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조류 독감

전 세계적으로 조류독감이 여러모로 중요한 사안이 됐다.
그런데 패션이 조류독감에 된통 걸려들었다면? 적어도 패션에서만큼은 백신 개발이 필요 없다.



당신은 기침과 호흡 곤란 같은 호흡기 증상을 호소할지 모른다. 또 발열과 오한, 근육통까지 겹쳐 징징거릴 수 있다. 게다가 두통과 설사까지. 오, 마이 갓! 그걸 손에 넣지 않으면 당장 목숨이 끊어질 듯한 옷이나 구두가 생겼을 때 이런 반응을 일으킨다고? 모르긴 몰라도 분명 그런 종족이 있겠지만, 이번엔 패션 중증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조류독감에 관한 것.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바로 그 조류독감이 아닌, 패션 조류독감에 관해서다.

90년대나 2000년대에만 해도 패션 정원에 깃털이 날아들면 보데가만에 갇혀 새들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 비명을 지르는 히치콕 숙녀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유행하던 레이디라이크 룩 때문. 반면 알렉산더 맥퀸(그는 살아생전 깃털 하나로 별의별 패션 요술을 다 부렸다), 앤 드멀미스터(원형과 함께 깃털은 그녀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안나 수이(우리 시대 마지막 히피족인 그녀는 보헤미안 기질을 위해 깃털을 자주 쓴다), 헬무트 랭(전설의 <더 페이스> 표지에서 깃털 왕관을 쓴 케이트 모스를 기억하시나?) 등은 깃털을 옷과 소품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썼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적어도 깃털을 이용할 땐.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새털 전략을 구태의연하다고 폄하하고 많은 모방자들이 난잡한 깃털 장식을 선보일 때, 맥퀸과 드멀미스터와 랭은 가뿐하고 몽환적이며 연극적인 데다 원시적이고도 마술적인 깃털만의 특징으로 쇼맨십을 보여줬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깃털 의상을 보며 맥퀸, 드멀미스터, 랭 시대와 다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 깃털이 살균 소독은 꼼꼼히 됐는지, 어떤 식으로 화학약품 처리됐는지,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진 않을지 걱정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상황이 된 것. 이게 몇 개의 단어 때문이다. 살처분, 가금류, 그리고 조류인플루엔자, 줄여서 AI 등등.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 뉴스 보도를 하루가 멀다고 접한다. “닭·칠면조 같은 가금류와 야생 조류 등에 감염되는 급성 바이러스 전염병.” “초동 방역반을 긴급 투입해 해당 농장을 폐쇄했으며, 500m 오염 지역 내 농장의 오리 1만 9,400마리를 살처분할 계획이다.” 그로 인해 치킨을 먹는 게 과연 안전한지, 심지어 닭강정이나 달걀 반숙도 AI와 상관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포털 사이트에 속속 올라온다. 저 세상으로 떠난 맥퀸이나 현역에서 은퇴한 드멀미스터와 랭이 보면 얼마나 가슴 칠 사태인지!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시즌 패션 경향을 보면 어떤 면에선 조류독감에 걸린 듯하다. 루이 비통과의 이별을 더욱 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마크 제이콥스는 대형 공작 깃털 장식으로 여인들의 머리를 꾸몄다. 무대에 솟구쳐 오르던 분수의 물줄기와 잘 어우러졌고, 그가 원했던 쇼걸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도 딱이었다(그건 불에 그을려 바삭하게 만든 공작 깃털로 스티븐 존스의 솜씨). 물론 마크 지지자들이야 한 번쯤 머리에 쓰려고 안달이겠지만, 이런 깃털 헤어 장식이 현실의 일반 여자들에겐 별로 해당되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의 중간계에 사는 듯한 레이디 가가는 이 쇼가 끝나기가 무섭게 냉큼 깃털 헤어 장식과 옷으로 빼입은 채 여기저기 나타나 파파라치들에게 찍혔다. 패션 조류독감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 디자이너를 들자면 준야 와타나베도 만만치 않다. 그 역시 출렁출렁 물결치듯 길고, 수없이 많은 꿩 깃털 헤어 장식으로 자메이카 종교 신자들인 래스터 패리언들을 표현했으니까.

스티븐 존스나 필립 트레이시 작품은 물론, 비통이나 와나타베의 올봄 컬렉션이 그렇듯, 깃털은 역시 헤어 장식으로 쓰일 때 그 효과가 대단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머리도 머리지만 발끝까지 패션 조류독감에 전염됐다. 마르코 자니니의 마지막 로샤 쇼를 보자(어찌 된 일인지 마크와 마르코는 둘이 짜기라도 한 듯, 자신들의 패션 하우스 마지막 쇼를 위해 깃털의 극적인 효과를 원했다). 맨 앞줄에 앉은 관객들은 사탕 포장지처럼 오묘하게 반짝이는 옷보다 무대 바닥에 더 집중했다. 무대를 사뿐사뿐 밟는 것도 모자라 슬슬 쓸면서 등장한 깃털 신발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바빴으니까. 타조털이 빗자루처럼 무성하게 달린 라임색 슈즈를 우리가 이전에 본 적 있었나? 마르코 자니니의 깃털 신발 사랑은 지난 1월에 열린 메종 스키아파렐리 꾸뛰르 쇼에서도 다시 한 번 재현됐다. 이번엔 좀더 과격한 블랙과 카키색 버전.

사라 버튼이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레이블을 오뜨 꾸뛰르급으로 승화시킨 이번 컬렉션에도 깃털은 넘실댔다. 쇼가 시작되기 전 무대 뒤를 염탐해보니 꼼꼼한 디자인 팀 조수들이 오프닝 모델이 무대로 나가기 직전까지 온갖 새털을 드레스에 다느라 분주했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부족을 표현하기 위해 깃털이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체크 트위드로 보인 옷감도 자세히 살펴보면 깃털과 비즈로 만든 것). 또 20세기 ‘잇 걸’ 댄서인 조세핀 베이커라면 맥퀸의 타조 깃털로 만든 프린지 드레스를 입고 파리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댔을 듯. 몽클레르 감므 루즈의 지암바티스타 발리가 원한 도시의 아마조네스들에게도 육지의 모든 고양이과 동물무늬와 함께 한 움큼의 깃털이 제물로 바쳐졌다. 또 가레스 퓨 무대의 처음과 끝을 보니, ‘타조가 된 근위병’ 같은 말도 안 되는 인물을 출연시켜 판타지 동화를 쓰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 깃털은 기성복보다 꾸뛰르에서 더 각광받는 오브제다(이번 시즌 발렌티노와 고티에 등이 대표적인 예). 하우스 장인들의 손맛이나 솜씨를 뽐낼 최적의 재료 중 하나인 데다, 그 완성품이 전하는 이미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아름다움이니까. 그 아름다움의 발원지인 르마리에 공방의 인터넷 홈페이지(www.lemarie-paris.fr)를 클릭하면, 열두 개 깃털이 오페라 레드의 화면으로 사르륵 날아들며 화면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공방엔 거위, 타조, 백조, 칠면조, 공작, 독수리, 수탉, 극락조 등 별별 날짐승의 300여 개가 넘는 깃털들이 100년이 넘은 낡은 상자 속에 흘러 넘친다. 샤넬은 꾸뛰르 외에 몇 개월 전 미국 댈러스에서 발표한 프리폴 컬렉션을 위해서도 깃털을 실컷 사용했다. 서부가 주제였기에 당연히 등장할 법한 인디언 추장의 거대한 머리 장식을 위해. 물론 프라다가 올봄 아트 쇼에 양념처럼 쓰기 위해 만든 깃털 몇 가닥짜리(만년필 대에 쓸 것 같은 깃털) 헤어밴드에 비하면 그저 쑈‘ 용’이지만.

그런가 하면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역시 깃털로 펼칠 수 있는 패션 상상력을 배불리 감상할 수 있는 무대다. 그 베일 뒤에 젊은 깃털 장인이 있으니, 바로 앤트워프 출신의 세르칸 쿠라(Serkan Cura). 열세 살 때 학교 근처 벼룩시장에서 본 ‘새들의 천국’(온갖 깃털 제품을 이렇게 묘사했다)에서 은혜를 받은 후, 깃털과의 동고동락이 시작된 것. 어른이 된 그는 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깃털 매장인 ‘메종 페브리에’의 모든 깃털을 싹쓸이하기 위해 엄마에게 돈을 꾸는가 하면 자신의 보석과 아파트까지 처분할 정도로 깃털 사랑이 지극정성이었다(디트리히가 입었던 백조 깃털 재킷과 조세핀 베이커가 썼던 분홍색 왜가리 털 모자도 포함됐다). 현재 그는 100년간 쓰고도 남을 깃털을 보유하고 있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그걸 이용해 지난 1월 오뜨 꾸뛰르 패션 위크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컬렉션을 통해 혀를 내두를 만한 깃털 쇼, 쇼, 쇼를 발표하기도 했고.

이렇듯 깃털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인 당대 재주꾼들 덕분에 패션은 아름다운 조류독감(이런 말도 안 되는 모순이 패션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인다)에 된통 걸렸다. 조류독감을 예방하려면 유행 지역 출입을 피하고,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근처엔 얼씬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패션 조류독감은 정반대다. 그걸 입고 쓰고 살갗을 간지럽히는 등 애써 찾아서 즐겨야 한다. 또 조류독감 예방 백신은 개발됐다지만 아직 임상 시험 단계에다 효과도 불분명. 따라서 살처분이란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지만 패션 정원에 날아든 패션 조류독감 앞에선 모두가 태평하다. 전 세계 어딘가에서 가금류 대학살이 일어나든 말든, 르마리에 공방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장인들이 온갖 깃털을 레이스와 튤에 곱게 장식하고 있을 테니까.