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션계의 관심사, 손가락

2016.03.17

by VOGUE

    패션계의 관심사, 손가락

    열 손가락 모두 장식하는 반지들, 손끝을 살포시 드러낸 장갑,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네일 컬러와 네일 주얼리, 타투…
    지금 패션계의 관심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손가락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가 착용하는 모든 패션 아이템이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즘, 전지현이 드라마 제작 발표회 때부터 열 손가락에 모두 끼고 있던 디디에 두보 반지들 역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천송이가 열 손가락에 끼었다는 의미로 ‘열송이 링’이란 별명이 붙은 이 얇은 반지들 이외에도, 반지 네 개를 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스리 핑거 링(three finger ring), 손가락 관절 부분에 끼우는 너클링 등 그녀의 손가락은 늘 반지들로 채워져 있다(맹장염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순간조차!). 톱스타 역할이니만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최신 트렌드 아이템으로 완벽하게 차려입어야 하지만, 다른 주얼리에 비해 반지가 유난히 눈에 띄는 건 당연하다. 지금이야말로 반지 전성시대니까. 지난가을만 해도, 클로에의 청순한 숙녀들이 미니멀한 골드 링을 겹겹이 끼고 런웨이에 등장했고, 알렉산더 맥퀸의 우아한 숙녀들은 진주 장식 스리 핑거 링으로 손가락을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았나. 비비안 웨스트우드 또한 쇼에서 무시무시한 너클링들을 선보였다. 델피나 델레트레즈, 혹은 가이아 레포시 같은 몇몇 주얼리 디자이너들, 그리고 마니아적 성향을 지닌 열성 팬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독특한 반지들이 언제부터 패션계 깊숙이 침투한 걸까? 해답은 반지 그 자체가 아닌, 반지의 역할과 패션의 속성에 있다.

    사실 패션계는 늘 어느 하나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손가락과 손끝, 즉 손톱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유난히 관심이 쏠려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런웨이. 가을, 겨울 컬렉션에 장갑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지난 2013 F/W 시즌은 조금 특별했다. 요지 야마모토는 검정 가죽 장갑 위에 파랑, 빨강, 분홍, 초록 등의 네일 팁을 붙여 마치 장갑 위에 매니큐어를 칠한 것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그야말로 네일 아트 마니아를 위한 장갑!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평소 본인이 즐겨 착용하는 핑거리스 장갑에 체인과 스터드를 잔뜩 달았고, 손톱 부분만 살짝 잘라낸 장갑까지 선보였다. 트위드 장갑 끝에 빨강 네일 컬러를 바른 손톱을 드러낸 모습은 더없이 관능적인 느낌! 사라 버튼은 반대로 손가락 부분만 남아 있는 장갑을 만들기도 했다. 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장갑을 손목 부분에만 착용하고 손가락은 훤히 내놓아 장갑을 낀 것도, 끼지 않은 것도 아닌 독특한 스타일링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장갑의 역할이 줄어들게 마련인 봄여름 시즌은 어떤가? 아트 페어로 변신한 샤넬 봄 런웨이 위에는 핑거리스 장갑이 이번에도 대거 등장했다. 두꺼운 트위드 대신 섬세한 레이스와 가죽 위에 화려한 비즈 장식을 더한 모습.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의 ‘쇼걸’들을 위해 팔찌와 반지가 하나로 이어진 듯한 이국적인 주얼리를 만들었다(2년 전 샤넬의 파리-봄베이 공방 컬렉션의 그것과 유사한 모습). 이 밖에도 프라다 모델 손등을 휘감은 색색의 깃털 장식, 그야말로 ‘열송이 링’의 정석을 보여준 베르사체 걸들의 레이어드 반지들, 종교적 이미지들을 섬세하게 그려 넣은 하우스 오브 홀랜드의 네일 아트 등등.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손가락 꾸미기에 열정적이었다.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면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네일 제품을 이용하는 것. 세상엔 전문 네일 브랜드들이 셀 수 없이 많고 국내엔 저가 뷰티 브랜드에서 나온 네일 제품들조차 가격 대비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샤넬, 디올, 이브 생로랑 등 뷰티 라인이 따로 있는 패션 하우스의 네일 제품, 혹은 아메리칸 어패럴, &아더스토리와 같은 패션 브랜드의 네일 제품도 꽤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톰 포드가 직접 컬러를 선택하고 패키지를 디자인한 네일 제품이라면 어떤가! 톰 포드 뷰티 라인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단연 열여섯 가지 컬러로 구성된 네일 패키지. 검정과 골드가 어울린 케이스부터 심플한 폰트의 로고, 관능적인 컬러, 뛰어난 발색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다(엄청난 가격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지난가을, 발맹은 ‘네일 꾸뛰르 컬렉션’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빨강, 검정, 베이지 네일 컬러와 무광택 톱코트를 깔끔한 흰색 박스에 담았는데, 일단 패키지를 보면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7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하비 니콜스에서 판매하자마자 순식간에 ‘완판’됐다). 또 미드햄 키르초프는 영국의 뷰티 브랜드 ‘락뷰티 런던(rockbeautylondon.com)’과 함께,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는 ‘밍스 네일’과 함께 매 시즌 깜찍한 네일 스티커를 만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히 패션 브랜드의 네일 제품을 사용하고 런웨이 모델들의 네일 아트를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각 시즌의 컬렉션 룩을 네일 아트로 표현하는 것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수지 버블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프라다 봄 컬렉션을 모티브로 한 네일 아트를 자랑했다. 미우치아 프라다에게 영감을 준 각각의 아티스트 작품을 그려 넣었는데, 도쿄의 네일 아티스트 나기사 가네코의 작품이라고. 그곳 네일 스튜디오에는 매 시즌 각 컬렉션 룩을 모티브로 한 샘플 북이 마련돼 있는데, 일본의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세계 곳곳의 패셔니스타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직접 도쿄까지 갈 수 없다면? 셀프 네일 아트로 런웨이 룩을 손톱 위에 그려 넣는 과정을 보여주는 ‘미스레이디핑거(missladyfinger.com)’ 같은 웹사이트가 있다. 발렌시아가 봄 컬렉션의 레이저 커팅, 어덤의 섬세한 꽃무늬, 셀린의 예술적인 붓 터치 등을 작은 손톱 위에 구현한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모든 것을 이미 섭렵했다면 좀더 특별한 방법들이 남아 있다. 우선 지난해 11월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국 <바자> 표지를 장식한 마돈나의 손가락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날카로운 금빛 손톱들! 비욘세, 미아, 리한나, 베스 디토 등 팝 스타들의 뮤직비디오, 여러 패션지 화보에서 독특한 네일 장식을 발견해 이름을 확인하면, 영락없이 H&H 작품이다. 네일 아티스트 홀리 실리우스와 주얼리 디자이너 한나 워너가 만나 론칭한 브랜드 H&H는 다채로운 디자인의 3D 메탈 네일 팁을 만든다. 금, 은, 루비, 사파이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진주 등 다채로운 소재를 활용해 일회성 네일 팁이 아닌, 손톱을 위한 주얼리 개념으로 만드는 것. 2012년 가을 뮈글러 컬렉션에 등장한 뾰족뾰족한 코뿔소 네일이 바로 두 사람의 솜씨다. 20만원이나 되는 금액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웬만큼 대단하지 않으면 선뜻 구입하기가 쉽지 않지만, 웹사이트(holly-hannah.com), 하비 니콜스, 꼴레트, 10 꼬르소 꼬모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팬층이 형성되는 중이다.

    그래도 손가락 꾸미기의 마지막 단계는 타투가 아닐까? 카라 델레바인이 유명해진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검지의 사자 무늬 타투 때문. 반지를 낀 것처럼 보이는 이 타투는 그녀의 첫 번째 타투로 그녀의 셀카에 자주 등장한다. 손가락에 하는 타투는 그 어떤 신체 부위보다 고통이 심하다(상대적으로 아픈 부위인 손목, 귀와 비교할 때도 훨씬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과 타투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손가락에 타투를 하지 않은 이는 드물다. 리한나, 마일리 사이러스, 비욘세, 앨리스 데랄, 프레야 베하 에릭슨 등등. 특히 카라는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다른 쪽 손가락에 CDJ라고 이니셜까지 새겨 넣었다. 어쩌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간을 지칭하는 여러 학명 중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운 두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지금 패션계는 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대신, 그곳을 위해 무언가 만들고 그곳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니 언젠가 우리를 ‘호모 데코르(Homo Decor)’라 부르는 날도 오지 않을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기타
      Kim Weston Arnold, James Cochrane, WWD / Montrose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