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집 음반과 함께 돌아온 이선희

‘J에게’로 데뷔한 후, 30년 세월 동안 멋진 언니로 우리 곁에 머물러준 이선희가 15집 음반을 발매한다.
이선희의 맑고 뜨거운 목소리는 여전히 믿음직하다.
한국 가요계의 역사가 된 그는 지난 추억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는 전설의 가수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원피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안경은 린다 패로우 럭스(Linda Farrow Luxe at Handok).

이선희가 돌아왔다. ‘J에게’를 부른 지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모든 게 그대로다. 짧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 특유의 고운 목소리까지 여전하다. 이 전설의 여가수가 촬영장에 들어서자 시간은 84년 여름으로 돌아간다.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 찬 남이섬 야외무대 위에 스무 살의 앳된 이선희가 있다. 이문세와 길은정의 사회로 진행된 제4회 강변가요제에서 교내 음악 동아리 ‘4막 5장’의 이름으로 출전한 이선희는 ‘J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날 이후로 거리에선 온통 그 노래만 흘러나왔다. 어느 날인가는 FM 라디오에만 하루 16차례나 방송되었다. 지금까지도 최다 기록이다. 사람들은 잠자리 안경을 쓴 자그마한 체구의 여대생과 그 맑고 뜨거운 목소리에 대해 연일 얘기했다. 초능력 사나이 유리 겔라의 방한으로 집집마다 밥숟가락이 남아나질 않는 동안에도 그해 최고의 이슈는 이선희였다. 그의 노래는 마술보다 매혹적이었다. 신인상과 최고인기가요상, 10대가수상을 모두 휩쓴 건 당연했다. 정규 음반도 나오기 전의 일이다. 그때 처음 ‘언니 부대’라는 게 생겼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이 막 전 구간 개통을 시작하고, 애플사가 맥킨토시를 개발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던 시절의 얘기다.

녹음기 대신 아이폰이 놓인 책상 앞에 이선희가 앉았다. 요즘 그의 주요 일과는 곧 발매될 15집 음반 작업이다. 2009년 <사랑아…> 이후, 작업실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 곡을 준비해왔다. 마침 올해는 데뷔 3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의도했던 건 아니고요. 음반은 그저 충분히 익었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제 안에 차고 넘쳐서 그 넘쳐 흐르는 음악을 담아내고, 또 너무 넘친다 싶은 건 덜어냈어요.” 지난해 가왕 조용필의 화려한 귀환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이선희라는 또 한 명의 가왕이 불러일으킬 새로운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관록 있는 음악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진짜배기 음악 말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새 음반이 발매되기 전부터 발 빠르게 관련 소식을 전해왔다. 이선희는 자신과 함께 80년대 가요계를 양분했던 조용필을 ‘용필 오빠’라고 불렀다. “부담이 돼요. ‘용필 오빠’가 한 음악은 굉장히 트렌디했잖아요. ‘나도 그렇게 가야 하는 걸까’ 고민이 많았어요. 결론적으로 그냥 저는 제 음악을 했어요. 제 것을 지켜나갔죠. 그걸 오히려 새롭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유행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여기에 패기 넘치는 신인 편곡자들의 파릇파릇한 감성이 더해졌다. 음반 제목은 <세렌디피티(Serendipity)>. 눈이 시릴 만큼 눈부셨던 젊음이라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선 미처 보지 못한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이제야 그의 시야로 들어와 따뜻한 음악으로 기록되었다. 어린아이처럼 밝은 눈을 가진 음악가에게 세상은 다시금 새롭다.

아이러니한 건 그의 1집 음반이 <아! 옛날이여>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그는 시간을 거꾸로 사는 듯하다. “하하. 맞아요. ‘아! 옛날이여’를 부르고 다닐 땐 안 어울리게 왜 그런 노래를 하느냔 얘길 꽤 들었죠.”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기엔 확실히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래도 음반은 히트했다. “그땐 생각이란 게 별로 없었어요.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나에게 맞고 안 맞고를 따질 수가 없었어요. 저에게 오는 모든 악보가 살아 있었고, 또 살아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만큼 에너지가 넘쳤고요.” 무반주라도 상관없었다. 다른 가수의 노래라도 기꺼이 불렀다. 노래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무대의상은 늘 바지였다. 드레스 군단 틈에서 그런 이선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여가수는 딱 두 부류였다. 반짝이는 양장 투피스 차림으로 트로트를 부르거나 공주처럼 커다란 리본을 달고 가냘프게 노래하거나. “전 그게 싫었어요. 제 노래는 치마를 입고 부르면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고집을 부렸죠. 한번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가 혼나기도 했고요. 여자 가수는 하다못해 안경도 쓰면 안 된다고 할 때였으니까요.” 빅 브라더가 세상을 지배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전체주의 사회처럼 개인의 자유가 상당 부분 통제받을 때였다. TV는 전 국민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인기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60%를 넘었다. 연예인에 대한 방송사 규제는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강변가요제’ 생방송 당일, PD의 요청으로 현장에서 급하게 치마를 빌려 입고 머리를 파마했던 이선희의 일화는 유명하다.

태슬 스트랩 장식 톱과 스커트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앙고라 터틀넥은 로우 클래식(Low Classic), 슈즈는 그레이하운드(Greyhound), 볼드한 원형 커프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안경은 새빌로우(Savile Row at JUUC).

패션뿐 아니라 그의 음악 역시 보수적이던 당시 한국 가요계의 틀에서 벗어난 스타일이었다. 매 음반이 그랬다. 가수 이선희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첫 번째 곡 ‘J에게’는 잔잔한 발라드라고 하기엔 록적인 느낌이 있다. 헤비메탈만을 틀어주던 신촌 카페 ‘레지스탕스’를 단골로 출입하며 메탈 그룹에서 활동한 고교 시절의 영향이다. 4집에서는 보다 강렬한 사운드로 ‘아름다운 강산’을 편곡해서 부르기도 했다. 신중현이 작사  작곡한이 노래에서 이선희는 폭발적인 가창력이란 게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한편 같은 음반에 담긴 ‘나 항상 그대를’은 리듬앤블루스 분위기를 풍긴다. “기존 가요의 틀에서 벗어나 제 나름의 클래식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이 곡에 대해서 그는 남다른 애정이 있다. “‘알고 싶어요’를 부를 땐 작곡가 김희갑 선생님이 곡의 느낌을 설명해줬지만, ‘나 항상 그대를’은 제 스스로 느낀 감정을 전한 노래예요. 처음이었죠. 이후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나 ‘겨울애상’도 마찬가지예요.” ‘라일락이 질 때’부터는 직접 자신의 감정을 노래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 10집 음반에서 이선희는 전 곡을 작사 작곡했다. “물론 주위에선 말렸죠. 이선희는 좀더 시원하게 질러야 한다, 이건 이선희답지 않다고도 했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용기를 얻었어요.” 음악적으로 그는 계속 성장해왔다. 91년부터 4년 간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음악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잠시 잊었겠지만, 이선희는 스물일곱 살에 서울시의회 의원을 지낸 최연소 여성 시의원이기도 했다.

“정치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어쨌든 시작한 이상 대충 할 수는 없었고요. 저를 우려한 많은 분들에게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답을 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다시 돌아왔을 땐 음악에 대한 열망만 가득했다. 허겁지겁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실패도 경험했다.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시도한 8집 <조각배>는 꽤 아쉬웠다. 오히려 유럽에서 호평을 받은 비운의 수작이다. “제 안에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공부는 됐죠.” 이선희는 ‘인연’이 수록된 13집 <사춘기>를 “나다움의 성숙”을 이룬 음반으로 평가한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돼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인연’은 굳이 영화 스토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음악 자체로 너무나 슬프고 아름답다. 데뷔 때부터 그가 줄곧 노래해온 사랑은 한층 더 깊어졌다. “전 늘 사랑이 궁금하고 애틋했어요. ‘어쩌면 이 나이를 먹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아직도 사랑이지?’ 자책해봐도 그게 늘 그립고 차오르는 걸 어쩌겠어요? 그런데 ‘인연’이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슬금슬금 사라지더라고요. 나이를 먹었나 봐요.” 지난 14집 <사랑아…>는 그 오랜 음악적 화두에 대한 마지막 인사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5집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다.

“갈구해온 모든 걸 터뜨리고 나니까 다른 게 보여요. 엄마도 보이고, 제가 못 보고 살아온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순간들이 소중함을 느껴요.” 팬들도 그런 존재다. 울릉도에 사는 팬은 바다에서 캐낸 해산물들을 잔뜩 싸서 소속사 사무실에 전달했다. 농사를 짓는다는 또 다른 누구는 농산물 꾸러미를 편지 한 통과 함께 서울로 올려 보냈다. “그런 소소한 것들이 주는 힘이 있어요. 굉장히 뭉클해요. 제가 지금도 이분들에게 언니일 수 있고, 또 친구일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나를 참 가득 차게 해요.” 비행기 안에서 수줍은 팬레터를 건네는 조종사, 고기 한 근이라도 더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 하는 정육점 사장님, 목소리를 먼저 알아채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시장 상인들, 매년 그를 기업 행사에 초청하는 넥타이 맨. 같은 시절을 살아온 이들 간에는 묘한 유대감 같은 게 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이들은 서로의 청춘을 기억한다. 누구에게든 삶은 만만치 않기에 그런 서로가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 시간 속엔 이선희의 노래를 통해 위로받고, 또 용기를 얻은 순간도 존재한다. 그 노래들은 한 번 듣고 버리는 요즘의 일회용 음악과는 다른 울림이 있다. “음반이 아니라 음원 발매가 주를 이루다 보니 요즘 음악은 단타로 치고 빠질 수 있게끔 귀에 딱 꽂히죠. 빨리 잊혀지고요. 왜 음악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냐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런 흐름 역시 다 한때죠. 제가 얼마만큼의 역할을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유행은 그 유행을 따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또 달라지게 돼 있어요.”




이선희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면 ‘강변가요제’는 그 시절의 <K팝스타>이자 <슈퍼스타K>였다. 이선희는 <위대한 탄생 2>에 멘토 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과거엔 가요제에 나가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요즘은 노래할 수 있는 창구가 정말 많아졌잖아요. 실력만 있다면 유튜브 같은 SNS 채널을 이용할 수도 있죠. 제가 걱정하는 건 너무 빨리 빛이 바래는 거예요.” 몇 개월에 걸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자칫 가수로서의 생명력을 단축시킬 수 있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경우엔 더욱 위험하다. “음악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것보다 빨리 알려지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기다릴 줄을 모르고 천천히 가는 음악을 두려워하죠. 물론 제가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부분은 참 아쉬워요.”

이선희는 15년을 함께해온 소속사 대표와 함께 고등학생이었던 이승기를 발굴한 바 있다. 그가 바란 건 건강한 스타였다. 인기를 얻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니라 데뷔 후에도 끊임없이 정진해나가는 책임감 강한 스타. “승기는 정말 잘 따라와줬어요. 예의 바르고 성실한 친구죠. 그래서 누군가는 스타답지 않고 너무 심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오랜 시간을 국민 가수로 살아온 이선희 역시 그랬다. 40여 회에 걸쳐 학생 가장 돕기 공연을 개최하고 정신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콘서트를 벌이기도 했던 그는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한 인간이자 공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라봤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는 과거에 머물며 추억을 노래하는 것 역시 경계했다. “처음엔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나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에 대한 책임도 같이 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힘들어요. 쉬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기엔 제가 받은 사랑이 너무 크잖아요. ‘한때 이선희를 좋아했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지금을 사는 것, 그게 저를 좋아해준 청춘들에 대한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아방가르드한 셰이프의 셔츠는 꼼데가르쏭(Comme des Garçons), 메탈릭 플리츠 스커트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조형적인 디자인의 뱅글은 자라(Zara), 안경은 새빌로우(Savile Row at JUUC).

촬영장 한 켠에는 이선희의 팬클럽 회원들이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모아온 사진 앨범과 LP 음반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음반 사진에 포함될 예정인 귀중한 자료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선희의 팬이었다는 오늘 촬영의 사진가 안주영은 연예인을 처음 만난 소년처럼 설레어 했다. “‘갈바람’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테이프를 사서 모았죠.” 이선희는 오랜 팬이 찍어준 <보그>의 사진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사실 저희 집엔 제 사진이 하나도 없거든요. 앨범도 그렇고 가수 이선희와 관련한 흔적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이 사진은 집에 하나 걸어놓고 싶네요. 우리 딸이 이 사진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이선희는 그가 주제곡을 부른 만화영화 속 주인공 하니처럼 명랑하게 웃었다.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다는 딸은 ‘J에게’를 부르던 84년의 이선희보다 이제 나이가 더 많다.

“사실 전 어릴 땐 미술을 할 줄 알았어요. 밴드 활동을 하긴 했지만 노래는 그냥 하고 싶은 취미였고, 언젠가는 미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미술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반대했죠. 미술 도구도 다 버렸고요. 음악도 물론 반대했지만 노래는 맨몸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반항심에 노래를 한 셈이죠.” 요즘도 그는 그림을 그린다. 이선희는 휴대폰 사진첩을 통해 2년 전부터 종로를 오가며 배우고 있는 민화를 보여줬다. 50호 크기 화폭을 가득 메운 주황색 꽃은 아마추어 솜씨라고는 보기 힘들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두 달에 걸쳐 그린 것이라고 했다. “상당한 체력을 요구해 포기했지만, 처음엔 불교미술인 탱화를 하고 싶었어요.” 아마도 불교음악 범패의 전수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는 농담처럼 나중에 환갑잔치 대신 민화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다고도 했다.

화이트 니트 톱은 자라(Zara), 페인팅 터치가 느껴지는 재킷과 팬츠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플랫폼 펌프스는 레이크 넨(Reike Nen).

이선희의 휴대폰 속에는 그림 사진 외에 요즘 매일같이 듣고 있는 음원 목록도 들어 있다. 15집 음반 발매와 함께 진행될 공연에서 부를 노래들이다. 30주년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1년간 전국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처음 그 노래를 불렀을 때와 지금은 제 감성이 다르거든요. 곡을 대하는 태도와 가사를 보는 시선도 변했죠. 지금의 제가 자연스럽게 그 노래에 섞여야 무대에 오를 수 있어요.” 그 노래들을 다 듣는 데만 매일 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쉴 틈이 없다. 홍익대학교에 체육관이 생기던 해 열린 첫 번째 공연부터 장국영과의 조인트 콘서트, 학창 시절 열광했던 스콜피언스와 한 무대에 선 평화음악회, 우리나라 가수로는 네 번째로 단독 공연한 뉴욕 카네기홀 공연까지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해왔음에도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는 그는 한결같이 신인의 자세다.

“오늘 즐거웠어요. 꿈속의 세상을 잠시 다녀온 기분이에요. 예전엔 노래하는 것 외엔 방송도 촬영도 다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알겠어요. 그 순간들 역시 다 즐길 수 있었다는 걸.” 나이를 먹을수록 이선희는 더욱 유연해지는 것만 같다. 소속사에 따르면 차은택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번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팬들은 깜짝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한다. 30년 세월 동안 믿음직한 멋진 언니로 남아준 이선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다. 물론 이선희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 리 없다. “가수로서의 제 삶에 후회는 없어요.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잘할 자신도 없고요. 분명한 건 전 참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시절에 이런 모습으로 있다는 것. 그게 참 행운이에요.” 이선희라는 전설의 가수를 만난 우리 역시 행운이다. 스치는 바람이 불어오는 J의 계절에 언니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