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다큐멘터리 트렌드

한때 패션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패션계는 화려하고 달콤하게 미쳐버린 이상한 나라였다.
최근 제작되고 있는 논픽션들은 보다 가까운 곳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패션계를 바라보고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셉템버 이슈>를 비교할 때, 당신은 어느 쪽이 더 흥미롭다고 느끼는가? 백발 마녀 편집장이 주변인들을 어떤 식으로 고문하는지와 패션계 정치적 알력 다툼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아니면 유명 스타일리스트 에드워드 에닌풀이 윈투어를 만족시키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거나, 붉은 머리 그레이스 코딩턴이 윈투어와 대립하는 스릴 넘치는 실제 현장? 일반적으로 논픽션은 픽션에 비해 지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패션계는 실제 상황이 가상 세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흥미진진한 곳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대중적인 관심의 고조와 블로거의 등장으로 이런 패션계를 속속들이 꿰고 즐기는 인구가 사상 최대치에 이른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90년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프레타 포르테>, 크리스티 털링턴에 대한 다큐 <캣워크>, 2009년 로익 프리장의 <더 데이 비포>시리즈를 보고 감동받거나 환상을 품는 사람은 없다.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의 파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분위기와 자기애로 충만한 캐릭터들, 스케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톱 모델의 하루,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 디자이너와 잔뜩 긴장한 스태프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패션쇼 직전의 백스테이지는 패션계를 처음 접했을 때 대면하게 되는 겉면의 반짝이는 포장지일 뿐. 프로엔자 스쿨러와 소니아 리키엘, 펜디, 장 폴 고티에 백스테이지를 촬영한 프리장 감독의 표현 그대로다. “서커스죠. 그렇지만 정말 흥미로운 서커스예요.”

이렇듯 과거의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담아낸 일종의 패션 판타지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등장하고 있는 패션 다큐는 예전과 다른 양상으로 패션계 울타리 안팎 사람들 모두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이 리얼리티 쇼들은 화려한 깃털 장식과 반짝이는 시퀸, 시야를 가린 마스크를 벗겨낸 다음, 한결 친근하고 솔직한 시선으로 패션계를 담아낸다.

“금으로 만든 새장 안에 있을 땐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기 쉽죠. (다시 현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기적이기 쉬운 패션계에서 그나마 덜 자기중심적일 수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 개봉한 <마드모아젤C>는 카린 로이펠트가 파리 <보그>를 떠나서 첫 번째 CR 북을 만드는 9개월의 과정을 담은 다큐다. 영상 속 카린은 대부분 사람들이 패션과 퇴폐미 그 자체일 것이라고 추측한 것과 달리 일상적이고 보편적이다.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죠. 30년 동안 여전히 같은 남자와 살고 있고요. 그래서 내 판타지는 패션 사진 속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부르주아 교육을 받으며 자랐거든요. 겨울에 흰색 신발을 신어선 안 되고, 블랙은 화이트와 매치하면 안 되고, 몸에 문신도 없고,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인적도 없어요. 피어싱도 없죠. 그래서 아마도 내 반항적 기질들은 패션 사진에 맞춰진 것 같아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촬영 시점에 임신한 딸 줄리아와 손녀 로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그 집착은 그녀의 창의적인 작업에 그대로 투영된다. “첫 번째 CR 북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건 ‘삶은 무엇인가?’예요. 줄리아가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이어서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 온통 사로잡혀 있죠.” 그리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의 연속(오뜨 꾸뛰르 의상을 선점하기 위한 눈치작전, 캐스팅한 모델 스케줄의 갑작스러운 변경, 새파랗게 어린 사진가와의 신경전, 두 배로 초과한 제작 예산, 넘치는 페이지, 논란이 됐던 전 상사의 압박까지).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패션 여제로서의 그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뉴욕타임스> 미리암 베일이 평한 대로 “가장 울림 있는 패션 이미지가 어떻게 사적인 집착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강한 인상, 그리고 카린 본인이 바란 대로 “패션계는 다소 미친 구석이 있지만, 멋진 바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패피들에게 가장 친근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 빌 커닝햄을 추적한 <빌 커닝햄 뉴욕>은 패션계를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곳’처럼 보이게 한다. 그의 정체를 알 리 없는 누군가에게 그는 그저 ‘자전거를 타고 맨해튼 거리를 돌아다니며 똑딱이 카메라를 눌러대는, 20달러짜리 거리 청소부 재킷을 입은 팔순 넘은 할아버지’일 뿐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센 그가 2주에 한 번 <뉴욕타임스> 반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브닝 아우어스’와 ‘온 더 스트리트’ 칼럼의 주제를 정하고, 사진을 골라 아트 디자이너에게 레이아웃까지 일일이 지시한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 우아한 여자도 들어가야 해.” “지난주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아니, 아니야.” 아트 디자이너가 레이아웃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진을 반으로 자르자,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퍼붓기 시작한다. “뭐하는 짓이야, 제정신이야? 대체 네 감성은 어디 간 거니? 뉴욕에서 가장 우아한 여자 중 한 명을 반 토막 내다니!”… 그의 숨겨진 능력은 그것뿐이 아니다. 한번은 과거 제프리 빈이 선보인 드레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런웨이에 올린 아이작 미즈라히 컬렉션 사진을 비교해 둘 사이를 완전히 틀어놓았을 정도로, 패션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기억력의 소유자다.

이렇듯 지난 50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거리 패션 사진가 겸 사회 문화 기록가 역할을 해왔지만(빌은 사진을 통해 크로스드레서, 동성애자 등 사회 문화적인 이슈까지 다뤘으며 스스로 사진가가 아니라 카메라를 이용하는 ‘리포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는 허름한 야전침대를 제외하곤 자신의 필름 파일과 캐비닛으로 가득한 비좁은 스튜디오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패션이라는 경계와 모든 가치를 떠나 그에 대해 경이로운 감정을 갖게 되는 건, 80년대 초 오리지널 <디테일> 매거진(콘데나스트사에 팔리기 전엔 독립 여성 패션지였다)의 100페이지 이상을 직접 촬영한 런웨이 사진으로 채우면서도 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던, 종교에 가까운 맹목적인 애정과 마주하게 될 때다. “돈이 가장 싼 거죠. 자유가 가장 비쌉니다.” 30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다. “돈을 받지 않으면 네가 뭘 하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어. 그거야말로 모든 것으로 통하는 최고의 열쇠지!”

과거에 제작된 영화 중엔 패션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 흥미롭지 않은 작품도 상당수였다. 그러나 <인 보그 : 디 에디터스 아이>는 패션계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산발적이고 불친절할 수 있지만, 패션 기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보그> 120년 역사를 대표하는 8명의 전·현직 패션 에디터들이 풀어놓는 촬영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그동안의 고생이 ‘국적을 불문하고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임에 큰 위로를 받는다.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연예인 촬영.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컨셉과 전혀 맞지 않는 옷과 액세서리를 두 대의 차에 가득 실어서 가져왔더군요. 물론 우리가 준비한 옷은 단 한 벌도 입히지 못했죠!” 고생스러운 해외 촬영. “터키의 외딴 산기슭으로 촬영을 하러 갔을 때 공무원들은 우리를 평화 봉사단으로 착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아니에요, 우린 <보그>예요!’” 물론 공감대보다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일화도 있다. 그레이스 코딩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화보 촬영을 하다가 옷의 러플 장식이 카메라 반대편에 달린 걸 발견했고, 그 현장엔 마침 앨리스의 고양이 ‘디나’ 역할을 하러 온 게스키에르가 있었던 것. “그레이스가 물었죠, 뭔가 해줄 수 있어요? 그래서 얼마나 시간을 줄 수 있냐고 되물었고, 그녀는 30분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말했죠. ‘45분은 어때요?’” “결국 게스키에르가 그 아름다운 러플을 전부 떼어내 반대편으로 옮겨 달았어요. 아름다운 러플이었지만, 세상에,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지 뭐예요!” 그리하여 도달한 결론은 전 세계 <보그> 기자들은 사진을 위해 뭐든 실행에 옮긴다는 것!

그러나 자기애적 시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 더군다나 특정 이름과 연계됐을 때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뉴욕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11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스캐터 마이 애쉬즈 앳 버그도프스>는 모든 디자이너가 자신의 제품을 팔고 싶어 하고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쇼핑을 하는 꿈 같은 공간으로 이 백화점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틀에 박힌 방식으로 전개되는 와중에도 60년대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85세 퍼스널 쇼퍼 베티와 괴팍하고 엄격한 쇼윈도 장식 전문가 데이비드 같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존재들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패션을 주제로 한 픽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논픽션 패션 다큐멘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프랑스의 TV 채널 프리미에르는 지난 1월 케이트 모스의 40세 생일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케이트를 찾아서>를 방영했고, 가장 최신작은 빅토리아 베컴의 5년간의 디자이너 스토리를 다룬 필름이다. 앞서 말했듯 패션계는 현실 그대로를 보여줄 때 가장 다이내믹하다. ‘이 바닥’을 끊임없이 풍부한 곳으로 만드는 주역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베일에 가려진 이들이 패션계를 조명하는 필름 또한 흥미롭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