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옷을 탐하지 마라!

지금 패션계는 카피, 오마주, 패러디, 레플리카, 인스피레이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게다가 몇몇 패션 가문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다른 패션 명문가의 유산을 탐했다.
그야말로 독창성과 정체성이 불분명해진 시대.



대관절 누가 카피, 패러디, 오마주, 레플리카, 인스피레이션을 명쾌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제레미 스콧의 이력에서 모스키노를 위한 첫 번째 쇼로 기록될 2014 프리폴 컬렉션은 카피, 패러디, 오마주? 그는 94년에 숨진 브랜드 창립자 프랑코 모스키노의 유머와 파괴적 감각을 공유한다는 신념으로 샤넬 아카이브를 대놓고 베꼈다. 동그란 금장 단추가 달린 흑백 카디건 재킷, 흑백 콤비 슈즈, 2.55 백까지. 심지어 샤넬 재킷을 응용한 가방은 칼 라거펠트가 봐도 “어쭈!”라고 할 만했다. 이게 다였을까? 골드 체인으로 칼라와 라펠, 호주머니를 장식한 코트, ‘Moschino’ 철자를 매단 체인 장식 카디건 팬츠 수트, 카디건 재킷을 야구 점퍼와 혼합한 의상 등등. 스물일곱 벌은 거의 전부가 샤넬 아카이브를 집중 탐구하고 해부한 결과였다.

제레미 스콧이 모스키노를 통해 샤넬을 염탐한 배후에는 스타일리스트 카를린 서프 드두질르의 영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제레미의 지지자(알렉산더 맥퀸과 이사벨라 블로우의 관계처럼)를 자처하며 여러 작업을 함께 했다. 사실 카를린은 패션계에서 ‘블링 블링 샤넬’ 이미지로 유명하다. 그녀는 80년대에 미국 <보그>에서 일하던 시절, 샤넬 미니스커트와 투 머치 스타일링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녀의 입김과 손끝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생전의 프랑코 모스키노는 동시대 하이패션을 풍자하는 것을 전매특허로 삼아 패션 피플들에게 박장대소를 선사했다(그런 방식은 로젤라 자르디니 시대에도 계속됐다). 그리고 2014년 정초부터 제레미의 발칙한 풍자 실력과 그의 뮤즈인 카를린의 취향이 샤넬을 통해 윈윈 효과를 누렸다.

‘언체인 마이 하트’라는 팝송이 떠오를 정도로 체인으로 아가씨들의 몸을 속박했던 발맹은 또 어떤가? 올리비에 루스테잉 역시 샤넬 카디건 재킷을 이번 컬렉션의 기본 뼈대로 정했다. 그런 뒤 체인, 퀼팅, 흑백, 글렌체크 등 누가 봐도 한눈에 “저건 샤넬!”이라고 지적할 만한 요소를 추가하는가 싶더니, 그걸로는 성에 안 찼는지 데님, 올인원, 야구 점퍼, 깃털, 격자무늬 등을 겁 없이 집어 넣었다. 이 가운데 대형 체인 팔찌나 챔피언 벨트, 데님에 퀼트 처리된 슬릿 스커트 등은 샤넬 사람들이 보면 남몰래 부러워할 만큼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기운으로 충만했다. 쇼가 끝난 뒤 관객들은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뭔가를 탐구하고 싶었다”라는 루스테잉의 설명이 귀에 안 들어오는 눈치였다. 먼 훗날(혹은 가까운 미래에), “샤넬 하우스의 세 번째 후계자 후보로 나 정도면 꽤 자격 있지 않나요?”라고 자신감을 보이는 듯한 루스테잉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을 뿐.

보시다시피 발맹과 모스키노의 최신작들은 멋쟁이인 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똑똑한 짝꿍이 반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며 끼로 똘똘 뭉친 옆자리 친구에게 답안지를 보여주며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샤넬은 라거펠트만의 샤넬이 아니다. 올리비에의 샤넬이자 제레미의 샤넬이다. 적어도 이번 시즌만큼은. 사실 샤넬 아카이브는 그 금쪽같은 성분들이 불변의 스타일로 인식되면서부터 모두에게 ‘열린 아카이브’가 됐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저작권 문제가 심심찮게 불거지는 요즘, 제레미와 올리비에의 행위를 두고 샤넬 쪽 사람들이 디자인권을 운운하며 법원에 소송하진 않는다. 왜냐고? 그들이 심취한 샤넬의 유산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코코 샤넬 여사의 컬렉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오히려 저작권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인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두 가지 다른 법적 관점 중 첫 번째는 이렇다. “패션 디자인을 문화 예술의 한 분야로 보지 않고 산업 영역으로 볼 경우, 디자인권이나 상표권을 등록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디자인권은 15년이면 소멸되기에 샤넬 여사가 디자인권을 등록했다 해도(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미 법적 시효가 소멸됐죠.” 물론 10년마다 갱신(?) 등록 가능한 상표권은 영구적이지만, 모스키노나 발맹 컬렉션에서 샤넬 로고를 따라 한 건 아니니 상표권 침해는 아닌 셈이다.

두 번째는 패션 디자인을 문화 예술의 한 분야로 볼 경우, 샤넬의 유산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저작권은 작가 사후 50년, 혹은 70년까지 보호되기에 샤넬 여사가 세상을 떠난 1971년부터 70년이 지난 2041년까지는 디자인에 대한 권리가 샤넬 측에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모스키노와 발맹이 명백히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아직 패션 디자인을 산업 영역으로 한정시킬 건지, 문화 예술 영역으로 볼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유럽권에서는 패션 디자인에도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하는 움직임이 있는 반면, 북미권에서는 그렇지 않죠.”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 마지막 쇼를 위해 평소 미우치아 프라다와 레이 카와쿠보를 존경한다는 명분하에 그들의 옷을 노골적으로 흉내 내 무대에 올렸다. 또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는 자기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뒤지는 대신 마담 그레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당당하게 설명했다. 루이 비통의 경우 기성복 역사가 채 20년도 안 된다. 제이콥스가 16년 전 루이 비통을 맡은 뒤부터 기성복 아카이브를 만들었기에 역사를 되새기는 게 쉽지 않다. 반면에 지방시는 베티나 블라우스부터 헵번까지 수많은 유산을 보유한 유럽 패션 명문가다. 하지만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오매불망 자기네 브랜드 자료 보관실만 뒤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티시가 이번에 매료된 마담 그레는 브랜드 전개가 중단된 상태다. 그저 그녀의 옷을 기리는 전시나 출판물이 꾸준히 진행될 뿐. 그런 면에서 티시는 떳떳이 마담 그레 하우스의 대표작을 재해석할 수 있었다.

만약 마담 그레에게 영감을 얻었다는 티시의 이번 컬렉션이 여러모로 반향을 일으켜 성공으로 끝난다면? 거대한 재력가나 묘령의 투자자가 마담 그레라는 브랜드를 되살릴지 또 누가 알겠나. 패션에 초현실주의가 인기를 끌자 죽었던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토즈 그룹에 의해 부활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