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아 웨스트 백화점의 놀라운 변화

에밀 졸라는 19세기 말에 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백화점을 현대 상업의 대성당이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21세기 서울 멋쟁이들은 현대 상업의 대성당이 시도한 일대 혁신을 경험하게 됐다.
갤러리아 웨스트의 놀라운 변화 속으로!

여성패션팀과 남성패션팀, 라이프&컬처팀과 상품전략팀 소속의 패션 엘리트들이야말로 갤러리아 웨스트 혁신의 주역들. 3년간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진 콜린이 4층 스니커즈 존 앞에서 자칭 ‘크라운 주얼 프로젝트’ 팀과 함께했다. 아래 사진은 스니커즈 존 내부 전경.

서울, 강남, 그다음 압구정동, 다시 로데오…, 이 순서대로 쭉 나열하다 보면 ‘갤러리아’라는 우아하고 세련된 이름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이곳은 동쪽과 서쪽 구역으로 나뉜 채 서울의 패션 감도를 나타내는 지표를 자처해왔다. 두 개의 건물 가운데 왼쪽인 갤러리아 웨스트가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재단장했다. 당대 유행과 최신 패션의 발원지였던 좌측 건물 말이다.

이곳은 늘 마법처럼 반짝였다. 청담동 뷰티 살롱에서 잘 가꾸고 손질한 머리와 손톱, 없어서 못 판다는 가방이나 구두 차림의 아가씨들과 아이돌 그룹 뺨칠 만한 준수한 청년들이 유리문 손잡이가 마르고 닳도록 드나들던 곳. 게다가 감각 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선물을 골라야 할 때 꼭 들러야 할 장소 중 하나였다. 혹은 스스로에게 잘 재단된 재킷이나 청바지를 세일과 상관없이 선물하고 싶을 때 방문하는 패션 원더랜드.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열심히 일했다면 이곳에 쇼핑하러 갈 것이다”라고 사라 제시카 파커가 바니스 백화점에 대해 찬양했다면, 강남 멋쟁이들에겐 갤러리아였다. 하지만 압구정동 번영기가 가로수길에 밀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경기까지 더해진 데다, 경쟁 백화점들이 판을 벌이고 멀티숍들이 강남 일대에 문을 열자 갤러리아는 빛을 잃기 시작했다.

물론 2004년쯤 생활관과 명품관이라는 이름 대신 ‘웨스트’와 ‘이스트’로 구분하고 서쪽 외관을 휘황찬란하게 꾸미며(건축가 벤 반 버클의 솜씨로 탄생된 진줏빛 LED 디스크 4,330여 장을 붙여 만든 미디어 파사드는 압구정동의 명물!) 점진적으로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 빛은 이 부유한 동네에서 겉돌 뿐이었다. 10년의 우여곡절을 겪은 갤러리아 웨스트가 본격적으로 조도를 높였다. 외양만이 아니라 내부에 대대적 혁신을 시도하며 전혀 새로운 쇼핑 패턴을 서울에 제안하게 된 것. 이를 위해 외부에서 남다른 감각을 지닌 비즈니스맨이 CEO로 영입됐고, 바잉부터 MD, 매장 관리 등을 총괄할 인재가 발탁됐다. 한때 TV CF에도 출연한 적 있을 만큼 눈에 띄는 외모의 CEO는 리오프닝 행사에 맞춰 검정 재킷에 남색 데님 팬츠를 입고 늘 그렇듯 훈훈한 미소로 호스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갤러리아 혁명’의 주도자쯤 되는 밝은 갈색 머리 여인이 <보그> 팀을 각 층마다 안내했다.

“‘어반 랜드스케이프’를 주제로 1층 로비는 물론 전 층의 곳곳에 도시의 소품 같은 풍경을 연출했어요.” 지하 ‘고메이 494’를 제외한 1층부터 5층까지 발딱 뒤엎어 일대 혁신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진 콜린(Jean Colin)이다(‘MD Director / Senior Vice President’라는 공식 타이틀로 상무 직함을 갖고 있다). “90년대 말 <보그 코리아>와 인터뷰한 적 있어요.”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에 거칠게 탈색한 머리칼, 여기에 갤러리아가 단독 전개하는 MSGM의 원피스와 피라미드 스터드가 박힌 발렌티노 샌들을 신은 그녀가 슬쩍 고백했다. “뉴욕 샤넬 부티크의 매니저로 근무할 때였죠. 비록 제 이름이 기사에 다르게 표기됐지만요. 하하!” 그녀는 FIT에서 바잉과 머천다이징, 마케팅을 전공한 뒤 도나 카란, 샤넬, 펜디 등에서 10여 년간 실무 경력을 쌓았다(맨해튼을 누비며 일할 때 그녀는 빌 커닝험의 렌즈에 자주 포착됐다). “그 기간에 50여 개의 매장을 오픈했어요.” 그런 뒤 홍콩 레인 크로포드의 온라인 디지털 파트에서 리테일, 마케팅, 머천다이징을 인터넷 세상에 펼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조약돌’로 불리는 대형 피팅룸은 2층의 명물이다. 갤러리아 웨스트는 왼쪽의 폴 필렉과 오른쪽의 디에고 버디가 운영하는 ‘버디필렉’의 인테리어에 의해 재단장됐다.

진 콜린은 이스트에 있던 고급 뷰티 브랜드를 웨스트 1층으로 옮기는 것부터 혁신을 시작했다(이스트에는 갤러리아가 자체적으로 큐레이팅한 가방 멀티존이 마련된다). 그러나 1층은 별다를 게 없었다. 온갖 뷰티 브랜드에서 봄날의 꽃밭처럼 뿜어대는 향기를 음미하며 2층으로 올라가자, 드디어 돌변한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캐나다의 유명 설계사 ‘버디필렉’과의 협업으로 완성된 공간입니다. 아일랜드의 고급 백화점 브라운 토마스, 캐나다의 일류 백화점 홀트 랜프류, 미국 W 호텔 아틀란타 등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회사죠.” 진 콜린 곁에서 상품전략팀장 윤소영이 신뢰감 있게 설명을 이었다(그녀는 에르메스 코리아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중앙 에스컬레이터 좌우에는 팝업 스토어 공간을 마련해 갤러리아가 자체적으로(쉽게 말해 마음대로) 기발한 프로젝트를 열 수 있다(브랜드 직영 매장 외에 갤러리아가 독점 전개하는 숍인숍 개념의 편집매장과 단독 매장이 월등히 늘었다. 무려 20개 이상!). “신규 브랜드의 인큐베이팅과 함께, 서울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는 무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마커스 루퍼부터 베르수스, 라프 시몬스 남성복 등을 물 건너가지 않고도 눈앞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각 층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맨 먼저 짠 하고 공개되는 팝업 존들은 2~3주 단위로 회전된다).

기존 갤러리아 단골들이라면, 이젠 미로 같은 구조 앞에서 좀 긴장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패션 탐험을 제안하고 싶어요.” 진 콜린이 숲 속에서 능숙하게 길을 찾듯 이동하며 설명했다. 이곳은 브랜드에게 땅을 임대한 듯한 기존 백화점 형태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리하여 브랜드 고유의 인테리어나 데커레이션이 몽땅 사라졌다. 대신 모든 파티션 높이를 낮추고 층마다 자재를 균일하게 적용해 안락한 느낌. 패션 전문가들의 눈에 이런 방식은 꽤 민감한 주제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백화점은 브랜드들을 위한 3차원 공간의 레고식 편집이었으니까. 하지만 브랜드의 경계를 무너뜨린 개방형 구조는 백화점의 무게중심이 브랜드에서 백화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몇몇 브랜드들이 이 구조를 낯설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브랜드와 고객을 계몽할 시간이 필요하죠.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빠를 것 같아요.” 진 콜린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중적 이미지의 제품들을 하이엔드급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고객이 옷에 집중할 수 있고, 옷이 중심이 되는 초대형 멀티숍인 셈이다.

2층의 압권은 우주 공간에서 떨어진 운석처럼 거대하고 둥그스름한 형태의 피팅룸(특별한 외관의 사물이나 외모의 사람에겐 늘 별명이 따르듯, 좌우에 하나씩 마련된 독특한 조형 공간을 보며 직원들은 조약돌이나 움집이라며 우스꽝스럽게 부르곤 한단다). 물론 피팅룸은 이 대형 조약돌 외에도 매장 곳곳에 은닉해 있다. 디지털 시대, IT 강국에 걸맞게 나무 POP 설치물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했다.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CEO의 스마트한 발상으로 인해 LCD POP로 교체된 것. 만약 여러분이 이런 최첨단 풍경이 맘에 들어 촬영하고 싶다면, 전혀 머뭇거릴 필요 없다. 암묵적으로 금지됐던 백화점 내 옷과 공간 촬영(카피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 전면 허용됐으니까. 갤러리아 웨스트에 쇼핑하러 왔다는 인증샷을 당신의 블로그에 남기고 싶은가? “셀피를 많이 찍는 요즘 세대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거울을 많이 배치했어요.” 게다가 포털 사이트의 검색 순위를 보듯 실시간 베스트셀러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3층의 데님 라이브러리에는 모든 체형과 연령대의 여자들을 위한 데님 아이템이 준비돼 있다. 그리고 각 층마다 마련된 팝업존에는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나 곧 뜰 것 같은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 오른쪽 사진은 지난 3월 12일, 갤러리아 리오프닝 행사의 깜짝 이벤트 풍경!

3층에서는 데님 섹션이 장관이다. “우린 이곳을 ‘데님 라이브러리’라고 부릅니다.” ‘청바지 도서관’이라고 발음한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런 이미지의 데님 진열대가 펼쳐질 테니 놀라지 마시라. 한 층 더 올라가 4층, 진 콜린이 ‘스니커즈 킹덤’으로 지칭한 우주선 형태의 스니커즈 섹션 앞에선 누구라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고객들은 갤러리아 웨스트를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쇼핑의 랜드마크로 여길 만하다. “철저히 상품이 중심인 공간입니다. 비슷한 제품이라도 다른 편집매장이나 백화점과 다른 각도로 바잉하고 다르게 진열해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게 우리의 임무죠.” 값비싼 제품이 훨씬 특별하고 더 그럴싸해 보이는 곳이 이곳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도 최고급 제품들은 높은 판매율을 유지해왔다. 그건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갤러리아 웨스트는 단순한 리노베이션이 아닌, 업그레이드 차원에서 고객에게 수준 높은 쇼핑을 제공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를 위해 진 콜린은 프란시스코 코스타, 제이슨 우 등을 설득 중이다. 20여 년간 자신이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패션 스타들을 직접 서울로 초대해 고객과 만나게 할 예정이다. “라프 시몬스 같은 슈퍼 디자이너와 갤러리아 웨스트의 협업은 어떨까요?” 그녀는 이 밖에도 무궁무진한 기획을 준비 중이라며 아직은 대외비라는 투로 슬쩍 귀띔했다. 또 ‘Today’s Pick’이란 소소한 기획을 통해 지하에서 쇼핑하거나 식사하는 고객들이 솔깃해할 이슈를 제안해 지상으로 유인할 계획이다(2012년에 오픈한 푸드 부티크 ‘고메이 494’는 매출 25%, 고객 60% 증가로 대성공!).

그렇다면, 3년간 기획해 63일 만에 완성한 결과는? “빨리 다시 가고 싶다” “팝업 스토어에 또 어떤 브랜드가 진열될지!” “바로 지금이 아니면 놓치게 될까 안달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3차원 입체적 패션 매거진을 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쇼핑하기 좋고 이국적이다” 등등. 패션 기자들에게 리오프닝 프리뷰의 감흥을 묻자 이런 반응이 문자메시지로 속속 배달됐다. 물론 ‘뼛속까지 패피들’의 한정된 의견이지만, 진 콜린은 자신의 사례를 들려주며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는 어느 일간지 여기자가 이곳을 둘러본 뒤 만족과 호감을 드러냈어요.” 갤러리아는 1990년부터 2013년까지 패션과 쇼핑을 어떻게 즐겨야 하느냐에 대해 몇 걸음 앞서 조언하는 <보그> 같은 백화점이었다. 젊고 진보적인 서울 멋쟁이들과 셀러브리티들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도 뭐 그게 별거냐는 투의 사람들로 득실대는 공간. 하지만 그녀는 그런 한계마저 초월하길 원한다. “특정 연령대나 소수를 위한 공간이고 싶지는 않아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쇼핑을 즐기는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