 드레스, 캘빈 클라인 컬렉션의 화이트 가운, 구찌의 터쿠아즈색 홀터넥 드레스, 엘리 사브의 토마토 레드 레이스 드레스 등등. “행사에 갈 땐 뭔가를 입어야 했고, 사람들이 나를 쇼룸으로 데리고 갔죠. 계획에 없던 일이긴 하지만 재미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내 스타일을 관찰한다는 게 즐겁네요!”

이런 쿨한 태도-디자이너 의상을 입었다는 자의식과는 거리가 먼-는 요즘 여배우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미덕이다. 이런 태도 때문인지 나이를 의심케 하는 극강 동안(83년생 서른두 살)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엔욘고는 풋풋한 열일곱 살 엘르 패닝, 스물여섯 살 엘리자베스 올슨과 함께 2014 봄 미우미우 광고 캠페인에 모델로 등장하면서 패션 아이콘의 위치를 완전히 굳혔다.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총아가 루피타 엔욘고라면, 런던 패션계에서 나오미 캠벨, 조단 던에 이은 영국산 흑진주는 나이지리아 출신 베티 애드울이다. 이른바 ‘최신형 나오미 캠벨’ 버전으로 평가받는 애드울은 첫눈에 탄성을 자아내기보다는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눈매와 우아한 아우라에 빠져들게 만드는 하이패션형 ‘볼매’다. 게다가 “나오미 캠벨은 어메이징한 모델이지만 나는 그녀와 다른 점이 많아요. 나는 베티니까요”라는 줏대 있는 발언으로 ‘똘망한 아가씨’라는 인식까지 심었다. 2011 봄 로에베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캣워크로 데뷔한 그녀는 최근 빅 쇼에 가장 많이 서는 모델 리스트에 합류했다. 2014 봄 컬렉션의 주요 쇼-톰 포드, 스텔라 맥카트니, 알렉산더 맥퀸, 지방시 등-를 체크한 사람이라면 그녀가 이제 눈에 익을 정도. 지난해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쇼트커트로 싹둑 자르면서 한결 모델다운 외모를 갖춘 그녀는 유명세만으로 절대 오를 수 없는 톰 포드 뷰티의 봄 시즌 단독 모델 자리를 꿰찼고 2014년 2월호 영국 <보그>에도 화보로 데뷔했다.



약간 무심한 특유의 표정처럼 애드울이 소리 소문 없이 톱 자리를 향해 고공 질주하고 있다면, <strong>크고 작은 이슈로 세간의 이목을 끌며 떠오르는 또 한 명의 흑진주는 말라이카 퍼스다.</strong> 퍼스의 엄마가 그녀를 프리미어 에이전시에 데리고 갔을 때, 에이전시 대표 캐롤 화이트의 코멘트는 “아몬드 모양 눈과 캐러멜색 피부, 제멋대로 뻗친 머리카락이 갭 광고에 딱”이라는 것. 그러나 그녀는 예상 밖의 다크호스였다. 나오미 캠벨 이후 20년 만에 2014 봄 프라다 런웨이(남성 컬렉션에서 리조트 룩을 입고 걸었다)와 2013 가을 광고 캠페인(함께 등장한 크리스티 털링턴이나 프레야 베하에 비하면 ‘듣보잡’ 수준이었지만)에 등장했고, 순식간에 패션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면서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젬마 워드의 흑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작고 동글동글한 베이비 페이스와 대중성(누가 봐도 친근하고 예쁜 느낌)을 무기로 버버리 프로섬, 발렌티노 등 서로 다른 컨셉의 패션 하우스 광고 캠페인에 연이어 캐스팅되며 주가를 올리는 중. 최근 자신은 케냐, 우간다, 스위스, 영국 피가 섞였기 때문에 흑인 모델이 아니라고 한 게 화근이 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혼혈이에요. 내가 흑인도 백인도 아니라서 정말 좋아요”라는 발언으로 ‘생각 없는 패션계 철부지’ 이미지를 귀여운 얼굴에 더한 게 흠이라면 흠.

<strong>흑진주 모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찌 리카르도 티시를 빼놓을 수 있을까?</strong> 현재 모델스닷컴 1위에 빛나는 조안 스몰스를 2010 가을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 처음 데뷔시킨 이가 리카르도 티시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그걸 계기로 스몰스는 평범한 카탈로그 모델에서 하이패션 모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집시 컨셉의 2012 가을 오뜨 꾸뛰르 컬렉션 때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계 모델들만 캐스팅하기도 했던 그는 지방시 봄 광고 이미지에 에리카 바두와 아시아 차우, 그리고 두 명의 아프리카계 소녀를 등장시켰다. 또 머트&마커스의 흑백사진 속에서 사파리 야생동물 같은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이들은 라일리 M과 마리아 보르헤. 무엇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이 독특한 광고 비주얼이 라일리의 첫 작업이라는 것(그녀의 경력은 지방시 광고, 지방시 프리폴 룩북, 파리 <보그> 화보 하나가 전부). 위로 치켜 올라간 쌍꺼풀진 눈, 달걀처럼 톡 튀어나온 이마, 가파르게 좁아지는 턱 선이 전형적인 아프리카 여인의 현현 같은 그녀는 이 한 번의 작업으로 단숨에 모델스닷컴 핫 리스트에 진입했다. 마리아 보르헤도 티시의 신데렐라이긴 마찬가지. 앙골라 내전을 피해 뉴욕으로 온 그녀는 이주하자마자 2012 가을 오뜨 꾸뛰르 컬렉션과 2013 봄 컬렉션에 지방시 익스클루시브로 서게 된 행운의 여인. 리카르도 티시와 카린 로이펠트(CR 북), 톰 포드(런웨이)가 스리 콤보로 밀고 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눈길을 끄는 흑진주 모델 중 나오미의 농염함을 가장 많이 닮았으며, 끝없이 긴 다리와 포토제닉한 얼굴까지 고루 갖췄다.

이번 시즌은 매끄럽고 새까만 피부의 아프리카계 미인들이 흑진주 못지않게 고귀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런웨이는 한 층 다채로운 아름다움과 재미로 가득할 게 분명하다. 마리아 보르헤를 적극 캐스팅한 캐스팅 디렉터 제임스 스컬리의 말처럼 말이다. “다양성의 공존은 쇼와 옷을 보다 흥미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