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되는 슈즈 디자이너 6

지금까지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잘할 듯한 사람을 유망주라 부른다. 구두를 만드는 이유나 만드는 구두 종류는 다르지만, 내일이 더 기대되는 슈즈 디자이너 6팀을 만났다.

편집숍 플로우 · 슈퍼노말 ·인터섹션, 온라인숍 위즈위드 ·더블유컨셉에서 판매한다.

Gemma Yang by Yang Hyun Sun
한쪽에 커다란 주방이 있고 반대편에는 긴 작업 탁자, 또 한쪽에는 신발 상자와 시계 무브먼트 이미지가 가득한 아이디어 보드가 놓인 아틀리에. 디자이너 양현선이 셰프 친구, 인테리어 디자이너 친구와 함께 쓰는 작업실 풍경이다. “시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봄 컬렉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메탈릭한 요소들이 많죠.” 그녀가 일곱 가지 새로운 아이템을 소개하며 덧붙인다. “자동차나 기계를 좋아해요!” 색색의 레인부츠를 신고 싶어 비 오는 날만 기다리던 꼬마 양현선은 여고생이 되어 ‘어그부츠’라는 다음 까페를 운영했다. 직접 리폼한 어그 부츠 사진을 공유했는데(판매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당시 회원은 무려 2만여 명! 취미로 시작한 일이 점차 진지해졌고 ‘더슈’ 초기 멤버로 2년쯤 일한 뒤 밀라노 마랑고니 패션 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 다음 2011년 봄 ‘젬마 양’을 론칭했다. “제 이름이 한자로 옥돌 현, 구슬 선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원석을 의미하는 ‘젬마’를 브랜드명으로 사용했어요.” 하지만 화려한 원석 컬러는 그녀 컬렉션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슈즈는 다양한 의상과 쉽게 매치할 수 있어야 하기에 튀는 컬러보다 모노톤, 누드 톤을 주로 쓰고 있어요.” 그녀가 중점을 두는 것은 소재다. 가죽, 장식만큼은 무조건 최고급이 원칙. 그래서 젬마 양 슈즈는 날렵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착용감이 편하다. “‘아프니까 패션’이라는 말도 있지만, 실용성과 패션이 공존하는 슈즈를 만들고 싶어요. 카밀라 스코브가드처럼!” 지난 시즌부터 10~12cm 대신 5~8cm힐을 디자인하는 이유다. 디자이너 계한희의 ‘카이’ 컬렉션 슈즈와 가방 디자인을 맡아 네 시즌째 협업하고 있는 그녀의 꿈은? 카린 로이펠트의 과의 협업.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들이 젬마 양 슈즈를 신어주길 원합니다. 한 시즌 신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신을 수 있는 구두를 만들고 싶어요.”

편집숍 허티스트(3월 중 론칭), 온라인숍 29cm에서 판매한다.

Veronica for London by Choi Kwang Seork
이름만으로 여자들이 껌뻑 죽는 슈즈 브랜드는 대부분 남자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 두 명이 만드는 여자 슈즈는 어떨까? “여성의 몸은 완벽한 조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둘이 만났기에 그런 판타지를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베로니카 포 런던’의 디렉터 최광석이 설명했다. 2012년 6월, 최광석과 이훈은 여자들이 한눈에 반할 만한 로퍼로 가득한 브랜드를 론칭했다. ‘베로니카’는 디자이너 이훈 아내의 세례명이고, 런던은 이 부부가 신혼여행을 떠나 2년을 보낸 곳이다. “그가 런던에 있을 때, 구두 공방의 60대 장인이 아내 생일 선물로 플랫 슈즈를 만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내를 위한 슈즈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죠.” 서울로 돌아온 이훈은 편집숍 MD이자 사진가로 활동 중인 최광석을 파트너로 섭외했다. “론칭까지 6개월 동안 매일 9시간 정도 회의를 했어요.” 최광석이 말했다. “한국 디자이너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걸 느꼈죠.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디자인에 전념하고, 나머지 기획,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이런 인터뷰는 모두 제가 맡기로 했어요.” 시즌별 컬렉션 대신 비정기적으로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때마다 공개하는 식이지만, 올해의 전체 테마는 있다. “빈티지 소재를 개발 중입니다. 여러 시도 끝에 9개월 만에 완성되는 경우도 있죠. 지금 실험 중인 것은 레이저 커팅을 이용한 문양들입니다.” 스웨이드 슈즈를 신은 날,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는 최광석과 초등학교 때 엄마가 골라준 신발이 맘에 들지 않아 등교를 거부했다는 이훈이 슈즈를 만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집불통이라고 놀리면서도 서로를 평생의 벗으로 지칭하는 두 사람만큼 완벽한 듀오가 또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슈즈는 낡고 닳아버릴 수 밖에 없죠. 고객이 계속해서 수선을 요청하면 아주 행복할 것 같아요. 우리 슈즈가 트렌디하지 않을 순 있지만, 세상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트렌드는 결국 사랑 아닐까요?”

편집숍 플로우 · 모노트, 온라인숍 위즈위드 · 29cm에서 판매한다.

Yurt by Kim Young Min, Kang Yoon Joo
어느 날, 슈즈 디자인을 전공한 남자와 가방 디자인을 전공한 여자가 만나 수작업으로 가죽 액세서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2년간 인연을 맺어온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했다. 로맨스 영화의 소재로도 손색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유르트’ 디자이너 김영민 · 강윤주 부부다(‘유르트’는 몽골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천막에서 따온 이름). “슈즈와 가방으로 시작했지만, 일상에 필요한 여러 아이템들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로수길에 마련한 공방에서 작업하던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유르트의 특징은 베지터블 가죽이다. 화학약품을 사용해 코팅하는 대신,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가죽 자체에 염색을 하는 방식. “일반 가죽은 오래되면 코팅이 벗겨져 낡은 느낌이 돌지만, 베지터블 가죽은 5~10년이 지나면 더 자연스럽고 예뻐집니다.” 강윤주가 직접 착용하고 있는 가죽 팔찌와 새로 만든 팔찌를 비교하며 말했다. “코팅이 없기 때문에 가죽에 상처가 쉽게 나는 편이라 싫어하는 고객들도 있어요. 매 시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시즌이 지나면 쉽게 잊히는 지금의 패션 사이클 가운데서도, 가능하면 오래 쓸 수 있는 슈즈를 만들고 싶어요.” 아날로그적 감성이 듬뿍 담긴 유르트 컬렉션엔 로퍼나 편안한 블록힐이 주를 이룬다. 두툼한 힐은 진짜 나무를 깎아 만든 듯 보이지만, 나무를 아주 사랑하는 디자이너들이 나뭇결을 프린트한 가죽으로 트롱프뢰유 효과를 낸 것이다(진짜 나무였다면 아주 무거웠을 것이다). 장식을 최소화하는 대신, 좋은 소재와 실루엣으로 디자인을 표현한 것도 유르트의 특징. “가능한 모든 아이템을 절개 없이 통가죽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좋은 가죽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죠. 신혼여행 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가서 소재를 보러 다닐 정도였죠.” 김영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구두와 가방을 만드는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다르지만, 결과물이 각각 구두와 가방일 뿐, 그 안에 담긴 유르트의 근본적인 마음과 태도는 늘 같습니다.”

편집숍 데일리 프로젝트 · 보이플러스 · 어라운드더코너, 온라인숍 29cm에서 판매한다.

Pennant by Ahn Sang Pil, Lee Chang Min, Ko Do Eun
지난해 수지 버블이 서울에 들렀을 때 쇼핑한 여러 패션 아이템 중 가장 만족한 것은? 화려한 스카프를 발목 스트랩으로 활용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페넌트’ 샌들이다. “샌들의 간편함은 유지하되 착용감을 개선했어요. 발목을 압박붕대처럼 고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다 장식 효과가 뛰어난 스카프를 선택했죠.”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페넌트의 안상필이 설명했다. 안상필과 이창민이 2년 전 론칭한 페넌트는 얼마 전 고도은이 합류해 3인의 공동 디자인 체제를 확립했다. 커다란 테마가 ‘페스티벌’이기에 로고 역시 깃발이며, 브랜드명도 ‘삼각 깃발(pennant)’로 정했다. 물론 그들의 슈즈도 매력적이지만, 브랜드 페넌트는 보다 더 특별하다. “슈즈 브랜드라기보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이창민이 설명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많아요. 실현시키는 접점은 많지 않지만, 하나의 주제를 정한 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결심했어요. 우리는 슈즈 개발에 누구든 함께할 준비가 돼 있죠.” 덕분에 디자이너 최지형, 언바운디드 어위, 니트 브랜드 미수 아 바흐브, 그래피티 아티스트 또마, 매거진 <크래커> 등등의 협업이 이미 성사됐다. 다음 협업은? 안상필은 ‘쓰리엠’ , 이창민은 이명세 감독, 고도은은 ‘플랫 아파트먼트’! “<보그 코리아>와도 함께하고 싶어요! 세계시장에서 공감을 얻을 만한 디자인이 나올 것 같거든요.” 2012년 10월 전시를 통해 첫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페넌트의 2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우리는 분명한 이유 아래 디자인하고, 그 이유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청담 플래그십, 온라인숍 위즈위드 · 더블유컨셉, 웹사이트(voyage12.com)에서 판매한다.

Voyage XII by Kim So Jin
김소진이 슈즈 디자이너가 된 이유는 돈을 주고 사고 싶은 슈즈가 없어서였단다. “4년 전, 결혼 준비 중에 예쁜 웨딩 슈즈 찾기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인터넷에 ‘구두는 어떻게 제작하나요?’라고 검색해보니 성수동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무작정 성수동 공장들을 찾아다녔어요.” 패션을 따로 공부하진 않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온갖 패션지를 섭렵했다는 그녀는 놀라운 추진력으로 웨딩 슈즈 브랜드 ‘브라이드앤유’를 론칭했다. 그리고 1년 전, 매니시한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이 그대로 담긴 웨지힐 브랜드 ‘보야지 트웰브’를 선보였다. “웨지힐을 신고 편안하게 여행한다는 의미로 ‘voyage’에 웨지의 메인 부속 열두 가지를 뜻하는 ‘XII’를 더했어요. 2012년부터 준비했다는 의미도 있죠.” 100% 웨지힐로 구성된 보야지 트웰브는 남성 슈즈에 웨지를 더한 형태가 기본. 하지만 투박하지 않고 페미닌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런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모든 라스트를 따로 제작했어요. 웨지도 뒤에서 보면 스틸레토 같은 느낌이 나도록 했죠.” 그녀는 보야지 트웰브를 신는 사람들을 ‘보야저’라 부르며 늘 보야저가 어떤 슈즈를 원할지 상상한다. 각각의 슈즈에는 전 세계 도시명을 붙이는데, 서울부터 카라카스, 베른, 웰링턴, 뉴욕 등 이미 50여 개 도시가 등장했다. 2014 봄 컬렉션엔 화사한 꽃무늬와 슬립온도 선보일 예정. 슬립온에도 2cm 웨지를 숨겨 5cm의 효과를 줬다. “타비타 시몬스를 보며 늘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영화학과 출신에 모델과 스타일리스트를 거쳐 구두 디자이너로 성공했으니까요. 저는 그녀의 에스파드류를 즐겨 신어요.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슈즈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보야저들이 원하는 슈즈가 무엇인지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클래식하고 편안하며 담백한 슈즈. 지나치게 멋 내지 않았지만 멋스러운 느낌!”

합정 플래그십, 편집숍 플로우· 비이커 · 유니크모먼트, 온라인숍 29cm · 위즈위드 · 더블유컨셉, 웹사이트(acrobatshoes.com)에서 판매한다.

Acrobat by Lim Jae Yun
합정동 ‘아크로밧’ 플래그십 매장은 알록달록한 프린트, 아프리카를 모티브로 한 사진, 아기자기한 감성의 슈즈들로 가득하다. 디자이너 임재연은 8년간 빈티지 편집숍 ‘재동씨(패션 전문가 고객들이 많다)’를 운영하다 지난 2011년에 슈즈 브랜드를 론칭했다. “빈티지 제품 바잉을 위해 외국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유럽에서 발견한 슈즈들은 하나 같이 독특하면서도 아주 편했어요. 한국에는 왜 이런 브랜드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편한 슈즈를 발견하면 죄다 해부해서 구조를 살펴보는 습관은 이때부터 생겼다. 그녀는 구두 외에 운동화, 기능성 슈즈는 물론, 효도 신발까지 뭔가 새로운 신발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두 신어본다.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아크로밧’. 곡예사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구두 이미지는 딱딱합니다. 하지만 곡예를 하듯, 무엇이든 담기 쉬운 구두를 만들자는 의미죠.” 매장을 가득 채운 아프리카 모티브는 이번 2014 봄 컬렉션 테마다. “아프리카 색감을 좋아해요. 특히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한 뒤 많은 영감을 얻었죠.” 임재연이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기하학적인 아프리카 부족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패턴을 개발해 가죽, 패브릭, 실크 등 다양한 소재에 프린트했어요.” 작년 ‘H&M 디자인 어워드’ 우승자 김민주의 의상에 매치된 슈즈 역시 임재연의 솜씨. “그녀는 ‘재동씨’의 VVIP 고객이었어요. 제가 리폼한 빈티지 의상들을 특히 좋아했죠.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결승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고, 내친김에 같이 준비하자는 얘기를 나누게 됐죠.” 이달 말, 아크로밧과 김민주 협업 컬렉션이 출시된다. “패션은 사치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걸 의식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고객 중에는 멋쟁이 할아버지는 물론, 엄마 친구도 있어요. 런던에서 작은 팝업 스토어를 열었을 때 연령에 상관없이 좋아해준 고객들이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